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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스라의 위치
2-1.에스라 책 개요
1)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렘29:10-14)하신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은 본서에서 성취된다. 모두 세 차례의 귀환 중 에스라서에는 제1, 2차 귀환이 나타난다. 에스라서는 그 내용을 크게 둘로 구별 해 볼 수 있다. 첫째는 1-6장에 걸처 나타나는 성전 재건의 역사이다. 약 70년의 세월동안 포로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안정을 누리던 때였지만 잃었던 신앙을 되찾고자 모든 것을 버리고 과감히 귀환길에 오른 것이다. 먼저 제단과 종교적인 절기들을 회복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 복구 사업을 시작한다. 수많은 반대와 방해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슥 4:6) 말미암아 완성케 된다. 두 번째의 주요 내용은 자체 개혁(7-l0장)이다. 첫 번째 내용은 스룹바벨이 지도적 인물이었지만 이번에는 에스라에 의하여 진행된다. 제1차 귀환후 81년만(B.C. 457년)에 소수의 무리를 데리고 에스라가 귀환한다. 에스라는 1차 귀환으로부터 에스라 귀환 당시까지 극도로 혼탁해진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율법의 말씀에 입각하여 개혁을 성공시킨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죄의 회개와 영적 부흥은 재건된 성전과 더불어 귀환한 백성들에게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2) 에스라서는 고레스의 유다 포 귀환 허락 칙령 발표로 끝난 바로 앞의 책 역대하의 말미와 직접 연결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1:1에서부터 귀환이 허락된 것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예언의 성취라고 선포한다(렘 29:10-14). 이것은 조상들의 패역으로 야기된 징벌이 끝날 시점에서 이스라엘이 할 일은 새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 생활을 통해 새 역사의 창조라는 저자의 관점을 강력히 반영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서는 포로 귀환 이후 선민 국가 재건을 위해 격어야 했던 큰 사건을 중심으로 크게 전 ·후반부로 나된다. 먼저 전반부 1-6장은 B.C538년의 1차 포로 귀환과 선민 국가 재건의 외형적 기틀 마련인 성전 재건을 기록한다. 그리고 후반부 7-10장은 B.C. 457년경의 2차 포로 귀환 이후 선민 국가 재건의 의욕이 상실되어 영적 침체에 빠진 상태에서 에스라가 신앙 부흥 운동을 주도하는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3) 역대하는 제사장적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기술한 뒤, 그 말미에 계속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총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되게 되었다는 증거로서 고레스의 포로 귀환 허가 칙령을 기록하였다. 에스라서는 바로 이 역대하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고레스의 귀환 조서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B.C 537년 제 1 차 포로 귀환에서 ,B.C458년 제 2차 포로 귀환까지 약80년간의 포로 귀환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B.C 516년 스룹바벨 성전 완공 이후부터 B.C.458년 제2차 포로 귀환 사이 약 58년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주로 B.C537-516년까지 성전 재건의 역사와 B.C.458년 에스라의 신앙 개혁의 역사만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서는 내용상 크게 2부로 나눌 수 있다. 제 1 부, 1-6장은 제 1 차 포로 귀환자들의 귀환과정과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를 다룬다. 제 2 부, 7-l0장은 제 2 차 포로 귀환과 에스라의 신앙 개혁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4) 본서는 히브리 성경에서 느헤미야와 함께 한 권으로 묶여 있다. 그 이유는 두 권이 공통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나라와 성전을 재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본서는 포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자들에게 성전 예배에 참석할 것을 권유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요 약: |
2-2.이스라엘 귀환시대의 정치적 배경
3.에스라 서론
1.역사적 배경 | 고레스 왕의 조서로 시작되는 본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된 이스라엘의 70년 동안 포로생활과 귀환이, 페르시아의 여러 왕들의 도움과 몇몇의 경건한 유다인 지도자들과 에스라의 지도하에 성취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때의 역사적 배경은 고레스(B.C.559-530) 왕으로 시작하여 아닥사스다 1세(B.C.464-423) 통치까지이다. 고레스는 B.C.539년 10월에 바벨론을 정복하고 이듬해인 B.C.538년에 유다인의 귀환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린다. 바벨론 포로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바와 같이(B.C.605, 593, 586) 귀환도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성전 재건의 역사는 B.C.536년에 시작되어 B.C534년에 중단되었다가 14년 만인 B.C.520년에 재개된다. 그리하여 무려 20년만인 B.C.516년에 완성을 보게 된다. |
2.제 목 | 에스라(스)-히브리 성경은 본서의 명칭을 등장하는 주인공 '에스라'(도움)를 따라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70인역은 본서를 '제2에스드라서'로, 벌게이트역에서는 '제1에스드라서'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
3.저 자 | 유다 전승(탈무드)은 본서의 저자를 에스라라고 규정한다. 또한 7:28-9:15의 인칭 화법은 본서의 저자가 에스라임을 증거한다. 따라서 본서의 저자는 아론의 후손(7:1-5)으로서 제사장이자 율법 학사(7:10-12)였던 에스라이다. |
4.연 대 | 본서에 기록 사건이 모두 끝나고 느혜미야 총독 부임 직후(B.C.444년). |
5.기 록 목 적 | 본서는 2차 귀환을 지도했던 에스라가 3차 귀환한 백성들에게 앞서 1 · 2차 귀환한 백성들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겨준 것이다. 곧 선조들이 선민 역사의 재건을 위하여 벌였던 성전 건축 및 신앙 개혁 사건을 중심으로 잘한 점은 살리고 못한 점은 고치도록 촉구하고자 기록되었던 것이다. |
6.특 징 | 1) 역대상하, 본서 그리고 느혜미야서는 서로 연결되어 이스라엘 왕정 초기에서 왕정의 몰락과 회복의 전 과정을 파노라마 식으로 개관하는 책임. 2) 선민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야기된 포로 생활을 하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귀환하여 새로운 공동체로 회복되는 과정을 묘사함. 3) 역대기가 솔로몬 성전의 건축과 파괴를 줄거리로 진행된 반면 본서는 스룹바벨 성전의 건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는 저자인 제사장 출신 에스라의 경향을 반영한 것임. 4)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회복을 염원하는 제사장적 문서로서 스룹바벨 성전 건축을 중심으로 포로 귀환 이후의 사건 서술. |
7.기 록 장 소 | 수복한 유다 땅 |
8.수 신 자 |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 |
9.주 요 인 물 | 고레스, 스룹바벨, 아닥사스다1세, 에스라 |
10.핵 심 | 올라옴, 예루살렘 조사, 여호와의 집, 여호와의 율법법 |
4-1.에스라 중심주제
사 실 | 교 훈 | |
1.포로귀환 | 당신의 백성이 당대 근동 세계를 주름 잡던 바벨론 대제국의 포로라는 불가항력적 상황을 격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셨다(렘29:4), 그리고 정한 기한이 이르자 제국의 통치자의 마음을 감동하사 역사적인 고토 귀환 장면을 연출해 내셨다(1장). | 유대 민족의 귀환은 단순한 국토의 회 복의 차원을 넘어 그들의 선조 아브라함의 소명에 기원을 둔 '약속의 땅'에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연약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사 그들을 원래의 위치, 아니 그보다 휠씬 축복된 위치로 회복, 승리 시키시는 자비의 아버지이신 것이다. |
2.성전재건 | 다윗 왕의 직계 후손인 스룹바벨 영도하에 백성들은 분연히 일어나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황폐된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다(3장). 이는 유대 민족을 본보기로 당신의 원대하신 구속사의 전개를 펼쳐 보이시는 유일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뛰어남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하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 성전재건 사역은 하나님의 기적적 섭 리와 그 사실에 탄복한 인간 편의 전폭적 헌신의 조화 속에 진행되어 갔다. 단, 그분의 도우심은 영구 불변한 반면, 백성들의 반응은 환경 의존적이었기에 문제는 그들의 순종 여부였다. 오직, 자신을 부단히 그분의 뜻과 목적에 복종시키는 성화의 과정만이 궁극적인 승리를 기약할 뿐이 었다. |
3.방해공작 | 제단과 성전 기초가 세워짐과 동시에 대적들의 방해가 시작되었다. (4:1-6). 그들은 6년간의 끈질긴 상소 끝에 재건 중단령을 얻어냈고 결국 15년간의 공사지연이라는 대성과를 거두었다(4:24).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던 유대인들의 믿음이 호되게 시련을 당하는 기간이었다. | 하나님의 일에는 반드시 사단의 방해가 따른다. 그러나 그것조차 하나님의 통제 가운데 있으므로 우리는 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그분은 소극적으로는 대 적의 방해를 막는 보호자로서, 적극적으로는 그것을 당신의 백성의 믿음을 연단하는 과정으로 이용하시는 훈련자로서 일하고 계신 것이다. |
4.말씀선포 | 백성들의 고토 귀환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 아래로 돌아온 것을 의미 하기도 했다. 즉, 에스라의 성경 강론(7:1-lO) 및 학개, 스가랴의 재건 사역 촉구의 메시지(5:1)는 백성들로 하여금 방종과 나태의 잠에서 깨어나 말씀 중심의 산 신앙을 회복케 했던 것이다. | 말씀은 신앙인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짓는 유일무이한 절대 규범이다. 그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원리를 무시하고는 아무도 진정한 진보와 성장을 기할수 없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이 말씀(딤후3:16, 17)과 더불어 생활하는 자, 그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것이다(행13:22). |
5.개 혁 | 지도자들의 독려에 힘입어 마침내 백성들은 재건 공사를 필역했다.(6:14). 그러나 그들의 의무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동안 축적된 이교적인 악습을 청산할 시대적인 요구에 직면했던 것이다(9장). 성전 재건 사역이 그랬듯이 이 죄악 청산 역시 단호한 믿음과 결단에 의해 실행 되었다(10장). | 성전 재건 및 사회 죄악 청산은 시종 결연한 각성과 결단에 의해 추진되었다. 한시라도 믿음의 고삐를 늦추는 것은 곧 실패와 중단을 의미했다. 이처럼 신앙의 길은 끊임없는 긴장과 자기 결단을 요구 한다. 오직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만 이 승리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이다(고전9:24-27). |
4-2.네 차례에 걸친 포로
1.네차례의 포로
포로순서 | 1차포로 | 2차포로 | 3차포로 | 4차 포로 |
연 대 | B.C 605년 | B.C 593년 | B.C 586년 | B.C 582년 |
바벨론왕 | 느부갓네살 | 느부갓네살 | 느부사라단 장관 | 느부사라단 장관 |
유대왕 | 여호야김3년 | 여호야긴1년 | 시드기야11년 | 그달랴 총독 |
포로과정 | 바베론의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의 바로느고를 격파하고 그 동맹국이던 유다까지 완전히 점령함, 이때 성전 기구의 일부를 바벨론의 시날 땅으로 약탈해 감. | 느부갓네살이 그의 심복들을 앞세우고 예루살렘을 재차 침공하여 포위 공격함, 유다 왕 여호야긴은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과 함께 느부갓네살은 대부분의 유다 백성을 사로 잡아가고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약탈 해가고 성전의 금기명을 훼파했음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재위에 있은지 8년된던 해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치고 대신 시드기야을 유다 왕위에 세움, 그러나 시드기야가 반 바베론 친 애굽 정책을 추진하자 느부갓네살은 자기를 배반한 시드기야를 징계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도록 시켜 마침내 예루살렘을 함락함. 이때 바벨론 군대는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을 초토화 시킴 | 국수주의자였던 이스마엘이 느부갓네살에의해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그달랴를 살해하자, 느부사라단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백성들을 또 한 차례 사로 잡아감 |
포로자 | 유다왕 여호야김과 왕족 및 다니엘을 위시한 일부 귀족들이 잡혀감 (단1:1-5) | 여호야긴과 왕족들, 대부분의 귀족들과 용사들 및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다 백성들이 잡혀갔으며 그중에는 에스겔 선지자와 모르드개도 포함됨(겔1:1-3,에2:6) (왕하24:10-17) | 예루살렘 성중에는 남은 백성과 항복한 자들 중 빈천한 자를 제외하고 모조리 끌려감 (왕하25:8-12) | 남은 유다 백성들 중 일부가 잡혀감 (렘52:30) |
2.남유다의 귀환
왕의 조서 | 지도자 | 귀환자 수 | 조서내용 | 경과 | |
1차조서 고레스원년 (538/7B.C) | 스룹바벨 (예수아 여호수아) | 백성42,360명 노래하는자200명 노비:7,337명 | 포로귀환(스1:1) 성전재건허용,성전기구반환 성전건축을 국고로 지원함 | 사마리아 방해로 13년간 중단됨 | |
2차조서 다리오1세 (520/519B.C) | 수룹바벨 학개, 스가랴 | 고레스 대왕의 조서 발견 강서편 총독 성전건축 도와줄 것,세금으로 도와줄 것 | 고레스 조서로 시작한지 약 20년만인 다리오 왕 6년515년3/12일완공,4월21봉헌,그러나 예루살렘 자치권은 회복되지 못하고 미루어짐 | ||
3차조서 아닥사스다1세 (B.C457년) | 에스라 | 남자:14,960명 레위인 38명 수종자: 200명 | 포로자유귀환,국고로추가지원, 성전조직관리 및 예루살렘 자치권 부여(스7:7) | 신앙개혁 운동이 일어남, 이방인과 통훈문제 해결 | |
4차조서 아닥사스다1세 (B.C444년) | 느헤미야 | 예루살렘 보수 및 재건 건축자료 성원 | 산발랏,도비야의 방해, 52일만에 성벽 재건(느1:1) | ||
5-1.에스라.느헤미야 신학
1. 신학적 배경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 방향의 위험에 직면케 된다. 즉 공허한 형식주의와 무의미한 율법주
의가 그들의 진정한 예배 생활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무관심과 무지가 지속되었고 백성들의 신앙은 그저 무미건조하게 변질되어 갔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전해 주는 세 가지의 중요한 이야기들은 바로 그 같은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들은 그 위험들에 대한 그들의 깨우침과 동시에 백성들의 신앙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지녔다. 첫 번째 이야기는 성전 재건에 관한 것인데, 예배의 지극한 중요성을 웅변해 주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새삼 강조했음을 설명해 준다. 즉 하나님 앞에서 예배와 생활이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되려면 율례와 계명의 준수가 필수 불가결함을 강조하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그가 시행한 개혁들에 관한 것이다.
2. 신학적 결론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그 내용이 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신학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해 웅변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13회에 걸쳐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묘사된다(에스라 9회, 느혜미야4회). 그리고 같은 횟수가 에스라에서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지칭하는 데 반복되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 혹은 "나의 하나님"이 무려 51회나 언급된다(에스라 23회, 느헤미야 28회). 여호와라는 고유 명사는 53회 발견된다(에스라 37회, 느헤미야 16회). 이상스럽게도 하나님을 "주"(아도나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단지 4회, 그것도 느혜미야에서만 볼 수 있다.
또한 이 책들에는 여러 신학적 주제들이 풍부하게 널려 있다. 하나님의 전은 최소 64회나 언급되는, 많은 주목을 받는 주제이다(에스라 44회, 느헤미야 20회). 하나님의 율법이란 주제는 직접적으론 27회 이상(에스라 8회, 느혜미야 19회)으로 하나님의 계명, 율례, 조례, 법령 및 경고 등으로서 등장 하고 있다. 한편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두 책 모두를 연결하는 주제이다. 그리고 성전, 레위인, 회생제, 기도, 금식과 자복 등에 대해 언급한다.
3. 오늘날의 교훈
에스라와 느헤미야에는 오늘날의 사회에 적절한 교훈들로 풍부하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이 책들은 우리에게 도전을 던져 주고 있다. 1) 이 책들의 중심 주제와 마찬가지로 우리로 하여금 예배, 기도, 말씀의 지극한 중요성을 깨닫도륵 한다 2)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처럼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는 변화를 갖도록 한다. 3) 산발칸의 방해를 받은 유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하한 환경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방법을 따라 예배드리고 생활하도록 한다. 4) 사마리아인들과의 관계에서 유다인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신을 구별하면서도 편협한 인종주의, 고립주의, 분리주의를 피하도록 한다. 5) 성전 및 성벽 재건에서 보듯이 하나님을 위해 시작한 일은 꼭 마치리라 결심하면서 수고를 아끼지 않도록 한다. 6) 하나님의 말씀을 에스라처럼 능숙하고 훈련된 교사들을 통해 가르치도록 한다. 7)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가족들을 내보낸 유다인들처럼 어떤 대가를 무릅쓰고라도 잘못을 시정하며 죄를 수시로 자백하도록 한다. 8) 느헤미야가 안식일을 어긴 자들을 다루듯 까다로운 사회 도덕적 문제를 다룸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과 방법을 결정적 기준으로 삼도록 한다. 9) 에스라가 일으킨 위대한 부흥처럼 선하고 옛스러운 부흥들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기도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한다.
5-2.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의 역사적 배경
6-1.에스라 개관
대 단 원 | 1:1 - 6:22 성 전 재 건 | 7:1 - 10:44 신 앙 개 혁 | ||
소 단 원 | 1:1-2:70 제1차 예루살렘 귀환 | 3:1-6:22 성전 건축 | 7:1-8:36 제2차 예루살렘 귀환 | 9:1-10:44 백성들의 성결운동 |
주 제 | 스룹바벨 제1차 귀환(49,897명) | 에스라 제2차 귀환(1,754명) | ||
문 체 | 성전 건축과 이스라엘 전통의 신앙 회복을 염원한 제사장 관점의 역사서 | |||
장 소 | 바사에서 예루살렘으로 | |||
기 간 | 22년 (B.C 538-516년) | 1년 (B.C 458-457년) | ||
대 단 원 | 소 단 원 | 내 용 | B.C |
1.성전 재건 (1:1-6:22) | 1) 제1차 예루살렘 귀한 (1:1-2:70) | (1) 고레스 칙령(1;1-11) (2) 인구 조사(2:1-70) | 586 남유다멸망 559 바사의 고레스즉위 539 고레스의 바벨론점령 538 고레스의 1차귀환조서 537 1차귀환 (스룹바벨,2:1) 536 성전재건작업 (1차시작,3:8) 534 성전재건작업 1차방해,중단 (4:4) 522 다리오의 바사왕즉위 520 성전재건작업 (학개,스가랴) (5:2) 516 제2성전완공 (6:15) 458 2차귀환조서 (7:11) 2차귀환 (에스라,7:9) 444 3차귀환 (느헤미야) |
2) 성전건축 (3:1-6:22) | (1) 성전 재건의 시작(3:1-13) (2) 성전 재건 중단(4;1-24) (3) 성전 건축 재개(5:1-6:12) (4) 성전 완공(6:13-22) | ||
2.신앙 개혁 (7:1-10:44) | 1) 제2차 예루살렘 귀환 (7:1-8:36) | (1) 에스라의 귀환(7:1-28) (2) 귀환을 위한 준비(8:1-30) (3) 돌아온 백성들(8:31-36) | |
2) 백성들의 성결 운동 (9:1-10:44) | (1) 지도자 에스라의 통회 자복 (9:1-15) (2) 백성 이스라엘의 대각성 운동 (10;1-44) |
귀환시대 이방 왕들 명단 | |||||
1 | 2 | 3 | 4 | 5 | 6 |
고레스 | 캄비세스 | 스메르디스 | 다리오 | 아하수에로 | 아닥사스다 |
6-2 남북 왕조의 포로
순서 | 연대(B.C) | 왕 | 정복국의 왕 | 관 련 사 실 | 관련성경 | |
북왕국 | 1차 | 733-732년 | 베가 왕 | 디글랏빌레셀 3세 | 유배지 알수 없음 | 왕하15:29 |
2차 | 724-722년 | 호세아 왕 | 살만에셀 5세 사르곤 2세 | 남자만 약27,290명이 포로되어감 | 왕하17:5,6 | |
남유다 | 1차 | 605년 | 여호야김 | 느부갓네살 | 다니엘포함및왕족 | 왕하24:1 단1:6 |
2차 | 593년 | 여호야긴 | 느브갓네살 | 여호야긴 왕과 방백 군사1만 및 많은 기술자 | 왕하24:10-17 | |
3차 | 586년 | 시드기야 | 느브갓네살 | 시드기야 왕과 왕자들, 빈천한 하층민들을 제외한 모든 백성들이 포로됨 | 왕하25:1-25, 렘25:9-11 |
7.성전재건(1:1-6:22)
대 단 원 | 1:1 - 6:22 성 전 재 건 | 7:1 - 10:44 신 앙 개 혁 | ||
소 단 원 | 1:1-2:70 제1차 예루살렘 귀환 | 3:1-6:22 성전 건축 | 7:1-8:36 제2차 예루살렘 귀환 | 9:1-10:44 백성들의 성결운동 |
주 제 | 스룹바벨 제1차 귀환(49,897명) | 에스라 제2차 귀환(1,754명) | ||
개 요: 앗수르와 바벨론과는 달리, 페르시아는 피정복민들에게 가급적 종교적,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는 회유책을 펼쳤다. 유다인들의 본토 귀환도 바로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허락된 것이며 그 이면에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고레스의 조서에 따라 스룹바벨을 위시한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시도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귀환민들은 성전 재건을 통해 민족의 숙원을 풀고자 했으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전 재건이 중단된 주원인은 대적들의 집요한 방해 공작 때문이었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귀환민들이 자기 집과 밭에 우선적인 관심을 돌린 사실도 간과될 수 없었다. 1차 귀환 때로부터 성전이 재건되기까지는 20년 가량 소요되었다.
단원 및 제목 | 내 용 |
1. 제1차 예루살렘 귀환 (1:1-2:70) | 1)고레스 칙 령 (1-11) (1)고레스의 포로 귀환 및 성전 재건 허가 칙령(1:1-4) (2)이스라엘의 헌물 및 고레스의 성전 기명 반환(1:5-11) 2)귀환자들에 대한 인구 조사(2:1-7O) (1)종족과 계보가 명확한 자들의 가계 및 지역별 명단과 수효 (2)종족과 계보가 불명확한 자들의 가계별 수효 (3)귀환자의 총계 |
2.성전 건축 (3:1-6:22) | 1)성전 재건의 시작(3:1-13) (1)백성 들의 준비 (3:1-6) (2)성전 기초의 완성(3:7-13) 2)성전 재건 중단(4:1-24) (1)고레스 칙령에 의해 성전 재건 착공 2년만에 고레스에 의해 중지됨(친1-5, 24) (2)아하수에로왕 때 성곽 착수반대에 부딪혀 중지(4:6) (3)아닥사스다왕 때 성곽 재건 또 중지(4:7-23) 3)건축 재개 (5:1-6:12) (1)선지자들의 권고로 법적 허가 없이 성전 건축 재개 (2)성전 건축 재개에 대한 닷드내의 이의 제기 (3)다리오왕에 의한 고레스 1차 칙령 확인 4)성전 완공(6:13-22) (1)다리오왕 조서에 따른 성전 건축 재개와 완공 (2)성전 봉헌 (3)유월절 절기 준수 |
8.신앙개혁(7:1-10:44)
대 단 원 | 1:1 - 6:22 성 전 재 건 | 7:1 - 10:44 신 앙 개 혁 | ||
소 단 원 | 1:1-2:70 제1차 예루살렘 귀환 | 3:1-6:22 성전 건축 | 7:1-8:36 제2차 예루살렘 귀환 | 9:1-10:44 백성들의 성결운동 |
주 제 | 스룹바벨 제1차 귀환(49,897명) | 에스라 제2차 귀환(1,754명) | ||
개 요: 제2차 귀환의 지도자인 학사 에스라에 대한 소개와 아닥사스다 1세(B.C.464-424)의 귀환 허가 조서에 대해 기록한다. 그리고 제2차 귀환자들에 대한 계수와 귀환을 위한 준비 과정 및 귀환이후 감사 제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9, 10장은 에스라의 본격적인 신앙 개혁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심은 통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방인과의 통혼은 성전 재건을 통하여 형식상으로는 선민의 면모를 회복하였지만, 실제로는 오랜 포로 생활 동안 이방의 풍습에 물들어 선민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였음을 반영하는 증거였다. 이에 에스라는 이방인과 통혼 문제를 해결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으로서 합당한 성결된 삶을 회복코자 했던 것이다.
단원 및 제목 | 내 용 |
1. 제 2 차 예루살렘 귀환 (7:1-8:36) | 1)에스라의 귀환(7:1-28) (1)에스라의 계보 (2)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 (3)아닥사스다의 조서 (4)에스라의 송축 2)귀환을 위한 준비(8:1-3O) (1)귀환자들에 대한 인구 조사 (2)성전 수종자들의 모집 (3)금식 선포 (4)재정 관리자 선정 3)돌아온 백성들(8:31-36) (1)2차 포로 귀환자들의 도착 (2)귀환 감사 제사 |
2. 백성들의 성경 운동 (9:1-10:44) | 1)지도자 에스라의 퉁회 자복(9:1-15) (1)이방인과의 통흔 문제 (2)에스라의 회개 기도 2)백성 이스라엘의 대 각성운동(10:1-44) (1)온 이스라엘의 통회 (2)이방 여인과의 이혼을 결정한 예루살렘 총회 (3)통혼자 명 단 |
9. 에스라서 등장 인물
이름 | 내 용 |
스룹바벨 | (1)이름의 뜻 '바벨론의 아들' (2)생애: 다윗의 자손 브다야의 아들(대상 3:19)로서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이었다(스 2:2). 그는 다리오 1세의 통치하에서 예루살렘의 총독이 되었다. 포로에서 귀환한 그는 이웃 사람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지도에 따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했다(스 3:2-13 ; 5:1-2 : 슥 4:9), (3)교훈: 그는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서 단을 쌓았고 율법을 회복하여 번제를 드리고 초막절을 지켰다. 사실 당시의 상황과 눈앞의 일을 따지면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모든 일에 있어서 최선의 방법임을 보여 준다. |
고레스 | (1)이름의 뜻 : '태양' (2)생애 : 메대와 바사를 연합하여 통일된 국가를 세운 바사의 초대 왕이다. (주전 559-53O). 그는 점령국의 종교를 말살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했으며 특히 유대인들을 본토로 귀환시켜 성전을 건축하도록 도왔다(대하 36:22, 23 ;스 1:1-4). (3)교훈 : 고레스는 이방국가의 왕이었으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름부음을 받았다(사 45:1),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의 기득권을 사용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뜻보다는 현실적 이익을 더 먼저 생각하며 자신들의 소유가 영원하리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자신의 모든 정력을 소비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득권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위해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유주가 아니고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
아닥사스다 | (1)이름의 뜻: '대왕' (2)생애: ' 크세르크세스의 아들로 바사의 왕이 되었다(스7:1). 그는 주전 465년에 왕위에 을라 40년간을 다스렸다. 아테네의 지원을 받아 이집트의 반란과 페르시아 제국의 반란을 진압하고 세력을 공고히 하였다. 그는 재위 7년째(주전 458년)에 에스라의 예루살렘 파견을 보장해 주었다(스 7:8, 11-26). 이때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3)교훈 : 그러나 그후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자들은 성전 건축이 반란을 획책하는 것이라고 고소하였다. 그러자 아닥사스다는 그 말에 따라 성전 건축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그는 보다 신중하게 그 일의 필요성과 사실을 파악하지 못해 하나님의 큰일을 그르쳤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도 옳지 못한 판단에 얽매여 보다 큰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고 있지는 않는가 돌아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