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추억이 된, 외로웠지만 소중했던 시절.
결혼 한지 석 달이 좀 지났을 때 남편이 이집트로 발령이 났다. 파견 기간은 짧으면 1년 길면 3년. 한국에 휴가를 받아 올수 있는 날은 1년에 딱 세 번. 그렇게 우리는 짧아서 더 달콤했던 신혼생활을 마무리 짓고, 출국 날짜 전날까지 밤마다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생이별을 준비했다. 남편이 30인치 캐리어에 가득 짐을 싸서 공항버스를 타고 떠나던 날, 큰 길까지 배웅을 해주고 혼자 집으로 돌아와 나는 또 한참을 펑펑 울다가 잠이 들었다.
25평 전셋집은 나 혼자 살기에 너무 넓었고, 단지 맨 끝 집이라 유난히도 고요했다.
집에서 회사는 지하철로 30분 거리라 퇴근 후 집에 오면 어스름한 초저녁. 겨울의 6시는 꽤 어둑했지만 여름의 6시는 칼퇴를 주저하게 될 만큼이나 밝았다. 집에 와 혼자 저녁을 챙겨 먹는 것도 점점 귀찮아져서 한동안은 구내식당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해결하고 오기도 했다. 평일엔 그렇게 반복적으로 출퇴근을 하며 5일을 꼬박 보냈는데, 문제는 주말이었다. 집안의 적막과 심심함을 견디기 힘들어 처음 몇 주 동안은 친정에 가서 주말을 보내다가 오기도하였는데, 내 방 아무데나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뽑아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침대에 누워 귤을 까먹으며 낄낄대고 있자니 어쩐지 전과 달리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생각해보니, 영화를 본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무언가를 할 때면 나는 꼭 누군가와 함께였고 오롯이 혼자 하는 경험은 두렵고 어색했고 어려워했다. 결혼하기 직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며 20년을 같은 동네에서 늘 보던 풍경, 늘 놀던 친구들, 늘 가던 음식점,,,내 주변의 모든 환경에 나라는 존재가 스미듯, 그렇게 익숙해져 있었다.
길면 3년, 남편이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걸릴 이 시간동안 나는 뭘 하며 살아야할까? 마냥 그의 휴가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퇴근 후에는 좀 움직여보자 싶어 어떤 달엔 요가, 어떤 달엔 수영, 어떤 달엔 헬스를 등록했다.
삼시세끼 급식이 질릴 때 쯤, 퇴근길에 집 앞 시장에 들러 콩나물, 두부, 애호박 장을 봐다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제철에만 먹을 수 있다는 머위잎을 손질 해 한입 가득 쌈밥을 해먹었다. 베란다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가스버너를 켜고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혼자 캠핑 온 듯 즐기고,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엔 어김없이 치킨을 배달시켜 맥주와 홀짝이다가 남은 건 주말 내내 또 먹었다.
늦잠을 자다가 하루를 완전히 망쳐버리는 날이 많았던 토요일엔, 거의 매주 조조영화를 봤다. 처음 혼자서 맥머핀을 먹으며 봤던 조조 영화는 ‘인사이드 아웃’이었다. 오후 늦게 스벅에 앉아 좋아하는 케익과 디카페인 커피를 시켜놓고 책을 읽거나 필사를 하다가 돌아오는 날도 늘어났다. 변하는 계절을 눈에 담을 줄 알게 되고, 집 앞 목련 나무에 언제 꽃이 피는지 담벼락 개나리는 언제 만발하는지 벚꽃이 제일 예쁜 길은 어디인지, 나만의 비밀 경로를 만들어 빙빙 돌다가 퇴근했다.
내가 오롯이 나를 위해 쓰는 시간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2년 반만에 수다쟁이 남편은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왔고,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불러대는 딸아이 탓에 집안의 적막과 고요는 밤 11시가 넘어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보통 그 적막이 오기전에, 하루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든다. 밀착 육아를 해야 하는 주말에는 더더욱, 화캉스나 설캉스(화장실로 피신하거나 설거지를 하며 육아를 피하는 바캉스)로 겨우겨우 틈을 내야만 찰나의 ‘고독’을 맛 볼 수 있기에, 몇 년 전 혼자일 때 느꼈던 외로움이 괜히 더 애틋하게 기억된다.
alone을 읽고 급하게 끄적여봅니다. 내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나서 다시 잘 다듬어볼게요!
첫댓글 그 시절 눈섭달의 시간들이 잘 담겨 있어요. 진짜 심심했을 것 같아요. 무슨 에피소드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읽었네요. 어제 어려운 상황에서 와서 더 맘이 쓰였네요..
고마워요 여정^^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나서 다시 이 글을 읽어보니 더 밋밋하고 재미없네요ㅎㅎ 이름 옆 여정의 사진이 왠지 더 반가운 월요일 아침ㅎㅎ
@눈썹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