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陽員 조성기
청양원은 제주양씨사직공파 향공진사공계 종친회 가족장지이다.
청양원은 사직공 유침祖의 14세 손 향공진사 종창祖(절동산 청심미 묘.삼사석 비각을 조성함)의 長男 세길祖의 2男 재온祖계와 종창祖의3男 세달祖의 3男 재호祖계의 후손들 산소를 모신 가족장지이다.
2019년 현재 墓가 73기 모시어 있으며 가족장지 명칭은 청양원이다.
청양원의 명칭은 종창祖의 7세손 시인이며 문학박사인 중해 교수의 작품이며, “員” 자 어원에는 가족장지의 이미가 있다고 말씀 하였으며, 靑陽員내에 있는 큰 비석에 비문도 짓고, 손수 글씨도 쓰셨다.
청양원 정문 돌에 새켜진 靑陽員이라는 명칭은 국선 추천작가 한글글씨 대가인 거로 출신 현병찬님의 글씨이다.
청양원 소재지는 제주시 월평동 138-1번지이며, 면적은 5736 미방 (1,735평) 이다.
등기부에 소유자는 제주양씨사직공파 향공진사공계 종친회이다.
청양원 소재 토지는 1987년까지 김상호님 (오라동 2828번지) 소유하고 있었으나, 월평동 소재 토지 양 성희님(옥현祖)과 양의연님(용희叔父일본거주)의 소유인 3300여坪의 토지와 서로 합의 하여 교환하였고.
1987년 10월 26일에 양 옥현과 양 용희 소유로 명이 변경하여 등기 하였다가, 1998년 7월 20일에 제주시청 등록번호 269112-3911288, 등록명칭을 제주양씨사직공파 향공진사계로 명이 변경하여 등록증명서를 받고 등기 이전하여 현재에 이른다.
청양원 조성 동기는
옛부터 1980년까지 청양원 조성前에는 우리 조상님들이 묘소가 한라산 남쪽 명당을 골라 여러 곳에 흩어져 산소를 조성하여 벌초등 묘소를 관리하는데 불편하였다.
그래서 각 門中마다 가족장지를 마련하여 조상을 모시는 분위기가 고조 되고 있는 즈음,
특히 종창祖 長子인 종보祖 손자인 중배(영종祖) 종친의 고암종친회 가족묘지 조성 한 것에 대한 영양이 매우 컸다.
그래서 필자의 父親(치연)께서 월평동에 고암종친회 가족장지에 다녀 오시고 나서 어느날 회사에서 퇴근을 한 필자를 불러 하시는 말씀이
우리도 가족장지를 마련코져 한다면서 날자를 정해지면 부원종님(지관.정시) 모시고 월평동 소재 토지 3300평, 공동소유주 양성희님(옥현祖)와 양이연님(용희叔父)의 토지를 답사 하려고 하니 안내하라고 한다.
1987년 6월경으로 기억한다. 필자가 안내하고 부원종님을 모시고 월평동 소재 우리 토지를 답사 하였는데, 부원종님이 한참을 토지를 살펴보고 “ 가슴이 답답하다 ” 라고 하면서
이 토지에는 100여평도 가족묘지로 쓸 만한 땅이 없다고 하면서 나와 버린다.
이 토지는 우리 조상들이 초가집 지붕를 이는(덮는)데 필요한 세를 키우는데 적합한 땅이었다.
그래도 몇수일 후 부친은 부원종님께 다시 가 보자고 청하여 우리 토지를 답사하여 살펴보고 나 오던 차 청양원터를 발견하고 이 토지이면 가족묘지로 쓸만하다고 평 하였다.
그래서 청양원 터에 들어 가서 살펴 보니 토지 한 가운데 산담한 묘 1기가 있지만 남북으로 사각형이고 가족묘지에 무례한인 필자가 보아도 맘에 들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청양원 터의 소유주 김상호님(아라동 2828번지)를 방문하여 월평동 소재 우리 토지 3300坪과 청양원터를 교환하자는 제안를 하였다.
한 동안 소식이 없어 궁금 하던 차에 전화가 왔는데, 웃돈을 받고 교환을 하고져 하는 눈치이다. 필자가 교환을 위해 김상호님댁을 방문했을 때 제주대학교을 졸업하였는데 양중해 교수가 은사님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나서, 중해博士를 모시고 또 다시 김상호님댁을 방문하여 맞 교환에 성공하였다는 後일 담을 적는다.
청양원터를 교환 후 필자의 부친께서 어욱(갈대)가 필자의 키보다 큰걸 재거, 지면정리둥, 5톤 포크레인 技士 채남효님와 임대계약하여 7일 동안 매일 현장에 상주하면서 부지를 정리 하였으며,우리 가문 종친들도 남녀노소가 참가하여 일치 단결하여 풀을 베고,돌을 나르며 노력 봉사에 매진하여 부지 정리에 일조를 하였다.
청양원을 조성하면서 필자는 제주시 여러 門中가족묘지를 탐문답사하면서 장점을 참고하여 가족장지 규정에 명칭은 靑陽員,묘의 向은 申寅方이며.매장하는 범위는 재온祖와 재호祖 자손,墓 順位는 학렬이며, 그 배위의 자리는 비우고, 墓 크기 4.5자, 비석 3자, 향탁등 제원을 定하여 제주시 소재 충남석재를 선정하여 묘소들을 조성하였다.
청양원 조성시 비용은 남자 종친회원 1인당 일십만원 부담을 하였고. 또 제단 큰비석 옆에 비용을 기부한 공덕비가 세워저 있다. 그 종친님들이 헌금 금액을 참고하시고,이 자리를 빌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함께 한 종친님들에게 감사를 드림니다.
청양원 벌초는 年中 현충일前,추석前(음력,팔월초하루,前) 일요일에 각각 06시부터 시작하며, 묘제는 추석前(음력,팔월초하루,前) 일요일 벌초를 마치고, 재온祖와 재호祖의 종친이 定해진 순번에 따라 번갈아 묘재를 봉행하고 그 비용을 종친회에서 보조하고 있으며,회비는 男子 종친들만 구정日,추석日 각각 1만원씩 납부하고 있다.
청양원이 조성되면서 울타리가 삼나무로 심어져 있어서 산담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종친회의 숙원사업인데, 그 숙원사업을 서울에서 사업에 성공을 하신 주희宗親께서 산담을 쌓는 4일 동안 상주하며 견고하게 제주돌로 겹산담을 쌓고, 3미터*9미터 콘테이너 사무실 탁자등 기천만원의 비용을 부담하여 공사 설치를 하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주희종친님이 큰 뜻을 종친회원 모두의 마음을 담아 감사 드림니다.
청양원 조성시에는 주위 환경이 한라산 중턱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작금에 들어 제1첨단도시가 들어서고, 또 제2첨단도시 경계를 접하고 보니, 주변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청양원은 우리 조상님의 영령를 모시었고, 우리 역시 잠들 영원한 영지이다. 우리 정성껏 정리하고 살펴서 만대에 보전하길 기대 해 본다.
2020,경자년 정월 초순.
근 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