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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새 시집 - 파일을 압축하다
책 소개
이은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파일을 압축하다』이 도서출판 <두엄>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총 4부(그림자 외 59편) <1부; 파일을 압축하다/ 2부; 그 길 위에 서면 우린 행복했었네/ 3부; 갈색 향기가 시간의 추를 잡으면/ 4부; 꽃물처럼 사랑도 물이 든다>로 나뉘어 구성되었으며 정윤천 시인의 해설<시간의 층위를 매만지는 갈색 향기의 노래>이 실려 있다.
석양을 드래그해서 바탕화면 배경으로 깔고
가을 폴더를 클릭해요
압화된 붉나무 잎이 간절기에
서표(書標)로 꽂혀있고요
젊음을 복사해 가을 하늘에 붙여놓아요
무섭도록 설레던 연애 감정은 서른하고도 한 살에
달력의 등 뒤로 저물어 버렸죠
꽃이 피었다 지는 구절은
누구나 갱년기를 암송한다고
붉으락푸르락 낙엽을 부추겨요
카디건을 애인의 팔처럼 두르고 셀카를 찍어요
포켓 속에 아직 덜 여문 눈물까지
단축키로 저장해요
철지나 필사된 감정의 자투리는 삭제한 후
휴지통을 완전히 비워요
처음 맞는 가을인 듯 다시 꽃이 된 나는,
나뭇잎 파일을 압축해요
<파일을 압축하다> 전문
할 일 많은 세상 엄마들
우리 엄마는 이 소소한 일들을 두고
어디에 계신가
꽃지고 해지고 돌아보면
산에, 들에 타박한 꽃봉오리들
복사꽃처럼 곱살하게 피던
광대가 먼저 웃던
엄마의 어린 봄
바람의 손에 이끌리듯
내 엄마의 봄이 왔다 가면
석양도 그리움처럼 내려앉는다
지는 봄을 서성이는 아직도
나의 바깥인 엄마,
<엄마의 봄> 전문
해설
시간의 층위를 매만지는 갈색 향기의 노래
-이은새 시집 <파일을 압축하다>를 읽는 시간
정윤천 (시인)
극복하려는 의지에 관한 갈색 성찰의 시간들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젖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젖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젖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강은교 <숲> 전문
필자로선 생면부지의 시인이기도 한 이은새 시인의 시집을 살펴보아야 할 풍경(?)이 하나 우연찮게 도착하였다. 그렇게 아직은 시인의 시력은 물론이고 시인이 지니며 왔을 그의 문학의 처음이거나 습속과 함께 미래를 전혀 가늠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백치와도 같은 백지 속 시의 “그림자”의 그림자를 한동안 따라 나서기로 한다.
그렇게,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이렇게 이렇게” 이루어지기도 하는 셈이었다.
인용시는 익히 알려진 강은교 시인의 <숲>이라는 작품의 전문이다. 이은세 시인의 시집 원고를 가만히 펼치면서, 필자에겐 어디서인지 이 한 편의 시가 한 마리 나비처럼 날아와 어깨 위에 내려 앉아 주었던가.
시간이 흐를수록 시를 읽거나 마주치는 일이 살벌하고 괴기스러워지기도 하는 작금 시풍들의 변죽 앞에서, 시제가 참으로 아름다운 시. 한 걸음 더 나아가선 시의 내용이 오롯이 사람들의 마을 앞으로 유유히 흘러드는 강물의 소리와도 같은 긴한 서사와의 대면을 그리워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다만 혼자서 유추해 보았던 것이다.
한 사람이 웃으면 두 사람이 따라 웃고, 두 사람이 웃으면 세 사람이 따라 웃는, 화해와 소통의 세계 역시 우리가 꿈꾸었던“숲”의 정경일 거라는 깨달음을 인지하게 해주었던, 지금도 여전히 높은 경지의 천품이었다. 한 줄 한 줄 따라서 읽다가 보면 어느 틈엔가 “이렇게 이렇게”
아, 여기에 나와 도열한 이은새의 시편들이 또한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시의 내용이 자신을 향한 위무의 노래임과 동시에 한 발 더 나아가 어두운 시대를 관통하는 각성의 발언이기를 기대해 보는 마음이기도 하였다.
이은새 시인의 시 읽기에 앞서 왠지 그의 “시인의 말”에 귀 기울여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봄이에요 계절보다 먼저 찾아와준 마음의 봄이에요. 해마다 꽃이 피면 봄이라 생각했지요. 꽃잎이 지면 계절이 바뀌는 줄 알았지요. 사계절 내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요. 꽃이 피고 지는 줄 알면서도 가족의 봄은 왜 만나지 못했을까요.”
<시인의 말> 일부
철 따라 오는 봄은 잊지 않고 꼬박꼬박 셈하기도 하고 기억해 내기도 하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장 기꺼웠을 “봄”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이기심이거나 불찰을 시인은 주저 없이 토로하는 중이다. 이 작은 발설 속에서 이은새 시인의 문학 혹은 시의 씨앗 하나가 심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단서에 주목하여 보았다.
필자는 이제 가장 담담하고 과장 없는 어휘들과 더불어, 이 미지의 시인이 건설한 언어의 성채 곁으로 심심한 답청의 마음을 밟아가 보기로 한다.
빛이 주는 흔적인 너를 허락하는 것도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만든 것도
제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지나간 근심 자리처럼
내 액운의 색깔처럼 아마 울음이 남기고 간
뒷걸음질이 아니었을까
빛이 쏘아주는 낭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발에 묻은 하얀 눈이 까맣게 물들고
맑은 눈물이 얼룩으로 남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변하는 건 잠깐이더라
아주 순간이더라
누구나 가질 수도, 사라질 수도 있는 너
모든 감정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너 하나 때문이더라
<그림자> 전문
“어머니의 지나간 근심 자리처럼/ 내 액운의 색깔처럼 아마 울음이 남기고 간/ 뒷걸음질이 아니었을까”
그림자를 대하는 시인의 마음은 어딘지 어두워 보인다. 그것은 “어머니의 지나간 근심자리처럼” 혹은 “내 액운의 색깔처럼” 그래서 시인이 바라보는 그림자의 초상은 “울음이 남기고 간 뒷걸음질”이 되어 현현하거나 남아있는 중이다. 하지만 시인에겐 스스로의 액운에 대한 극복의 의지가 선연해 보이는 반전 역시 도드라져 보인다. 그것은 그림자를 해석하는 또 다른 자세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빛이 쏘아주는 낭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에서 보여주는 이면의 천착으로 나타나고 있다.
“누구나 가질 수도, 사라질 수도 있는 너/ 모든 감정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너 하나 때문이더라”는 결론으로 인하여, 이은새 시인이 “그림자”를 시의 재제로 수용했던 연유가 어쩌면 거기에 있었을 것만 같았다. 그가 말하는 “액운”은 “누구나 가질 수도, 사라질 수도 있는 너”였더라는 통찰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우리들 모두는 인생이라고 부르는 삶의 매순간 속에서 “빛이 주는 흔적”에 다름없는 그림자를 하나씩 간직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리라.
화분에 물을 주듯 비가 온다
물에 빠진 붓이 몸을 털어내듯
봄비가 온다
아다지오로 분무질을 시작한 하늘
바람의 마음을 타면서 방향 감각을 잃고
그렇지만 세심한 줄기로 내린다
어둠 속 보이지 않던 먹구름들
힘을 키우기 위한 세력이었으니
바닥을 구르다 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천사의 탈을 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희뿌연 하늘이 내게 보낸 경고의 메시지,
마음을 두드리며 밑바닥까지 스며든 빗방울들
하나가 되기 위한 준비된 장난이었으면 했다
참새 눈물만큼 인색하던 시간도 제 갈 길 가고
언제나 그랬듯이 비 갠 후의 청명한 하늘은
더욱 경쾌함에 신경 쓸 것이리라
웅덩이에 응달진 눈물, 그 자리가 아직 남아 있다면
햇살 쨍쨍한 날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도 좋으리
달아나는 너를
애써 붙잡고 싶지 않은,
<봄비> 전문
“달아나는 너”를 “애써 붙잡고 싶지 않는” 어쩌면 않으려고 하였던, 상실의 노래는 화분에 물을 주듯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봄비” 앞에서, 그렇게 한 차례 은유의 옷을 입고 “갈색의 노래”마냥 불려지고 있다. 시구들 속에서의 “너”는, 봄비 그 자체일 수도 있었으나 봄비를 대하고 있는 화자 자신일 수도 있어 보였다.
“어둠 속 보이지 않던 먹구름들/ 힘을 키우기 위한 세력이었으니// 바닥을 구르다 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천사의 탈을 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고 봄비는 내린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지금 내리고 있는, 한편으로 순연해 보이는 봄비의 내면은 먹구름을 모아 세력을 쌓는 동안 너, 나 없이 구현하던 “천사의 탈을 쓴 악마”들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그대는 몰랐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화자는 어느 사이 “물에 빠진 붓이 몸을 털어내듯” 봄비를 보낸다. 살다가 살다가 보면 누구에겐들 봄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달아나도 애서 붙잡고 싶지 않는 예의 봄비를 보내거나 보내야 할 시간이 찾아오기도 하였던 것이다.
미용사의 시작은 바닥부터 쓰는 거란다
훤한 세상, 눈앞에 펼쳐진 허공
지구본을 굴리듯
어느 쪽이든 가르고 자르고
골라내야만 하는 시간의 정수리
원형탈모 같은 공허감은 채울 수 있을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일방통행이었다가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였다가
막다른 길에 들어선 지금은
미지의 세계로 떠돌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바닥이다
가장 밑바닥이라고 느끼는 곳으로
잘려 나간 머리카락처럼 누워만 있을 때
그때의 작은 소망 하나, 내 손으로
밥 한 수저 떠먹는 일이 아니었던가
먼 시간을 가둬놓았던 거울 속
세월의 무게로 자리 잡은 주름살들
파리한 입술이 이제야
거울 밖으로 걸어 나온다
아직 낯설기만 한 굴절된 바닥으로,
<바닥이 보일 때> 전문
“바닥이다/ 가장 밑바닥이라고 느끼는 곳으로/ 잘려 나간 머리카락처럼 누워만 있을 때/ 그때의 작은 소망 하나, 내 손으로/ 밥 한 수저 떠먹는 일이 아니었던가”
특히 이 작품을 두어 차례나 더 살펴보게 되었다. 그것은 위에 인용한 시행에서 나타난 참절의 내용 때문이었다.
“미용사의 시작은 바닥부터 쓰는 거란다”로 시작되었을 때에는, 이 시는 분명 화자의 직업에 연관된 작품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진술의 초점은 전혀 다른 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일방통행”은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를 지나와 “막다른 길에 들어선” 상태를 거친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바닥이라고 느껴진 바닥으로 잘려져 나간(추락한) 미용실의 머리카락으로 “시간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게 되었던 거였다.
화자의 현재적 상황이 “내 손으로 밥 한 수저 떠먹는 일”을 기원해야 한다면, 이은새 시인의 상태는 “바닥이다”라는 현실에 다름 아니다. 하여 시의 화자인 이은새 시인이 길어 올리는 시의 정염은 “굴절된 바닥”에서 펴올려 보는 샘물의 순간들은 아니었을까. “파리한 입술이 거울 밖으로 걸어나와 슬픈 기약에게로 말을 건네는, 바닥이면서도 한편으로 바닥이 아니고 싶었던 “훤한 세상”의 열망이었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장마로 간당간당하게 차오른 호수는
슬픔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었다
잠이 안드로메다로 떠난 밤이면
궁리 중인 발은 방문을 향해 있었고
식구들이 잠든 불 꺼진 방에서
영화를 봤을 뿐인데 터져버릴 듯
눈물 알갱이는 발버둥 치고 있었다
꼼짝달싹 않는 수문을 찾아 헤매던 기억
지금은 참을 수 있는 눈물인데
그때는 참아야 하는 눈물이었다
내 사춘기가 외따로 갇혀 있던 방에
누군가 수시로 불을 켰지만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은 어둠이 편했다
문득 친구가 남자가 되어
보고 싶다고 하던 그 숙맥이
수화기 밖으로 입술이 삐져나올까 봐
입김으로 새어 나올까 봐
나지막이 삼키던 눈물은, 어린 시냇물 소리로
중얼중얼 흘러갔을 뿐이다
<눈물에 대한 보고서> 전문
“사춘기가 외따로 갇혀 있던” 방에서 시인은 한 닢 “눈물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눈물은 “지금은 참을 수 있는 눈물”인데 “그때는 참아야 하는 눈물”이었다.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은 어둠이 편했다/ 문득 친구가 남자가 되어/ 보고 싶다고 하던 그 숙맥이/ 수화기 밖으로 입술이 삐져나올까 봐/ 입김으로 새어 나올까 봐// 나지막이 삼키던 눈물은, 어린 시냇물 소리로/ 중얼중얼 흘러갔을 뿐이다”
화자의 각성에 따르면 호수도 슬픔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자신에게 기인되었던 눈물은 “꼼짝달싹 없는 수문을 찾아 헤매던 기억” 속에 잔류되어 있다. 그러나 화자의 슬픔은 혹은 눈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좀 더 심각한 사정이 그를 덮치고 말았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친구로 지내왔던 이성이 남자로 변하여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 앞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숙맥”이었는데, “수화기 밖으로 입술을” 내밀고 “입김”을 실어 보내왔던 것이다. 화자의 눈물에 대한 보고서는 가히 시적인 여운이 깊다. 그리고 슬펐다. “어린 시냇물 소리로 중얼중얼” 흘러갔을 뿐이었으므로
석양을 드래그해서 바탕화면 배경으로 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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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화된 붉나무 잎이 간절기에
서표(書標)로 꽂혀있고요
젊음을 복사해 가을 하늘에 붙여놓아요
무섭도록 설레던 연애 감정은 서른하고도 한 살에
달력의 등 뒤로 저물어 버렸죠
꽃이 피었다 지는 구절은
누구나 갱년기를 암송한다고
붉으락푸르락 낙엽을 부추겨요
카디건을 애인의 팔처럼 두르고 셀카를 찍어요
포켓 속에 아직 덜 여문 눈물까지
단축키로 저장해요
철지나 필사된 감정의 자투리는 삭제한 후
휴지통을 완전히 비워요
처음 맞는 가을인 듯 다시 꽃이 된 나는,
나뭇잎 파일을 압축해요
<파일을 압축하다> 전문
이은새의 슬픈 시들도 어쩌면 이 시의 표제시인 “파일을 압축하다”에 와서 다 이루어졌다. 눈물도 비탄도 액운도 시라는 태양의 기운 속으로 사라져간 것이다.
오래 전에 방영된 외화 “투스카니아의 태양” 주인공 여배우가 이국 하늘의 태양(투스카니의)을 바라보며 외치던 한 마디의 대사가 절묘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여기에서 다 이루어 졌다”는 한 여인의 선언이었다. 절규를 닮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내용을 짧게 일별하면, 화면에 비친 한 중년 여자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수문을 찾지 못한 이은세의 언젠가의 “부은” 눈의 눈물과 닮았다. 여자는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 집에서 나와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얼마 뒤에 친구들의 위로에 힘입어 혼자 떠나는 여행을 결행한다. 이혼여행이다. 우연찮게 선택된 목적지가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인 투스카니아라는 시골 마을. 운명이 그녀를 거기로 이끈 것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비포장길을 천정에 머리를 찧으며 달려가다가, 무섭도록 낡은 한 채의 집 흙벽에 쓰여진 광고 문구를 마주쳤다. 그 집을 팔기 위해 내 놓았다는 두어 줄의 문장. 여자는 그 순간 고압 전기를 맞은 짐승처럼 다급한 목소리로 버스를 세우고 집안으로 향하는데, 만고풍상을 다 겪은 주름살투성이의 노부부는, 이 집을 지켜줄만한 집주인을 기다렸는데 이제서야 주인이 나타났다는 환대와 함께 그녀에게 집을 넘기고 떠난다. 그러나 인수를 마친 늙은 집은 100년도 넘는 관절통을 앓으며 곳곳에서 그녀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반전의 시간들, 쇼핑을 나서던 길 위에서 꽤나 근사하게 생긴 한 남자와의 빛나는 마주침. 그러나 결말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사랑의 시간이 비가 내리는 날의 우산 속으로 잠시 머물다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장면에서 그녀의 등을 쓸며 위로를 해주던 한 친구가 커다란 가방을 끌고 그 집 앞에 나타났다. 만삭의 몸이었고 친구 역시 이혼을 하고 혼자가 되었다는 아픈 소식을 전해 주었다. 얼마 뒤에 친구는 그녀의 짐에서 몸을 풀었고, 그녀가 손수 받아낸 새 목숨 하나가 마을의 태양 아래로 긴 울음소리를 울려 주었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압권일지 모른다. 마을에 떠돌이로 흘러와 잡일을 하며 지내는 이국 청년이 하필이면 이 마을의 가장 유력인사의 딸과 눈이 맞았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여름날의 해변처럼 찬연하였다. 하지만 전모를 알게 된 유력인사가 대노하였고, 처녀는 집안에 감금되고 청년은 마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 여자는 눈부신 성장 차림으로 유력인사를 찾아가 청년의 후견인이 되었음을 맹세하고 갖은 설득 끝에 어린 연인들의 결혼 승낙을 얻게 된다.
엔딩 장면은 어린 연인들이 주인공 집의 정원에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결혼식을 올리는 순간으로 채워 쳤다. 그날도 투스카니의 태양은 붉게 타올랐고, 담장 위에 만개한 장미꽃들도 붉은 웃음을 피워 올렸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정원에 혼자 남은 주인공. 태양의 하늘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친다. “이 집에서 다 이루어 졌다”고.
돌이켜 보니. 순간처럼 경험했던 벼락같은 사랑도, 친구의 몸에서 이기는 하였지만 새 목숨의 탄생도, 어린 연인들의 축복 속의 결합도 어느덧 자신의 곁을 스치며 지나갔던 것이다. 저 낯설고도 머나먼 투스카니아의 태양 속으로.
이은세 시인에게도, “가디건을 애인의 팔처럼 두르고 셀카를 찍어요/ 포켓 속에 아직 덜 여문 눈물까지/ 단축키로 저장해요// 철 지나 필사된 감정의 자투리는 삭제한 후/ 휴지통을 완전히 비워요// 처음 맞는 가을인 듯 다시 꽃이 된 나는,/
나뭇잎 파일을 압축해요” 그렇게 한 시인은 자신의 불우와 슬픔을 매만지는 갈색의 노래 하나를 완성하여 “파일을 압축”하고 가을 속으로 떠나갔다.
행복을 꿈꾸었던 손뼉 소리 같은 기억들
산책길, 그 골목길
그 길 위에 서면 우린 행복했었네
물결치는 인파 속에서도
깊어져 가는 어둠 속에서도
텅 빈 골목일지라도 그의 웃음과 따스함으로
그 길 위에선 부러울 게 없었네
늦가을 편의점 아이스크림과
냉커피를 떨며 나눠마시던 빨대의 온기
그 온기가 아직도 내 가슴을
서늘하게 데우고 가네
담배 한두 모금으로
말없이 그의 눈길은 나를 향해 있었고
나는 종달새처럼 어제 했던 말
오늘 할 말 내일 할 말에 꽃을 피우고
가지에 가지를 엮어 열매를 맺듯
하루를 완성했네
눈 오는 밤이면 그 고요 속에
장난꾸러기가 되어버린 그는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나는 춤을 추며
센서 등 아래 추위를 즐기곤 했지
그 산책길 골목길
그 길 위에 우리 다시 설 수 없을까.
<돌아갈 수 없는 길> 전문
강물은 흘러가고 기억은 아름답다. 화자에게 머물렀던 이 고백은 어느 시간의 층위를 걷고 있었던 노래인지 아직 확실하게 짐작할 수 없다.
늦가을 편의점 아이스크림과/ 냉커피를 떨며 나눠마시던 빨대의 온기/ 그 온기가 아직도 내 가슴을/ 서늘하게 데우고 가네// 담배 한두 모금으로/ 말없이 그의 눈길은 나를 향해 있었고/ 나는 종달새처럼 어제 했던 말/ 오늘 할 말 내일 할 말에 꽃을 피우고/ 가지에 가지를 엮어 열매를 맺듯/ 하루를 완성했네
내용으로만 보아서는 연인과의 밀회 장면으로도 엿보인다. “오늘 할 말 내일 할 말에 꽃을 피우고” “가지에 가지를 엮어 열매를” 맺었던 그 “하루”의 일 속으로 화자는 이제 “돌아갈 수 없음”을 토로하고 있음이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텅 빈 골목일지라도 그의 웃음과 따스함으로/ 그 길 위에선 부러울 게 없었던” 날이, 부디 시인에게 돌아올 수 없는 날이 아니라, 지금도 어디에선가 오고 있는 날이 되어 주었음을 빌고 싶었다. 화자인들 “우리 그 길 위에 다시 설 수 없을까”라는 뼈아픈 호명으로 작품을 맺고 있다.
콕콕 쑤시기 시작하던 팔꿈치
고개만 갸우뚱갸우뚱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했지
또박또박 고민 들어주는 절친처럼
만병통치약 파스는 오래된
내 처방전이다
냄비의 묵은 때를 닦아내지도
무거운 물건을 저울질하지도 않았는데
콕콕,
며칠을 찌르고 화를 낸다
그 어떤 사탕발림도 통하지 않는다
고해성사하듯
또닥또닥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머릿속으로 별똥별 하나 떨어진다
청춘의 문이 소리 소문 없이
닫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젠 빨래는 걷지 않아도 되지만
밤을 뒤척이게 만드는 신경통
꾸무리한 날씨 탓이라고
먼 옛날 옛적 할머니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은,
<청춘의 문> 전문
얼핏 주위를 통해 듣게 된 이은새는 거동이 불편한 환우 시인이라고 하였다. 그녀가 통과한 “청춘의 문”은 이 작품에서 얼마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보인다.
“콕콕 쑤시기 시작하던 팔꿈치/ 고개만 갸우뚱갸우뚱//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했지” 확실하게 밝히지는 않았으나 자신에게 찾아든 이 참절의 순간을 인과에 따른 것으로 화자는 받아들고 있다. “또박또박 고민 들어주는 절친처럼/ 만병통치약 파스는 오래된/ 내 처방전이다” 근육이나 신경통에 바르는 파스가 절친 이라면, 화자는 아마도 근 골격계의 질환에 노출되어 있는 모습이다. “냄비의 묵은 때를 닦아내지도/ 무거운 물건을 저울질하지도 않았는데/ 콕콕,/ 며칠을 찌르고 화를 낸다/ 그 어떤 사탕발림도 통하지 않는다” “어떤 사탕발림” 그러니까 어떤 방식의 처치로도 치유가 되지 않는 발병의 상태는, 당사자에겐 얼마나 고통스러운 공포였을까. “고해성사하듯/ 또닥또닥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머릿속으로 별똥별 하나 떨어진다” 누워서 듣는 빗소리. 그 위로 떨어지는 추상적인 별똥별 하나. 화자는 그렇게 자신의 무중력한 상태를 그리며 있다. 듣는 이들에게 다가서는 뼈아픈 전언이자 호소이다. “청춘의 문이 소리 소문 없이/ 닫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젠 빨래는 걷지 않아도 되지만/ 밤을 뒤척이게 만드는 신경통” 끝을 알 수 없는 투병 속에서 빨래를 걷지 않아도 되었다는 화자의 넋두리가 외려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었다. 아니라면 화자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의 일단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꾸무리한 날씨 탓이라고/ 먼 옛날 옛적 할머니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그녀의 “청춘의 문”은 왠지 안전하지 않아 보인다.
시인의 눈빛으로 만나는 갈색의 시편들
한 지붕 아래
한 이불 덮고 살 때부터 이유 없이
시끌벅적했어요
달뜨면 자는 동생과
해 뜨면 잠이 오는 나는
검은 돌 흰 돌 바둑알처럼
색다른 식구였는데요
동생아, 불러 보면
키는 나보다 높고
학력도 더 크고 가족관계도
한 지붕 아래 두 가족
다사다난 한데요
혼자인 내가 언니라고 주장하기에는
넘치게 모자라서 어릴 때 종종
동생 바지를 접어 입기도 했어요
이러쿵저러쿵해도
예의 바른 전주 이씨 뿌리를 따라
콧대 높은 장녀로서 동생의
은혜 받을 준비는 마쳤는데요
<자매> 전문
화자의 심성이 잘 드러나고 있는 이 시에는 다행스럽게도 시인이 처한 그늘이 없어 보인다. 한 이불 속에서 자라온 “자매의 이야기엔 애틋한 ”가족“의 서정만으로 한 편의 청량한 시의 형상을 빚어내었다.
“달 뜨면 자는 동생과/ 해 뜨면 잠이 오는 나는/ 검은 돌 흰 돌 바둑알처럼/ 색다른 식구였는데요// 동생아, 불러 보면/ 키는 나보다 높고/ 학력도 더 크고 가족관계도/ 한 지붕 아래 두 가족/ 다사다난한데요”
여느 자매들의 모습과 별반 다름이 없기는 매 한 가지이다. 다만 달 뜨면 자는 동생과 “해 뜨면 자는 나”의 간극에는 이들 자매의 유별난 구석이 자리한다. 이 구석에는 어쩌면 이은새 시인의 남다른 생활사가 자리하는 것 같음은 무엇일까. 어쩌면 화자의 병고와 관계될 수도 있다는 희미한 유추를 해볼 수도 있었다.
“혼자인 내가 언니라고 주장하기에는/ 넘치게 모자라서 어릴 때 종종/ 동생 바지를 접어 입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화자의 말을 빌면, “이러쿵저러쿵해도” 이은새 시인은 “콧대 높은 장녀”의 위치를 놓지 않고 “동생의 은혜”를 받을 준비를 마쳤다는, 예의 자매 보고서 한 편이 여기에 있다.
반딧불이가 내 이불 속을 들여다보고부터
동화를 읽어줄까
소설을 펼칠까 하다가
나는 시를 짓기로 했어
동생의 반려 식물 동영상을 보고
내 버킷리스트를 고칠까 생각 중이야
최면 치료처럼 취중에
외로움이나 불러내지 말고 그럴 땐
하늘 가까이 손을 뻗어 한 줌의 별을 줍거나
참고 참고 또 참던 들장미 소녀 캔디를
낭송해 보는 건 어떨까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제발
읽고 싶은 인생을 물려주세요
약손가락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슬플 땐 미치거나
죽기 직전까지 술을 마시거나
타인의 저울질은 인제 그만
남편에게 그 비밀을 털어나 봐
함께 산다는 건 이미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
<자서전> 전문
사실상 시집의 전체를 관통하는 이은새의 시들은 매 편이 모두 다 그의 자서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서전이라고 명명한 이 작품에 눈길이 갔던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는지도 모른다.
“반딧불이가 내 이불 속을 들여다보고부터/ 동화를 읽어줄까/ 소설을 펼칠까 하다가/ 나는 시를 짓기로 했어”
무슨 연유에서인지, 어쩌면 시적 은유일 수도 있는 “반딧불이”가 화자의 이불 속을 들여다보고부터, 그에게 “동화를 읽어줄까/ 소설을 펼칠가” 하다가, 화자는 “시”를 짓기로 하였다는 고백이다.
“최면 치료처럼 취중에/ 외로움이나 불러내지 말고 그럴 땐/ 하늘 가까이 손을 뻗어 한 줌의 별을 줍거나/ 참고 참고 또 참던 들장미 소녀 캔디를/ 낭송해 보는 건 어떨까”
“참고 참고 또 참는” 어떤 열망이거나 바램의 와중에서 시인은 그의 외로움 대신에 “하늘 가까이 손을 뻗어 한 줌의 별을 줍거나” “소녀 캔디를 낭송해 보는 건 어떨가” 자문해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제발/ 읽고 싶은 인생을 물려주세요”
“제발 읽고 싶은 인생을” 물려 달라고 부탁하는 이은새 시인의 심경은 “함께 산다는 건 이미/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라는 진술을 통해, 그녀가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권의 책을 쓰고 마침내 자신이 한 권의 책으로 남아, 스스로의 ”자서전을 완성하고픈 열망과 의지에 사로잡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진한 곱슬이 혼자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것은 뿌리에 대한 예의일까
남들 자랄 때 바르게 크지 못한 몸
꼬불거리는 성장이 어둠으로 엉키고
오랜 습작 기간을 거쳐야만 읽어 낼 수 있는 행간처럼
바닥에 치렁치렁한 아바타를 만들어 놓았어
간혹 어둠을 뚫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모든 것은 다 지나갈 거라고 어머니의
두 손 모은 기도가 돌탑을 쌓고 있었어
빗질만으로 마무리하기 어려워
매직의 손 부림으로 넘실거리는 너의 꼬리말
슬몃, 미지의 세계를 꿈꾸어도 좋겠어
긴장이 풀리는 순간
내 몸이 롯드*처럼 떼굴떼굴 말리고 있어
<곱슬머리> 전문
앞에서의 시“자서전”이 이은새 시인이 굼꾸는 자서전의 세계라면, 인용시 “곱슬머리”는 화자의 자화상에 대한 작품으로 읽힌다.
“남들 자랄 때 바르게 크지 못한 몸/ 꼬불거리는 성장이 어둠으로 엉키고/ 오랜 습작 기간을 거쳐야만 읽어 낼 수 있는 행간처럼/ 바닥에 치렁치렁한 아바타를 만들어 놓았어”
자신의 성장에 관한 장애를 “곱슬머리”로 비유한 것인지 아니라면 실제로 이은새 시인의 머리카락이 곱슬머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남들 자랄 때 바르게 크지 못한 몸”이 시인의 현재 모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를 향하여 “모든 것은 다 지나가 거라고” 두 손을 모아 잡은 기도가 “돌탑을 쌓고 있었다. “빗질만으로 마무리하기 어려워/ 매직의 손 부림으로 넘실거리는 너의 꼬리말/ 슬몃, 미지의 세계를 꿈꾸어도좋겠어”라는 시인의 발상은 자신의 몸을 ”롯드“(파마할 때 쓰는 막대 모양의 도구”처럼 이용하여 말리고(펴고) 싶다고 이른다.
꽃이 계절을 타듯이
사람도 계절 앓이를 합니다
그대 곁에서 멀찌감치
떠나오기 위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끈끈한 잠복 기간
들볶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시절을 건너가기 위해
간절기마다 호되게 만난 그대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
시름시름
이렇게 끝물로 남은 지금도
콜록,
콜록거리고 있습니다
<감기> 전문
별다른 참섭이거나 주석 없이 원문에 기대어 읽어 내린 시집의 시들이 어언 말미에 이르렀다. 어디에선가는 어두워 보이고 어느 틈엔가는 인고와 극복의 의지를 노래했던 이은새의 시들은, 어쩌면 문학 이전의 문학으로 시 이전의 시의 세계에서 잉태된 삶과 의지의 글로써 자리매김을 해주어야 할 것만 같다. 어쩌면 시인에게 시는 그가 세상과 우주 속으로 소풍을 나서는 유력한 통로이자 출구가 아니었을까 짐작되기도 하는 것이다. 마지막 시를 읽는다. 앞으로도 그의 시가 자신을 위무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아름다운 ‘동반’으로 미지의 날들을 보다 환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비는 마음을 전한다.
“꽃이 계절을 타듯이/ 사람도 계절 앓이를 합니다/ 그대 곁에서 멀찌감치/ 떠나오기 위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끈끈한 잠복 기간/ 들볶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감기를 대하는 화자의 마음이 유별하게 드러나는 중이다. “한 시절을 건너가기 위해/ 간절기마다 호되게 만난 그대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 시름시름” 앓는 화자의 마음은 “콜록거리”면서도, 이대로 지고 싶지 않는 의지의 표상이기를 다시 한 번 바라는 것으로 필자의 거친 글줄도 이쯤에서 그만 고르기로 한다.
저자 소개
이은새 시인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김유정기억하기 전국 문예작품 공모전 우수상, 동서커피문학상 맥심상(3회) 외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