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자기를 꼭 닮은 사람 하나 출현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사람 속에 이미 자기 씨앗을 심어 놓았는데 싹터서 나오는 것이 사랑스럽긴 해도 부족함이 많아 이런 저런 병에 시달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탐욕의 병, 무지와 편견의 병, 교만의 병,아집의 병---병의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병자는 자신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온 이웃을 괴롭힌다. 탐욕의 병에 걸린 사람 하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는가.
이 세상은 각종 병자들로 가득하고 그 신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 개인적인 질병만이 문제가 아니라 개인을 병들게 하는 병든 사람이 만들어낸 각종 병든 제도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 하느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very good이라 감탄 하셨는데 지금 사람의 모습은 문둥병자처럼 일그러져 있다. 어디 하느님 닮은 성한 사람 하나 있는가? 이러한 병든 시대의 한복판에 살며 하늘의 소리를 듣고 응답한 이가 함석헌이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독립을 잃은 백성의 참상을 보았고,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통해 독립심을 고취하다 감옥살이를 했고, 해방후 강대국에 의해 남북이 갈라져 북에 있을 땐 공산주의에 시달려 감옥에 갖혀 죽을 뻔 했고, 남으로 내려 와서는 독재 정권에 항거하다 수차례 감옥살이를 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사람은 누구나 존귀한 하느님의 자녀인데 무력으로, 이념으로, 독제권력으로, 종교와 교육으로, 돈이나 정치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세력에 대해 항거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런 지위도 권력도 없는 들사람이었으나 권력에,돈에,이념에,종교에 눌려 억압받는 사람들의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고 씨알의 신음 소리와 아픈 소리를 그가 대변했다. 그는 억압하는 자들에 대해 이 사람들은 니네가 맘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나 종이 아니고 자유를 지닌 존귀한 하는님의 자녀들이라고 했다. 그는 그들의 아픔을 함께 했고 그들을 하느님으로 대했고 그들이 깨어나 억압의 사슬을 끊고 자유인으로 살기를 원했고 그 일을 위해 평생 자신을 바쳤다. 이러한 그의 삶과 사상이 씨알사상이다.
그의 말대로 라면 그는 한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고난의 왕이었고 그 고난의 용광로에 자신을 던져 삶을 통해 한민족의 한사상, 기독교,유교,불교, 노장사상을 하나로 녹여 정금 같은 씨알사상을 몸으로 내놓았다.
그는 사람 속에는 누구나 존귀한 하느님의 씨알이 있다고 했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내려와 우리 속에 한알의 씨앗이 되었고 그 씨앗이 싹터 열매를 맺는 것이 우리 자신의 실현일 뿐만아니라 하느님의 자기실현이라고 했다. 씨알은 땅에 묻혀 껍질이 깨져야 싹을 티울 수 있다. 누구든 땅에 흙을 묻히지 않고 높은 곳에서 대접받고자 하는 사람은 참씨알이 아니다. 명예나 지위나 권력이나 학력이나 돈이나 자기의 견고한 껍질을 내세우고 그걸 자랑하며 그걸로 씨알을 지배하려는 자 역시 참씨알이 아니다. 그런 모든 껍질은 깨지고 알멩이,맨씨알로 땅에 묻히는 자, 세상의 한복판에서 자기를 드리는 사람이 참씨알이다.
씨알의 잎과 꽃은 그것이 아무리 무성하고 아름답다해도 잎과 꽃이 지어야 열매를 맺는다. 이 세상에서의 무성함과 화려함은 참씨알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무성한 잎도 화려한 꽃도 열매 없이 그 자체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다 헛된 것이다. 거짓된 말과 허장성세는 씨알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진실한 삶만이 씨알의 목적이다.
씨알의 생명은 스스로 자라나는 것이다. 씨알이 스스로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세력은 자기 자신이든 남이든 제도든 다 싸워서 물리쳐야할 악마이다. 함석헌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지성소에 모셔져 있는 하느님의 씨알멩이 속에 새겨져 있는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생각하는 사람만이 그걸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삶에는 고난이 있고 고난은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생각은 뜻을 깨우치게 하고 뜻은 생명을 살려낸다. 생명의 바다에 생각의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싱싱한 자아, 하느님의 얼이 팔닥이는 자아를 낚을 수 있다.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이 자신을 아는 것이며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의 본령이다. 종교란 자기의 속의 속인 씨알, 얼, 양심, 하늘의 뜻에 이르자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를 안 사람은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 무엇의 노예도 될 수 없다. 씨알의 생명이 스스로 나아가는 것을 그 무엇도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씨알은 자기 위에서 자기를 지배하려는 일체의 것들에 대들고 저항하는 것이다. 남의 생각에 놀아나거나 남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어떤 억압이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씨알은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다. 그 누구의 노예가 아니다.
함석헌은 특히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씨알의 위에 서서 씨알이 힘들여 맺은 열매를 따먹는 자들에 대해 격렬한 저항을 했다. 자기 권력을 사유물처럼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하며 씨알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들에게 저항했고 종교나 사상이나 교육으로 씨알을 수단 삼아 자기 배를 체우려는 자들에 대해 싸웠다.
그러나 그의 싸움은 비폭력이었다.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그것은 생명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전체의 자리, 생명의 자리에 서면 원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자는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장의 사람다움을 위해 그를 사랑해서 노동운동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간디가 비폭력 저항을 통해 독립운동을 한 것은 인도인들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물론이고 영국인들이 진실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 것처럼 함석헌의 모든 저항은 사랑의 원리에 의한 것이었다.
함석헌은 특히 잘못된 제도나 종교, 교육, 국가 권력을 싫어 했고 평생 그러한 것들과 맞서 싸웠다. 씨알이 역사의 주인인데 씨알을 제쳐두고 소수의 사람들이 씨알 위에 군림하면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무지한 씨알들이 자신이 주인인데 그것도 모르고 종노릇하는 것을 보고 그는 생각하지 않는 씨알, 깨우치지 못한 씨알은 참씨알이 아니라고 말했다. 종교 역시 이제 누구나 자기 속에 있는 하느님과 직통할 수 있는 시대에 하느님과 씨알을 중재한다고 중간에 서서 제도와 교리를 만들어 거간꾼 노릇을 하는 소위 성직자라는 종교꾼들을 싫어했다. 이제 새종교가 나와야 할 때라고 했다.
오늘날 함석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가 말한 대로 생명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하느님 조차도 진화하는 미정고다. 그는 우리의 교주가 아니며 그럴 생각도 없어 그가 유언으로 남긴 것은 자기를 위해 비석을 세우는 자는 벼락을 맞을거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독립된 인격이며 자유로운 혼이다. 그가 평생 주장한 것도 그것이며 그는 그렇게 자유인으로 살았다. 그는 늘 가르치려 하지 말고 선생노릇을 즐겨하지 말라고 하며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스승은 자기 속에 있다 했다. 그는 심지어 누가 무엇을 물을 때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언제나 글쎄라고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하느님께 물어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각자 자기 선 자리에서 자기 물음을 갖고 자기의 삶에 주어진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기를 벌거벗고 어린아이처럼 물어봐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사람 노릇을 하고 싶은데 어찌해야 할까요? 이것이 함석헌의 씨알 사상이다.
첫댓글 씨알사상이 쏙 들어 옵니다
이제라도 사람노릇하고 싶은데 어찌해야할까요? 참으로 중요한 물음에 함선생님은 답을 주셨습니다 ~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씨알사상을 이렇게 알기 쉽게 전하는 씨알도사 홍성환 씨알님, 참 좋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퍼갈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