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나물
우동식
광대나물. 너희는 차디찬 겨울날에도 연분홍 자태를 내게 선사해 준 유일한 풀꽃이다. 코로나19의 변종 오미크론의 창궐로 고향 집에 가지 못한 2022년 2월 1일 설날이었지. 구미천변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상류의 선기1교 부근 제방에서 연분홍의 작은 꽂들, 너희를 발견했었다. “아아!, 벌써 꽃을 피웠단 말이지!“ 하며 나는 감동했다. 제방의 모든 풀들이 무채색으로 잠들어 있을 때, 너희 광대나물만은 다른 풀들의 마른 검불을 이고서도 파란 잎들 사이로 붉은 얼굴을 들어 창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올해(2023)는 새해 이튿날, 1월 2일에 역시 그 자리에서 너희와 재회하였지. 더구나 그 무렵 약 열흘 동안 밤에는 살을 에는 영하의 날씨였음에도 끄떡없이 생생하게 연분홍 미소를 띠고 있더구나. 참 놀라워서 친구들에게도 새해 첫 꽃 소식을 전했단다.
꿀풀과에 속하는 두해살이식물인 너희의 이름에 관한 유래는 이름처럼 ‘광대’와 관련이 있더구나. 꽃이 옛날 광대들이 입었던 울긋불긋한 옷과 유사하거나, 또는 꽃받침이 광대가 목 아래 두르는 장식용 옷과 비슷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들 하네.
너희 광대나물은 나름대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생명을 보존하고 자손을 이어가는 지혜가 대견하더구나.
식물의 일원으로서 너희가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은 첫째, 이른 봄이라는 시기 선택에 있다고 하겠네. 아니, ‘이른 봄’이라기보다 아예 겨울에 꽃을 피우니, 이것은 다른 경쟁자들의 추종을 따돌리는 전략이라 하겠지. 아무튼 ‘그리운 봄’이라는 꽃말을 실천하듯 다른 풀꽃보다 일찍 봄맞이에 나서는 건 너희의 특장점이구나. 마치 교통 혼잡을 피하여 새벽에 출근하는 직장인을 닮았다고나 할까.
두 번째 너희의 성장 전략은 장소의 선택이야. 주로 밭의 가장자리나 제방 등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든 자리를 잡더구나. 햇볕을 잘 받음으로써 빠른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되는 셈이지. 또한 우리 주변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에 친숙해지기도 쉽네.
세 번째 너희 광대나물의 삶의 전략은 수분 방식에 있네. 너희는 원만한 종자 번식을 위해서 두 가지 꽃가루받이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너희가 피우는 꽃은 생김새가 가느다란 대롱 모양을 하고 있어서 주둥이가 긴 곤충이 아니면 꿀을 빨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 곧, 꽃가루를 운반해 줄 상대를 작은 나비나 벌로 제한함으로써 실리를 챙기는 일 말이야. 게다가 날씨가 추워 곤충의 활동이 없는 날이나 봄이 끝나갈 무렵에도 수분 대책이 있다고 하지. 꽃부리가 열리지 않는, 꽃봉오리 비슷한 폐쇄화를 만든 채 암술과 수술이 성숙해 무화과처럼 자화수분自花受粉으로 열매를 맺기도 한다고 하니 말이야. 말하자면 타가수분과 자화수분을 함께 하는 전략을 통하여 ‘양다리 작전’으로 종자 번식을 강화하는 전력을 취하는 것이라 하겠네. 벌조차 자취를 감추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데 알맞게 잘 진화하고 있구나. 또한 꽃의 색깔도 수분에 유리하다. 이른 봄 무채색 대지에 연분홍 꽃이 돋보이기에.
네 번째 너희가 살아가는 방식의 특이점은 열매 산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곤충이 있다는 점일세. 곧, 열매가 익으면 개미가 찾아온다는 거야. 씨앗에는 향기를 뿜어내는 물질이 있는데, 그 향기를 개미가 아주 좋아한다는구나. 그런데 개미가 그 씨앗을 물고 옮기는 도중에 떨어뜨림으로써, 그것이 다시 싹을 틔워 널리 퍼져 함께 자라는 거지. 개미집 주변에 너희의 터전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라더군. 개미와 너희의 은밀한 공생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이처럼 너희의 영역 확장력은 군락을 이루는 것에서 찾을 수 있겠네. 이것은 식물의 생존 전략 중, ‘도미넌트dominant’이라 한다네. 앞에서 말했듯이 양지바른 곳에서 집단적으로 분포함으로써 양적 승부를 통하여 경쟁력을 높인다는 거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너희의 이름이 널리 분포한다는 의미로 광대廣大나물이라 해도 되지 아닐까 싶네.
이렇게 보면 너희는 어쩌면 식물 세계에서 독보적인, 자유자재의 생명력을 지닌 종으로서 사람들에게 넌지시 암시를 보내고 있는 듯하네. 특히 나같이 은퇴 후에도 지금까지 지켜온 ‘입장의 벽’을 넘지 못해 새로운 환경에 부적응하는 사람들에게 말일세. 너희는 말해주고 있구나. 나의 본질에 어울리는 에너지는 ‘중심 잡힌 분산’ 속에서 더 많이 분출될 수 있으니, 한 가지의 모습에 얽매여 살 필요가 없다고. 그러면서 너희는 다양한 자신을 길러 상황에 따라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구려. 그것이 ‘다중인격의 기술’이라나.
아무려나, 성장의 달자達者인 풀꽃 친구로서 지역에 따라서는 ‘코딱지나물’, ‘장구나물’이러고도 불리며,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생생하게, 그리고 척박한 땅 어디에서나 봄이 이슥하도록 오래 꽃을 피우는 광대나물. 게다가 약용으로 쓰이고, 이름 그대로 어린 순은 데쳐서 먹는 나물이기도 한 너희는 이 땅의 진정한 민초民草로서 영원할지니.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 《경북문단》 2023 제42호, 371~3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