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서로 비추어 보기를 통한 치유와 성장
--이금이의 『너도 하늘말나리야』론--
우동식
uds59@hanmail.net
1.
청소년기는 인생의 여러 시기 중에서 가장 변화가 많으면서도 불안정한 시기이다. 사춘기(思春期)라고 불리는 이때는 정서적으로 매우 예민한 시기여서 조그만 사건일지라도 그것을 겪는 당사자들에겐 감당하기에 벅찬 일이 되기도 한다.
이금이의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사춘기에 접어든 세 친구가 많은 아픔을 견뎌 내면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미르, 소희, 바우는 각각 성장 환경이 다르지만 ‘가정의 결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결손은 세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은 그 상처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지낸다. 상처에 대응하는 방법도 그들의 성격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 가운데 그들은 서로를 비추어 보면서 아픔을 치유하고, 함께 성장해 간다. 그 과정에는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한 공감의 요소가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감’은 아주 넓은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는 것도 공감이지만, 그 아픔을 꼭 함께 느끼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아픔에 처해 있을지 이해하는 것 역시 공감이다. 또한 아픈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할지, 무엇을 원할지, 무슨 도움을 필요로 할지 잘 짐작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공감이다.
본고에서는 이금이의 소설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중심으로 서로의 아픔을 비추어 보면서 공감을 통한 청소년 주인공들의 상처 치유와 성장의 양상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이 작품의 제1부는 ‘미르'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르는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헤어지고, 진료소장이 된 엄마를 따라 달밭마을로 이사 온다. 하지만 미르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채 달밭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반항과 불만을 가지고, 제 또래의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다.
미르가 달밭마을에서 첫 번째로 마음을 준 대상은 수령 500세의 느티나무였다. 삶의 생채기를 상징하는 ‘밧줄 건 느티나무’를 엄마가 ‘건강하고 씩씩하다.’고 말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나무와 교감하게 되면서 아빠와 헤어진 자신의 처지를 비추어 본다. 그러면서 그 느티나무에 비해 자신의 아픔이 오히려 덜하다는 것을 느낀다.
“‘오백 살이나 되었다구?’
한 자리에 서서 오백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겪었을까. 미르는 가지에 밧줄을 동여매고 서 있는 느티나무를 보자 자신이 겪고 있는 일들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33쪽)
제2부는 ‘소희'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희는 지나치게 조숙하다. 소희는 매일 일기를 쓰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활을 반성해 간다. 미르와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만, 미르가 마음을 열지 않아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소희는 미르가 자신처럼 외로운 아이임을 발견한다. “미르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처럼 보였다.” 라고 비밀일기장에 기록한다.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어서 그럴까. 역시 비추어 보기를 통한 상호 이해라 할 수 있다.
아이어른 같이 성숙한 소희의 비밀일기장에는 ‘상처’에 대해 겁을 내지 않는 당찬 모습이 엿보인다. 그녀는 책에서 ‘상처 입은 조개만이 진주를 키울 수 있다.’는 구절을 읽었으며, 조개 속의 상처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진주가 되는 것이므로 자신의 마음속에 진주를 키우겠다고 일기장에 적기도 한다.
제3부는 ‘바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엄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사는 바우 역시 결손에 대한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지낸다. 바우는 엄마를 잃은 충격으로 대화하고 싶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는 ‘선택적 함구증’에 걸려 있다. 그 원인에 대하여 바우는 세상과 만나는 문이었던 엄마가 없으니, 아무한테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 했다.
그렇지만 바우는 비록 독백일지언정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와 끊임없는 대화를 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간다. 자신을 늘 지켜봐 주는 소희와 깊은 교감을 나누고, 미르에게도 관심을 보이며 어렵지만 친해지려 노력한다.
바우가 제일 이야기하고 싶은 아이는 미르였다. 그 아이에게 엄마 잃은 충격으로 말까지 잃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미르를 알기 전, 바우는 한 번도 남의 아픔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아픔 속에 갇혀 빗장을 지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르의 아픔을 알게 되고서야 비로소 바우는 자기 아픔을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르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밖에서 바라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러면 그 아이가 받은 마음의 상처도 좀 가벼워질 것 같았다. 바우의 이런 마음의 변화는 자기 및 상대방 들여다보기, 혹은 상호 비추어 보기를 통하여 획득된 것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제4부는 세 아이 모두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농회장인 바우 아빠와 미르 엄마의 허물없는 교류가 장미꽃 바구니로 인해 연애 사건으로 오해를 받는다. 서울에서 사는 미르 아빠의 재혼과 소희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세 아이는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세 아이는 차츰 가까워지고 다른 사람의 상처도 들여다보게 된다.
예컨대 마음의 문을 닫고 ‘온몸에 날카로운 가시를 가득 세우고 누구도 가까이 오는 걸 꺼려하는 듯한’ 미르도 말문을 닫아버린 바우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아버지를 잃어버린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미르는 바우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아이로 변하게 하는 역할을 해 주고 싶어 했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소희가 작은집으로 떠나며 자신의 소중한 비밀일기장을 미르에게 준 것도 상처를 공유하고 함께 보듬어 나가자는 언약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때 바우가 소희에게, “다른 나리꽃은 땅을 보면서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보면서 피어. 소희, 너를 닮았어.”하며, 하늘말나리 그림을 선물한 것도 자신의 내면을 떠나 상대를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또한 같은 상처를 안고도 셋 중 가장 다기지게 살아온 소희처럼 앞으로 씩씩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희망을 담은 것이기도 할 것이다.
3.
여기서 상대를 서로 비추어 본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통과 공감의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것이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 상태에 반응하여 어느 정도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곧, 상대와의 감정 교환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것이며, ‘당신이 어떤 느낌인지 알아요.’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거울뉴런(Spiegelneurone)에 대한 연구가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에 발맞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과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는 것이 뇌에서 같은 반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고통받는 누군가의 표정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뇌의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미르, 바우, 소희 세 인물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해가는 과정도 이 거울뉴런의 역할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는 소통과 공감이 다 필요하다.
예컨대, 오정희의 소설 「소음공해」는 아래, 위층에 사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 부재로 오해를 가지게 된 이야기이다. 아랫 층에 사는 주인공은 한 달 전부터 소음에 시달리지만 직접적으로 위층 사람과 대화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만약에 소음이 났을 때 바로 위층에 올라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위층 여자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었음을 확인함으로써 오해는 진작에 공감 어린 이해로 바뀔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뇌의 편도체 이상으로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손원평의 청소년 소설 『아몬드』가 있다. 주인공 ‘선윤재’에게는 ‘감정이란 단어도 공감이란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도 윤재는 ‘곤이(윤이수)’라는 감정에 아주 민감한 친구와의 치열한 소통과 가족 사랑의 덕분으로 그 증세를 치유하고 감정을 되찾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4.
이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하늘말나리’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7~8월에 노란색을 띤 붉은색 꽃이 피며, 그 꽃은 당당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피어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에서는 바우가 소희를 닮았다고 본 꽃이다. 그래서 바우가 소희와 헤어질 때 하늘말나리를 그린 그림을 주었는데, 소희가 미르와 바우에게 “너희들도 하늘말나리야.”하고 말했다. 세 아이 모두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것을 딛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어려운 환경에서도 꼿꼿하게 하늘을 쳐다보며 피어나는 그 꽃의 모습에 견주어본 것이다.
위의 내용 소개에서 보듯 가족의 붕괴와 해체로 인한 가정 결손은 자기정체성의 상실을 낳거나 부모에 대한 적대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미르가 엄마에 대한 반감을 가진 것이나 바우가 그의 아버지가 진료소장과 재혼하려고 한다고 오해를 하며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렇듯 내면의 아픔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던 세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 안으면서 주위 사람들을 이해해 간다. 이런 과정을 종합해 보면 '교육이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아이들을 치유한다.’는 원리의 작은 실증을 엿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서로 비추어 보며 소통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가족 결손이라는 상처를 치유해 나가고, 또한 함께 성장해 갈 수 있는 비밀을 체험하기에 적합한 작품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이 소설 읽기를 통하여 또래 청소년들은 자신의 내면을 키우고, 주위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한국아동청소년문학협회, 《아동문학세상》 제121호(2023년 여름), 42~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