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영상테마파크 철거, 시민 공론화 우선돼야- 나성운 나주사회경제시민연대 대표
2023년 06월 21일(수) 20:00
이달 초 나주 시내 곳곳에 갑자기 현수막이 나붙었다. 나주영상테마파크 전통 건축물을 철거하기 위해 운영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왜 갑자기 철거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 남도의병 역사박물관(이하 ‘의병박물관’)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임진왜란 이후 3·1 운동 이전 구한말까지 외세의 침탈에 맞서 의롭게 싸운 의병들의 충혼을 기리고 역사·교육·관광에 활용하기 위한 의병박물관 조성에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영록 전남지사의 역점 추진사업으로 나주시가 다른 시군과의 경쟁 끝에 유치했지만, 드라마 도깨비· 주몽·태왕사신기 등을 찍어 이미 유명 관광지로 알려진 영상테마파크를 철거하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상테마파크는 ‘주몽 세트장’ 또는 ‘삼한지 테마파크’로 불리기도 했다. 단순 드라마, 영화 촬영 세트장이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의 민속촌으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붙었을 것이다. 드라마 주몽으로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한 해 수백만 명이 몰려오기도 했다. 한창 붐빌 때는 수㎞의 자동차 행렬이 장사진을 이뤘다. 나주에 ‘주몽 택시’가 달리고, 나주대학은 고구려대학으로 학교 명칭을 바꾸기까지 했다.
주몽 세트장을 지을 당시 신정훈 시장(현 국회의원)은 “임시 건축물이 아니라, 두고두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영구 건축물로 견고하게 제대로 지을 것”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으로 쓰이기도 했고 지금 봐도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견고한 전통 건축물로 남아 있다. 드라마 기획사 관계자들에 의하면 전국 어디를 가도 삼국시대를 촬영할 수 있는 이만한 시설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 조성비는 무려 137억 원이었다. 그런데 불과 15년만에 의병박물관에 밀려 철거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철거 현수막이 내걸린 뒤 시민단체는 SNS를 통해 시민 180여 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열 명 중 여섯 명이 철거에 대해 모르고 있었으며, 아홉은 철거를 반대했다. 그중 여덟 명이 강력 반대였다. 또 열 명 중 여덟 명이 “영상테마파크 옆에 의병 역사박물관을 지어야 한다” 고 답했다. “철거 전 공론화를 거쳐 더 나은 대안이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밝힌 시민도 열 명 중 여덟 명에 달했다.
시민단체에서 관련된 입장문이 네 차례나 나왔다. 요지는 이렇다. “시민들은 의병박물관을 반대하지는 않으며, 영상테마파크와 의병박물관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같이 고민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주시 대응은 시민들의 기대나 순리와는 사뭇 달랐다. 철거에 대한 공론화보다 의병박물관 건립을 위해 철거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대답이었다. 일단 영상테마파크를 철거한 다음에 의병박물관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이야기다.
시민들은 철거 강행보다 둘 다 살려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검토해 보자는 것인데도 나주시는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을 외면하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님에도 선입견을 갖고 다른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을 어떻게 열린 시정, 소통 행정이라 할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정상적인 행정이라면 더 살펴보지 못한 것을 낯부끄러워 하고 더 낮은 자세로 민의를 경청해야 한다.
의병박물관 부지는 약 11만 평이다. 영상테마파크는 4만 평이다. 7만 평 정도가 늘어난다. 의병박물관 건축 연면적은 2000평이다. 2층으로 지을 경우 단면적은 1000평에 불과하다. 전체 부지 면적의 1%가 되지 않는다. 1000평의 의병박물관을 짓기 위해 4만 평의 영상테마파크에 있는 크고 작은 100여 개 건축물 대부분을 부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에 어긋난다. 고구려궁 하나 존치하겠다고 하지만 궁색하기 짝이 없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지금이라도 영상테마파크 철거 전에 시민들과 심도 있는 논의와 고민으로 더 나은 대안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기보다는 민의를 존중하고,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적극 반영해야 한다. 의병박물관의 건립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쓴 소리도 애정과 관심, 사랑이 있기에 하는 것이다. 리더는 모름지기 포용과 낮은 자세로 시민들의 낮은 목소리를 하나하나 경청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