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에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남아 도는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말이 있다. 옛날에 공자(孔子)의 외할아버지인 안씨(顔氏)가 장차 자기 딸을 숙량홀(叔梁紇:孔子의 父親)에게 아내로 주려고 할 때, 먼저 그 집안에 조상들의 쌓은 음덕을 살펴 보았다. 그런데 숙량흘의 조상(祖宗)들이 대대로 쌓은 덕이 오래 되었고 또 몹시 큰 것을 보고, 그 자손들이 반드시 흥성할 줄을 미리 알았다. 과연 시간이 흘러 만세의 사표인 공자를 낳았다. 그리고 공자는 순(舜) 임금의 큰 효도(大孝)를 이렇게 칭찬했다.
“종묘(宗廟)에서 순 임금을 제사 지내고, 자손들이 그를 대대로 보전하네(宗廟饗之, 子孫保之).”
“善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아도는 경사가 있다.”는 이야기와 관련하여 왜 善行을 쌓으라고 하는지? 善行을 쌓으면 자손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등에 대해, 善行과 功德의 대표적인 사례들을 考證(고증:검증)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1. 善行 功德의 사례
소사(少師:관직)인 양영(楊榮)은 복건성(福建省) 건녕(建寧) 사람인데, 그 집안은 대대로 강에서 배로 행인들에게 물을 건네 주는 뱃사공 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었다. 한번은 장맛비가 오래 와서 강물이 불어 넘치고, 마침내 제방이 무너져 민가가 온통 물에 잠겼다. 급류에 밀려 가재 도구, 죽은 사람들까지 물길을 따라 하류로 떠내려 왔다. 다른 배의 주인들은 모두 떠내려 오는 재물만 건져 배에 싣는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양소사의 증조할아버지와 조부는 사람을 구하는 데에만 힘을쓰고, 재물에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재물도 못 챙기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소사의 아버지가 태어난 이후에 집안이 점점 부유해 졌다. 하루는 어떤 신선이 도인(道人)으로 변장하여, 양영(楊榮)의 부친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그대의 조부와 부친께서 음덕(陰德)을 많이 쌓아, 자손들이 틀림없이 부귀 영달(榮達)을 누릴 것이니, 저 곳에 조상들의 묘지를 이장하여 쓰는 것이 좋겠소.”마침내 양영의 부친은 그가 손가락으로 가르쳐 준 곳에 묫자리를 썼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 묘가 있는 지금의 묫자리를 백토분(白兎墳)이라 불렀다. 그 후 아버지가 소사(양영)를 낳았는데, 스무 살의 약관(弱冠)에 과거에 급제했다. 그리고 그 지위가 삼공(三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울러 그 증조부와 조부, 부친 모두에게 소사의 관직에 맞추어 벼슬을 추증(追贈)받았다. 그 자손들이 몹시 부귀하고 흥성하여, 지금도 유명한 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
2. 善行 功德의 사례
절강성(浙江省)의 은현(鄞縣) 사람인 양자징(楊自懲)은 처음에 현(縣)의 아전이 되었는데, 마음가짐이 어질고 후하며, 법을 지킴에 공평하였다. 마침 당시의 현감(장관)이 매우 엄숙했는데, 우연히 한 죄수를 심문하면서 최초리질하여 피가 땅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는데도, 현감은 분노가 식지 않았다. 이에 양자징이 무릎을 끓고 죄수를 관대하게 처벌해주길 청하였다. 그러자 현감이 대뜸 반문했다. “이 자가 법을 어기고 이치를 어그러뜨렸는데, 내가 어떻게 화가 나지 않겠는냐?” 이에 양자징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윗 사람이(위정자) 올바른 도를 잃어 백성들이 흩어진 지 오래입니다. 따라서 만일 범죄 사실이 발각되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기뻐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뻐하는 것도 불가한데, 하물며 노할 수 있겠습니까?”
현감이 그의 정성과 설득에 감화되어 노함을 그쳤다. 양자징은 집안이 굉장히 가난했지만, 남이 선물로 보내는 것조차 하나도 취함이 없이 청렴결백하였다. 그런데 죄수가 양식이 부족하여 궁핍한 것을 보면, 항상 여러 가지 방도를 다해 그들을 구제해 주었다. 하루는 새로 들어온 죄수 몇 사람이 밥 먹기를 기다리는데, 마침 양자징 집안에도 쌀이 떨어졌다. 죄인들을 주자니 집안에서 먹을 것이 없고, 자기 집안 식구를 돌보자니 죄수들이 몹시 불쌍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아내와 상의했다. 아내가 물었다.
아내 : “그 죄수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양자징 : “항주(杭州)에서 왔소. 먼 길에 못 먹고 배고품을 죽 참은 듯, 얼굴색이 양손에 든 노란 채소 같소.”
그래서 결국 자기네 먹을 쌀을 모두 꺼내 죽을 끊여서 죄수들에게 주었다. 그 뒤로 양자징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은 수진(守陳)이라 하고, 차남은 수지(守址)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두 아들이 각기 명나라의 남경(南京)과 북경(北京)에서 이부시랑(吏部侍郞)이 되었고, 큰 손자는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었고, 차손((次孫)은 사천성(四川省)의 염헌(廉憲)이 되었는데, 모두 다 명신(名臣)이었다. 지금의 초정(楚亭)과 덕정(德政)도 또한 그의 후예들이다.
3. 善行 功德의 사례
옛날 명(明)나라 영종(英宗) 때(연호는 정통(正統) 1435~1449, 1457~1464 재위) 등무칠(鄧茂七)이라는 도적무리의 수령이 복건(福建)성 일대에서 난을 일으켰는데, 일반 선비나 백성들 중 도적떼에 가담하는 무리가 몹시 많았다. 조정에서 도어사(都御使:감찰관청내 최고 관직)를 지낸적이 있는 은현(鄞縣) 사람인 장해(張楷)를 기용하여, 남쪽으로 보내 도적들을 토벌하여 사로잡도록 꾀했다. 장해(張楷)는 계책을 써서 등무칠을 붙잡은 후 복건성 포정사(布政司:성 전체의 재정을 관리하는 성의 장) 소속의 사도사(謝都事)를 파견하여 연해 일대에서 반란 도적무리에 동조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붙잡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사도사는 마음이 매우 인자하였으므로,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각처로부터 도적무리에 참가한 사람의 명부를 입수하여 도적무리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에게 몰래 헝겊으로 만든 작은 흰 깃발을 나누어주고서 관병이 성에 도달한 날, 이 흰 깃발을 자신의 집 문 입구에 꽂아 두면 이는 결백한 민가임을 알리는 표시로 관병이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수많은 사람의 무고한 죽음을 피할 수 있었으니, 대략 일만 여명의 사람들을 온전히 살렸다. 후에 사도사의 아들 천(遷)은 장원에 급제하여 재상이 되었고, 그 손자 비(丕)는 다시 탐화(探花:과거 시험에 급제함)에 합격했다.
이런 善行 功德의 사례는 오직 정성이 지극하면 영험한 감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至誠이면 感天(지성감천)이란 말이 있다. 즉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뜻이다. 일반 중생들의 평범한 수준에서는 자신이 경험하고 몸에 익힌 경계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경지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실지로 중국에서는 산 사람이 잠든 동안 그 식신(識神:영혼)이 저승에 출장가서 죽은 사람을 재판했다는 증언이 많은 글로 전해지고 있다. 또 죽은 사람이 가족 친지를 통해 나타나 인과 응보의 이치와 저승 사정을 일러주면서, 살아 생전에 열심히 수행하고 功德을 쌓으라고 당부한 일화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이적을 보이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살아 있을 때의 어떤 행위를 했느냐에 따라 그 과보를 사후에 받게 되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삿된 행동을 해서는 안되니, 항상 조심해서 행동하라는 하늘이 내리는 경고의 메세지가 담겨있다. 그러니 옛날 나이 지긋한 지혜를 갖춘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 “항상 복을 짓는 행위를 하라. 善을 쌓는 행위를 하라”고 늘 강조하신 이유가 바로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은 것을 떠나 지금부터 善을 증장시키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 인생 100세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것이다.
또한 자녀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고 싶고, 잘 되길 바란다면, 부모 자신이 하는 행실부터 법도가 살아 쉼 쉬고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암암리에 말없이 부모를 닮아 가는 것이라오. 자신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자녀가 잘 되길 바란다면 농사를 짓지 않고 수확을 바라는 어리석고 한심한 농부와 같은 것이다.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제 성질대로 하도록 버릇이 든다면, 후천 교육이 없이는 제 아무리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학식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결국 문자 공부에 매달려 자격증이나 취득한 어리석은 서생(書生)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 善을 쌓는 준비를 하지 않으면 죽음이 임박했을 때는 이미 늦어 손을 쓸 수가 없으니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이는 마치 지구를 떠나는 마지막 우주비행선을 놓치게 되어 돈이 太山같이 쌓여 있어도 한 푼도 쓸도 없고, 아무런 도움이 안되며 그 무엇으로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과 같은 것이된다. 그러니 이와 같은 실증사례를 正面敎師(정면교사)로 삼아, 살아생전에 삿된 일은 즉시 중지하고, 부지런히 뭇 善을 받들어 行해야 한다.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은 “善을 쌓으면 언젠가는 나에게 福이 돌아오겠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善을 쌓고 福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善을 쌓고 福을 지을 것인가? 善을 쌓고 福을 짓는다는 생각도 없이 무심코 行해야 진정한 善이되고 福을 쌓은 것이 된다. 이것을 일러 無住相 布施(상에 머무름이 없는 보시)를 하라는 것이다. 즉 내가 善을 쌓고 福을 짓는 다는 생각도 버리고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그냥 무심코 하라는 뜻이다, 이를 마음속에 깊이 잘 새겨서 실천을 해야됨을 명심해야 한다. 위의 善行 功德의 고증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善을 쌓고 福을 짓은 사람들은 어떤 댓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무심히 마치 숙명으로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고, 실행함에 있어 정성을 들여 간절한 마음으로 행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功德의 댓가가 주어졌던 것이다. 오직 정성스런 마음이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善을 쌓고 福을 지을 때 나와 가족이 좀 더 행복해지고 더 나아가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