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전창수 시편
- 보고 있고요, 제게 있고요, 살고 있어요
- 전창수 지음
아무도 반겨주는 아해가 있소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첫 번째 아해가 있소
성격이 참 밝은
두 번째 아해가 있소
그 밤은 하얗다오
아무도 없는 그 숲을
세 분의 아해가 영글고 영글어서
조금씩 검은 차가 되어가오
사르르사르륵…참
희한한 숲에 나는 서 있소
세분의 아해가 춤을 추오
하얀 밤이 다 지나도록
검은 아침이 오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나무 무성한
숲이 눈 앞에 드리우고 있소
우리는 숲이 되어가고 있소
희망이 있었다
절망에 빠진 어떤 나들,
때로는 그리움에 놀라운 그
바람의 마음을 살려라 달려라
하루를 세고 있었다,
자칭 다리라 하는 삶은
대찬 사람을 가끔 거스르며
그 들에게
푸름을 보인다고도
때로는 내려가는 강길 같은 것이
하늘의 구름을 지켜본다고도
햇살은 퍼뜩퍼뜩
눈부신 엷은 마음 저림이
시작된 그곳엔
낮이 있었다 저녁이 있었다
저기 떠오른 한 슬픔이 있었다
슬쩍 똑똑 뺴꼼·1
내 마음이 슬쩍 비껴가면
똑똑한 누군가는 빼꼼 고개 내밀어
내게 살아가라 하지요
나는 그에게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라고 묻고
그는 내게
알아서 하지, 라고 하네요
내 마음이 슬쩍 비껴가면
똑똑한 누군가는 뺴꼼 고개 내밀어
그냥 살아가라 하지요
오늘도 그냥 산 인생이 고개 내밀어
슬픔 한줌 삼켜보며 말합니다
나도 똑똑한 인생 한번 빼꼼 내밀고 싶다고요
나도 슬쩍 한번 고개 한번 올리고 싶다, 라고요
내 마음이 슬쩍 비껴가면
빼꼼 내민 인생이 슬쩍 고개 내밀어 쳐다보네요
오늘도 그냥 살아가라 하지요
슬쩍 똑똑 빼꼼 2
슬쩍 사라져 봅니다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리네요
빼꼼히 문을 여니
슬쩍한 슬쩍이
똑똑한 척 하는 누군가에게
빼꼼 문을 열어주네요
슬쩍 마음이 시리면
누군가의 똑똑한 사랑이
빼꼼히 알아요
슬쩍 어딘가로
똑똑 두드린 오늘이
빼꼼 빼꼼 빼꼼
슬쩍 똑똑 빼꼼·3
오늘도 슬쩍 마음에 들어가려 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래도라며 했던 마음이
누군가의 똑똑한 빼꼼에 살며시 손을 내밀면
오늘도 살아가라 글을 쓰지요
오늘도 행복하단 숨을 쉬지요
어제는 몰랐던 오늘이 내일은 알겠다며 내미는
언젠가의 기억들이 슬며시 올라오면서
세상은 슬쩍
마음은 똑똑
그리고 나는 어느덧 뺴꼼
빛들이 있었다
물빛에 빠진 어떤 글들,
때로는 신선함에 놀라는 채
글씨의 마음을 새겨라 올라라
시간을 적고 있었다,
자칭 솜씨라 하는 길은
별빛 안전을 가끔 추스르며
그 몸에게
눈물을 보인다고도
때로는 내려가는 숨길 같은 것이
세월의 밝음을 지켜본다고도
빛살은 퍼뜩퍼뜩
눈부신 믿음 소망 사랑이
시작된 그곳엔
내가 있었다 꿈이 있었다
저기 떠오른 한 빛들이 있었다
총각의 열무
총각이 옷을 벗고 서 있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TV 속에선 오늘을 달리는 아나운서가
라디오에선 내일을 향해 가는 여자 MC가
총각은 멍한 눈으로
그들을 향해 질주한다
질주하는 너머로 총각의 웃음소리가 퍼진다
괴물은
어쩌면 저 너머에 어딘가로 이미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옷을 벗은 총각사내가
주섬주섬 옷 주위로 가다가 뭔가 아쉬운 듯
베란다 창밖
산 너머를 바라본다
바라보는
너머너머에 있는
뭔가가 그리운 듯
총각은 눈물을 훔치고
눈물을 내린다
오늘도 날아가는 미디어 너머로
총각의 슬픔이 날아온다
총각의 슬픔이 내달린다
총각의 아픔이 바라본다
토끼와 곰, 그리고 여우
1.
토끼가 말을 하자 곰이 여우를 보았습니다
여우가 말을 하자 토끼가 곰을 보았습니다
곰이 말을 하자 여우가 토끼를 보았습니다
2.
토끼와 곰, 그리고 여우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더더욱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3.
하늘이 너무 파랗습니다
토끼와 곰, 그리고 여우도 너무 파랗습니다
사람들과 아아이들도 너무 파랗습니다
4.
쉽게 얘기해
모두 말을 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푸르게 되어서
모두가 모두가
혹시, 커피, 저기요
1.
혹시, 저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에 있나요,
이별의 아침이 서린 날들이 오면
오늘은 누군가 동행을 하자고
저를 의심하곤 합니다.
이젠, 됐다, 라고 말하는 순간순간들이
만남으로 날아와
2.
적신 커피 안에서 사람을 살짝 밀어내면
우리는 무엇인가 달려와
형광 불빛 사이로 날아오는 세상이
오늘, 저기, 커피요, 오늘, 저기, 커피요
3.
저의 세상은 이만큼 나와 있는데
커피 속 세상 밖
날아가는 구름 너머로
사랑이 슬쩍 스며드는
어느 이른 바람 신선한 커피가
아픔의 여부를, 슬픔의 여부를
오늘도 묻곤 합니다.
보리콩 볼펜
1.
그냥, 평소처럼 생각하세요
상쾌한 아침의 초록이 맞는 시간
우쭐댄 소리의 아이가
히히, 평소처럼 생각하세요
보리에는 콩이 있구요
콩에는 보리가 있어요
볼펜 하나에는 잉크가 잔뜩 들어있는 걸요
2.
6월에는 낮이 있었어요, 그 낮에
소리는 소리없이 소리를 냈어요
불안의 붉은 점이
히히, 평소처럼 생각하네요
보리콩 볼펜 보리콩 볼펜
우쭐댄 소리의 어른이
더 늘어가는 허리를 붙잡고
아하, 아하, 아하
3.
가끔은요
시간에도 독이 있었어요
그 독은
빨리빨리를 외쳐대며
오늘,
우쭐댄 소리의 사람이
미안하다며 미안하다며
회한의 파란 하늘이
오늘도 소리를 치며 소리 너머로
4.
보리콩 볼펜 보리콩 볼펜
오늘 작은 눈물 방울 하나
히히, 우쭐댄 소리의 아이가
방울방울 방울 너머로
마냥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군요
해는 항상 제게 있어요
1.
해는 항상 제게 있어요
오늘도 해는 어딘가로 향해 나아갔어요
여기는 어두운데
저기는 밝고요
저기는 어두운데
여기는 밝은
2.
세상은 오늘도 밝아졌어요
미소짓는 사람들 너머로
웃음웃는 사람들 너머로
박장대소 환함들 너머로
3.
오늘도 밝은 햇살
오늘도 밝은 맑음
오늘도 밝은 내일
오늘도 밝은 어제
4.
그리움이 그리움이던 날도
서러옴이 서러움이던 날도
5.
해는 항상 제게 있어요
어디가에 있는 해는 저 너머로 날아가지만
6.
해가 뜨면 오늘도 인사를
해가 지면 오늘도 인사를
7.
드디어, 사람이 보이고
드디어, 달빛이 보이고
드디어, 아침이 보이고
보이는 저 해 너머
갸우뚱 갸우뚱
해가 지면서 손을 흔들고 있어요
그 속으로 평범한 미소가
오늘도 저를 흔들고 있네요
해가 항상 저를 해가 항상 저를
- 에필로그 : 보고 있고요, 제게 있고요,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