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증언
전창수 지음
거짓증언․1
- 반항 (反抗)
1
나 이제 꿈
꾸지 않으려 한다
- 수도 없이 상처받은 사람들이 대인기피증 혹은 대인공포증에 걸릴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폭넓은 이해심을 지녔을 것이라고 나는 한번 생각해 본다 때로 상처 없이 병에 걸린 사람들 자기 안에 갇혀 자기만의 슬픔이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문득
역겨워진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이런 생각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 내가 있다
문득, 그가 역겹다
흉터 하나 없는 고운 얼굴이다
2
햇살이 언제나
따스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 따가운 손 위에 내 손을 얹었을 때 때로는 차가운 손이 따가운 손을 시원하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더욱더 큰 상처
차가운 마음으로 치료할 수 있으리라
(상상(想像) : 원형(圓形)의 탁자에 1,2,3,4 가 놓여있다
눈물 흘리는 1번 앞에 2번
차가운 눈길로 3번 쏘아보고 웃음 머금은 3번
4번의 차가운 손잡고 4번의 다른 손
1번의 눈물을 훔친다)
이제 더 이상
손이 차가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3
도망가자
이 바쁜 한숨 속에서
울렁이다 토해내는
오염된 땅
이제 그만 벗어나자
- 고개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걷는다 기운 없어 보이고 싶지 않지만 고개 들고 싶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게 그저 부끄러워 고개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걷는다
나는 왜 오염된 땅이라고 하면서
오염된 땅만 바라보는 것일까
그게 다시 부끄러워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다
4
답답한 가슴 눌러앉고 하늘 바라보면
고요한 세상은 숨 막힐 지경이다
- 포용력을 지닌다는 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나는 한번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노인은 공경하고 봐야한다 이것이 신세대의 약점이라면 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포용력은 사람을 지치게도 하지만 그런 포용력이 없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내 생각을 확실히 알 수 없다
확신할 수 있다면)
이제 더 이상
이따위 시는 쓰지 않으리라
똑바로 서려 해도
결코 설 수 없는
오뚝이는 되지 않으련다
증언대에 서서
거짓말하는
그런 옹졸한 인간은
되지 않으련다
나 이제 꿈
꾸지 않으련다
거짓증언․2
- 주행중(走行中)
1
저녁 5시 안성에서 수원으로 가는
좌석 없는 직행버스 한켠에 서면
졸음과 매스꺼움 한꺼번에 몰려들어
고속도로 4차선
보았다 싶으면 곧장
시간의 눈 속으로 사라지는
하얀 점선들이 지나간다
지나가는 점선 속에선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순간으로 사라졌을까
2
고속 주행하는 차들을 생각 없이 바라보면
내가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런 것들로
슬퍼할 때가 있다 의식 없는 것들을
모조리 물리칠 수는 없는 걸까
의문에 쌓일 때가 있다
멈추고 싶다
3
오늘도 무사히 다녀오세요
택시 앞면 유리창, 혹은
뒷면 유리창
파란색 글자로 새겨진 문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외고 있었던 걸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음주운전 절대 금물
자정 넘은 시각 밤을 물리치지 못한 자들
어둠의 거리 무제한 속도의 질주
면허정지, 면허취소, 음주운전 무더기 적발
한사코 나는 술을 안마셨다고
구속영장 첨부는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살아남기 위한
건강보조식품, 또는 보신탕
병들어가는 시대에 병들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
시대를 역행하면
더 빨리 죽을 수도 있다는 걸.
4
면허취소 당하고 차를 몰고 간다
감옥에 가기 위하여 술 마시고 운전을 한다
시대에 발맞추기 위하여 열심히 뛰어다니는
오로지 맨발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청춘을 허비한다
이젠 주행 중(中)엔 주행 중(中)이란 푯말을
꼬옥 달아 놓자 가던 곳에 사람들
치이지 않게 붉은 빛깔들로
꼭꼭 채워놓자
- 건너편에 저 아저씨 횡단보도 깜박여요 빨리빨 건너세요 빵빵- 할머니 지팡이 놓고 안 건너면 갈겁니다 치여도 난 몰라요 내 잘못은 없어요 급해서 그럴 뿐이에요 벌써 빨간불이 켜졌네 아저씨 할머니 책임지세요 욕먹잖아요
5
산산조각 난 중형차의 뒤에서
버스에 탄 사람들의 시선이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 사고났다 구경가자, 불났다 구경가자, 싸움났다 구경가자, 우리 모두 구경가자, 인간극장으로 구경가자, 구경거리를 찾아 구경거리를, 만들어보자
산산조각 난 중형차 구경
그러나 보고 싶은 시체는
보이지 않네
숨 가쁜 앰뷸런스
무제한의 차량을 뚫고 고속도로로 질주한다
사람들 사이 비집고
사라지는 저 앰뷸런스에
다시 오지 못할
내 의식의 증언도 있다
내 삶의 중추(中樞)가 있다
거짓증언․3
- 진짜 애국
영원히 사랑하다는 것은
조용히 살아간다는
이 말은 진리같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영원히 영원히
거짓말만 하고 살겠다는
그저 조용히 살겠다는
그 거짓말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려 하는
그 거짓말보단
스스로를 기르는 게
낫지 않을까
영구적인 생활필수품을 개발한 회사는
발매하자마자 망하고 말리라
영원은 곧 멸망이다
내 너희를 심판하노니?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말인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법조계의 한국적 정서는
사디즘과 매저키즘의 혼합작용이 없다면
곧 평화가 올 것이다 더불어
후예도 없을지 모른다 오르가즘의 절정에서
인간은 아이를 탄생시킨다
그래도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아이를 탄생시키는 것만큼이나
소중한 일인 것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여 영원하라! 하하하
위선으로 뭉친 사회와 자본이 어우러진다
그리고 공산이 탄생한다
공산은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유토피아는
전쟁을 낳고
세상에 평화는 없다
곧
영구적인 생활필수품을
개발할 때가 된 듯하다
내 목숨으로
이미 개발되어 있는
내 목숨으로
영원히 사랑하리라
거짓증언․4
- 도시의 함몰
불빛들 살아나기 시작한다 도시의 어둠 내려앉은 소음과 매연들의 망설임이 마악 살아나기 시작한다 아파트 지대에 접어들면 어둠 같은 빛이 시작되고 있다
처음엔 자연이 있었어요 흙과 모래와 바람, 잡초 가득한 밀림, 원시림의 목욕과 부끄러움 없는 시대가 있었지요 차츰차츰 자연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저희에게 상처를 입혔어요 부끄러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겐 움막이 필요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몸에 지푸라기를 걸치기 시작했어요 날것을 먹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기도 했어요 변한 건 세월뿐이죠 아무 것도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었어요 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요 사람들이 변화를 이루었어요
삶의 고요한 빛깔들이 자연으로 내려오면서 사람들은 천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천사는 몰락해가는 도시의 풍경에 실망해 투명인간으로 변했다 천사는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어가 악마와의 싸움을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새 도시가 건설되고 있었다
거짓증언․5
- 아르바이트 사원
나 역시 사원(社員)이다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 이 회사의
동료들과 더불어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
거리에 진열된 가게들
모두는 내 손으로 들어와
잠시 눈을 반짝인다
스쳐갔던 곳에
같은 자리 또다시 와서 서다
지나치면 바람이
거리와 거리
야구장의 환호성과
길가에 진열된 커피자판기
손 아래
손님도 영업사원이다
땡볕 아래 서서
불경기의 호황
대상과 수단
으로의 삶
나 역시 사원(社員)이다
거짓증언․6
- 순결한 남자
바람 들어와
거리에 째즈
- 거리의 찬란한 불빛에는 눈길 가지 않는다 그 속에 들어선 은은한 빛과 제멋에 취해 춤추는 사람들만이 나를 끌어당길 뿐 앞에 보았던 이성(異性)보단 새 이성(異性)에 눈길 돌리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앞이라도 좋아 한번 눈 마주치면 그날은 너야
바람 들어와
락카페엔
소음으로 가득 찬 단체손님
- 오늘은 허탕치지만 내일을 위해 오늘의 힘을 아껴둬야지 락카페가 일상인, 형의 순결스토리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어 돈 때문에 허리 때문에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던 순간들, 때문에 뒤집어지는 온몸으로 춤을 추는 거지 형의 의지(意志)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물좋은 동네
락카페에 가자
오늘도
제멋에 취하는 밤
흔하디 흔한 너를 본 순간
드디어 드디어
순결을 빼앗기고 싶었다
거짓증언․7
- 어둠의 자식
자갈더미의 잡초는 아직
공원의 “잔디 보호” 푯말을 잊고 있다
기타를 치며 하모니카를 불던
녀석의 주위에 어둠이 내린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지만 진절머리 나게
내 시 한편도 거기에 끼어 있다 그나마
도시의 소음들 속에 이곳은 고요하다 지금
연락할 방법이 없는 그녀에게선 연락이 없다
교회나 다녀볼까
중 2 때 4개월 다녀본,
그 후 4년은 성당을 다녔지
바꿔치기 하던 종교는
아직 나를 기다릴까 의문의 사나이가 된다는 건
그만큼 적응을 못한다는 그런 이유였음을
그들은 알까 녀석이 공원에서 광란을 벌이며
내 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