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24
창세기 1장
***창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관주에서 고후 4:6절의 말씀이 연결되어 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후 4:6)
내 마음의 공허와 혼돈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내 마음에 비칠 때에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의 말씀이 접목된다.
생명의 빛이 나의 마음에 비추이니 내게 감동이 밀려온다.
그런 나를 살피시던 하나님께서 나의 행복을 기뻐하셨을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한없는 감사의 마음이 밀려온다.
좋으신 하나님!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이 죄인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 생명의 빛을 비추어주시다니!
주님 홀로 영광 받으옵소서~
아멘!
***창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레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시 104:6-9)
아름다운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세계는 참으로 아름답다~
***셋째 날,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는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심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은 외모나 품성에 있어서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45). 그 형상은 영적인 본성에 의해 매우 분명히 나타났다. 그는 “생령”, 다시 말해 자유 의지, 자의식이 있는 인격을 부여받은 산 존재가 되었다.
이 본성은 죄가 하나님의 모습을 망쳐 버리기까지 그 조물주의 신적 거룩함을 반영하였다. 우리의 본성이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골 3:10; 엡 4:24)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그 본체의 형상”(히 1:3)인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창세기 2장
***창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일곱째 날을 축복했다는 말은 그것에 의해 그 날이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대상이 되며, 그의 피조물들에게 복을 가져다 줄 날로 선언되었음을 시사하였다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는 그 날이 거룩하며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되었다는 선언에 있었다.
일곱째 날을 복 주며 그 날이 거룩하다고 선언한 이 행위는 인류를 위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안식일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 2:27)이라고 선언한 예수의 말씀이 있는데, 그 말은 이 제도가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서 제정된 것임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창 2: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초목-
창 2:4~6절은 지표면의 모습, 특히 창조 주일의 여섯째 날에 출현한 인간의 창조 직전의 식물에 대해 간략하게 묘사함으로써 7절의 인간 창조를 예고한다. 여기에 땅을 “경작할” 누군가가 출현하기만 하면 완전하게 될 낙원이 있다. 기대에 부풀어 활기에 넘친 모든 자연은 마치 관현악단이 모든 악기를 조율한 가운데 그들의 지휘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들의 왕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러므로 이 자유에 대한 제한은 훨씬 더 구체적이다.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이름을 지닌 한 나무(9절 주석 참조)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되었다. 이것은 계시되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가 어떤 종류의 열매를 맺었을까 하고 추측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동산에 이 나무가 있는 그 자체가 사람이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였음을 나타냈다. 인간의 봉사는 강요되지 않았다. 그는 순종할 수도 불순종할 수도 있었다. 결정은 그의 것이었다.
열매 자체는 무해(無害)했다(교육, 25). 그러나 그것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은 이 나무를 인간의 충성과 순종을 시험하는 근거가 되도록 구별지었다. 도덕적인 존재로서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그의 양심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의 율법을 어떤 특별한 상황에 적용시킴으로 그 법의 원칙들을 밝혀 조물주에 대한 인간의 충성을 공정하게 시험하려는 듯이 인간에게 금령이 부과되었다. 하나님은 만물의 진정한 소유자였으며, 심지어는 아담이 위탁받아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유자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그 자신을 위하여 피조물의 어떤 부분이라도 확보해 둘 수 있는 권리를 그에게 부여하였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이 세상의 많은 부분을 확보해 두고 아담에게 오직 작은 부분만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합리한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사람은 한 나무를 제외하고는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금지한 것은 명백히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분명한 증거를 보이도록 하는 것 외에는 어떤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