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을 보고
김견남
사람 모습을 하고서 기괴한 짐승의 소리를 내며 강렬한 눈빛과 몸짓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거칠고
야생적인 늑대 인간이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말을 배우고 글을 쓰고 여린 감정을 갖게 되는 이야기다.
공기 좋고 한적한 시골 마을 허름한 별장 같은 집에 순이네 가족이 이사를 온다.
가족처럼 지내는 마을 사람들은 어른 애 할 것 없이 순이네 이삿짐 나르기에 분주하다.
이때 양복 차림을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른 젊은 남자가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거드름을 피우며 이삿짐 차 옆으로 지나간다.
무거운 짐을 들려던 마을의 나이 든 사람이 그에게 이삿짐을 함께 들자고 말했다가
싸늘한 눈 흘김을 당하고 이내 포기한다. 젊은이가 조금 멀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젊은 놈이 싹수가 없다고
흉을 보는데 순이 엄마가 와서 “이 집 그놈이 사준 거예요” 한다.
그놈은 물론 그 양복 차림의 젊은 놈이며 순이 아버지가 동업을 하다가 급작스럽게 죽자
순이네 재산을 독차지해버린 순이 아버지의 친구 아들이다.
그날 밤 순이는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순이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밖으로 나가 헛간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사람도 짐승도 아닌 모습의 물체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후다닥 밖으로 튀어 나간다.
그리고 다음 날 사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는 들짐승 같은 늑대소년이 나타난다.
소년은 감자가 담긴 양푼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순이 엄마는 얼른 감자를 한 개 던져준다.
던져준 감자를 후다닥 먹어치우는 모습을 본 순이 엄마는 감자가 든 양푼을 그 앞에 놔 준다.
사람 꼴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이 더럽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늑대소년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도 한데 순이 엄마는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지 못한 불쌍한 아이로 생각한다.
엄마는 늑대소년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목욕을 시키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다.
잘생긴 모습의 소년이 된 늑대소년은 식탁에 달려들어 음식들을 두 손으로 막 헤치며 흘려가면서 먹는다.
순이 동생이 음식이 튕긴다고 눈살을 찌푸리자 순이 엄마는 “잘 피하면서 먹어” 한다.
그러고는 허겁지겁 먹기 바쁜 늑대소년의 등을 어루만지며 “침착해”라고 말한다.
소년이 늑대 소리를 내자 순이 엄마는 “어우~얘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밤에 그러면 안 돼!” 하면서 자식 혼내듯 야단을 친다.
엄마는 늑대소년을 불쌍한 아이라 생각하며 이름을 철수라고 지어준다.
철수가 된 늑대소년의 마음속에 인간의 따스한 사랑이 스며든다.
병이 깊어 학교에도 못 가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마음의 병까지 얻어 가던 순이는 그런 철수가 못마땅해
내보내라고 엄마를 닦달하지만 어느 순간 철수한테 동질감을 느낀다.
순이는 세상 살아가는 방법들을 하나씩 철수에게 가르쳐 준다.
먹을 것을 보고도 기다리는 법, 옷 입는 법, 글을 읽고 쓰는 법, 말하는 법 등등.
순이는 감자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기다려, 하면 이거 먹지 말고 기다리는 거야.” 한다
그러나 철수는 기다리지 않고 감자를 얼른 채틀어서 먹다가 순이의 손에 상처를 내고 만다.
미안해하는 철수를 보며 “기다려 하면 가만히 있는 거야. 먹어 하면 먹는 거야.”라고 한다.
“기다려 그래 조금씩 먹어. 잘했어. 그래 잘했어.” 순이는 철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둘의 가슴에 사랑이 싹튼다. 철수는 스스로 자신이 잘 했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순이에게 머리를 내민다.
순이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잘했다고 하면서 웃는다. 두 사람의 눈빛이 사랑스럽다.
순이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타를 꺼내 연주하면서 철수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철수는 넋이 나간 듯 순이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천천히 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철수는 신비한 소리가 나는 순이의 기타를 애지중지한다. 순이와 철수는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위해주고 의지한다.
“어디 안 갈거지? 응! 이라고 해봐”
철수는 말을 할 줄 모르고 순박한 표정만 지으며 쳐다본다.
순이는 ‘눈사람’이란 책을 철수에게 주면서 옛날에 아빠한테 받은 건데 아직 안 읽어 봤다며
열심히 글 배우고 말하는 거 배워서 읽어달라고 한다. 나중에 눈이 오면 동산에 올라가서 눈사람도 만들자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기름을 바른 싹수없다던 그놈이 양주를 잔뜩 마시고 나타나
순이의 기타를 부수고 순이를 겁탈하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위기 속에서 순이를 보호하려는 철수는 순간 늑대로 변해 그 놈을 혼내준다.
이때부터 그놈은 말 못 하는 철수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괴롭히다가 급기야는 자신이 살인한
정 씨를 철수가 죽였다고 누명까지 씌운다. 그놈은 철수에게 자신이 죽인 정 씨의
집에 순이의 기타가 있다며 가서 가져오라고 한다.
철수가 기타를 찾으러 정 씨집에 들어가자 그놈은 마을 사람들에게 철수가 정 씨를 죽였다며 총살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순이는 철수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정 씨 집에 철수가 기타를 찾으러 갔음을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증명한다.
이에 동네 사람들도 철수가 정씨를 죽이지 않았다고 믿는다.
이에 작전이 수포로 돌아갈 걸 염려한 그놈은 철수를 자극하기 위해서 순이를 발로 차고 때린다.
이에 격분한 철수는 늑대의 본성을 또 드러내며 순이를 구한 뒤 순이를 안고 숲으로 사라진다.
이른 새벽 마을 사람들이 숲으로 사라진 순이를 찾아러 간다. 위기감을 느낀 순이는
철수에게 따라오지 말라며 숲을 나가려 하지만 철수는 계속 따라온다.
순이는 철수의 뺨을 때리며 꺼지라고 소리치고 돌멩이를 주워 던지며 따라오지 말라고 소리친다.
지금 따라오면 죽는다고.....
마을 사람들과 군인들은 총을 들고 순이를 찾아 숲으로 들어왔고 순이는 그들과 함께 마을로 내려간다.
빈집에 어둠이 내린다.
47년이 지난 후 그때 돌멩이에 맞은 흉터를 가진 철수가 별장에 앉아있다.
순이가 떠나면서 남겨놓은 쪽지 ‘기다려. 꼭 다시 올게’라는 글귀를 간직하며 순이와 약속한 글을
배우고 말을 배우며 수십 년간 그곳에서 순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47년 만에 찾아온 순이에게 오래전 순이가 주었던 눈사람 동화책을 읽어준다.
백발이 다 된 순이와 외관상으로는 전혀 변하지 않은 늑대소년의 포옹
“지금도 예뻐요 여전히 예쁩니다. 똑같습니다. 손도 입도 눈도 ...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관객도 백발이 된 순이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다.
“이제 기다리지 마요”
사랑하는 사람의 기다림을 보면서 죄책감에 목이 멘 나이 든 소녀 순이는 별장을 팔려고 내려왔지만
팔지 않고 그곳을 떠난다.
철수는 언덕에 올라가 떠나는 순이의 뒷모습을 본다.
그리고 순이와 함께 만들기로 했던 눈사람을 혼자 정성스럽게 만들며 막이 내린다.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렸던 철수가 계속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을까
아니면 다시 별장으로 돌아와 철수와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한 준비일까.
나는 순이가 다시 별장으로 돌아와 철수랑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 속에서도 살지 못하고 인간으로도 살지 못하는 늑대 인간의 사연이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아련하다.
평생 한 마리의 암컷만을 사랑하다 죽는다는 늑대.
암컷이 먼저 죽으면 어린 새끼를 홀로 돌보다가 새끼가 다 성장하면 암컷이 죽었던 자리에 가서
자신도 굶어 죽는다는 늑대.
자신의 암컷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싸운다는 유일한 포유류 늑대소년의 영화를 보며
나는 영화속의 늑대소년이 인간의 언행을 배우지 못한 버려진 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 무렵 늑대소년 역을 맡았던 송중기 배우가 티브이에 나왔는데 난 송중기의 모습이 화면에 나올 때면
얼른 화면 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개를 기르다 보면 감동적인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들은 주인이 멋지게 꾸몄을 때나 초라할 때나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한결같이 우리를 바라본다. 그들은 대체 우리의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들도 이들처럼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해버리거나 어쩌면 진짜 볼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조성희 감독-
-2012년 어느 날-
첫댓글 와~ 영화의 장면 장면이 떠오를만치 생생하게 잘 전달이 되었어요
영화를 보며 가슴이 아팠었는데 이 글을 보며 또 가슴이 아려왔어요
작가님은 영화 이야기도 참 잘 쓰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