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제공(別提公)산소와 옹달샘
사월 한달은 주말마다 양평 박사공(博士公), 고양 직강공(直講公), 영광 사과공(司果公) 시제에 참석하느라 가족과 함께한 주말이 없었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니, 가정의 달이니 하지만, 이런 저런 일로 한 달이 훌쩍 지나가는 마지막 주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꼭 가족과 함께해야 할 것 같다.
가끔은 투덜대지만 그래도 늘 포근하기만 한 아내, 스튜어디스를 해보고 싶다고 준비 중인 딸, 곧 입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과 함께 코란도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순창이다. 가는 목적은 순창고추장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아들놈이 순창고추장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고추장을 사러 가는 길이 가족 나들이라니 좀 우스운 모양이지만 우리 집 나들이는 으레 그렇다. 가면서 상의하여 적당한 곳을 둘러보고 오는 것이 우리 집 나들이의 모습이다.
가는 길에 12대조 할아버지 산소를 들려가기로 했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담양(潭陽)쪽으로 15Km쯤 가면 월산면 신계리라는 곳이 있다. 이곳 박산(朴山)에 나의 12대조 할아버지 별제공(別提公) 과 할머니 진원박씨(珍原朴氏)산소가 있다.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 명당이라고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나간 후손들이 많다. 별제공의 아들 15세 수오(粹五)공부터 연 4대가 문과에 급제하였고, 연이어 8대가 대소과에 급제한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후손으로 문과급제 12원(員), 사마시급제 18원(員)이고, 작은집으로 출계한 혈손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연안김씨 문중 중에서 과거급제 면에서 단연 손꼽히는 집안이다.
별제공 산소 바로 아래에 조그만 옹달샘이 있는데 이 옹달샘과 관련하여 집안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별제공 후손이 과거에 급제할 때마다 이 옹달샘이 넘쳐흘렀다는 이야기이다. 조선 현종(顯宗)임금 이후 구한말까지 몇 7년마다 한번 씩 넘쳐흐른 셈이다. 아마 별제공 할아버지의 음덕이 멀리 후손에게 미치고, 옹달샘을 통하여 그 기뻐하심을 나타내심이리라. 최근에 후손이 행정고시에 합격했는데 그 때도 옹달샘이 넘쳐흘렀으리라. 별제공 산소에 5대손 사헌부대사헌 재순(載順)공이 제(題)한 비석이 있으나 오랜 세월 풍우에 씻겨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고, 묘역이 허물어져 안타깝던 중, 지난 2004년에 종중에서 묘역을 다시 고치고 비석을 세우기로 하면서 그 비문 작성을 나에게 맡겨, 집안에 내려오는 가승과 집안의 역사를 편년체로 엮은 가사편년(家事編年)을 참고하여 지어 올렸더니 비석에 음기(陰記)하고 말미에 “十二代孫壽泳”이라 새긴 것을 보니 너무 졸작(拙作)이라 부끄럽기 짝이 없다. <2007. 6. 대종회보 제3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