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들과의 첫 한국여행 김규련
5년 만의 한국 방문이다. 4월의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옛 향수를 자극하는,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기 위하여 가을에 여행을 주로 했다.
그러나 4월의 돋아나는 새순을 머금은 산의 나무들은 진한 초록색과 조화를 이루어 싱싱함을 더하고 있다. 일상에 젖어 살던 나에게 새롭고, 심장의 박동을 올려주는 조국의 아름다움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둘째딸 다섯 가족과 우리 부부 모두 일곱 명의 여행이다. 이번 일정은 한국을 처음 방문 하는 손자 손녀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것으로 짰다. 놀랍게도 DMZ에 가자고한다. 일곱 살, 열한 살, 열네 살 된 어린 애들에게서 이런 제안이 나올 줄은 몰랐다. 책에서 보았다고 한다. 나도 이곳 방문은 처음이었다. 관광버스는 오전 일곱 시에 서울을 출발한다. 승객들은 모두가 외국인들이었고 안내원도 영어를 사용했다. 미얀마 출신에 싱가포르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한국 역사 시험도 합격하여 자격증을 가졌다고 한다. 변해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본다. 한국에 이민 와서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나와 같은 이민자로서의 동질감을 느꼈다.
차창에 비친 휴전선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나의 기대와는 다른 장면이 지나가고 있다. 옛날에 그 많던 경계초소도 별로 눈에 뜨이지 않고 검문검색도 딱 한번 있다. 허가 받은 차량에 각국 여권을 지참한 승객들 이라고 하나, 옛날 눈으로 볼 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간의 통일에 대한 노력 덕분인가, 아니면 경계가 느슨해진 걸까?
6.25전쟁의 상징인 기관총 탄환으로 얼룩진 기차를 보고 설명을 듣는 11세 손자는 열심히 노트에 적으며 기념품까지 사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망원경을 통하여 바라보는 눈앞의 가까운 이북 땅, 인민군들이 지하로 침투하기 위하여 파놓은 땅굴, 그곳 경계선에 살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주민들은 아직도 전쟁 중인 대한민국의 휴전의 모습이다.
다음날은 서울 동작동묘지에 들렀다. 묘지 무덤이 옛날에 방문 했을 때 보다 많이 늘었다. 꽃단장으로 잘 가꾸어진 공원은 6월에 있을, 현충일을 맞이하여 준비가 한창이다. 동생 남편의 묘지를 찾아 갔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대령으로 복무했던, 월남전 참전 용사다. 평안한 안식의 기도와 함께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다.
큰형부도 작년에 소천 하셨다. 강원도 강릉의 통일공원에 안장된 묘지를 찾아 갔다. 동해 바다가 한 눈에 펼쳐 보이는 곳에, 강릉시가 새로 단장한 공원이다. 2011년 통일을 염원하는 공원으로 조성이 되었다 그곳에는 한국전쟁 중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동상과 함께 묘소가 있다. 삼학도와 함께 자리를 같이 했다. 6.25 전쟁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그는 친구 세 명과 함께 구석방에 몰래 숨어, 인천상륙작전 소식을 뉴스 전단으로 제작하여 강릉 시민들에게 알리며, 환영 태극기를 만들어 숨어서 배포하였다. 그렇게 활동하던 중, 공산군에 잡혀 그들 네 명의 학생들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줄로 세워 놓고 눈에 수건을 씌우고 총살을 감행했다. 죽음으로 끌리어 가는 동안, 큰 형부만 도망쳐 나와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이런 한국의 전쟁 역사를 더 알려 주기 위하여 거제 포로수용소를 찾았다. 수용소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하게 잘 정리가 되었다. 내부 모형과 사진, 영상들을 보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유엔군들의 제네바협약에 따라, 상당히 인도적이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의 이야기도 빼 놓을 수가 없다.
전쟁으로 힘들고 우울했던 한국의 역사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어두운 표정이되었다. 그러나 손자들은 잠실구장에서 프로야구 구경으로 환하게 얼굴이 또 바뀌었다
명동 시장을 비롯한 세계 유명 명품을 취급하는 백화점,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보는 깨끗함과, 부요함을 보면서, 선진국가로서의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잿더미 속에서 일으켜 세운, 한국인들의 위대함에 감사하며, 전쟁의 참혹함과 비참함을 보고 배워, 세계 평화를 위하여 살아가는 그들이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