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과 결혼해줘. 얼마 전 시작한 드라마의 제목이다. 상당히 도발적이다.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아직 초반이라 전개될 내용을 유추하는 것이 다소 섣부를 수도 있겠지만 대략 내용은 이러하다.
지원은 썩 성실하지 않은 남편과 십여 년을 살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늘 옆에 있어주었던 절친이 그나마의 위안이다. 회사에서는 나름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무능력한 상급자로 인해 때로 부당하게 성과를 갈취당하기도 한다. 시집살이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지원은 암 선고를 받는다. 짧으면 육 개월, 길면 이 년의 시간이 남았다. 투병 중 지원은 남편의 불륜을 목도한다. 심지어 그 상대는 절친. 알고 보니 오랜 세월 둘은 지원의 죽음을 계획하며 밀회를 즐기고 있었던 터. 지원이 죽은 후 사망보험금을 탈 생각에 행복해하는 둘의 모습을 맞닥뜨린 날, 지원은 몸싸움 끝에 그만 정말로 죽고 만다.
여기까지는 소위 막장 드라마의 소재로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별로 새로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은 지원이 깨어난다. 죽은 이가 깨어난다는 상황 자체가 모순이겠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색다른 지점이다. 깨어난 지원이 마주한 현실은 무려 십 년 전 과거이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이며 사귀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엔 몹시 당황하지만 곧 현실을 파악한 지원은 죽기 전 알아차렸던 남편과 절친의 불륜을 상기하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대응한다. 절친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을 부단히 농락했던 친구의 실체를 인지할 것이며 사랑이란 이름으로 무례를 당연시했던 남자친구의 허울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원의 복수는 시청자에게 시청의 동기부여가 될 것이며 시청자로부터 그 복수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저 나쁜 연놈들의 마지막이 궁금하다.
드라마 연출자는 꽤나 영리하게 첫 회부터 그들의 악행과 지원의 불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을 직시한 지원의 분노는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이입되어 드라마의 다음 회를 기다리게 한다. 연놈들을 향한 처절한 복수가 너무나 기다려진다. 제법 잘 짜여진 연출이다. 배우의 연기도 썩 괜찮았다. 그래서 아마 드라마는 꽤 시청률이 좋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그런데 나는 문득 의문이 든다. 지원이 깨어난 십 년 전 과거는 지원의 남편과 절친이 불륜을 저지르기 전이다. 물론 그들이 미래에 벌일 악행의 조짐이 보이기는 한다. 그들은 애초에 인성이 좋은 인물들이 아니다. 더구나 지원의 절친은 이미 학창시절부터 지원에게 소위 뒤에서 호박씨 까는 짓을 꽤나 했다. 그것만으로도 벌 받을 만하기는 하지만, 미래에 일어날 불륜과 보험사기 등은 지원이 깨어난 시점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조짐만으로 미리 응징한다? 이것이 성립하는 명제인가.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떠오른다. 꽤 오래 된 영화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그리고 무척 흥미롭게 보았다. 이 영화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직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예측하여 범죄가 이루어지기 전 미리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범죄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살인을 예견하여 범죄가 일어나기 직전 범인을 체포한다는 설정이 무척 신선했다. 언뜻 보기에 꽤 훌륭한 시스템이었다. 그 덕에 영화 속 도시에는 살인범죄가 제로였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범죄예방시스템을 광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서서히 그 시스템이 봉착한 윤리 문제에 집중시킨다. 범죄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이라 해도 분명 체포가 이루어지는 시각 범죄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니 범죄자라고 지칭될 수가 없다. 범죄가 없는데 범죄자가 있을 수는 없으니까. 영화는 이 문제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결국 시스템의 오류와 윤리적 오류로 인해 잡아두었던 범죄자를 풀어준다. 어쨌거나 범죄가 이루어지기 전에 잡혔으니 범죄자는 아닐 것이므로. 결과가 바람직한 것일지라도 과정에서의 오류를 무시했을 때 결과의 정당성은 결국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전략적으로 남편이 남편이기 이전부터 나쁜놈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륜이라도 벌주어 마땅할 놈이 될 테니까. 그래야, 나 같은 의문이 들어도 슬쩍 넘어가줄 테니까. 저런 놈이라면 분명 미래에 불륜을 저지를 것이며 저런 친구라면 분명 친구의 남편을 빼앗을 것이니까. 그러니 윤리적 오류는 잠시 접어 두고 시청자는 우리의 주인공을 응원하며 그저 드라마는 드라마로 즐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