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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1)
올 한 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
롬 1:1~7
I. 서론
신년을 맞이하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님의 개인과 가정에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저희 교회 특성상, 예배를 드리지 않는 여름마다 제게는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가을이나 겨울에 새롭게 예배를 드리게 되면, 어떤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할까 ~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로마서가 후보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월말경, 이종민 교수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방문 중이셨던 성낙호 교수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기 때문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이런 소식은 성교수님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겠다. 그리고는 제 마음 속에 다음 번 설교는 로마서를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님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복음 안에서 견고하게 서는 것인데, 로마서보다 복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성경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존 스토트 목사님은 로마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의 선언인데, 복음에 대해서 가장 온전하고 가장 명백하며 가장 웅대한 진술을 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가 오늘, 로마서 본문을 가지고 여러분 앞에 선 것입니다. 이번 로마서 강해를 통해서 복음에 대해 가장 온전하게, 가장 명백하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웅대한 계획과 은혜를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II. 본론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절을 보시면, 로마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한 단어를 꼽으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단어를 꼽으시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복음”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방금 로마서가 복음에 대해서 가장 온전하게, 가장 명확하게, 가장 웅대하게 진술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기 때문입니다. “복음”이라고 대답한다고 해서 틀린 대답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로마서를 읽다 보면, 이런 식의 문구가 계속 등장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나라... 이제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로마서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저는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자료를 보니, 헬라어로 하나님을 Theos (God)라고 하는데, 로마서에서 총 153번이나 등장한다고 합니다. 로마서가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 장마다 거의 10번씩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합니다. Christ (65), Jesus (36), Lord (43), 이렇게 총 144번이 등장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것보다는 더 많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료에는 포함되지 않은 “아들”이라는 단어가 로마서에 계속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만 보더라도, 2절에 “그의 아들에 관하여” 4절에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라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 세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율법(Law)인데 총 74번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들로 로마서의 주제를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참고로, “복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eu-aggelion”은 9번 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는 단순히 “복음”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는 성경이 아니라 “복음이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는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3가지로 설명을 해 줍니다. 복음의 기원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복음의 전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입니다. 1절을 다시 한 번 더 읽어 보겠습니다.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로마서 1장 1절에서 바울은 복음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복음의 기원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2절에서 다시 한 번 더 강조됩니다. 2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2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복음의 내용은 그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이 복음이 하나님께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도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복음 없이도 하나님은 존재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 없이는 복음이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다음 시간에 살펴볼 내용인데, 로마서 1장 16절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만큼 복음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복음보다 더 중요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올 한 해 동안, 누구를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복음의 내용에 대한 바울의 설명을 들어 보겠습니다. 3~4절,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복음은 그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관해 3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죽으심,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탄생이 복음입니다. 지난 주일이 성탄절이었는데, 우리 모두는 “Merry Christmas”라고 인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노래했을 것입니다. 왜 우리는 성탄절에 이런 인사를 하고 이런 노래를 부를까요? 바로 예수님의 탄생이 기쁨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베들레헴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전해 준 메시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눅 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 소식은 다윗의 동네에 우리를 위해 구주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3절,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으심은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죽으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사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이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러분은 유튜브를 통해서 설교를 들으십니까? 저도 유튜브를 통해서 종종 설교를 듣습니다. 지난 주간에 설교를 하나 들으려고 유튜브를 켰다가 우연히 흥미로운 제목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 제목은 “기독교가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제목을 보자, 너무나 궁금해서 영상을 틀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질문이 바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종교 없이도 잘 살지 않는가?” 그 영상에서 출연한 사람이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질문을 보자 마다, 성경 구절이 하나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닐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성경 구절은 히브리서 9장 27절이었습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성경 구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은 한 번 죽는다. 둘째,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음 후에 심판이 있다. 그러니까, 종교 없이도 잘 산다는 말이 성립하려면,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때 밖에 없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한국에 있는 고3 수험생이 대학입학 시험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대학입학 시험은 고3 수험생에게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3 수험생은 입시가 코 앞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매일 늦잠 자고,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매일 놀고 먹고 있습니다. 이 고3 수험생이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고3 수험생이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고3 기간이 그 수험생의 마지막 삶이든지,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대학입학 시험을 완벽하게 준비했든지 말입니다.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종교 없이도 잘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이든지, 아니면, 심판을 잘 준비했든지 말입니다.
저는 최근에 전도서를 읽다가 전도서라는 성경이 히브리서 9장 27절을 잘 풀이해 놓은 성경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전도서는 전 인류의 역사에서 (미래도 포함해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해지는 솔로몬이 자신의 인생의 말년에 기록한 책입니다. 이 솔로몬이 전도서 마지막 장에서 히브리서 9장 27절과 아주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전 12:7, 14,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7절, 흙은 인간의 육신을 말할 것입니다.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14절,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심판하시는데, 모든 보이는 행위와 모든 보이지 않는 은밀한 일까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인간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일까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죽음 이후의 심판을 잘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떠한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신 것입니다. 롬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복음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부활하시기 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The Message 성경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His unique identity as Son of God was shown by the Spirit when Jesus was raised from the dead”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예수님의 유일한 정체성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명백히 보여지게 되었다 / 선포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사시면서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시면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결정적 한 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이것에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갑니다. 1절과 4절을 보시면,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4절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말하면서 하나의 칭호가 더 더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주”입니다. 이후에 살펴볼 내용이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목적을 로마서 14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롬 14:8~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목적은 우리들의 주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주라는 말은 헬라어로 “Kyrios (Lord)”입니다. 이 단어의 헬라어 사전적 의미는 “An owner exercising full rights” 즉, “완전한 권리를 행사하는 주인”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쓰면서 가장 먼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했던 것입니다. (1장 1절) 그런데, 현대 기독교 문화에서는 목사나 선교사를 주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방금 읽었던 로마서 14장을 잘 보시면,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목사나 선교사들만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이 똑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6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로마교회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것은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 가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이고,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2023년 신년을 맞이하면서 누가 우리의 주님이신지를 다시 한 번 더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오직 우리의 주님께만 영광과 충성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복음 전파에 대해서 간단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5~7절,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전파 부분을 말하면서 우리와 너희를 구분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5절에서, 우리는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고, 7절에서,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부분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와 성도는 다른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씀 드리면, 성도 안에 사도가 위치해 있습니다. 사도라는 직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 존재하는 항존직이 아니라, 초대 교회 때만 존재했던 특별한 직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란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 중에서 예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몇 사람들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 중의 한 명이었고, 바울은 사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고, 하나님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기 위해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만 드리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그렇다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프란시스 폴크스 (Francis Foulkes)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모든 시대에 그리고 오늘날에도 복음의 진보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복음을 드러낼 때, 복음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이 점에서 우리에게 특별한 책임이 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의 삶이 복음을 드러내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살펴 보았듯이,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의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의미하고,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수님의 자기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겸손히 우리 자신을 희생하며 사는 삶이 복음을 드러내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장차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소망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본문에 잘 나와 있듯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의미는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한다”는 것을 무슨 의미일까요? 이 부분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믿을 수 있도록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알렉 모티어 교수님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복음의 신앙’에서 ‘신앙’이라는 말은 ‘믿는 것’을 의미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도록 함께 애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씀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믿을 수 있도록 함께 애쓰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쓰는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이 복음 전파에 함께 애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롬 15:23~24,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바울이 로마서 편지를 쓰고 있던 곳은 고린도였고, 3차 선교 여행 중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교회가 1, 2, 3차 선교 여행 때, 자신의 파송교회가 되어 주었던 것처럼, 로마교회가 서바나 (스페인) 선교 여행 때에는 자신의 파송교회가 되어 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한다는 것은 복음을 직접 전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을 지원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모습입니다.
III.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3가지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1. 로마서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올 한 해,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올 한 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올 한 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