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미 묵타난다와 시다 요가 스승들
세상에 깨달은 사람들은 많습니다. 물론 인구 비율로 본다면 극극소수입니다만.. 깨달은 이는 일생에 자기처럼 깨달은 이 한 사람을 만들어내기 어렵습니다. 이건 수행자의 운명이 맞아야 하고 또 인연이 닿아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깨달은 이가 일생에 자기처럼 깨달은 이를 단 두명만 만들어 낼 수 있었다면 지금 지구에는 깨달은 이만 있을 거에요.
석가모니께서는 2.600 년 전 사람이잖아요? 만약에 석가모니께서 완전하게 도를 증득한 이를 두명을 만들고 이후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제자들에 의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이들이 계속 두명씩 나왔다면 이걸 계산해 보면 지금 인구 80억명을 훌쩍 넘어섭니다. 예전에 심심해서 계산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진리에 대한 말을 듣고 수행한다는 것은 정말 행운아들인 겁니다. 수행을 시작한다는 것은 기나긴 윤회속에서 윤회를 넘어설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진리가 대체 뭔지 이치로만 안다는 것도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을 불교에서는 "혜해탈 했다"라고 말 합니다.
수행자에게 "혜해탈"이 일어나면 그는 더 이상 경전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걸 보고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손에서 경전을 놓았다"하고 표현합니다. 이 상태가 되기 전까지 수행자는 손에서 경전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진리란 무엇인가?" 라는 궁금증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 혜해탈이 일어나면 자신이 깨달은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암튼.. 일반적인 수행자들이 혜해탈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여러 스승들의 말씀을 통해서 그 모든 말씀들 속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것을 찾으면 그게 바로 진리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스승들의 글을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지 몇몇 분의 글만 보아서는 진리에 대해서 왜곡된 견해를 갖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이는 일생에 걸쳐서 설법을 하지만 진리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물론 모든 스승들은 모든 것을 말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층층이 십만팔천층이라고 하잖아요. 진리란 사실 너무나 간단한 것이지만 마음이 너무나 다양해서 여기에 대해서 온갖 표현이 나오는 거거든요.
"세상에 사람은 없다"라고 진리를 간단하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화엄경의 핵심이잖아요? 그런데 다시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팔만 대장경이 필요한 거거든요. 제가 어려서 경전을 읽을 때 말 그대로 무지막지하게 많은 책을 보았습니다. 오죽하면 도반들이 제게 "활자중독"에 걸렸다고 했었습니다.
수행길에 들어선 사람은 한손에는 경전을 다른 한손에는 방편을 들고 마음과 전쟁하기 위해서 전장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항상 깨집니다. 그러나 상관 없습니다. 계속 전쟁을 하다보면 어느 때 이기는 순간이 옵니다. 그리고 단 한번만 이기면 그것은 영원히 이기게 되는 거거든요. 귀신과 싸울 때.. 단 한번만 이기면 됩니다. 그러니 오늘 깨지고, 내일도 깨지고.. 계속 깨진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수행자에게는 간절한 마음이 진보를 이루게 합니다. 진리에 도달하고자하는 간절한 마음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그저 앉아서 방편을 행하며 세월만 흘려보낼 뿐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자기마음의 만족을 찾는 것이 진보를 늦추게 합니다.
암튼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또 다시 습관처럼 몇몇 개들의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
스와미 묵타난다와 시다 요가 스승들
왼쪽에서 합장하고 있는 여인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올리비아 핫세"입니다. 아마도 어느 때인가 묵타난다의 제자로 입문했었던 모양입니다.
스와미 묵타난다는 1908년 남인도 망갈로르 시 근교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다섯 살 무렵에는 나중에 자신의 영적 스승으로 모시게 될 위대한 성자인 바가완 니티아난다와 우연히 여러 번 만났다. 이 만남들은 소년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얼마 후 그는 신을 직접 체험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은 거의 25년 동안 이어졌고, 그는 결국 인도 전역을 세 차례에 걸쳐 여행하게 되었다. 그가 만난 첫 번째 스승은 시다루다 스와미였다.
그는 당시에 유명한 학자이자 성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묵타난다의 집에서 북쪽으로 200마일쯤 떨어진 후블리에 있는 아쉬람에 살고 있었다. 거기에서 그는 베단타를 배웠고 샨야사 즉 수도승의 서약을 했으며, ‘해방의 희열’이라는 뜻의 스와미 묵타난다라는 이름을 받았다.
1929년에 시다루다 스와미가 세상을 떠나자, 스와미 묵타난다는 이런저런 아쉬람들을 찾아다니며 60명 이상의 영적 스승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배움을 받았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신을 경험하게 해 줄 사람을 늘 찾고 있었다.
그는 18년간을 찾아다녔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인도의 주요 경전들에 정통하게 되었고, 하타 요가에서 요리하는 법과 아유르베다 치료약들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기술들을 습득하고 수련을 쌓았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그가 만난 성자들 가운데 한 명이 그를 전에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던 시다 마스터 즉 완벽한 영적 스승인 바가완 니티아난다에게로 보냈다. 바가완 니티아난다는 그 당시에 뭄바이에서 북동쪽으로 5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가네쉬푸리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바가완 니티아난다가 바로 자신이 오랫동안 찾고 있었던 구루임을 알아본 스와미 묵타난다는 나중에 말하기를, 이 만남이 “나의 오랜 방랑에 영원히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바가완 니티아난다로부터 내면의 영적 에너지를 일깨우는 시다들의 신성한 입문인 샥티파트를 받았다. 쿤달리니로도 알려져 있는 이 에너지는 각 인간 존재의 내면에 있는 신성한 에너지이다. 일단 일깨워진 그것은 구도자로 하여금 내적 경험의 가장 미묘한 수준들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그의 입문을 받고서 스와미 묵타난다는 그의 구루가 보여 준 영적인 길에 헌신하는 제자가 되었다. 이것은 9년에 걸친 격심한 변형의 시작이었다. 그 기간에 묵타난다는 전체적인 정화의 과정을 거쳤고, 의식의 내적 영역들을 탐구했으며, 마침내 자신의 가장 안쪽에 있는 본성의 충만함과 희열을 한결같이 경험하게 되었다. 1956년에 바가완 니티아난다는 이 제자의 내면 여행이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스와미 묵타난다는 신과의 합일의 경험, 참나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스와미 묵타난다는 제자로서의 목표를 성취한 후에도 헌신적인 제자로 머물면서 가네쉬푸리 근처에서 조용히 살았다. 바가완 니티아난다는 자신의 아쉬람 가까이에 그를 위해 작은 아쉬람을 지어 주었고, 구루와 제자는 서로 1마일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5년 동안 살았다. 그 뒤 1961년, 바가완 니티아난다는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에 시다 마스터들의 은총을 주는 힘을 스와미 묵타난다에게 전수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일깨울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날 바가완 니티아난다는 그에게 “온 세상이 그대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스와미 묵타난다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바바는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세상을 여행하였으며, 자신이 받았던 것과 같은 샥티파트 입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였고, 구도자들에게 시다 마스터들의 자연스러운 요가를 소개하였다. 그는 자신의 구루에게 받은 은총을 자유롭게 전수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시다 요가의 ‘왕도’라고 부른 것, 즉 신에게 이르는 넓고도 쉬운 길을 열어 주었다.
명상에 대하여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바바의 현존에서는 삶에 새로운 초점과 의미를 주는 내면의 고요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수많은 집단들에게 샥티파트 입문을 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하였으며, 사람들에게 그들의 내면에서 펼쳐지는 변형의 진행 과정을 변함없는 열정으로 설명하였다. 바바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짐에 따라, 그의 아쉬람(지금은 ‘구루데바 시다 피트’로 알려져 있다)은 방문하는 구도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확장되었으며, 곧 다른 아쉬람들과 수백 개의 시다 요가 명상 센터들이 세계 도처에 설립되었다.
1982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스와미 묵타난다는 그의 후계자로 스와미 치드빌라사난다를 지명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제자였던 그녀는 1973년부터 그와 함께 여행을 했고, 그의 저작물과 강연들, 헌신자들과 나눈 비공식적인 대화들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신에 대한 큰 갈망을 지닌 성숙한 영적 구도자였던 그녀는 모범적인 제자가 되었다. 스와미 묵타난다는 그녀의 사다나를 세심하게 인도했으며, 그녀가 자신의 뒤를 잇는 구루가 되도록 주의 깊게 준비시켰다.
1982년 5월 초순에 치드빌라사난다는 공식적으로 수도승의 서약을 하였고, 그 후 같은 달에 스와미 묵타난다는 자신의 구루가 전해 준 것과 같은 영적 유산인 시다 계보의 힘과 권위를 그녀에게 전하였다. 이후 구루마이로 널리 알려진 그녀는 점점 더 증가하는 구도자들에게 샥티파트를 주고 시다 요가 명상을 가르쳐 왔으며,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스와미 묵타난다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그대의 참나를 명상하라.
그대의 참나를 존중하라.
그대의 참나를 숭배하라.
그대의 참나를 이해하라.
신은 그대로서 그대 안에 거주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