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눈속에 나를 묻다
제례를 지낸다
어느땐가 내려서 이미
밟혀진 눈길 속
다시 자그마한 발자국으로
나를 찍는다
걷는다 걸으면서 나를 묻는다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나를 있게 하여 준
모든 인연들
억겁의 연들
하나 하나씩을 한 발자국마다 찍어 놓고
그 찍은 발자국은
다시 조만간 눈과 함께 사라져
땅 속으로 스민다
비석일랑은 필요 없어라
화장하여 재로 뿌려질 몸
몸뚱아리 달랑 하나
바람처럼 자유롭게 허공을 떠돌다
조용히 어느 꽃 속에 자리잡고
환한 웃음으로 한송이 꽃으로 오르면
진정으로 내 생은 값질것이니
아 윤회여
내 삶보다 더 무겁고 더 질긴
운명의 업보여
마침내 눈속에 나를 묻고
그대 품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 겨울은 따뜻하였으리니
옛추억일랑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되새김질이 필요 없는
겨울 하늘을
꺼이꺼이 울면서 새들은
만장처럼 지나간다
요령소리 방울소리 울리며
저기 상여 하나 나간다
2007년에 쓴 저의 절명시입니다.
내 상여가 나가는 모습을 그려보는 마음으로 글을 써 보았던 그런 느낌입니다.
아마도 17년 전에 쓴 제 절명시 혹은 묘비명 시리즈의 시작이었다는 생각이고
이후 천천히 이런 글 스타일로 몇 편 더 써 놓았었습니다.
천천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17년 전부터 절명시를 쓰셨다니 대단합니다. 그리고 멋집니다. 특히 이 부분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나를 있게 하여 준
모든 인연들
억겁의 연들
하나 하나씩을 한 발자국마다 찍어 놓고
그 찍은 발자국은
다시 조만간 눈과 함께 사라져
땅 속으로 스민다
비석일랑은 필요 없어라
화장하여 재로 뿌려질 몸
몸뚱아리 달랑 하나
바람처럼 자유롭게 허공을 떠돌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더욱 풍요해진다지요. 발해유민 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