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0장
제 50 장 유 언
(대 지)
一. 야곱이 죽으매 가나안 땅에 장사할 허락을 바로에게 맡음(1-6)
二. 야곱을 가나안 땅에 장사함(7-14)
三. 요셉의 형제들의 불 신앙과 두려워함(15-18)
四. 요셉이 형제들에게 사죄와 시은(施恩)약속(19-21)
五. 요셉의 유언과 죽음(22-26)
(본문 강해)
一. 야곱이 죽으매 가나안 땅에 장사할 허락을 바로에게 맡음(1-6)
. 50:1 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요셉이 죽은 부친의 얼굴에 울며 입을 맞춘 것은 부친에 대한 깊은 사랑과 효성을 나타낸 것이다.
. 50:2-3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시체에 40일간 향 재료를 넣게 한 것과 70일간 곡(哭)한 것은 존귀한 자가 죽었을 때에 행하는 애굽의 풍속이었다. 요셉은 부친을 살아 있을 때나 사후에나 가장 존귀하게 대우하였다.
. 50:4-5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청컨대 바로의 귀에 고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요셉이 상복을 입고 있어서 왕 앞에 직접 나아갈 수가 없었으므로 사람을 시켜서 자기 아버지의 시신(屍身)을 가나안 땅에 장사하게 해 달라고 바로에게 허락을 맡게 하였다.
내가 다시 오리이다 바로가 염려할까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였다. 요셉은 윗사람에게 염려를 끼치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을 하였다. 윗사람에게 염려를 끼치면 유익이 없다.
. 50:6 바로가 가로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비를 장사하라
바로가 쾌히 요셉의 요구를 허락해 주었다.
二. 야곱을 가나안 땅에 장사함(7-14)
. 50:7-9 요셉이 자기 아비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장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장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 형제들과 그 아비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양떼와 소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야곱의 장사는 굉장히 큰 행사였다. 마치 왕을 장사하는 것과 같이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다.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모든 장로와 애굽 땅의 모든 장로와 요셉의 온 집의 모든 사람들과 그 형제들과 아비 집 모든 사람과 거기에 군병들까지 동원되었으니 심히 많은 무리였을 것이다.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요셉을 대단히 신임하고 존경한 것이 잘 나타났다.
. 50:10-11 그들이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칠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강 건너편이더라
애굽에서 가나안까지는 약 10일 길이나 되는 먼 길이므로 가는 도중에 아닷 타작 마당에서 7일 동안 쉬면서 애곡하였다. 가나안 주민들이 그것을 보고 아벨미스라임(애굽 사람의 곡함)이라고 했다. 이는 그 행렬이 애굽에서부터 왔고 장례식이 애굽식이요 야곱의 자손에 비해 많은 조문객이 애굽인이요 우는 사람들도 애굽 말로 울었기 때문인 것 같다.
. 50:12-14 야곱의 아들들이 부명을 쫓아 행하여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요셉이 아비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군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요셉과 그 형제들이 아버지의 명령대로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장사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왔다. 이때 요셉만 애굽으로 돌아오고 다른 형제들은 가나안 땅에 머물러 있었으면 좋지 않았겠는가? 왜 다시 전부 애굽으로 돌아왔는가? 그것은 아직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예정한)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다. 또 요셉이 애굽으로 돌아오겠다고 바로와 약속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5절). 다시 오겠다는 것은 자기 혼자만 온다는 것이 아니고 형제들도 같이 온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가 되기까지 애굽에 있으면서 많은 고난과 핍박과 학대를 받으며 낮아지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많은 시련과 연단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애굽을 나와야 된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허락한 복을 받을 수가 없다. 성도들도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연단을 받아 그 인격이 만들어진 다음에야 하나님의 약속하신 상급을 받을 수 있다.
三. 요셉의 형제들의 불신앙과 두려워함(15-18)
. 50:15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부친을 장사하고 돌아온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이 전에 요셉에게 행한 악을 요셉이 보복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죄는 언제나 가책을 주고 두려움을 준다. 죄는 순간에 짓지만 그로 인한 가책과 두려움은 오래간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요셉이 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대로 놓아두었으나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어왔다. 잠언 28:1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했다.
. 50:16-17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형들이 직접 요셉에게 나아가지 못하고 사람(아마 베냐민이었을 것이다)을 내세워서 아버지가 살았을 때에 형들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유언했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실지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수 없으나 아버지의 심정은 요셉이 형들의 죄를 용서해 주기를 원하였을 것은 틀림없다. 요셉의 형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요셉을 믿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것은 형제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요셉을 두려워하면서 불신하는 태도이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① 요셉이 진정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고 위해 주었으나 형들이 모르기 때문에 울었다. 이제까지 17년 동안 그 형들을 사랑하며 돌봐 주고 모든 것을 풍성히 주었으나 요셉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복수할까봐 의심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요 울 만한 일이다. ② 형들의 불신앙적인 태도를 보고 너무 불쌍해서 운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우신 것과 같다. 부활이요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 오셨으나 나사로가 죽어 생명이 없다고 울기 때문에, 그들의 불 신앙을 보고 우신 것이다(요 11:25-35).
. 50:18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형들에 대해서 마음이 뜨거워서 울었다는 소식을 형들이 듣고 이제는 그들이 친히 요셉 앞에 와서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노인이 된 나이 많은 형들이 와서 엎드려서 절하는 것을 볼 때 요셉이 그가 어렸을 때 꾼 꿈이 다시 한번 생각났을 것이다.
四. 요셉이 형제들에게 사죄와 시은(施恩) 약속(19-21)
. 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요셉이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먼저 두려워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두려워하지 않도록 위로해 주는 것이 급선무이며 덕스러운 일이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이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이다.
요셉을 애굽으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오, 아버지와 형제들을 애굽으로 인도하여 양육하여 주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그 일에 대해서 형들을 정죄하고 보복한다면 하나님을 대신하는 죄가 된다는 것이다.
. 50:20-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다. 형들이 애굽에 자기를 팔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를 앞서 애굽에 보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도록 했다고 말하였다. 요셉이 형들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하며 현재까지 잘 해 준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하고, 또 그 자녀들까지 양육하겠다고 약속하며 위로했다. 요셉은 여기서도 장자의 책임을 다한 것이다(대상 5:2 참조).
五. 요셉의 유언과 죽음(22-26)
. 50:22-23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요셉이 젊었을 때에 많은 고난을 받았으나 그것을 다 믿음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애굽에서 110세까지 살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자손 3대를 보았다. 요셉은 하나님과 부친께 그 두 아들을 바쳤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두 아들을 창성하게 해 주셨다.
. 50: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임종시에 그 신앙을 고백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할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살 나라는 애굽이 아니요, 가나안 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하늘 나라를 소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 50:25-26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 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만드시 그 말씀대로 성취시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20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하여 예수님이 정녕 재림하셔서 성도를 하늘나라로 데려가 살게 하실 것을 믿었다.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이것은 요셉의 신앙이 잘 나타난 말씀이다. 히브리서11:22에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요셉의 믿음을 기록할 때에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나 칠 년 흉년 동안의 구원역사는 기록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과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한 것만 기록하였다. 이것이 요셉의 신앙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요셉이 자기 해골을 메고 나가라고 한 목적은 무엇인가?
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소망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을 "해골의 예언"이라고 한다. 요셉이 죽은 후에 그 해골에 대한 예언이 400년 동안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깨우쳤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가나안에 갈 소망을 포기할까봐 요셉이 자기 시체를 장례시키지 않고 잘 보이는 곳에 입관해 둠으로 그것을 볼 때에 가나안 땅으로 갈 소망을 갖게 했다. 그러므로 그 해골의 예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을 400년 동안 깨우친 것이다.
② 애굽은 임시 살다가 떠날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해골을 보거나 거기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애굽은 임시 우거하는 곳이요,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기들의 영원한 나라인 것을 깨우쳐 주었다.
40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그 말씀을 지켜 요셉의 해골을 메고 나와서 가나안 땅 세겜에 장사하였다(수 24:32).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이 죽은 후에 곧 장사하였다면 야곱의 장례보다 몇 배 더 굉장히 크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장사하지 않고 입관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에 두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게 했다. 이것이 죽었으나 그 신앙으로 말하는 것이요 죽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