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인이 된 필자의 어머니는 노년에 경남 마산시(현재의 창원시)에서 살고 계셨다. 학교 공부는 일제 시대 때 2년제 간이소학교(簡易小學校)를 다니신 게 전부다. 그래도 당시에 이런 학교나마 다닌 게 다행이며 그 덕택으로 한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어 평생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셨다.
거의 대부분의 동년배들이 그랬겠지만, 평생 별다른 독서를 하신 적도 없고, 텔레비전 시청을 제외하고는 다른 문화생활을 누리신 적도 없다.
처녀 공출(어머니는 정신대란 말은 모르셨고, 처녀 공출이란 용어를 쓰셨다.)을 피하려고 일찍이 10대 중반에 결혼을 하였고, 횟배를 앓아 결혼한 직후부터 피운 담배를 평생 즐기셨다. 회충이 있어 배가 아픈데, 약은 없고, 아파서 신음하는 어린 손부를 보다 못한 시조모(필자의 증조할머니)의 권유로 시할머니 방에서 같이 피웠다고 한다.
니코틴이 회충을 죽이지는 못해도 활동력을 감소시켰던 듯하다. 배를 움켜 쥔 10대 중반의 손부와 노년의 시할머니가 방안에서 같이 장죽을 물고 맞담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참 우습기도 하고, 어렵고 힘든 시절을 산 어머니 생각에 가슴 한편이 짠하기도 하다.
아들을 많이 낳아 잘 키우는 게 소망이었으며, 그 결과 4남 4녀의 자식들을 얻어, 훨씬 전에 작고하신 아버지와 함께 평생 자녀 교육을 위해 헌신하셨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이었겠지만, 아들들에 비해, 딸들은 교육을 충분히 시키지 못했으며, 이 점을 못내 아쉬워하셨다.
며느리들한테 쓸 데 없는 말씀을 푹푹 하시기도 하여 상처도 주고 핀잔도 듣는 그런 할머니다.
필자의 어머니는 아주 평균적인 한국의 할머니였다. 나는 평소 어머니와 대화가 좀 잘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공부를 많이 한 대학 교수이고 독서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지식을 넓혀 나가는 젊은이인 반면에, 어머니는 일상생활의 경험 외에는 어떠한 지식의 원천을 갖고 있지 못한 평범한 할머니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나의 어머니에게서 정말 깜짝 놀랄 만한 경험을 하였다.
어머니가 아파트 옆 평상 위에서 이웃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쉬고 있는데, 아파트 뒤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어떤 사내아이가 자동차에 치었고,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갔다. 여러 사람들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 걱정을 하다가 흩어졌는데, 어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피가 홍건하게 고여 있는 그 자리로 혼자 가 보셨단다. 가보니, 그 아이는 발목 부분을 심하게 다쳤는지, 우리가 보통 복숭아뼈라고 하는 뚜껑 모양의 반구형 뼈가 떨어져 나와 피범벅이 된 채 길 위에 그대로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가져와 수돗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좀 있으니 다친 아이의 부모와 친척들이 몰려와 사고 현장에서 무엇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더란다.
어머니가 그 사람들을 불러, 집으로 데리고 가서는, 냉장고 문을 열어 그것을 내어 주니, 아이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어머니 말씀:
“아 그런데 그 놈들이 담배도 한 보루 안 사주고 그냥 가더라.”
나는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지식’과 ‘지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의학적인 지식이 있는 분이 아니다. 어머니 스스로도 무엇을 알고 그러신 게 아니고, 뭔가 꼭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 그랬다고 하신다.
아이의 부모는, 의사가 혹시 모르니 현장으로 가보라고 해서, 와보았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주워 놓지 않았으면 왕복 4차로의 복잡한 도로에서 그게 온전히 남아 있었겠는가?
나는 어머니의 무엇이 이런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하게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과 행동에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80년 세월의 연륜이 쌓아온 내공(內功)의 힘인가? 나 같으면 맨손으로 줍지도 못했을 것인데, 음식을 보관하는 냉장고 속에 넣어 두기까지 했으니(이야기를 같이 들은 당시 여고생이던 내 딸이 기겁을 했다). 이는 우리가 볼 땐 그냥 그런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특별히 힘이 든 일도 아니니 그저 담배 한 보루 정도만 받으면 되는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였다.
지난 한평생 동안 온갖 풍상과 함께 묵묵히 인생의 여정을 걸어오면서,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보편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몸속에 배어들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그와 같은 지극히 원초적인 상황에선 나의 지식은 티끌만큼의 슬기로움과 눈곱만큼의 용기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삶의 연륜’에서 오는 지혜로움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였다.
필자의 어머니는 생전에 또 하나의 연구거리를 제공하신 적이 있다.
하루는 노인당으로 걸어서 출근하고 있는데,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어떤 신사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경로당 회장님 아니시냐고 하더란다. 그렇다고 하니, 시청에서 나온 사람인데, 시장님께서 수고하시는 경로당 회장님들께 갖다 드리라고 하여 좋은 선물을 차에 싣고 왔다면서, 저기 차 있는 곳으로 같이 가자고 한다.
경로당 회장인 줄 알아주고 선물까지 준다고 하니 우리 어머니 신이 나서 따라가신다. 그런데 몇 걸음 옮기더니 그 신사가 걱정하는 투로 돌아보며, 회장님이 끼고 계신 반지 때문에 곤란할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좋은 반지를 끼고 계시는 부자 할머니한테 누가 선물을 주겠느냐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잘 빠지지 않는 반지(단순한 금반지)를 겨우 빼냈는데, 그 사람이 호주머니에 그냥 넣으면 잃어버리기 쉬우니 종이에 싸주겠다며 반지를 받아서 종이에 싸주더란다. 그것을 속옷 깊숙이 있는 호주머니에 넣고 옷핀으로 찔러서 마무리할 때까지 신사는 옆에서 지켜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저기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차 열쇠를 두고 왔는데 금방 가서 가져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라고 한다. 우리 어머니, 경로당 회장님이라고 깍듯이 인사하고, 선물도 준다고 하고, 별것 아닌 금반진데도 부잣집 할머니라고 비행기를 태우니, 그렇게 기분이 좋았고 행복감을 느끼시면서, 그 자리에서 1시간 가까이 서 계셨다.
한 30분까지는 행복했고, 그 다음부턴 좀 이상했고, 한 시간 정도 지나고, 호주머니 속에 넣어둔 반지가 이상한 구리 반지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하게 되셨단다.
우리 식구들은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무척 허탈해 하셨다. 금반지도 금반지지만, 잠시나마 느끼고 계셨던, 그 높은 시장이 선물을 줄 정도인, 경로당 회장의 사회적 지위가 거짓이었다는 데서 더 큰 실망감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했다.
이상의 두 가지 사건은 서로 아주 달라 보인다.
그렇게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하실 수 있는 분이 그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 참 의아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 않은가.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이 두 사건의 기저에 깔려 있는 공통적 심리는 ‘순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진함은 단순함과 통하는 것일까?
사람보다 더 중한 가치는 없다는 단순한 생각에 그런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었고, 경로당 이끌어 간다고 애쓰는 회장에게 선물을 준다고 하니 진짜인 줄 믿고 고맙게 생각하며 따라 갔다가 소중한 금반지를 ‘네다바이’ 당하신 것이다. 남을 쉽게 돕고 또 쉽게 믿는 순진함이 그 바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끝).
첫댓글 이 글도 <늘 푸른 나무> 13호 영역에 올려져 있던 제 글입니다. 그곳에 세 편의 글을 올려놓았었는데, 한 편은 곧 탄생되는 <늘 푸른 나무> 13호에 실렸습니다. 나무지 두 편 중 한편은 내년에 간행될 14호에 실어주십사 하고 애원하는 의도로 <Online 늘푸른나무 14>에 옮겨 놓았고, 남은 한 편을 이 곳에 옮겨 놓습니다. 감사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