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의 맛/김 필로
1970년
나는 11살이었고
산중의 겨울은 설국이 따로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정강이가 빠질 만큼 쌓여서 그 눈이 다 물이 되려면 이른 봄이 되어야만 했다.
농한기를 맞은 어른들로부터 방학을 맞이 한 아이들까지 긴 겨울을 좋아했고 눈은 기다리지 않아도 수시로 와서 늘 동화속 나라 같았다.
이때 아버지와 오빠 두 살 어린 남동생까지 함께 하는 사냥놀이가 있었다. 바로 앞산에서 산토끼를 잡는 일이다.
눈밭에서는 토끼의 통로를 금방 알고 덫을 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한다.
아버지와 두 형제는 빈손으로 싸리문을 여는 법이 없고 언제나 의기양양했다.
볼이 홀쭉해진 희생양을 망대에 메고 정지로 가는 순간 금세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아무거나 잘 먹을 것 같은 나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집에서 키우는 육식도 입에 대지 않았지만 산토끼 고기는 달랐다.
놀랍게도 그 맛을 알고 난 후부턴 아버지를 조르기도 했으니 지금도 그 맛을 어떻게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만큼 특이한 맛이었다.
엄마 손에는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 묻게 하지 않으시고 요즘 말로 요식
남이셨고 그 방법도 독특하셨다.
털을 뽑아 토막을 낸 다음 '짜구'라는 도구로 잘게 으깨셨다
그리고 칼로 더 다진 다음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양념 등을 넣고 주물럭 해서 짜글짜글하게 익히면 끝!
지금도 토끼 요리가 있는지 혹은 레시피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방법은 그러셨다.
그날은 밥상에서 싫어하는 내색 없이 온 식구가 산토끼 잡은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우화 삼아 모두 배불 뜨기가 되어 행복했었다. 잡은 토끼보다 놓친 토끼들이 더 많았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잡기도 쉽고 그 수가 많아도 집토끼는 일절 잡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가끔은 오가피나무나 엄나무 옻나무 같은 목피를 넣고 당신만을 위한 보약처럼 만들어 드시기도 했다.
아버지가 토끼 사냥을 멈추고 병약한 이후 하늘나라로 주소지를 옮기고 토끼 고기를 먹을 수도 없었고 딱히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날들이 별탈 없이 가고 오고......
2023년 나는 그 시절의 산토끼 맛을 기억하고 기꺼이 소환하고 만다.
올해 계묘년에 태어나는 아가들은 다 토끼띠를 가지게 된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백 구세 토끼띠셨다.
며칠 전
덕유산 향적봉에 눈이 덮이고 토끼들의 흔적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집 나온 토끼들이 신이 나서 껑충껑충 뛰는 걸 보았다.
그 모습이 아스라이 먼 풍경처럼 도란도란
가슴으로 좁혀온다
아버지 기일이나 혹은 명절에 잠깐 스치고 지나가셨던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올해는 가슴에 품고 깡총깡총 함께 뛰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