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시]
○ 3월 20일(토) - 책명: 백범일지 - 지은이: 김구 - 읽은 쪽: 1쪽~30쪽 - 줄거리 : 김구 선생에 관한 생각은 언제나 같다. 모두 느끼듯이 나는 김구 선생으로부터 나라에 대한 뜨거운 애국심과 조국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공감한다. 소를 희생하여 대를 이룬다고 하지만 자신을 희생하기란 역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김구 선생은 비록 자신을 희생하는 인고의 길을 택하셨지만, 그분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들 인과 신이 한결같이 김구 선생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선생님인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단지 김구 선생은 나라를 위한 하나의 일념으로 행복을 대신했다. 이 백범일지의 동기는 백범 선생님의 의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임시 정부 주석으로서 언젠가는 죽음이 닥칠 것을 예상하여 이 일지를 남겼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조국의 독립에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가치를 뜻한 것이었다. 김구 선생의 청소년 시절은 우리와 달랐다. 가문이 패망하여 상놈의 대우를 받자 김구 선생은 만민이 평등하다는 동학의 사상이 선생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8살 때부터 동학의 접주가 되어 왜놈과 '척양척왜"를 부르짖으며 싸웠다. 이런 선생의 행동은 옳고 정당했으나 시대적 상황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의해 피살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육군 중위를 살해한 그의 "위업"을 재판에서는 사형이란 무서운 벌을 내렸다. 이런 김구 선생은 다행히도 고종의 특별 사면을 받아 그 위기를 벗어났지만, 그 후에도 안중근 의사 사건과 연관이 되어 감옥에 투옥되었고, 암명근 의사의 '사내총독 암살' 사건으로 또다시 체포되어 17년 형을 받았다. 그 외에도 민족을 위한 김구 선생님의 힘겨운 일본과의 억압이 계속되었지만, 김구 선생은 굴하지 않고 계속 독립의 길을 닦아 나갔다. 김구 선생이 활동하는 동안 김구 선생을 따르는 많은 독립투사가 모여 자신의 목숨과 정신을 김구 선생과 함께 나라에 바쳤다. 이봉창 의사가 일황을 저격한 일이 그 숭고의 시작이며 홍구공원에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은 우리 민족의 쾌거였다. 그리고 1945년 김구 선생과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감동은 잊힐 수 없는 커다란 민족적 저력의 파동이 되어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가슴이 울렸다. 이렇든 큰일을 마친 김구 선생도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눈을 감고 말았다. 모두 김구 선생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고 그의 활동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 또한 김구 선생이 나라를 위한 큰일을 더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가신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사실 내가 쓴 이 글은 김구 선생의 삶을 압축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로 김구 선생님의 삶은 글로 담아 낼 수 없을 만큼의 나라 사랑과 그에 따른 그의 실천적인 행동이 근거이다.
- 느낀 점: 이번에는 환경정리 때문에 많이 읽진 못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백범 김구 선생님과 그 외 독립투사들의 독립운동 활약 때문임을 모두가 알았으면 하고 독도는 우리땅,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