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 상권
역자 미상[동진록東晉錄에 부록됨]이창숙 번역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여러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천신·대신·
장자·백성과 96종의 외도 등 합쳐서 만 명이 넘는 이들이
어느 날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오늘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나
그 몸들은 평안을 얻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이 사람의 무리들로부터 떠나
한가한 피난처에 가 앉아서 도에 대하여 생각하고 싶어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즉시 사람의 무리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서 숲에 이르셨다.
그곳의 큰 나무에는 나무신[樹神]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나무 아래에 앉아서 도에 대하여 생각하셨다.
그 나무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코끼리의 무리 5, 6백 마리가 있었다.
그 가운데 코끼리의 왕은
현명해서 선과 악에 대한 일을 잘 알았으니,
비유하자면 사람과 같았으며
많은 코끼리의 무리들이 코끼리왕 주위를 맴돌았다.
많은 작은 코끼리들이 앞에 있는 물속으로 달려가서
물속에서 달리며 놀아서 물을 탁하게 만들었다.
또한 많은 작은 코끼리들이 앞으로 달려 나가
맛있는 풀들을 먹고 뛰어 놀면서 그 위를 짓밟았다.
코끼리왕은
‘나의 이 많은 무리들에게 문제가 많구나.
이 여러 코끼리들과 작은 코끼리 새끼들이
물속에 들어가 물을 탁하게 만들고 풀을 더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그 더러워진 물을 마시고
발로 밟은 풀들을 먹고 있다.
이 여러 코끼리들을 떠나서
어느 피난처에 가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코끼리왕은 즉시 코끼리 무리를 떠나서 여기저기를 들러서 두라頭羅 숲 속에 도착하였다.
그는 부처님께서
나무 아래에 앉아 계신 것을 보고 마음이 매우 기뻤다.
즉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굽혀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 나섰다.
부처님께서는
‘내가 사람의 무리를 떠나서
이 숲 속에 와서 머무는데 이 코끼리왕도
역시 자기 무리를 떠나서 이 숲 속에 와서 머무니
그 뜻이 똑같구나.’라고 혼자 생각하셨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는
코끼리왕을 위하여 경을 설하셨다.
“부처는 사람 가운데 가장 존귀하고,
코끼리왕은 코끼리 가운데 가장 존귀하도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마음과 코끼리왕의 마음이 똑같도다.
이제 나와 코끼리왕은 이 숲 속에서 함께 즐기겠다.”
코끼리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열려
부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시는 곳을 어슬렁거리면서
코로 물을 퍼서 땅에 뿌리고,
코로 풀을 뽑아서 땅을 깨끗이 하고,
발로 땅을 밟아서 평평하게 하였으며,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이와 같이 부처님의 시중을 들었다.
한참 뒤에 부처님께서 입멸하시자,
코끼리왕은 그 계신 곳을 알지 못하여 돌아다니며
부처님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는 울면서 눈물을 떨어뜨리며
우수에 잠겨 즐거워하지 않고 먹거나 마시지를 않았다.
그때 나라 안에 절이 있었는데 산 위에 있었으며,
이름을 가라원사加羅洹寺라고 하였다.
그 절에는 5백의 사문이 항상 머물고 있었으며,
이미 아라한의 도를 성취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항상
매월 8일·14일·15일·23일·29일·30일에는 경을 독송하였다.
날이 밝아오면
코끼리왕도 산에 올라와 절에 머물렀다.
코끼리왕은 한 달 중 6일에 경을 독송하는 것을 알고
그날이 오면 절에 와서 독경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