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창조로 오역한 '크티세오스'는 겉 사람인 나를 진리의 말씀으로 개간(바라)하는 내용이다.
나. 천지 창조나 기도, 예배, 헌금, 인생사에 관한 요구는 인간의 요구에 불과하다.
2. 본론
“라오디게아 교회(에클레시아)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크티세오스)의 근본이신 이 ‘헤 아르케’가 가라사대(계 3:14)”
(헤 아르케 테스 크티세오스 투 데우 : 그 하나님의 그 크티세오스의 그 근본(근원)이신 이가)
가. 창조로 오역한 '크티세오스'는 겉 사람인 나를 진리의 말씀으로 바라(개간)하는 내용이다.
‘창조’라고 번역한 ‘크티세오스’는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으로 채워진 나를 진리의 말씀으로 개간(바라)하는 것을 ‘창조’로 오역하였다. 창세기 1:1의 바라와 같은 뜻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와 같은 내용이다.
하나님은 오직 술에 취해 있는 아들을 깨워서 돌아오게 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으시다. 근본 하나님의 속성이다. 근본이신 그 하나님은 오직 크티세오스와 포이에오의 일만 하신다. 아들을 낳으심이며, 죄를 없이 하시며, 깨어나게 해서 아들로 회복하게 하는 일만 하신다.
나. 천지 창조나 기도, 예배, 헌금, 인생사에 관한 요구는 하나님과 무관하다.
천지를 창조하신다든지, 기도하면 인생사가 해결된다든지, 인생들이 원하는 복이 임한다든지 하는 내용은 종교인들이 자기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쓰는 언어에 불과하다. 감각적 욕망의 마음 밭인 정과 욕심을 해체하고 뒤엎어서 옥토 밭이 되게 하는 과정이 크티세오스다.
진리의 말씀으로 훈련받을 때(함께 받으심)는 몹시 힘든 과정을 겪게 되지만, 인내를 요구하신다. 고난(파이데이아, 훈련)은 육신이 원하는 감각적 욕망과 반대의 개념이기 때문에 찾는 이가 거의 없다 하신다.
세상에 속한 대상 예수를 떠나 거꾸로 가는 길이라서 찾는 이가 적은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되어 몸 된 성전이 되면 안식하게 된다.
“고난당한(아나)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성경에서 창조하다, 만들다, 조성하다, 그리고 조물, 피조물, 만물로 번역한 구절들은 모두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에서 벗어난 것으로 잘못 번역하여 왜곡된 내용이다. 모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만 이루어지는 세계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