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문 고부 이씨 - 벽동공파 파조 ( 派祖 ) >
-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우리의 소중한 뿌리를 찾아서
- 고매(高邁)한 지절(志節), 돈후(敦厚)한 품성(品性))
- 숭조상문 (崇祖尙門), 명공거경 (名公巨卿)의 배출
벽동공파 ( 碧潼公派 ) 파조 ( 派祖 )
벽동군수 ( 碧潼郡守) 李公 정(精)
공의 휘는 정(精)이요 古阜人이시니 高麗朝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겸 국자감판사(國子監判事) 여산군(礪山君) 문헌공(文憲公) 휘 경조(敬祖)의 18세손이시고 문장명필로 고명하신 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 휘 원소(元蘇)의 차자(次子)이시다.
영명강직(英明剛直)하고 충효인겸(忠孝仁謙)하신 公은 경세제민의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성균관 수학 중 성종12년 문과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 사간원정언, 경연, 시강관, 이조정랑을 수임하고 성종17년 벽동군수로 취임하셨다. 동군(同郡)은 본래 조명(朝明=조선과 명나라) 접경인고로 병마첨절제사를 겸임하게 된 公은 천부의 문무영자(文武英資)를 발휘하여 민생과 국력의 충실을 기하고 목민관으로서의 치적을 크게 떨치셨다. 公은 청렴(淸廉) 공정(公正) 성실(誠實)로써 군민을 도왔고 사랑하셨기 때문에 公을 하늘같이 믿었고 부모같이 받들었던 군민들은 그 과만(瓜滿)에 앞서 어사(御使)에게 등장(登狀)까지 공(公)의 재임을 요청했었다. 어사(御使)의 치적상주(治積上奏)로 크게 탁용(擢用)되려던 직전 성종19년 현직에서 서거(逝去)하시니 벽동군민(碧潼郡民)들은 선정비(善政碑)를 건립하여 그 덕을 영모하였고 조정(朝廷)에서는 성종20년에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서(陞敍)하셨다.
배(配) 숙부인 한양조씨(漢陽趙氏)는 진사 휘 충손(衷孫)의 따님으로 현량(賢良)의 부덕(婦德)을 구비하여 공(公)의 거관처세(居官處世)에 내조의 공이 많으셨고 2남 1녀를 두었으니 長은 진사 휘 장손(長孫)이요 次는 도사 휘 세번(世蕃)이요 女는 사인(士人) 언양김림(彦陽金霖)에게 출가하셨다. 孫 처사 휘 효원(孝元) 인원(仁元) 신원(信元)은 진사공(進士公)의 소생이요 향정 휘 충현(忠賢) 충효(忠孝)는 도사공(都事公)의 소생이요 외손(外孫)은 지평(持平) 김안제(金安濟) 현감 김선제(金宣濟) 주부 김회제(金懷濟)요 증손 휘 안인(安仁)은 효원(孝元)공의 소생이요 향정 휘 우(宇)와 주(宙)와 관(寬)은 충현(忠賢)공의 소생이시다, 인원(仁元) 신원(信元) 안인(安仁)은 임란의사(壬亂義士)로서 전몰하셨다.
훗날 차자(次子)인 도사공(都事公) 휘 세번(世蕃)은 제주 입도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