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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빙글리 67개조항 (The Sixty-Seven Article of Ulrich Zwungli)
나 쯔빙글리는 영감 되어 진 것(theopneustos: 즉 하나님에 의해 감동되어진)으로 불리는 성경의 근본(ground)에 대해서, 훌륭한 도시 쮜리히에서 이러한 67개의 조항내지 의견을 설교해 왔음을 고백한다. 나는 성경을 통해 이 조항에 대한 변호와 증거를 제시한다. 만약 내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면, 나는 수정될 준비가 되어있으나, 그것 역시 오직 동일한 성경으로부터 뿐이다.
1. 복음이 교회의 견진성사(confirmation of the church)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2. 복음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그분의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자신의 무죄하심으로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속하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셨다.
3.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있게 될 사람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구원의 길이시다.
4. 하나님께로 향하는 다른 길을 추구하거나 지시하는 자는 누구든지 영혼의 살인자이며 도둑이다.
5. 그래서 복음 외의 어떤 다른 가르침에, 복음에 부여하는 영예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을 부여하는 자들 모두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며 복음이 무엇인지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6. 이는 예수님만이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에 의해 약속되어지고 주어진 선구자(Pioneer)시며 대장(Captain)이시기 때문이다.
7. 그분은 영원한 구원자시며 그분의 몸인 모든 신자들의 머리가 되신다. 그러므로 그분 없이는 그 몸은 죽은 것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8. 이러한 것들을 통해, 첫째로 이 머리 안에 거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지체(members)이며 자녀이다. 이것이 교회이며 성도들의 공회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우주적 교회(ecclesia catholica)인 것이다.
9. 둘째로, 마치 몸의 일부가 머리의 지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자는 어느 누구도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10. 몸의 일부가 머리 없이 무언가-눈물을 흘리는 것, 상처를 입는 것, 자신에게 자해를 가하는 것-를 할 때처럼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머리되신 예수 없이 교만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할 때, 저들은 감각을 잃고 자신을 공격하며 어리석은 율법으로 서로를 짐 지우게 된다.
11.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그들의 허식(pomp), 출판 승인(imperiousness), 사회적 지위, 직함 그리고 법으로 구성된, 소위 교회적 전승(ecclesiastical traditions)들은, 저들이 머리를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광기(madness)의 근원임을 안다.
12. 그러므로 미쳐 날뛰지만(rage on) 그것이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시대에, 이러한 사실에 주의가 기울여져 왔다. 저들은 영원히 발광하도록 허락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머리되신 분에게 귀를 기울여 듣도록 의식이 회복되어질 것이다.
13.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곳에서, 그들은 쉽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배우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께 인도되며, 그분께로 개종convert)할 것이다.
14.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나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설교되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 최대한의 근면함을 나타내야 한다.
15.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함을 얻고, 믿지 않음으로 저주를 받는다. 이는 명백하게 진리가 복음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16. 복음 안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가르침과 전승이 구원을 위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배운다.
로마교황과 저들이 따르는 바에 대한 주의에 대하여(Notice, Pope What follow!)
17.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라는 것이 자신들을 대제사장으로 받아 넘기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예와 권능을 반대하고 심지어 거절한다는 사실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미사에 대하여(Of the Mass)
18. 단번에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신 그리스도가 모든 믿는 자들의 죄를 위하여 드려진, 영원히 지속되며 효과 있는 희생제물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미사(Mass)가 희생제가 아니라 한 희생제의 기념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선하게 행하신 구속의 인(seal)치심이라고 결론짓는다.
성인들의 중재에 대해서(Intercession of the Saints)
19.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시다.
20.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신다. 이점에서, 지금부터 영원히 그분의 중보 외에는 다른 어떤 중재도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21. 땅에서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이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짐을 확신하는 방식으로 기도한다.
선행에 대하여(Good Works)
22.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義)이시다. 그래서 행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한 선한 것이지만, 우리 자신들로 말미암는 행위가 되는 한 그것은 의롭지도 선하지도 않다.
성직자들의 부(富)에 대하여(How the Prosperity of the Clergy Should Be Christ)
23.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부와 호화로움을 책망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위해서 부를 축적한 자들은 그들이 자신의 탐욕과 사치를 위해 그분을 구실 삼을 때, 심각하게 그분을 중상하는 것이다.
음식을 금함에 대하여(Prohibition of Foods)
24.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행할 의무가 없다. 그들은 아무 때나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치즈와 빵에 대한 로마 교황의 교서는 로마주의자들의 협잡(froud)임을 배운다.
축제와 순례에 대하여(Of Festivals and Pilgrimages)
25. 절기와 장소가 그리스도에게 묶여 있는 것이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들에 속박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으로 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절기와 장소에 속박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합법적인 자유를 강탈하는 것임을 우리는 배운다.
두건 달린 수도복과 뱃지와 그와 같은 것들에 대하여(Cowls, Badge, and the Like)
26. 위선보다 더욱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것은 없다. 이러한 점으로부터, 인간들에게 그것 자체로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커다란 위선이며 파렴치한 것임을 결론짓게 된다. 따라서 수도승들의 외투, 뱃지, 바지,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은 더욱 위선적이며 파렴치 한 것이다.
성직계급과 당파에 대하여(Order and Sects)
27.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서로 그리스도의 형제들이며 이 땅에서 어느 누구도 신부(神父)(father)라고 불리워질 수 없다. 하물며 성직계급(orders), 당파(sects), 도당(cliques),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은 더욱 그러하다.
성직자의 결혼에 대하여(The Marriage of Clergy)
28.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거나 금하시지 않은 모든 것은 (행함에 있어-역자주) 적절한(proper)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결혼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한 것임을 배운다.
거룩하지 않은 설교자는 반드시 부인을 얻는가 대해서 (The Impure Priest Should Take a Wife)
29. 그들이 하나님께서 순결을 위해 결혼제도를 주셨음을 이해하였지만 결혼을 통해서 자신들을 성결하게 지키기 않는다면,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인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순결을 위해 그들에게 결혼제도를 주셨다.
순결(독신(獨身)-역자 주)에 대한 맹세에 대하여(Vows of Purity)
30. 순결의 맹세를 행한 자들은 매우 미친 짓이며 유치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그러한 맹세를 행한 자들이 경건한 사람들을 음탕한 자들로 간주한다는 것을 우리는 배우게 된다.
출회에 대하여(fo Excommunication)
31. 어떤 개인이 성도를 출교시킬 수 없으나, 규칙에 따라서 교회-즉, 출회당할 개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무리들의 공회-가 감독으로 시행할 수 있다.
32. 출회당해야 하는 경우는 공적인 추문(public scandal)을 일으킨 사람의 경우에만 해당한다.
소유주 불명의 물품에 대하여(Of unclaimed Goods)
33. 소유주 불명의 물품의 경우 만약 그것이 정당한 소유주에게로 돌려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성전, 수도원, 수도승, 사제, 또는 수녀에게 주어질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권위자에 대하여(Of Authorities)
34. 소위 정신적 재능(spiritual estate)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영예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일은 정당화 될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세속 권위자에 대하여(Secural Authority from God)
35. 그러나 세속적 권위자는 정당한 권력을 마땅히 가질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위들에 의해 이러한 점이 지지된다.
36. 소위 정신적 재능을 가진 자들이 권리를 가지고 또는 그 권리의 보호를 위해서 주장하는 모든 것들은, 만약 저들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세속적인 권위자에게 합당한 것이다.
37. 이러한 권위자들에 대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38. 권위자들이 하나님과 상반되는 어떤 것들을 명령하지 않는 한에서 그러한 의무가 있다.
39. 그래서 모든 세속적 법률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conformed) 제정되어야 하는데, 이는 심지어 압제받는 자들이 불평하지 않더라도 권위자들은 저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40. 오직 이러한 세속 권위자들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키지 않고서 사람을 사형집행할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직 공적인 추문을 범한 자들에게만 시행되어야 하며 이는, 그 추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른 판결을 (이미 기록되어진 성경을 통해서-역자주)주시지 않은 조건 하에서이다.
41. 만약 세상 통치자들이 하나님께서 책임감을 부여하신 모사들과 참모들과 함께 합당하게 임무를 수행한다면 통치자들은 그들에게 육신적인 생계를 제공해 줄 의무가 있다.
42. 그러나 만약 통치자들이 불 신앙적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원리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하나님에 의해 대치될 것이다.
43. 요지는 이것이다. 가장 최고의 그리고 최상의 세속 정부는 통치자가 하나님에 의해 지배받는 곳에 존재하며, 반대로 자신의 마음에 따라 다스리는 통치자가 있는 곳은 가장 사악하며 위태로운 정부이다.
기도에 대하여(Of Prayer)
44. 참된 예배 자는 사람들 앞에서의 커다란 소란함(fuss)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자이다.
45. 위선자들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도록 행하며, 현세에 자신들의 상급을 받는다.
46. 따라서 교회에서 헌신함 없이, 그리고 오직 자신을 위한 찬양으로 노래하고 외치는 것은 인간으로부터의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이익을 얻기 위해 행해진다는 사실이 뒤따른다.
실족에 대하여(Of Offense)
47. 그리스도인을 실족시키거나 치욕스러움을 주기에 앞서 그리스도인은 육신적 죽음의 고통을 선택해야 한다.
48. 이유 없이, 우둔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타인을) 실족시키는 사람은 무엇이 참으로 죄악이며 또한 무엇이 죄악이 아닌지를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49. 사제에게 합법적인 아내를 갖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며 오히려 내연의 처를 갖는 것이 허용되는 것보다 더욱 죄 된 것은 없다. 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인가?
죄의 용서에 대하여(Of the Forgiveness of Sins)
50. 오직 하나님만이, 오직 그분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용서하신다.
51. 이러한 권세를 피조물에게 돌리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강탈하여 하나님이 아닌 그 무엇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52. 그래서 죄악을 용서받기 위해서 사제나 이웃에게 고백을 행해서는 안 되며 단지 상담(counsel)을 목적으로 할 수 있다.
53. (출회를 제외한) 보속(assigned work of satisfaction)은 인간 상담의 산물이며 그것으로 죄를 없이 할 수 없으며 그들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부과되어진 것들이다.
죄를 속죄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The Sorrow of Christ Atones For Sins)
54. 그리스도는 우리의 고난과 곤고함을 당하셨다.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한 고행의 사역을 (성도에게-역자 주)부과하는 자는 누구나 그릇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보류된 용서에 대하여(Withholding of Forgiveness)
55. 참회하는 자에게 죄 용서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이나 베드로의 입장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며 악마적이다.
56. 돈 때문에 죄를 용서해주는 자는 누구든지 시몬과 발람의 동류들이며 사탄의 진정한 선지자이다.
연옥에 대하여(Of Purgatory)
57. 참된 성경은 연옥에 대해 아무 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58. 이미 죽은 자들에 대한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59.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알도록 하시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을 알아내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60. 만약 죽은 자들과 상관이 있는 자가 죽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한다면 그것에 대해 나는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시간을 정하는 것(사망의 죄를 위해 7년동안 기도하는 것)과 (그로 인한-역자 주) 이익을 위해서 그 일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인간적이 아니라 악마적인 것이다.
성직과 서품에 대하여(Of the Priesthood and Ordination)
61. 최근에 고안되어진(invented) 성직 임명의 종류에 관하여 성경은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6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 외에 어떠한 사제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는다.
63.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게 영예가 주어져야 함을 성경은 요구하며 이는 저들에게 육체적인 생계가 주어져야 함을 말한다.
악한 행실을 다루는 것에 대하여(Of Dealing with Misdeed)
64. 자신의 악한 행실을 의식하고 있는 자들에게 뭔가를 위해 고통을 주는 것이 요구되어서는 안 되며 평안이 죽을 수 있도록 허락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저들이 교회에 남기게 되는 재산들은 그리스도인의 방식대로 관리되어야 한다.
65.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자신들의 악한 행실을 깨닫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다루실 것이다. 따라서 만약,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여 그 일이 무시되어질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우리는 저들에게 신체적인 상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66. 모든 영적인 지도자들은 겸손해야 하며 자신들의 돈주머니보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높이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멸망 받을 것이다. 그 예가 십자가 위에 있다.
67. 만약 어떤 이가 나와 더불어 세금, 십일조, 세례 받지 못한 아이들, 또는 견진성사(confirm!!ation)에 대해 토론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에 대한 답변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궤변과 인간적인 지혜로 논쟁하도록 하지 말며, 성경으로 그 판단 자를 삼으라(성경은 하나님의 영이 살아 숨 쉰다). 그러므로 그대가 진리를 찾을 수 있으며, 또는 만약 진리를 이미 발견했다면, 그것을 붙들 수 있게 된다. 아멘.
출처: 참빛교회 김종하 목사의 tistory
첫댓글 카페 회원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 카페에 츠빙글리에 대한 자료가 너무 미천합니다. 먼저 그의 67개조를 훑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한번에 다는 읽지 못해도 틈틈히 카페에 들어오셔서 읽어 보세요!
소시지 사건을 보며서 츠빙글리의 개혁에 대한 관심이 저도 커졌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견진성사confirmation , 堅振聖事
요약
세례에서 맺어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견진성사를 통해 믿음 안에서 강해지고 견고해진다고 믿어진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견진성사를 예수 그리스도가 제정한 성례전의 하나로 본다. 보통은 주교가 의식을 집전하며, 견진성사를 받는 사람에게 안수하고 이마에 성유를 바른다. 동방정교회와 몇몇 동방교회에서는 사제의 견진성사 집행을 허용하고 있다.
성공회에서는 반드시 주교가 견진성사를 행한다. 루터교는 견진성사를 성례전으로 보지 않고, 유아세례를 받고 갖게 된 믿음을 견진성사를 통해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본다.
개신교 교회들은 견진성사를 성례전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때로 세례를 받은 교인을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 등을 갖는 정식교인으로 인정하는 뜻으로 견진성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출처: Daum 백과
느낌에 성인신자의 교회 정식 회원가입을 위한 요식행위로 보입니다. 그래서 츠빙글리가 처음 부분 1조에서 반대를 한 것 같습니다.
루터는 95개조, 츠빙글리는 67개조
츠빙글리에겐 ‘67개 논제’가 있다
1523년 1월 29일 스위스 종교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는 600여명의 청중이 모인 취리히 논쟁에서 자신의 67개 논제를 성공적으로 변호했습니다. 그는 오직 성경에 호소하며 교황의 권위, 미사, 성인 숭배, 금식 기간과 절기, 성직자 독신주의를 거부했습니다. 당시에 이 같은 주장은 기존 가톨릭교회를 뒤엎는 행동이었는데, 취리히 시의회는 “울리히 츠빙글리는 (다른 지시를 받을 때까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거룩한 복음과 참된 신성한 성경을 계속해서 오랫동안, 그리고 그 정도까지 설교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츠빙글리가 성경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https://v.daum.net/v/20240129055708288
루터 못지 않게 더 알려지면 좋겠다 싶은 분이 츠빙글리입니다.
츠빙글리의 67개조도 훌륭하지만 루터의 95개조 항의문에 비할 바는 못되는군요. 루터가 공부도 많이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분이라 확실히 학문적이고 문제 의식이 더 치열하며 내용이 세세하고 풍부합니다.
츠빙글리의 67개조는 아주 간략하고 개혁적 마인드가 앞선 것이 장점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공감합니다.
사순절
사순절은 예수의 부활 전 40일간을 뜻한다. 이 기간은 신도들이 참회와 대속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건하게 맞이하기 위한 기간이다.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렌트(Lent)는 고대 앵글로색슨어 Lang에서 유래된 말로, 독일어의 Lenz와 함께 '봄'이란 뜻을 갖는 명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의 희랍어인 '테살코스테'를 따른 것이다. 그런데 원래 사순절에는 기한이 없었다. 초기에는 사순절을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기 이전의 40시간으로 계산해 2, 3일만 지키면 되었다. 기한이 정해진 것은 325년 니케아공의회였다. 40일이라는 기간은 모세의 시나이 산 40일 금식과 엘리야의 호렙 산의 40일 금식, 특히 예수의 광야에서의 40일간의 금식 일수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이때에도 사순절 기간은 교회마다 차이가 있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 (재위 590∼604) 때에 와서 사순절의 시작을 재(灰)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시작하여 40일을 엄격하게 지키게 되었다.
그런데 왜 사순절을 알리는 날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잡았는가? 기독교에서 재를 뿌리는 의식은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구약성서를 보면 재를 뿌리는 행위는 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 탄식을 상징한다. 그런데 재를 뿌리는 전통은 10세기 말까지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1091년 베네벤토의 주교회의에서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전체 교회에 권유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사순절 기간에 죄를 참회하는 행위는 재를 뿌리는 행위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 기간에는 철저한 단식이 행해졌다. 초창기에는 단식의 준수가 매우 엄격해서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저녁 무렵의 한 끼 식사만이 허용되었다. 물론 조류, 육류와 생선 심지어 달걀까지 금지되었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신도들은 지키기 힘든 규정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식 규정은 상당히 완화되기 시작했다. 저녁식사 시간도 앞당겨졌고, 식사 외에 가벼운 간식도 허용되었다. 그리고 생선에 대한 금지도 해제되었다. 그러나 육식은 여전히 금지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넘어서면 안 될, 다시 말해 교회 전통이 무너질 수 있는 마지노선 같은 것이었다.
https://v.daum.net/v/2011102418
성경적 근거가, 특히 신약성경적 증거가 부족한데도 로마교 측이 고수하려고 무지 애를 썼군요. 종교개혁의 팔요성이 절실했었습니다.
삽화에 대한 설명: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츠빙글리상, 한손에 성경 다른 손에는 칼을 가지고 있다.
국가
츠빙글의 사상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그가 한 손에 성경 다른 손에는 칼을 가지고 서있는 곳 바세르 교회(Wasserkirche, 물의 교회라는 의미)에 있는 동상에서 가장 잘 보여진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아래 하나이다.
츠빙글리는 스위스가 오랜동안 인정한 용병제도를 반대하였다. 정미현에 따르면, 츠빙글리는 본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받아서 평화주의를 추종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본격적으로 용병제를 반대하고, 스위스 연방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투쟁하도록 독려하였다고 한다. 그는 상황 윤리적 차원에서 용병제 폐지를 관철하기 위하여 심지어는 전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도록 함으로써 초기에 그가 지녔던 에라스무스적 입장이었던 원칙 주의적 평화주의 혹은 평화 절대주의에서 벗어나 “정당전쟁론”의 입장을 피력했다고 한다.(정미현, "용병제도를 통해 본 츠빙글리 종교개혁의사회 경제적 배경")
출처: 위키 백과
좋은 삽화의 의미인데요. 전쟁을 멈추는 전쟁과 전쟁을 막는 전쟁, 즉 정의의 전쟁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용병제의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인식하고 적극 반대했던 분입니다.
당시 스위스 산악지대에서 딱히 벌어먹을 것이 없이 가난했기 때문에 대부분 용병으로 나가서 남의 나라 싸움을 대신 해주었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또는 형제가 서로 적군이 되어 싸우는 일도 허다하고, 부상자와 사망자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용병으로 번 돈을 방탕하게 쓰는 등 사회적인 문제가 아주 심각했던지라 츠빙글리가 용병제가 스위스를 망치는 주범이라 판단해서 전쟁까지도 불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츠빙글리의 개혁과 신조를 보면서 주요 종교개혁자들 중 현대 교회에 적용이 가장 잘 될 내용을 주장했던 분으로 보여집니다. 좋은 포스팅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공감합니다. 잘 보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