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까지도 나이 듦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 같다. 나이 든 사람으로 취급받는 게 어색했고, 사회구성원에서 소외된 사람처럼 대하는 눈초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그리고 최근 완전 백수로 지내기 전까지 내 기억에 노인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사시는 분 또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들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말은 겉으로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이고, 실제는 무시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그만큼 내 마음 한구석에는 "나이 든 사람들"은 내가 나이 듦에도 불구하고 나와 무관한 그리고 관련 없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퇴직(60세)을 1년여 남긴 어느 날 지하철에서 앉아있던 청년이 자리를 양보한 적이 있다. 그 청년이 일어나면서 앉으세요 할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극구 괜찮다 하며 빈자리 앞에 있기 민망하여 슬쩍 다른 곳으로 갔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가 왜 그랬을까 민망스럽다. 그 사건(?) 이후 한 동안 좌석 있는 곳 특히 젊은이들 앞에는 절대 서 있지 않았다.
65세가 되니 주민센터에서 지하철카드를 수령하라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공짜표를 받게 된다는 설렘으로 주민센터에 갔다. 그곳 담당자께서 나에게 아버님 이쪽으로 오세요 했다. 그 순간 아까의 설렘이 당혹감으로 바뀌면서, 아니 내가 왜 아버님이지 하는 반감이 일어났다. 담당자의 말투가 공손했지만 내게는 약간 어리바리한 사람을 대하는 듯한 뉘앙스로 들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아버님, 어르신으로 부르면 그것처럼 듣기 거북한 게 없었다.
이러한 나의 "늙은이"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바뀌게 된 것은 아마도 나이 든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부터 이지 싶다. 몇 년 전부터 평생학습원에 강좌를 수강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도 모르게 나이 듦을 받아들인 건 아닐까.. 한 공간에서 같은 지향을 가지고 내 또래 그리고 인생선배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나이 든 사람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라 여겨진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어르신, 아버님 하는 칭호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물론 여기저기에서 나를 늙은이로 대하는 것에 익숙해져 나도 모르게 동화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듦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노인"이 되는건 아닐까
언제부터 나는 지하철 약자석이 비면 자연스럽게 앉곤 한다. 좌석을 양보해 주면 감시함을 표하고 당당히 앉는다. 누군가 나에게 어르신 이라 하면 웃으며 나이 든 사람의 여유로움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나이 든 사람이며 그래서 늙은이다. 나보다 더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들을 따라가리라..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겐 니들 나만큼 나이들어 봤나 하며 앞서 가리라.. 나는 젊었을때보다 민첩하지 못하고 생각이 빠르지도 못하며 자주 뭔가 떨어뜨리는 늙은이다. 그렇지만 비록 나이 듦에 따라 젊었을 때의 그 몸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내 정신은 나이에 상관없이 또렷해지려고 노력하는 늙은이가 되리라.. 어쩌면 이 또한 더 나이 먹으면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게 되리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이 듦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자고..
이 글을 쓰는 내내, 하루하루 더 늙은이로 열심히 지내자고 내게 말하고 있다 나는.
(4월 글쓰기 연습 과제)
(맞춤법 검사 완료 2024.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