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상
화성연쇄살인사건에, 그리고 그 사건을 다룬 영화와 연극에, 우리 사회는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런데 1998년 11월에 내가 대공요원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여 PC통신 게시판에 공개 제보했고, 그후 2개월 뒤에는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를 찾아가서 나의 제보에 대한 경찰의 처리 상황을 알아보고 그 결과 역시 공개했는데, 그런 나의 제보에는 우리 사회가 외면했다. 그 이유는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바로 대공요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제보해본다.
우선 화성연쇄살인사건에 관한 나의 첫 번째 공개 제보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대공요원들의 부당한 수사로 인하여 내가 피해를 당하고 있던 중 발생한 그 사건에는 대공요원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정황증거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연쇄살인범이 굳이 경찰 경비망을 뚫어가면서 범행을 자행했고, 그것들이 모두 완전범죄가 됐다는 것, 범행대상에 70대 노파가 포함된 것 등으로 미루어, 단순히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범행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경찰 경비와 수사 상황을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자가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유발시키기 위하여 저지른 범행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대한 루머와, 범행할 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던 범인의 정신병적인 행동 등은 대공요원들이 나에게 부려대는 농간들과 일치한다. 그래서 나는 대공요원을 용의자로 지목하여, 수사기관의 수사를 공개적으로 촉구한다.'
공개 제보를 하고 나서 2개월쯤 지났을 때, 용의자로 지목된 대공요원에 대한 경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확인해보기 위하여, 나는 태안파출소 내에 설치돼있는 수사본부로 전화해보았다.
나 :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입니까?
경찰: 예.
나 : 작년 11월, pc통신 하이텔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대공요원이라는 사실이 제보됐는데, 알고 계십니까?
경찰: 모르겠어요.
나 : 경찰 자체에도 pc통신 게시물을 검색하는 부서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경찰: 그런 건 모르겠네요. 게시물 내용이 무엇인데요?
나 : 내용을 지금 보시겠어요? 하이텔로 들어가셔서......
경찰: 볼 수 없어요, 그런 체제가 갖춰지지 않아서. 전화로 얘기해봐요, 무슨 내용인가.
나 : 너무 길어서 전화로 얘기하긴 곤란한데요. 직접 보셔야 될 것 같은데요. 그 내용 중엔 대공요원이 범인임을 알 수 있는 정황증거들이 자세하게 적혀있거든요.
경찰: 여기에 와서 얘기해보겠어요?
나 : 그럼 이따 오후에 들르겠습니다.
오전에 수사본부로 전화했던 나는 서울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수사본부가 설치돼있는 태안파출소를 찾아갔다. 파출소에 들어서자 경사가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가 경사인지 경장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편의상 경사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순경이 서있었다. 순경이 나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pc통신에 연쇄살인사건에 관한 글을 올린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고는, 그 사건 담당경찰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어느 형사냐고 순경이 물었다. 누구인지 이름은 모르지만, 오전에 담당형사와 전화 통화하면서,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경사가 거들었다. 연쇄살인사건 담당형사가 수십 명이라서 누구인지 모르면 곤란하다고 했다. 나는,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나와 통화했던 형사가 나를 기다릴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금 형사들은 모두 외근 나갔으며 퇴근할 때에나 들어올 거라고 경찰이 말했다. 퇴근시간까지는 서너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경찰들을 향하여 혼잣말을 했다. "그럼 퇴근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겠는데." 그러자 경사가 순경에게 말했다. "계장님을 찾는 건가?" 그러면서 그들은 3층으로 올라가보라면서 계단이 있는 곳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3층 사무실에는 계장 직위를 가진 사복경찰이 혼자 소파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에게 오전에 전화하고 온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는 알겠다는 듯이 나를 맞았다. 내가 게시물이 인쇄된 용지를 점퍼 안주머니에서 꺼내려고 하는데 그가 먼저, pc통신에 올린 글을 가져오지 그랬느냐고 말했다. 나는 게시물이 인쇄된 용지를 그에게 건네줬다. 용지를 받아든 그는 글씨가 너무 작다면서 크게 인쇄를 하지 그랬느냐고 했다. 그리고는 안경을 꺼내어 쓰며 게시물을 읽기 시작했다.
글을 다 읽은 것을 보고 나는 그에게, 읽어보니까 어떻느냐고 물었다. 그는 게시물에 기독교 관련 글이 있다면서 기독교를 믿느냐고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가 의외의 질문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제시한 정황증거들에 대하여 그가 이의를 갖고있는지 듣기를 원했었다. 그는 자기도 기독교를 믿는다면서 테이블 한쪽에 읽다 만 듯 펼쳐져 있는 기독교서적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교회엔 안 다니고 집에서 혼자 믿는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면 안되고 교회엘 나가야 된다고 그가 말했다. 순간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 그의 말은 기독교인들이 전도할 때 항상 사용하는 말이어서, 내가 연쇄살인사건 담당경찰과 면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전도 받으러 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착각이 현실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화제를 연쇄살인사건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는 내 신상에 관하여 질문했다. 그의 질문에 따라 나는 주소와, 내가 전세로 살고 있음을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소보다는 전화번호를 물어보는데, 그리고 그게 더 실용적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는 내 전화번호는 묻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이유로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KBS라디오에 국민을 대상으로 창작가요를 공모하여 발표하는 프로가 있었고, 거기에 내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보냈는데, 그 가사 내용을 대공요원들이 오해한 것 같다고 내가 대답했다. 가사 내용은 내 신세를 탓하는 것이었고, 내용 중에 태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태양을 김일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대공요원들이 오해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응모 당시 나는 공고를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하고 있었고, 음악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이 다만 음악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막연히 작곡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작곡 기법에 관한 책 한 권을 사놓고 있었다. 그럴 즈음 KBS에 위와 같은 프로가 새로 생겨 작곡을 공모했고 나는 그에 응모했다. 뒤이어 작사 작곡 모두를 공모했고 나는 거기에도 응모했다. 그런데 작사는, 작곡 기법이란 책에 예문으로 실린 한 명곡의 가사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 당시의 내 신세를 탓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응모를 했는데, 반국가적인 시를 쓴 이유로 한 시인이 체포됐다는 내용의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나는 어떤 것이 반국가적인 시인가 궁금했고, 내가 쓴 가사는 어떤가 하고 되돌아봤다. 그런데 내 신세를 탓하는 내용을 국가를 탓하는 내용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가사 중에 나오는 태양이라는 단어를 김일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은 작사를 할 때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 대공요원들이 보내오는 농간의 편지들을 받았고, 나의 염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위의 내용을 경찰에게 설명해주자, 그는 사실대로 말한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것은 대공요원들이 수사할만한 사항도 못될뿐더러 수사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그런 것이 수사 대상이 된다면 시인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했다. 경찰의 그런 말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지금까지 대공요원들은 나의 언행 하나 하나를 생트집 잡으며 농간들을 부려대고 나를 모함해왔는데, 그 경찰은 같은 수사 계통에 종사하면서도 내 마음을 그렇게 선뜻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반가웠다. 그래서 나는 친한 사람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듯 그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렇죠? 저는 그 누구 못지 않은 반공주의자로 자부하고 있거든요."
60,70년대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 누구나 그랬듯이 나 역시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시키는 것은 반드시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줄 로만 알았다. 대공요원들로부터 인권유린을 당하는 지금까지도, 학창시절 받아들였던 반공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반공의 최일선에 서있던 것처럼 보였던 대공요원들이 실은 반공이란 미명아래 직권을 심각하게 악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의 말에 경찰은 대공요원들을 편들고 나섰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지." 나는 그런 그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공요원들이 그런 식으로 나를 넘겨짚었고, 거기엔 나의 어떤 해명도 소용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찰과 나의 대화는 대공요원들이 나에게 혐의를 두게된 또 다른 원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어느 공원에서 고교 졸업앨범 사진을 찍을 때였다. 네 명씩 짝을 지어 찍게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나를 포함하여 세 명뿐이었고 한 명이 모자랐지만 함께 사진 찍을 아이들은 보이지 않아 난처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처진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한 마디 했다. "누구를 한 명 포섭하지?" 그런데 포섭이란 말은 간첩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인 것 같아서 혹시 오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었지만, 금세 잊었다.
내가 경찰에게 위와 같았던 상황을 설명해주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랑 같이 있던 친구 중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던 것 같아요." 그러자 그는 "그렇게 오래 됐어요?"하고 물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나중에 역추적을 하다보니까 알게 됐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의 요구에 의하여 나는 당시의 상황을 다시 설명했던 것 같았다. 확실한 것은 그가, 그렇게 오래됐느냐는 질문을 다시 했고, 나는, 그때는 몰랐고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고 거듭 말했다.
위와 같이, 나는 경찰에게, 내가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는 이유에 대한 나의 추정을 얘기해줬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대공요원들이 한마디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나를 수사하며 나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고, 무슨 이유로 나를 수사하고 있는지 내가 알아보려고 해도 대공요원들은 몸을 숨기며 진상규명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대공요원들은 간첩사건 같은 것만 수사한다면서 그들은 나를 수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대공요원들이 나를 수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대답했다. 그가 게시물이 인쇄된 용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아마 나와 대면하던 중 내게서 포착한 것과 글 내용을 대조해보려는 듯했다. 게시물을 보고 있는 그를 향하여 내가 말했다. "그런 글 함부로 못 써요. 허위사실유포죄로 바로 고소당해요." 그런 내 말에 그는 아무 대꾸 없이 게시물만을 들여다봤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나의 피해의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아녜요."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어느 대공요원이냐고 물었다. 안기부(당시는 아직 국정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지 않았을 때였다)와 경찰 소속이라고 내가 대답했다. 그건 너무 막연하다고 그가 말했다. 안기부와 경찰이 합동으로 수사하고 있지 않느냐고 내가 물었다. 아니라고 그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만 해도 전국 각 경찰서마다 대공요원들이 있다고 했다. 소속과 신분을 밝히라고 요구해도 그들이 밝히지 않는다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대공요원들을 만나본 적이 있느냐고 그가 질문했다. 없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그들이 대공요원인줄 어떻게 아느냐고 그가 물었다.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 그들의 수사 행태를 보고 안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들이 어떻게 농간을 부리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그가 내게 요구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대공요원이 다녀갔잖아요." 그러자 그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어쩌면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화제를 돌렸다. 화제는 다시 대공요원들의 농간으로 향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라고 그가 다시 한번 똑같은 요구를 했다. 나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대공요원이 다녀갔잖아요." 그는 이번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대공요원들의 농간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려면 나는 큰 용기를 내야하고 곤혹스러워진다. 그들의 농간이 너무 어이없고 비인간적이며 편집광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경찰이 내 대답에 어떤 언급이라도 한다면 거기에 대응하여 대공요원들의 농간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지적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내 대답엔 아무런 언급도 없이 화제를 돌렸다.
내 주변사람들한테 그래왔듯이 대공요원들은 그에게도 대화를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라는 등의 여러 가지 요청을 했고, 내 주변사람들이 그래왔듯이 그 역시 대공요원들의 요청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공요원들이 어떤 농간들을 부려대고 있는지는 나보다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기회에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에 대하여 문제 제기해보겠다. 대공요원들은 대공수사에 협력해달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내 주변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명인사들에게도 특정한 말과 행동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대고 있다. 대공요원들의 그런 요청을 들어주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대공수사에 협력하는 것이라 스스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대공요원들의 그런 행태들을 나는 농간이라 부르고 있다. 문제는 대공요원들이 그런 농간들을 부려대는 동기와 목적이 국민을 모함하고 기만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비록 거절당하기는 했지만, 농간의 진상을 규명해줄 것을 나는 경찰, 국정원, 검찰 민원상담실 등 사회 각처에 호소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의 구체적인 원인과 형태들을 진술했었다. 그 진술 내용을 요약해보면, 대공요원들이 진상규명은 회피한 채, 자신들의 어이없고 편집광적인 의혹에서 파생된 농간들을 대공수사라는 미명아래 무차별적으로 부려대고 있다는 것이다.
대공요원들의 농간에 북한정보기관도 개입하고 있다. TV화면에 비친 북한측 인사들이 대공요원들의 농간들과 똑같은 농간들을 부려대는 것을 나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남북 정보기관들의 상호교류에 의한 합작 농간인지 아니면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에 혼선을 빚게 하기 위한 북한정보기관의 술책인지 분간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남북 정보기관들이 국민을 모함하고 기만하는 농간들을 함께 부려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경찰과의 대화로 돌아가본다. 경찰과의 대화 중간쯤 전화벨이 울렸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인지 그의 통화에 신경 쓰지 않고 잠시 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그는 인사말 같은 서두 없이 바로 본론을 말했다. 그는 당구 같은 것을 쳤던 것 같았다. 사백 오십인가 사오백인가 하는 점수를 말했는데, 그것이 자신의 점수인지 상대방의 점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미쓰나웃됐다라고 말했다. 통화가 끝난 뒤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그는 내가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추정했기 때문에 대공요원을 범인으로 단정하게 된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판단이 잘못됐다는 듯한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대공수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내 판단은 잘못되지 않았지만, 피해자들에 관한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침묵했다.
대공요원들을 수사할 의지가 그에게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가 말했다. "범인이 대공요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정황증거들을 제시했잖아요." 그는 내가 제시한 증거들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증거가 있으며, 수사팀이 혐의를 두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했다. 어떤 증거들인지 보여달라고 내가 요청했다. 그는 나에게 증거를 보여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수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보여달라는 거라고 내가 말했지만, 그는 수사상 이유로 증거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미 그 사건은 공개수사하고 있고, 그 사건에 관한 증거들은 언론에 모두 공개됐잖느냐고 내가 말했다. 그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공개되지 않은 증거들이 있다고 했다. 어떤 증거들인지 나에게 알려주면 내가 그 증거들에 대해서 설명해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 증거들은 국과수에서 검사한 결과라고만 말할 뿐 더 이상은 알려주지 않았다.
경찰의 질문에 따라서, 나는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갔었고, 나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라고 내가 말했다. 돌아올 때 돈을 어떻게 마련했느냐고 그가 질문했다. 집 판 돈을 갖고 갔었는데 그걸 도로 갖고 왔다고 내가 말했다. 그 돈을 예금해놓고 있느냐고 그가 물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답했다.
내가 갖고있는 돈에 관하여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다르다. 나는 외국에 이민 가기 전에 동생 돈으로 증권 투자를 하고 있었고, 그 증권은 남겨놓고 내 앞으로 되어있는 집을 판 돈은 외국으로 갖고 갔다.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는 돈을 갖고 오지 않았고, 남겨놓았던 증권을 내가 갖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과의 대화에서 나는 나의 돈에 관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증권 투자로 화제가 옮겨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돈에 관한 부분에서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경찰은 나의 생활형편에 대해서 질문했다. 나는 대공요원들에 의해 파괴된 내 생활을 그에게 말해주고는, 대공요원들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고 그에게 하소연했다. 그러자 그는 소설을 써보라고 했다. 게시물에도 언급했었지만, 나는 대공요원들의 직권남용을 세상에 알릴 생각으로 작가가 되려고 했고, 습작을 했었지만, 글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길을 이미 포기했던 터였다. 그랬기에 소설을 써보라는 그의 말은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이제 그만 사건수사본부 사무실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대공요원을 수사할 생각이 없느냐고 경찰에게 마지막 질문을 해보았다. 무슨 의도에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그가 반문했다. 다만 확인해보려는 것뿐이라고 내가 말했다. 그가 더 이상 말이 없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는 듯해서 내가 머뭇거렸지만, 그는 화제를 돌리기만 할 뿐 뚜렷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사무실을 나왔다.
1층으로 내려오니 순경 혼자만 남아있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말을 나눴느냐고 물으면서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웃는 표정을 지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무뚝뚝하게 예 하는 대답을 하며 태안파출소를 나왔다.
증거들과 수사과정에 대한 분석
내가 위의 글을 인터넷에 공개하려고 할 즈음, 화성연쇄살인사건을 기록한 책을 보게됐다. 그 사건을 5년 동안 담당했던 형사가 쓴 그 책에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증거들과 수사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돼있었다. 그 증거들과 수사과정을 내가 분석해보겠다.
첫째, 내가 제시했던 정황증거들 중에는 '연쇄살인범이 의도적으로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대한 범행을 자행했을 가능성'이 들어있다. 그런데 '화성은...' 책 저자는 그런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웠다. 전체 사건 가운데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해당되는 사건은 한두 건뿐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고, 또한 어두운 밤에는 짙은 색은 모두 검게 보여서 색의 구별이 안되기 때문에 범인이 의도적으로 빨간 옷을 노렸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8차 사건인 김미영(가명)양 살해사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번 김미영 양 사건의 발생장소였던 소나무밭 오솔길 입구는 해질 무렵인 오후 7시부터 8시 사이에 의경을 배치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범인이 출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즉 의경이 배치되기 전에 범인은 미리 산 속으로 숨어들어 가 범행대상을 물색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범인은 평소 의경의 배치여부를 그 시간대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김미영 양의 귀가시간까지 미리 알고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흉기를 소지하지 않고 다니면서 피해자를 목 졸라 죽인 범인의 행태를 두고 저자는 '이처럼 화성사건의 범인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고 분석했다.
나는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대한 범행 역시 김 양 사건과 같은 수법의 사건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즉 범인이 사전계획 하에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연쇄살인범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던 김 모 여인이 있었다. 내가 들었던 라디오 뉴스에 의하면, 김 여인이 사건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기를, 연쇄살인범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고 했고, 그런 뉴스는 청취자로 하여금, 범인은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라는 추정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런데 저자의 책에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사람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입에 재갈이 물린 김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김 여인의 중얼거림이 범인의 중얼거림으로 뒤바뀌어 뉴스로 나가게 된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
셋째, 그 김 여인의 증언을 토대로, 저자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선 범인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거들 틈으로 본 얼굴은 갸름했다. 머리는 짧게 깎아 마치 방위병 같아 보였고, 나이는 25세에서 27세정도로 보였다. 우리는 위의 사실을 기초로 해서 우선 용의자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시켰다. ......중략...... 인근 모 공군부대에서는 방위병들의 명단과 사진을 확보했다.'
위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수사팀은 방위병에게 수사의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일반인들이 연상하는 방위병은 20대 초반의 남자인데. 수사팀이 25세에서 27세 가량 되어보이는 스포츠형 머리의 남자를 방위병으로 국한했다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넷째, 연쇄살인범은 김 여인을 성폭행했지만 살해하지 못하고 놓쳤다. 그랬던 범인이 보름 뒤에 더욱 잔인한 수법으로 이 모 양을 살해했다. 그런 범인의 범행 행태에 대해서 저자는, 김 여인에게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욱 대담하고 잔인한 방법을 쓴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는 범인의 그런 범행 행태를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보려고 한다. 사건 당시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김 여인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관찰할 수 있었고, 수사팀은 김 여인으로부터 범인의 인상착의와 목소리의 특징을 확보했다. 당시의 상황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개의 사건이 그렇듯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어느 정도 확보되면 수사가 상당한 활기를 띠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범인 검거에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라도 밤낮없이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 위와 같이, 자신의 인상착의 노출로 인하여 검거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연쇄살인범은 범행을 중단하거나 숨지는 않고, 보름 뒤에 같은 지역에서 같은 범행을 더 대담한 수법으로 저질렀다. 범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수사와 경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등의 이유로, 자신이 검거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섯째, 8차 사건인 김 미영 양 사건의 수사 상황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당시에도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에서는 경찰의 수사 상황이 자세히 보도되었고, 심심찮게 사건 발생 지역 일대를 순찰하는 전경들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비쳐지기도 했다. 이를 통해 범인이 오히려 경찰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범인이 전경들의 배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현장 일대를 돌며 탐문 작업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결과 범인으로서는 전경이 사건 발생 지역 일대에 배치되기 전에 미리 숨어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전경 배치가 안 되어 있는 곳을 찾아내 범행을 계획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수사본부에서는 이런 여러 가지 가능성까지 고려해서 수사를 펴야했다.'
위와 같이 저자는, 범인이 언론을 통하여 그리고 사건 현장 일대를 돌며 탐문작업을 하여 경찰의 움직임을 감시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나는 한가지 가능성을 더 추가하려고 한다. 연쇄살인사건의 발생 초기부터 내가 제기했던 가능성인데, 범인이 수사관계자로부터 전경 배치 상황 등의 수사 정보를 확보했을 가능성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데에는 수사관계자들과 수사 협조 요청을 받았던 사람들의 솔직한 증언이 필요하다. 나는 그들과 면담한 후에 추가로 증언하려고 한다.
여섯째, 7차 살인사건 때, 범인이 사건 현장 부근에서 수원행 시외버스를 탔던 사실이 수사팀의 탐문수사에 의해 밝혀졌고, 수사팀은 그 버스기사와 안내양의 증언에 의하여 범인의 몽타주를 작성했다. 그런데 범인의 인상착의와 특징이 밝혀지게 된 계기는, 범인과 운전기사의 말다툼과, 범인이 운전기사에게 담뱃불을 빌린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건기록을 보면, 연쇄살인사건을 통틀어 사건 전후의 범인의 행적이 밝혀진 것은 7차 사건밖에 없다. 여타사건 때와 같은 범인의 용의주도한 범행수법에 따라 당시의 범인의 행동을 유추해본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는 운전기사와 말다툼을 하지 않았고 운전기사에게 담뱃불도 빌리지 않았다.' 하지만 범인은 시외버스 안에서 마치 자신의 인상착의와 검정전자손목시계, 문신, 손가락의 봉숭아물 등과 같은 자신의 특징들을 운전기사에게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듯이 '운전기사에게 담뱃불을 빌리고 담배를 입에 문 채 불이 꺼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감싸쥐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밝혀진 범인의 특징들 중 검정손목시계와 손가락의 봉숭아물 등은 대공요원들의 농간들과 관련이 있었고, 버스 안에서의 범인의 행동은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과 같은 형태였다.
일곱째, 1988년 9월 16일 박성희(가명)양이 살해됐는데, 수사팀은 그 사건을 모방범죄로 결론지었다. 그런 결론을 지은 이유는 연쇄살인사건에서 볼 수 있었던 수법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피해자의 옷이나 소지품으로 손발을 묶지 않았고, 거들이나 팬티로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고, 논밭이 아닌 피해자의 방에서 범행을 했고, 음부 난행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수법들 중 연쇄살인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수법은 야외에서 범행을 자행한 것과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 두 가지 뿐이며, 그 밖의 특징들은 각 사건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그런데 박 양 사건 현장에는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들이 발견됐는데, 목을 졸라 살해한 것과, 범행 현장인 방안에서 야산의 풀잎이 발견된 것(이는 범인이 야산에서 범행을 자행하려다가 범행 대상을 찾지 못하고 인가로 내려왔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리고 혈액형이 연쇄살인범의 것과 같은 B형이라는 것 등이다. 또한 연쇄살인범이 피해자들의 손발을 묶었던 것은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박 양 사건의 경우는, 사건 발생 추정 시간이 새벽 2시라고 했다. 그 시간이라면 박 양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범인은 박 양의 손발을 묶을 필요 없이 범행을 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89년 7월 25일 수사팀은 경운기수리센터 종업원인 윤 모씨를 박 양 살해범으로 검거했다. 저자의 기록에 따르면,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음모와 윤씨의 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DNA분석기법을 사용하여 비교해본 결과 서로 일치한다는 보고를 받았고, 그 즉시 윤씨를 체포해 자백을 받아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비교시험에 참여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가 쓴 책에도 위 시험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당시 사용했던 시험 방법은 DNA분석기법이 아니라 방사화분석시험이라고 했고, 그 시험 결과, 현장의 음모에서 알루미늄 망간 티타늄 같은 특정원소들의 함량이 대단히 높게 나타났으며, 그 함량이 높은 점과 방사성동위원소 10개 핵종의 각 함량들이 40% 편차 이내에서 윤씨의 음모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그와 관련한 자료를 나는 또 다른 책에서 확인했는데, 윤씨와 범인과 일반인의 특정원소 함량을 비교한 막대그래프였다. 그 그래프에 나타난 것을 보면, 망간 아연 같은 특정원소들의 각 함량이, 윤씨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범인이고, 일반인이 가장 낮았다. 어느 한 원소에서도 범인과 윤씨의 수치가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결과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사건현장에서 수거하여 제출한 범인의 음모와 윤씨의 음모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재판부에서는 국과수의 그런 결론을 증거로 채택하여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런데 윤씨가 구속되어있던 때인 1990년 11월 15일에 김미영 양 살해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범행수법을 분석해본 결과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결론지었다고 했다.
그리고 김 양 사건현장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됐는데, 그에 대한 '화성은...' 책 저자의 기록을 옮겨보겠다. '한편 이번 김미영 양 사건 때 발견된 흰 머리카락(새치)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결과였다. 흰 머리카락에서 나트륨, 망간, 아연 등이 일반사람들에 비해 수십 배 내지 수백 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수사팀에서는 당연히 직업에 대한 추측이 가능했다. 흰 머리카락의 주인은 비철금속 계통 즉 정비공이나 기타 기계류를 10년 가까이 다룬 사람이었다. 그 기간정도가 되어야 검출된 수치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서 특정 원소들의 함량이 높게 나타난 특이한 결과는, 책 저자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미 2년 전 발생했던 박 양 사건 때도 나타났었다. 박 양 사건 때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를 감정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의 글을 옮겨보겠다. '바로 현장의 음모가 방사화분석시험 결과, 특정원소들의 함량이 대단히 높은 수치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등과 같이 높은 함량을 보이는 금속성분들은 용접이나 금속물의 가공 등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에 많이 축적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체모 분석 결과, 박 양 사건과 김 양 사건 모두에서, 아연 망간 같은 특정원소 함량이 매우 높게 나타났고, 그에 따라 추정해본 두 사건의 범인의 직업군도 같은 것으로 나왔다. 그렇다면 박 양 사건은 모방범죄가 아니라 연쇄살인사건 중 하나이고, 그 사건의 범인도 윤씨가 아니라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높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뤘던 MBC뉴스에서, 수감되어있는 윤씨와의 인터뷰 장면이 방영됐는데, 윤씨는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했고,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범인이라고 허위자백을 했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취재진에게 호소했다. 이제라도 두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체모들과 윤씨의 것을, DNA분석과 같은 정밀한 검사를 다시 실시하여 진상을 규명하고, 억울하게 구속되어있는 윤씨를 풀어줘야 한다.
체모 분석에 관하여 덧붙인다면, 경찰이나 국과수 관계자 모두, 체모에서 망간 아연 같은 특정원소의 함량이 높게 나오는 직업군을 정비공이나 용접공 같은 일반인에게만 한정시켰다. 그런데 한 기록을 보면, 그런 높은 함량은 총기류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나타난다고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증거들과 수사과정을 분석해보면, 수사팀이 핵심에서 벗어난 수사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진상 규명은 하지 못하고 무고한 주민들을 용의자로 몰아 피해를 입힌 것이 드러난다.
1999년 1월 내가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를 들렀을 때, 나보다 한 발 앞서 그곳을 들렀던 대공요원은 연쇄살인범이 누구인지 알고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대공요원들을 수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긴 수사에 착수한다 하더라도 곧 벽에 부딪히고 말 것이 뻔하다.
대공수사라는 이름아래 직권을 남용하고 있는 대공요원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그들에 대한 법과 제도의 실질적인 통제가 가능해지는 날이 오기를 나는 기다린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나선다면 그런 날이 빨리 올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상
화성연쇄살인사건에, 그리고 그 사건을 다룬 영화와 연극에, 우리 사회는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런데 1998년 11월에 내가 대공요원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여 PC통신 게시판에 공개 제보했고, 그후 2개월 뒤에는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를 찾아가서 나의 제보에 대한 경찰의 처리 상황을 알아보고 그 결과 역시 공개했는데, 그런 나의 제보에는 우리 사회가 외면했다. 그 이유는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바로 대공요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제보해본다.
우선 화성연쇄살인사건에 관한 나의 첫 번째 공개 제보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대공요원들의 부당한 수사로 인하여 내가 피해를 당하고 있던 중 발생한 그 사건에는 대공요원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정황증거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연쇄살인범이 굳이 경찰 경비망을 뚫어가면서 범행을 자행했고, 그것들이 모두 완전범죄가 됐다는 것, 범행대상에 70대 노파가 포함된 것 등으로 미루어, 단순히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범행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경찰 경비와 수사 상황을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자가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유발시키기 위하여 저지른 범행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대한 루머와, 범행할 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던 범인의 정신병적인 행동 등은 대공요원들이 나에게 부려대는 농간들과 일치한다. 그래서 나는 대공요원을 용의자로 지목하여, 수사기관의 수사를 공개적으로 촉구한다.'
공개 제보를 하고 나서 2개월쯤 지났을 때, 용의자로 지목된 대공요원에 대한 경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확인해보기 위하여, 나는 태안파출소 내에 설치돼있는 수사본부로 전화해보았다.
나 :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입니까?
경찰: 예.
나 : 작년 11월, pc통신 하이텔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대공요 원이라는 사실이 제보됐는데, 알고 계십니까?
경찰: 모르겠어요.
나 : 경찰 자체에도 pc통신 게시물을 검색하는 부서가 있는 걸로 알 고 있는데요.
경찰: 그런 건 모르겠네요. 게시물 내용이 무엇인데요?
나 : 내용을 지금 보시겠어요? 하이텔로 들어가셔서......
경찰: 볼 수 없어요, 그런 체제가 갖춰지지 않아서. 전화로 얘기해봐요, 무슨 내용인가.
나 : 너무 길어서 전화로 얘기하긴 곤란한데요. 직접 보셔야 될 것 같 은데요. 그 내용 중엔 대공요원이 범인임을 알 수 있는 정황증거 들이 자세하게 적혀있거든요.
경찰: 여기에 와서 얘기해보겠어요?
나 : 그럼 이따 오후에 들르겠습니다.
오전에 수사본부로 전화했던 나는 서울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수사본부가 설치돼있는 태안파출소를 찾아갔다. 파출소에 들어서자 경사가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가 경사인지 경장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편의상 경사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순경이 서있었다. 순경이 나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pc통신에 연쇄살인사건에 관한 글을 올린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고는, 그 사건 담당경찰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어느 형사냐고 순경이 물었다. 누구인지 이름은 모르지만, 오전에 담당형사와 전화 통화하면서,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경사가 거들었다. 연쇄살인사건 담당형사가 수십 명이라서 누구인지 모르면 곤란하다고 했다. 나는,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나와 통화했던 형사가 나를 기다릴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금 형사들은 모두 외근 나갔으며 퇴근할 때에나 들어올 거라고 경찰이 말했다. 퇴근시간까지는 서너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경찰들을 향하여 혼잣말을 했다. "그럼 퇴근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겠는데." 그러자 경사가 순경에게 말했다. "계장님을 찾는 건가?" 그러면서 그들은 3층으로 올라가보라면서 계단이 있는 곳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3층 사무실에는 계장 직위를 가진 사복경찰이 혼자 소파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에게 오전에 전화하고 온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는 알겠다는 듯이 나를 맞았다. 내가 게시물이 인쇄된 용지를 점퍼 안주머니에서 꺼내려고 하는데 그가 먼저, pc통신에 올린 글을 가져오지 그랬느냐고 말했다. 나는 게시물이 인쇄된 용지를 그에게 건네줬다. 용지를 받아든 그는 글씨가 너무 작다면서 크게 인쇄를 하지 그랬느냐고 했다. 그리고는 안경을 꺼내어 쓰며 게시물을 읽기 시작했다.
글을 다 읽은 것을 보고 나는 그에게, 읽어보니까 어떻느냐고 물었다. 그는 게시물에 기독교 관련 글이 있다면서 기독교를 믿느냐고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가 의외의 질문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제시한 정황증거들에 대하여 그가 이의를 갖고있는지 듣기를 원했었다. 그는 자기도 기독교를 믿는다면서 테이블 한쪽에 읽다 만 듯 펼쳐져 있는 기독교서적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교회엔 안 다니고 집에서 혼자 믿는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면 안되고 교회엘 나가야 된다고 그가 말했다. 순간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 그의 말은 기독교인들이 전도할 때 항상 사용하는 말이어서, 내가 연쇄살인사건 담당경찰과 면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전도 받으러 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착각이 현실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화제를 연쇄살인사건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는 내 신상에 관하여 질문했다. 그의 질문에 따라 나는 주소와, 내가 전세로 살고 있음을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소보다는 전화번호를 물어보는데, 그리고 그게 더 실용적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는 내 전화번호는 묻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이유로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KBS라디오에 국민을 대상으로 창작가요를 공모하여 발표하는 프로가 있었고, 거기에 내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보냈는데, 그 가사 내용을 대공요원들이 오해한 것 같다고 내가 대답했다. 가사 내용은 내 신세를 탓하는 것이었고, 내용 중에 태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태양을 김일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대공요원들이 오해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응모 당시 나는 공고를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하고 있었고, 음악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이 다만 음악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막연히 작곡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작곡 기법에 관한 책 한 권을 사놓고 있었다. 그럴 즈음 KBS에 위와 같은 프로가 새로 생겨 작곡을 공모했고 나는 그에 응모했다. 뒤이어 작사 작곡 모두를 공모했고 나는 거기에도 응모했다. 그런데 작사는, 작곡 기법이란 책에 예문으로 실린 한 명곡의 가사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 당시의 내 신세를 탓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응모를 했는데, 반국가적인 시를 쓴 이유로 한 시인이 체포됐다는 내용의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나는 어떤 것이 반국가적인 시인가 궁금했고, 내가 쓴 가사는 어떤가 하고 되돌아봤다. 그런데 내 신세를 탓하는 내용을 국가를 탓하는 내용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가사 중에 나오는 태양이라는 단어를 김일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은 작사를 할 때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 대공요원들이 보내오는 농간의 편지들을 받았고, 나의 염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위의 내용을 경찰에게 설명해주자, 그는 사실대로 말한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것은 대공요원들이 수사할만한 사항도 못될뿐더러 수사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그런 것이 수사 대상이 된다면 시인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했다. 경찰의 그런 말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지금까지 대공요원들은 나의 언행 하나 하나를 생트집 잡으며 농간들을 부려대고 나를 모함해왔는데, 그 경찰은 같은 수사 계통에 종사하면서도 내 마음을 그렇게 선뜻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반가웠다. 그래서 나는 친한 사람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듯 그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렇죠? 저는 그 누구 못지 않은 반공주의자로 자부하고 있거든요."
60,70년대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 누구나 그랬듯이 나 역시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시키는 것은 반드시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줄 로만 알았다. 대공요원들로부터 인권유린을 당하는 지금까지도, 학창시절 받아들였던 반공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반공의 최일선에 서있던 것처럼 보였던 대공요원들이 실은 반공이란 미명아래 직권을 심각하게 악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의 말에 경찰은 대공요원들을 편들고 나섰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지." 나는 그런 그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공요원들이 그런 식으로 나를 넘겨짚었고, 거기엔 나의 어떤 해명도 소용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찰과 나의 대화는 대공요원들이 나에게 혐의를 두게된 또 다른 원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어느 공원에서 고교 졸업앨범 사진을 찍을 때였다. 네 명씩 짝을 지어 찍게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나를 포함하여 세 명뿐이었고 한 명이 모자랐지만 함께 사진 찍을 아이들은 보이지 않아 난처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처진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한 마디 했다. "누구를 한 명 포섭하지?" 그런데 포섭이란 말은 간첩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인 것 같아서 혹시 오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었지만, 금세 잊었다.
내가 경찰에게 위와 같았던 상황을 설명해주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랑 같이 있던 친구 중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던 것 같아요." 그러자 그는 "그렇게 오래 됐어요?"하고 물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나중에 역추적을 하다보니까 알게 됐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의 요구에 의하여 나는 당시의 상황을 다시 설명했던 것 같았다. 확실한 것은 그가, 그렇게 오래됐느냐는 질문을 다시 했고, 나는, 그때는 몰랐고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고 거듭 말했다.
위와 같이, 나는 경찰에게, 내가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는 이유에 대한 나의 추정을 얘기해줬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대공요원들이 한마디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나를 수사하며 나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고, 무슨 이유로 나를 수사하고 있는지 내가 알아보려고 해도 대공요원들은 몸을 숨기며 진상규명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대공요원들은 간첩사건 같은 것만 수사한다면서 그들은 나를 수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대공요원들이 나를 수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대답했다. 그가 게시물이 인쇄된 용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아마 나와 대면하던 중 내게서 포착한 것과 글 내용을 대조해보려는 듯했다. 게시물을 보고 있는 그를 향하여 내가 말했다. "그런 글 함부로 못 써요. 허위사실유포죄로 바로 고소당해요." 그런 내 말에 그는 아무 대꾸 없이 게시물만을 들여다봤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나의 피해의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아녜요."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어느 대공요원이냐고 물었다. 안기부(당시는 아직 국정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지 않았을 때였다)와 경찰 소속이라고 내가 대답했다. 그건 너무 막연하다고 그가 말했다. 안기부와 경찰이 합동으로 수사하고 있지 않느냐고 내가 물었다. 아니라고 그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만 해도 전국 각 경찰서마다 대공요원들이 있다고 했다. 소속과 신분을 밝히라고 요구해도 그들이 밝히지 않는다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대공요원들을 만나본 적이 있느냐고 그가 질문했다. 없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그들이 대공요원인줄 어떻게 아느냐고 그가 물었다.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 그들의 수사 행태를 보고 안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들이 어떻게 농간을 부리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그가 내게 요구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대공요원이 다녀갔잖아요." 그러자 그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어쩌면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화제를 돌렸다. 화제는 다시 대공요원들의 농간으로 향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라고 그가 다시 한번 똑같은 요구를 했다. 나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대공요원이 다녀갔잖아요." 그는 이번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대공요원들의 농간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려면 나는 큰 용기를 내야하고 곤혹스러워진다. 그들의 농간이 너무 어이없고 비인간적이며 편집광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경찰이 내 대답에 어떤 언급이라도 한다면 거기에 대응하여 대공요원들의 농간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지적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내 대답엔 아무런 언급도 없이 화제를 돌렸다.
내 주변사람들한테 그래왔듯이 대공요원들은 그에게도 대화를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라는 등의 여러 가지 요청을 했고, 내 주변사람들이 그래왔듯이 그 역시 대공요원들의 요청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공요원들이 어떤 농간들을 부려대고 있는지는 나보다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기회에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에 대하여 문제 제기해보겠다. 대공요원들은 대공수사에 협력해달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내 주변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명인사들에게도 특정한 말과 행동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대고 있다. 대공요원들의 그런 요청을 들어주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대공수사에 협력하는 것이라 스스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대공요원들의 그런 행태들을 나는 농간이라 부르고 있다. 문제는 대공요원들이 그런 농간들을 부려대는 동기와 목적이 국민을 모함하고 기만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비록 거절당하기는 했지만, 농간의 진상을 규명해줄 것을 나는 경찰, 국정원, 검찰 민원상담실 등 사회 각처에 호소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의 구체적인 원인과 형태들을 진술했었다. 그 진술 내용을 요약해보면, 대공요원들이 진상규명은 회피한 채, 자신들의 어이없고 편집광적인 의혹에서 파생된 농간들을 대공수사라는 미명아래 무차별적으로 부려대고 있다는 것이다.
대공요원들의 농간에 북한정보기관도 개입하고 있다. TV화면에 비친 북한측 인사들이 대공요원들의 농간들과 똑같은 농간들을 부려대는 것을 나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남북 정보기관들의 상호교류에 의한 합작 농간인지 아니면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에 혼선을 빚게 하기 위한 북한정보기관의 술책인지 분간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남북 정보기관들이 국민을 모함하고 기만하는 농간들을 함께 부려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경찰과의 대화로 돌아가본다. 경찰과의 대화 중간쯤 전화벨이 울렸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인지 그의 통화에 신경 쓰지 않고 잠시 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그는 인사말 같은 서두 없이 바로 본론을 말했다. 그는 당구 같은 것을 쳤던 것 같았다. 사백 오십인가 사오백인가 하는 점수를 말했는데, 그것이 자신의 점수인지 상대방의 점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미쓰나웃됐다라고 말했다. 통화가 끝난 뒤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그는 내가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추정했기 때문에 대공요원을 범인으로 단정하게 된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판단이 잘못됐다는 듯한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대공수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내 판단은 잘못되지 않았지만, 피해자들에 관한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침묵했다.
대공요원들을 수사할 의지가 그에게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가 말했다. "범인이 대공요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정황증거들을 제시했잖아요." 그는 내가 제시한 증거들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증거가 있으며, 수사팀이 혐의를 두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했다. 어떤 증거들인지 보여달라고 내가 요청했다. 그는 나에게 증거를 보여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수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보여달라는 거라고 내가 말했지만, 그는 수사상 이유로 증거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미 그 사건은 공개수사하고 있고, 그 사건에 관한 증거들은 언론에 모두 공개됐잖느냐고 내가 말했다. 그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공개되지 않은 증거들이 있다고 했다. 어떤 증거들인지 나에게 알려주면 내가 그 증거들에 대해서 설명해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 증거들은 국과수에서 검사한 결과라고만 말할 뿐 더 이상은 알려주지 않았다.
경찰의 질문에 따라서, 나는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갔었고, 나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라고 내가 말했다. 돌아올 때 돈을 어떻게 마련했느냐고 그가 질문했다. 집 판 돈을 갖고 갔었는데 그걸 도로 갖고 왔다고 내가 말했다. 그 돈을 예금해놓고 있느냐고 그가 물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답했다.
내가 갖고있는 돈에 관하여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다르다. 나는 외국에 이민 가기 전에 동생 돈으로 증권 투자를 하고 있었고, 그 증권은 남겨놓고 내 앞으로 되어있는 집을 판 돈은 외국으로 갖고 갔다.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는 돈을 갖고 오지 않았고, 남겨놓았던 증권을 내가 갖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과의 대화에서 나는 나의 돈에 관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증권 투자로 화제가 옮겨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돈에 관한 부분에서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경찰은 나의 생활형편에 대해서 질문했다. 나는 대공요원들에 의해 파괴된 내 생활을 그에게 말해주고는, 대공요원들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고 그에게 하소연했다. 그러자 그는 소설을 써보라고 했다. 게시물에도 언급했었지만, 나는 대공요원들의 직권남용을 세상에 알릴 생각으로 작가가 되려고 했고, 습작을 했었지만, 글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길을 이미 포기했던 터였다. 그랬기에 소설을 써보라는 그의 말은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이제 그만 사건수사본부 사무실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대공요원을 수사할 생각이 없느냐고 경찰에게 마지막 질문을 해보았다. 무슨 의도에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그가 반문했다. 다만 확인해보려는 것뿐이라고 내가 말했다. 그가 더 이상 말이 없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는 듯해서 내가 머뭇거렸지만, 그는 화제를 돌리기만 할 뿐 뚜렷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사무실을 나왔다.
1층으로 내려오니 순경 혼자만 남아있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말을 나눴느냐고 물으면서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웃는 표정을 지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무뚝뚝하게 예 하는 대답을 하며 태안파출소를 나왔다.
증거들과 수사과정에 대한 분석
내가 위의 글을 인터넷에 공개하려고 할 즈음, 화성연쇄살인사건을 기록한 책을 보게됐다. 그 사건을 5년 동안 담당했던 형사가 쓴 그 책에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증거들과 수사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돼있었다. 그 증거들과 수사과정을 내가 분석해보겠다.
첫째, 내가 제시했던 정황증거들 중에는 '연쇄살인범이 의도적으로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대한 범행을 자행했을 가능성'이 들어있다. 그런데 '화성은...' 책 저자는 그런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웠다. 전체 사건 가운데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해당되는 사건은 한두 건뿐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고, 또한 어두운 밤에는 짙은 색은 모두 검게 보여서 색의 구별이 안되기 때문에 범인이 의도적으로 빨간 옷을 노렸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8차 사건인 김미영(가명)양 살해사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번 김미영 양 사건의 발생장소였던 소나무밭 오솔길 입구는 해질 무렵인 오후 7시부터 8시 사이에 의경을 배치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범인이 출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즉 의경이 배치되기 전에 범인은 미리 산 속으로 숨어들어 가 범행대상을 물색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범인은 평소 의경의 배치여부를 그 시간대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김미영 양의 귀가시간까지 미리 알고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흉기를 소지하지 않고 다니면서 피해자를 목 졸라 죽인 범인의 행태를 두고 저자는 '이처럼 화성사건의 범인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고 분석했다.
나는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대한 범행 역시 김 양 사건과 같은 수법의 사건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즉 범인이 사전계획 하에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연쇄살인범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던 김 모 여인이 있었다. 내가 들었던 라디오 뉴스에 의하면, 김 여인이 사건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기를, 연쇄살인범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고 했고, 그런 뉴스는 청취자로 하여금, 범인은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라는 추정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런데 저자의 책에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사람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입에 재갈이 물린 김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김 여인의 중얼거림이 범인의 중얼거림으로 뒤바뀌어 뉴스로 나가게 된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
셋째, 그 김 여인의 증언을 토대로, 저자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선 범인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거들 틈으로 본 얼굴은 갸름했다. 머리는 짧게 깎아 마치 방위병 같아 보였고, 나이는 25세에서 27세정도로 보였다. 우리는 위의 사실을 기초로 해서 우선 용의자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시켰다. ......중략...... 인근 모 공군부대에서는 방위병들의 명단과 사진을 확보했다.'
위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수사팀은 방위병에게 수사의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일반인들이 연상하는 방위병은 20대 초반의 남자인데. 수사팀이 25세에서 27세 가량 되어보이는 스포츠형 머리의 남자를 방위병으로 국한했다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넷째, 연쇄살인범은 김 여인을 성폭행했지만 살해하지 못하고 놓쳤다. 그랬던 범인이 보름 뒤에 더욱 잔인한 수법으로 이 모 양을 살해했다. 그런 범인의 범행 행태에 대해서 저자는, 김 여인에게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욱 대담하고 잔인한 방법을 쓴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는 범인의 그런 범행 행태를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보려고 한다. 사건 당시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김 여인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관찰할 수 있었고, 수사팀은 김 여인으로부터 범인의 인상착의와 목소리의 특징을 확보했다. 당시의 상황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개의 사건이 그렇듯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어느 정도 확보되면 수사가 상당한 활기를 띠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범인 검거에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라도 밤낮없이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 위와 같이, 자신의 인상착의 노출로 인하여 검거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연쇄살인범은 범행을 중단하거나 숨지는 않고, 보름 뒤에 같은 지역에서 같은 범행을 더 대담한 수법으로 저질렀다. 범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수사와 경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등의 이유로, 자신이 검거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섯째, 8차 사건인 김 미영 양 사건의 수사 상황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당시에도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에서는 경찰의 수사 상황이 자세히 보도되었고, 심심찮게 사건 발생 지역 일대를 순찰하는 전경들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비쳐지기도 했다. 이를 통해 범인이 오히려 경찰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범인이 전경들의 배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현장 일대를 돌며 탐문 작업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결과 범인으로서는 전경이 사건 발생 지역 일대에 배치되기 전에 미리 숨어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전경 배치가 안 되어 있는 곳을 찾아내 범행을 계획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수사본부에서는 이런 여러 가지 가능성까지 고려해서 수사를 펴야했다.'
위와 같이 저자는, 범인이 언론을 통하여 그리고 사건 현장 일대를 돌며 탐문작업을 하여 경찰의 움직임을 감시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나는 한가지 가능성을 더 추가하려고 한다. 연쇄살인사건의 발생 초기부터 내가 제기했던 가능성인데, 범인이 수사관계자로부터 전경 배치 상황 등의 수사 정보를 확보했을 가능성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데에는 수사관계자들과 수사 협조 요청을 받았던 사람들의 솔직한 증언이 필요하다. 나는 그들과 면담한 후에 추가로 증언하려고 한다.
여섯째, 7차 살인사건 때, 범인이 사건 현장 부근에서 수원행 시외버스를 탔던 사실이 수사팀의 탐문수사에 의해 밝혀졌고, 수사팀은 그 버스기사와 안내양의 증언에 의하여 범인의 몽타주를 작성했다. 그런데 범인의 인상착의와 특징이 밝혀지게 된 계기는, 범인과 운전기사의 말다툼과, 범인이 운전기사에게 담뱃불을 빌린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건기록을 보면, 연쇄살인사건을 통틀어 사건 전후의 범인의 행적이 밝혀진 것은 7차 사건밖에 없다. 여타사건 때와 같은 범인의 용의주도한 범행수법에 따라 당시의 범인의 행동을 유추해본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는 운전기사와 말다툼을 하지 않았고 운전기사에게 담뱃불도 빌리지 않았다.' 하지만 범인은 시외버스 안에서 마치 자신의 인상착의와 검정전자손목시계, 문신, 손가락의 봉숭아물 등과 같은 자신의 특징들을 운전기사에게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듯이 '운전기사에게 담뱃불을 빌리고 담배를 입에 문 채 불이 꺼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감싸쥐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밝혀진 범인의 특징들 중 검정손목시계와 손가락의 봉숭아물 등은 대공요원들의 농간들과 관련이 있었고, 버스 안에서의 범인의 행동은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과 같은 형태였다.
일곱째, 1988년 9월 16일 박성희(가명)양이 살해됐는데, 수사팀은 그 사건을 모방범죄로 결론지었다. 그런 결론을 지은 이유는 연쇄살인사건에서 볼 수 있었던 수법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피해자의 옷이나 소지품으로 손발을 묶지 않았고, 거들이나 팬티로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고, 논밭이 아닌 피해자의 방에서 범행을 했고, 음부 난행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수법들 중 연쇄살인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수법은 야외에서 범행을 자행한 것과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 두 가지 뿐이며, 그 밖의 특징들은 각 사건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그런데 박 양 사건 현장에는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들이 발견됐는데, 목을 졸라 살해한 것과, 범행 현장인 방안에서 야산의 풀잎이 발견된 것(이는 범인이 야산에서 범행을 자행하려다가 범행 대상을 찾지 못하고 인가로 내려왔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리고 혈액형이 연쇄살인범의 것과 같은 B형이라는 것 등이다. 또한 연쇄살인범이 피해자들의 손발을 묶었던 것은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박 양 사건의 경우는, 사건 발생 추정 시간이 새벽 2시라고 했다. 그 시간이라면 박 양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범인은 박 양의 손발을 묶을 필요 없이 범행을 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89년 7월 25일 수사팀은 경운기수리센터 종업원인 윤 모씨를 박 양 살해범으로 검거했다. 저자의 기록에 따르면,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음모와 윤씨의 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DNA분석기법을 사용하여 비교해본 결과 서로 일치한다는 보고를 받았고, 그 즉시 윤씨를 체포해 자백을 받아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비교시험에 참여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가 쓴 책에도 위 시험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당시 사용했던 시험 방법은 DNA분석기법이 아니라 방사화분석시험이라고 했고, 그 시험 결과, 현장의 음모에서 알루미늄 망간 티타늄 같은 특정원소들의 함량이 대단히 높게 나타났으며, 그 함량이 높은 점과 방사성동위원소 10개 핵종의 각 함량들이 40% 편차 이내에서 윤씨의 음모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그와 관련한 자료를 나는 또 다른 책에서 확인했는데, 윤씨와 범인과 일반인의 특정원소 함량을 비교한 막대그래프였다. 그 그래프에 나타난 것을 보면, 망간 아연 같은 특정원소들의 각 함량이, 윤씨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범인이고, 일반인이 가장 낮았다. 어느 한 원소에서도 범인과 윤씨의 수치가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결과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사건현장에서 수거하여 제출한 범인의 음모와 윤씨의 음모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재판부에서는 국과수의 그런 결론을 증거로 채택하여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런데 윤씨가 구속되어있던 때인 1990년 11월 15일에 김미영 양 살해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범행수법을 분석해본 결과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결론지었다고 했다.
그리고 김 양 사건현장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됐는데, 그에 대한 '화성은...' 책 저자의 기록을 옮겨보겠다. '한편 이번 김미영 양 사건 때 발견된 흰 머리카락(새치)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결과였다. 흰 머리카락에서 나트륨, 망간, 아연 등이 일반사람들에 비해 수십 배 내지 수백 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수사팀에서는 당연히 직업에 대한 추측이 가능했다. 흰 머리카락의 주인은 비철금속 계통 즉 정비공이나 기타 기계류를 10년 가까이 다룬 사람이었다. 그 기간정도가 되어야 검출된 수치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서 특정 원소들의 함량이 높게 나타난 특이한 결과는, 책 저자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미 2년 전 발생했던 박 양 사건 때도 나타났었다. 박 양 사건 때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를 감정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의 글을 옮겨보겠다. '바로 현장의 음모가 방사화분석시험 결과, 특정원소들의 함량이 대단히 높은 수치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등과 같이 높은 함량을 보이는 금속성분들은 용접이나 금속물의 가공 등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에 많이 축적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체모 분석 결과, 박 양 사건과 김 양 사건 모두에서, 아연 망간 같은 특정원소 함량이 매우 높게 나타났고, 그에 따라 추정해본 두 사건의 범인의 직업군도 같은 것으로 나왔다. 그렇다면 박 양 사건은 모방범죄가 아니라 연쇄살인사건 중 하나이고, 그 사건의 범인도 윤씨가 아니라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높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뤘던 MBC뉴스에서, 수감되어있는 윤씨와의 인터뷰 장면이 방영됐는데, 윤씨는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했고,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범인이라고 허위자백을 했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취재진에게 호소했다. 이제라도 두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체모들과 윤씨의 것을, DNA분석과 같은 정밀한 검사를 다시 실시하여 진상을 규명하고, 억울하게 구속되어있는 윤씨를 풀어줘야 한다.
체모 분석에 관하여 덧붙인다면, 경찰이나 국과수 관계자 모두, 체모에서 망간 아연 같은 특정원소의 함량이 높게 나오는 직업군을 정비공이나 용접공 같은 일반인에게만 한정시켰다. 그런데 한 기록을 보면, 그런 높은 함량은 총기류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나타난다고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증거들과 수사과정을 분석해보면, 수사팀이 핵심에서 벗어난 수사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진상 규명은 하지 못하고 무고한 주민들을 용의자로 몰아 피해를 입힌 것이 드러난다.
1999년 1월 내가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를 들렀을 때, 나보다 한 발 앞서 그곳을 들렀던 대공요원은 연쇄살인범이 누구인지 알고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대공요원들을 수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긴 수사에 착수한다 하더라도 곧 벽에 부딪히고 말 것이 뻔하다.
대공수사라는 이름아래 직권을 남용하고 있는 대공요원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그들에 대한 법과 제도의 실질적인 통제가 가능해지는 날이 오기를 나는 기다린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나선다면 그런 날이 빨리 올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상
화성연쇄살인사건에, 그리고 그 사건을 다룬 영화와 연극에, 우리 사회는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런데 1998년 11월에 내가 대공요원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여 PC통신 게시판에 공개 제보했고, 그후 2개월 뒤에는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를 찾아가서 나의 제보에 대한 경찰의 처리 상황을 알아보고 그 결과 역시 공개했는데, 그런 나의 제보에는 우리 사회가 외면했다. 그 이유는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바로 대공요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제보해본다.
우선 화성연쇄살인사건에 관한 나의 첫 번째 공개 제보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대공요원들의 부당한 수사로 인하여 내가 피해를 당하고 있던 중 발생한 그 사건에는 대공요원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정황증거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연쇄살인범이 굳이 경찰 경비망을 뚫어가면서 범행을 자행했고, 그것들이 모두 완전범죄가 됐다는 것, 범행대상에 70대 노파가 포함된 것 등으로 미루어, 단순히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범행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경찰 경비와 수사 상황을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자가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유발시키기 위하여 저지른 범행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대한 루머와, 범행할 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던 범인의 정신병적인 행동 등은 대공요원들이 나에게 부려대는 농간들과 일치한다. 그래서 나는 대공요원을 용의자로 지목하여, 수사기관의 수사를 공개적으로 촉구한다.'
공개 제보를 하고 나서 2개월쯤 지났을 때, 용의자로 지목된 대공요원에 대한 경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확인해보기 위하여, 나는 태안파출소 내에 설치돼있는 수사본부로 전화해보았다.
나 :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입니까?
경찰: 예.
나 : 작년 11월, pc통신 하이텔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대공요 원이라는 사실이 제보됐는데, 알고 계십니까?
경찰: 모르겠어요.
나 : 경찰 자체에도 pc통신 게시물을 검색하는 부서가 있는 걸로 알 고 있는데요.
경찰: 그런 건 모르겠네요. 게시물 내용이 무엇인데요?
나 : 내용을 지금 보시겠어요? 하이텔로 들어가셔서......
경찰: 볼 수 없어요, 그런 체제가 갖춰지지 않아서. 전화로 얘기해봐요, 무슨 내용인가.
나 : 너무 길어서 전화로 얘기하긴 곤란한데요. 직접 보셔야 될 것 같 은데요. 그 내용 중엔 대공요원이 범인임을 알 수 있는 정황증거 들이 자세하게 적혀있거든요.
경찰: 여기에 와서 얘기해보겠어요?
나 : 그럼 이따 오후에 들르겠습니다.
오전에 수사본부로 전화했던 나는 서울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수사본부가 설치돼있는 태안파출소를 찾아갔다. 파출소에 들어서자 경사가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가 경사인지 경장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편의상 경사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순경이 서있었다. 순경이 나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pc통신에 연쇄살인사건에 관한 글을 올린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고는, 그 사건 담당경찰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어느 형사냐고 순경이 물었다. 누구인지 이름은 모르지만, 오전에 담당형사와 전화 통화하면서,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경사가 거들었다. 연쇄살인사건 담당형사가 수십 명이라서 누구인지 모르면 곤란하다고 했다. 나는,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나와 통화했던 형사가 나를 기다릴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금 형사들은 모두 외근 나갔으며 퇴근할 때에나 들어올 거라고 경찰이 말했다. 퇴근시간까지는 서너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경찰들을 향하여 혼잣말을 했다. "그럼 퇴근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겠는데." 그러자 경사가 순경에게 말했다. "계장님을 찾는 건가?" 그러면서 그들은 3층으로 올라가보라면서 계단이 있는 곳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3층 사무실에는 계장 직위를 가진 사복경찰이 혼자 소파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에게 오전에 전화하고 온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는 알겠다는 듯이 나를 맞았다. 내가 게시물이 인쇄된 용지를 점퍼 안주머니에서 꺼내려고 하는데 그가 먼저, pc통신에 올린 글을 가져오지 그랬느냐고 말했다. 나는 게시물이 인쇄된 용지를 그에게 건네줬다. 용지를 받아든 그는 글씨가 너무 작다면서 크게 인쇄를 하지 그랬느냐고 했다. 그리고는 안경을 꺼내어 쓰며 게시물을 읽기 시작했다.
글을 다 읽은 것을 보고 나는 그에게, 읽어보니까 어떻느냐고 물었다. 그는 게시물에 기독교 관련 글이 있다면서 기독교를 믿느냐고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가 의외의 질문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제시한 정황증거들에 대하여 그가 이의를 갖고있는지 듣기를 원했었다. 그는 자기도 기독교를 믿는다면서 테이블 한쪽에 읽다 만 듯 펼쳐져 있는 기독교서적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교회엔 안 다니고 집에서 혼자 믿는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면 안되고 교회엘 나가야 된다고 그가 말했다. 순간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 그의 말은 기독교인들이 전도할 때 항상 사용하는 말이어서, 내가 연쇄살인사건 담당경찰과 면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전도 받으러 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착각이 현실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화제를 연쇄살인사건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는 내 신상에 관하여 질문했다. 그의 질문에 따라 나는 주소와, 내가 전세로 살고 있음을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소보다는 전화번호를 물어보는데, 그리고 그게 더 실용적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는 내 전화번호는 묻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이유로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KBS라디오에 국민을 대상으로 창작가요를 공모하여 발표하는 프로가 있었고, 거기에 내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보냈는데, 그 가사 내용을 대공요원들이 오해한 것 같다고 내가 대답했다. 가사 내용은 내 신세를 탓하는 것이었고, 내용 중에 태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태양을 김일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대공요원들이 오해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응모 당시 나는 공고를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하고 있었고, 음악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이 다만 음악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막연히 작곡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작곡 기법에 관한 책 한 권을 사놓고 있었다. 그럴 즈음 KBS에 위와 같은 프로가 새로 생겨 작곡을 공모했고 나는 그에 응모했다. 뒤이어 작사 작곡 모두를 공모했고 나는 거기에도 응모했다. 그런데 작사는, 작곡 기법이란 책에 예문으로 실린 한 명곡의 가사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 당시의 내 신세를 탓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응모를 했는데, 반국가적인 시를 쓴 이유로 한 시인이 체포됐다는 내용의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나는 어떤 것이 반국가적인 시인가 궁금했고, 내가 쓴 가사는 어떤가 하고 되돌아봤다. 그런데 내 신세를 탓하는 내용을 국가를 탓하는 내용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가사 중에 나오는 태양이라는 단어를 김일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은 작사를 할 때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 대공요원들이 보내오는 농간의 편지들을 받았고, 나의 염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위의 내용을 경찰에게 설명해주자, 그는 사실대로 말한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것은 대공요원들이 수사할만한 사항도 못될뿐더러 수사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그런 것이 수사 대상이 된다면 시인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했다. 경찰의 그런 말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지금까지 대공요원들은 나의 언행 하나 하나를 생트집 잡으며 농간들을 부려대고 나를 모함해왔는데, 그 경찰은 같은 수사 계통에 종사하면서도 내 마음을 그렇게 선뜻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반가웠다. 그래서 나는 친한 사람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듯 그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렇죠? 저는 그 누구 못지 않은 반공주의자로 자부하고 있거든요."
60,70년대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 누구나 그랬듯이 나 역시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시키는 것은 반드시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줄 로만 알았다. 대공요원들로부터 인권유린을 당하는 지금까지도, 학창시절 받아들였던 반공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반공의 최일선에 서있던 것처럼 보였던 대공요원들이 실은 반공이란 미명아래 직권을 심각하게 악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의 말에 경찰은 대공요원들을 편들고 나섰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지." 나는 그런 그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공요원들이 그런 식으로 나를 넘겨짚었고, 거기엔 나의 어떤 해명도 소용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찰과 나의 대화는 대공요원들이 나에게 혐의를 두게된 또 다른 원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어느 공원에서 고교 졸업앨범 사진을 찍을 때였다. 네 명씩 짝을 지어 찍게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나를 포함하여 세 명뿐이었고 한 명이 모자랐지만 함께 사진 찍을 아이들은 보이지 않아 난처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처진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한 마디 했다. "누구를 한 명 포섭하지?" 그런데 포섭이란 말은 간첩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인 것 같아서 혹시 오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었지만, 금세 잊었다.
내가 경찰에게 위와 같았던 상황을 설명해주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랑 같이 있던 친구 중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던 것 같아요." 그러자 그는 "그렇게 오래 됐어요?"하고 물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나중에 역추적을 하다보니까 알게 됐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의 요구에 의하여 나는 당시의 상황을 다시 설명했던 것 같았다. 확실한 것은 그가, 그렇게 오래됐느냐는 질문을 다시 했고, 나는, 그때는 몰랐고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고 거듭 말했다.
위와 같이, 나는 경찰에게, 내가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는 이유에 대한 나의 추정을 얘기해줬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대공요원들이 한마디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나를 수사하며 나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고, 무슨 이유로 나를 수사하고 있는지 내가 알아보려고 해도 대공요원들은 몸을 숨기며 진상규명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대공요원들은 간첩사건 같은 것만 수사한다면서 그들은 나를 수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대공요원들이 나를 수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대답했다. 그가 게시물이 인쇄된 용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아마 나와 대면하던 중 내게서 포착한 것과 글 내용을 대조해보려는 듯했다. 게시물을 보고 있는 그를 향하여 내가 말했다. "그런 글 함부로 못 써요. 허위사실유포죄로 바로 고소당해요." 그런 내 말에 그는 아무 대꾸 없이 게시물만을 들여다봤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나의 피해의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아녜요."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어느 대공요원이냐고 물었다. 안기부(당시는 아직 국정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지 않았을 때였다)와 경찰 소속이라고 내가 대답했다. 그건 너무 막연하다고 그가 말했다. 안기부와 경찰이 합동으로 수사하고 있지 않느냐고 내가 물었다. 아니라고 그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만 해도 전국 각 경찰서마다 대공요원들이 있다고 했다. 소속과 신분을 밝히라고 요구해도 그들이 밝히지 않는다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대공요원들을 만나본 적이 있느냐고 그가 질문했다. 없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그들이 대공요원인줄 어떻게 아느냐고 그가 물었다.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 그들의 수사 행태를 보고 안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들이 어떻게 농간을 부리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그가 내게 요구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대공요원이 다녀갔잖아요." 그러자 그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어쩌면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화제를 돌렸다. 화제는 다시 대공요원들의 농간으로 향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라고 그가 다시 한번 똑같은 요구를 했다. 나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대공요원이 다녀갔잖아요." 그는 이번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대공요원들의 농간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려면 나는 큰 용기를 내야하고 곤혹스러워진다. 그들의 농간이 너무 어이없고 비인간적이며 편집광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경찰이 내 대답에 어떤 언급이라도 한다면 거기에 대응하여 대공요원들의 농간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지적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내 대답엔 아무런 언급도 없이 화제를 돌렸다.
내 주변사람들한테 그래왔듯이 대공요원들은 그에게도 대화를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라는 등의 여러 가지 요청을 했고, 내 주변사람들이 그래왔듯이 그 역시 대공요원들의 요청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공요원들이 어떤 농간들을 부려대고 있는지는 나보다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기회에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에 대하여 문제 제기해보겠다. 대공요원들은 대공수사에 협력해달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내 주변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명인사들에게도 특정한 말과 행동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대고 있다. 대공요원들의 그런 요청을 들어주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대공수사에 협력하는 것이라 스스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대공요원들의 그런 행태들을 나는 농간이라 부르고 있다. 문제는 대공요원들이 그런 농간들을 부려대는 동기와 목적이 국민을 모함하고 기만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비록 거절당하기는 했지만, 농간의 진상을 규명해줄 것을 나는 경찰, 국정원, 검찰 민원상담실 등 사회 각처에 호소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의 구체적인 원인과 형태들을 진술했었다. 그 진술 내용을 요약해보면, 대공요원들이 진상규명은 회피한 채, 자신들의 어이없고 편집광적인 의혹에서 파생된 농간들을 대공수사라는 미명아래 무차별적으로 부려대고 있다는 것이다.
대공요원들의 농간에 북한정보기관도 개입하고 있다. TV화면에 비친 북한측 인사들이 대공요원들의 농간들과 똑같은 농간들을 부려대는 것을 나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남북 정보기관들의 상호교류에 의한 합작 농간인지 아니면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에 혼선을 빚게 하기 위한 북한정보기관의 술책인지 분간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남북 정보기관들이 국민을 모함하고 기만하는 농간들을 함께 부려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경찰과의 대화로 돌아가본다. 경찰과의 대화 중간쯤 전화벨이 울렸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인지 그의 통화에 신경 쓰지 않고 잠시 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그는 인사말 같은 서두 없이 바로 본론을 말했다. 그는 당구 같은 것을 쳤던 것 같았다. 사백 오십인가 사오백인가 하는 점수를 말했는데, 그것이 자신의 점수인지 상대방의 점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미쓰나웃됐다라고 말했다. 통화가 끝난 뒤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그는 내가 대공요원들로부터 수사 받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추정했기 때문에 대공요원을 범인으로 단정하게 된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판단이 잘못됐다는 듯한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대공수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내 판단은 잘못되지 않았지만, 피해자들에 관한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침묵했다.
대공요원들을 수사할 의지가 그에게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가 말했다. "범인이 대공요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정황증거들을 제시했잖아요." 그는 내가 제시한 증거들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증거가 있으며, 수사팀이 혐의를 두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했다. 어떤 증거들인지 보여달라고 내가 요청했다. 그는 나에게 증거를 보여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수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보여달라는 거라고 내가 말했지만, 그는 수사상 이유로 증거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미 그 사건은 공개수사하고 있고, 그 사건에 관한 증거들은 언론에 모두 공개됐잖느냐고 내가 말했다. 그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공개되지 않은 증거들이 있다고 했다. 어떤 증거들인지 나에게 알려주면 내가 그 증거들에 대해서 설명해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 증거들은 국과수에서 검사한 결과라고만 말할 뿐 더 이상은 알려주지 않았다.
경찰의 질문에 따라서, 나는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갔었고, 나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라고 내가 말했다. 돌아올 때 돈을 어떻게 마련했느냐고 그가 질문했다. 집 판 돈을 갖고 갔었는데 그걸 도로 갖고 왔다고 내가 말했다. 그 돈을 예금해놓고 있느냐고 그가 물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답했다.
내가 갖고있는 돈에 관하여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다르다. 나는 외국에 이민 가기 전에 동생 돈으로 증권 투자를 하고 있었고, 그 증권은 남겨놓고 내 앞으로 되어있는 집을 판 돈은 외국으로 갖고 갔다.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는 돈을 갖고 오지 않았고, 남겨놓았던 증권을 내가 갖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과의 대화에서 나는 나의 돈에 관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증권 투자로 화제가 옮겨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돈에 관한 부분에서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경찰은 나의 생활형편에 대해서 질문했다. 나는 대공요원들에 의해 파괴된 내 생활을 그에게 말해주고는, 대공요원들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고 그에게 하소연했다. 그러자 그는 소설을 써보라고 했다. 게시물에도 언급했었지만, 나는 대공요원들의 직권남용을 세상에 알릴 생각으로 작가가 되려고 했고, 습작을 했었지만, 글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길을 이미 포기했던 터였다. 그랬기에 소설을 써보라는 그의 말은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이제 그만 사건수사본부 사무실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대공요원을 수사할 생각이 없느냐고 경찰에게 마지막 질문을 해보았다. 무슨 의도에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그가 반문했다. 다만 확인해보려는 것뿐이라고 내가 말했다. 그가 더 이상 말이 없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는 듯해서 내가 머뭇거렸지만, 그는 화제를 돌리기만 할 뿐 뚜렷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사무실을 나왔다.
1층으로 내려오니 순경 혼자만 남아있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말을 나눴느냐고 물으면서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웃는 표정을 지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무뚝뚝하게 예 하는 대답을 하며 태안파출소를 나왔다.
증거들과 수사과정에 대한 분석
내가 위의 글을 인터넷에 공개하려고 할 즈음, 화성연쇄살인사건을 기록한 책을 보게됐다. 그 사건을 5년 동안 담당했던 형사가 쓴 그 책에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증거들과 수사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돼있었다. 그 증거들과 수사과정을 내가 분석해보겠다.
첫째, 내가 제시했던 정황증거들 중에는 '연쇄살인범이 의도적으로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대한 범행을 자행했을 가능성'이 들어있다. 그런데 '화성은...' 책 저자는 그런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웠다. 전체 사건 가운데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해당되는 사건은 한두 건뿐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고, 또한 어두운 밤에는 짙은 색은 모두 검게 보여서 색의 구별이 안되기 때문에 범인이 의도적으로 빨간 옷을 노렸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8차 사건인 김미영(가명)양 살해사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번 김미영 양 사건의 발생장소였던 소나무밭 오솔길 입구는 해질 무렵인 오후 7시부터 8시 사이에 의경을 배치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범인이 출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즉 의경이 배치되기 전에 범인은 미리 산 속으로 숨어들어 가 범행대상을 물색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범인은 평소 의경의 배치여부를 그 시간대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김미영 양의 귀가시간까지 미리 알고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흉기를 소지하지 않고 다니면서 피해자를 목 졸라 죽인 범인의 행태를 두고 저자는 '이처럼 화성사건의 범인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고 분석했다.
나는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에 대한 범행 역시 김 양 사건과 같은 수법의 사건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즉 범인이 사전계획 하에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연쇄살인범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던 김 모 여인이 있었다. 내가 들었던 라디오 뉴스에 의하면, 김 여인이 사건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기를, 연쇄살인범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고 했고, 그런 뉴스는 청취자로 하여금, 범인은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라는 추정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런데 저자의 책에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사람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입에 재갈이 물린 김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김 여인의 중얼거림이 범인의 중얼거림으로 뒤바뀌어 뉴스로 나가게 된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
셋째, 그 김 여인의 증언을 토대로, 저자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선 범인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거들 틈으로 본 얼굴은 갸름했다. 머리는 짧게 깎아 마치 방위병 같아 보였고, 나이는 25세에서 27세정도로 보였다. 우리는 위의 사실을 기초로 해서 우선 용의자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시켰다. ......중략...... 인근 모 공군부대에서는 방위병들의 명단과 사진을 확보했다.'
위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수사팀은 방위병에게 수사의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일반인들이 연상하는 방위병은 20대 초반의 남자인데. 수사팀이 25세에서 27세 가량 되어보이는 스포츠형 머리의 남자를 방위병으로 국한했다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넷째, 연쇄살인범은 김 여인을 성폭행했지만 살해하지 못하고 놓쳤다. 그랬던 범인이 보름 뒤에 더욱 잔인한 수법으로 이 모 양을 살해했다. 그런 범인의 범행 행태에 대해서 저자는, 김 여인에게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욱 대담하고 잔인한 방법을 쓴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는 범인의 그런 범행 행태를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보려고 한다. 사건 당시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김 여인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관찰할 수 있었고, 수사팀은 김 여인으로부터 범인의 인상착의와 목소리의 특징을 확보했다. 당시의 상황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개의 사건이 그렇듯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어느 정도 확보되면 수사가 상당한 활기를 띠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범인 검거에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라도 밤낮없이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 위와 같이, 자신의 인상착의 노출로 인하여 검거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연쇄살인범은 범행을 중단하거나 숨지는 않고, 보름 뒤에 같은 지역에서 같은 범행을 더 대담한 수법으로 저질렀다. 범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수사와 경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등의 이유로, 자신이 검거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섯째, 8차 사건인 김 미영 양 사건의 수사 상황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당시에도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에서는 경찰의 수사 상황이 자세히 보도되었고, 심심찮게 사건 발생 지역 일대를 순찰하는 전경들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비쳐지기도 했다. 이를 통해 범인이 오히려 경찰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범인이 전경들의 배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현장 일대를 돌며 탐문 작업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결과 범인으로서는 전경이 사건 발생 지역 일대에 배치되기 전에 미리 숨어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전경 배치가 안 되어 있는 곳을 찾아내 범행을 계획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수사본부에서는 이런 여러 가지 가능성까지 고려해서 수사를 펴야했다.'
위와 같이 저자는, 범인이 언론을 통하여 그리고 사건 현장 일대를 돌며 탐문작업을 하여 경찰의 움직임을 감시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나는 한가지 가능성을 더 추가하려고 한다. 연쇄살인사건의 발생 초기부터 내가 제기했던 가능성인데, 범인이 수사관계자로부터 전경 배치 상황 등의 수사 정보를 확보했을 가능성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데에는 수사관계자들과 수사 협조 요청을 받았던 사람들의 솔직한 증언이 필요하다. 나는 그들과 면담한 후에 추가로 증언하려고 한다.
여섯째, 7차 살인사건 때, 범인이 사건 현장 부근에서 수원행 시외버스를 탔던 사실이 수사팀의 탐문수사에 의해 밝혀졌고, 수사팀은 그 버스기사와 안내양의 증언에 의하여 범인의 몽타주를 작성했다. 그런데 범인의 인상착의와 특징이 밝혀지게 된 계기는, 범인과 운전기사의 말다툼과, 범인이 운전기사에게 담뱃불을 빌린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건기록을 보면, 연쇄살인사건을 통틀어 사건 전후의 범인의 행적이 밝혀진 것은 7차 사건밖에 없다. 여타사건 때와 같은 범인의 용의주도한 범행수법에 따라 당시의 범인의 행동을 유추해본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는 운전기사와 말다툼을 하지 않았고 운전기사에게 담뱃불도 빌리지 않았다.' 하지만 범인은 시외버스 안에서 마치 자신의 인상착의와 검정전자손목시계, 문신, 손가락의 봉숭아물 등과 같은 자신의 특징들을 운전기사에게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듯이 '운전기사에게 담뱃불을 빌리고 담배를 입에 문 채 불이 꺼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감싸쥐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밝혀진 범인의 특징들 중 검정손목시계와 손가락의 봉숭아물 등은 대공요원들의 농간들과 관련이 있었고, 버스 안에서의 범인의 행동은 대공요원들이 부려대는 농간들과 같은 형태였다.
일곱째, 1988년 9월 16일 박성희(가명)양이 살해됐는데, 수사팀은 그 사건을 모방범죄로 결론지었다. 그런 결론을 지은 이유는 연쇄살인사건에서 볼 수 있었던 수법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피해자의 옷이나 소지품으로 손발을 묶지 않았고, 거들이나 팬티로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고, 논밭이 아닌 피해자의 방에서 범행을 했고, 음부 난행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수법들 중 연쇄살인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수법은 야외에서 범행을 자행한 것과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 두 가지 뿐이며, 그 밖의 특징들은 각 사건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그런데 박 양 사건 현장에는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들이 발견됐는데, 목을 졸라 살해한 것과, 범행 현장인 방안에서 야산의 풀잎이 발견된 것(이는 범인이 야산에서 범행을 자행하려다가 범행 대상을 찾지 못하고 인가로 내려왔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리고 혈액형이 연쇄살인범의 것과 같은 B형이라는 것 등이다. 또한 연쇄살인범이 피해자들의 손발을 묶었던 것은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박 양 사건의 경우는, 사건 발생 추정 시간이 새벽 2시라고 했다. 그 시간이라면 박 양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범인은 박 양의 손발을 묶을 필요 없이 범행을 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89년 7월 25일 수사팀은 경운기수리센터 종업원인 윤 모씨를 박 양 살해범으로 검거했다. 저자의 기록에 따르면,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음모와 윤씨의 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DNA분석기법을 사용하여 비교해본 결과 서로 일치한다는 보고를 받았고, 그 즉시 윤씨를 체포해 자백을 받아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비교시험에 참여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가 쓴 책에도 위 시험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당시 사용했던 시험 방법은 DNA분석기법이 아니라 방사화분석시험이라고 했고, 그 시험 결과, 현장의 음모에서 알루미늄 망간 티타늄 같은 특정원소들의 함량이 대단히 높게 나타났으며, 그 함량이 높은 점과 방사성동위원소 10개 핵종의 각 함량들이 40% 편차 이내에서 윤씨의 음모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그와 관련한 자료를 나는 또 다른 책에서 확인했는데, 윤씨와 범인과 일반인의 특정원소 함량을 비교한 막대그래프였다. 그 그래프에 나타난 것을 보면, 망간 아연 같은 특정원소들의 각 함량이, 윤씨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범인이고, 일반인이 가장 낮았다. 어느 한 원소에서도 범인과 윤씨의 수치가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결과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사건현장에서 수거하여 제출한 범인의 음모와 윤씨의 음모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재판부에서는 국과수의 그런 결론을 증거로 채택하여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런데 윤씨가 구속되어있던 때인 1990년 11월 15일에 김미영 양 살해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범행수법을 분석해본 결과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결론지었다고 했다.
그리고 김 양 사건현장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됐는데, 그에 대한 '화성은...' 책 저자의 기록을 옮겨보겠다. '한편 이번 김미영 양 사건 때 발견된 흰 머리카락(새치)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결과였다. 흰 머리카락에서 나트륨, 망간, 아연 등이 일반사람들에 비해 수십 배 내지 수백 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수사팀에서는 당연히 직업에 대한 추측이 가능했다. 흰 머리카락의 주인은 비철금속 계통 즉 정비공이나 기타 기계류를 10년 가까이 다룬 사람이었다. 그 기간정도가 되어야 검출된 수치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서 특정 원소들의 함량이 높게 나타난 특이한 결과는, 책 저자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미 2년 전 발생했던 박 양 사건 때도 나타났었다. 박 양 사건 때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를 감정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의 글을 옮겨보겠다. '바로 현장의 음모가 방사화분석시험 결과, 특정원소들의 함량이 대단히 높은 수치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등과 같이 높은 함량을 보이는 금속성분들은 용접이나 금속물의 가공 등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에 많이 축적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체모 분석 결과, 박 양 사건과 김 양 사건 모두에서, 아연 망간 같은 특정원소 함량이 매우 높게 나타났고, 그에 따라 추정해본 두 사건의 범인의 직업군도 같은 것으로 나왔다. 그렇다면 박 양 사건은 모방범죄가 아니라 연쇄살인사건 중 하나이고, 그 사건의 범인도 윤씨가 아니라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높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뤘던 MBC뉴스에서, 수감되어있는 윤씨와의 인터뷰 장면이 방영됐는데, 윤씨는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했고,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범인이라고 허위자백을 했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취재진에게 호소했다. 이제라도 두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체모들과 윤씨의 것을, DNA분석과 같은 정밀한 검사를 다시 실시하여 진상을 규명하고, 억울하게 구속되어있는 윤씨를 풀어줘야 한다.
체모 분석에 관하여 덧붙인다면, 경찰이나 국과수 관계자 모두, 체모에서 망간 아연 같은 특정원소의 함량이 높게 나오는 직업군을 정비공이나 용접공 같은 일반인에게만 한정시켰다. 그런데 한 기록을 보면, 그런 높은 함량은 총기류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나타난다고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증거들과 수사과정을 분석해보면, 수사팀이 핵심에서 벗어난 수사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진상 규명은 하지 못하고 무고한 주민들을 용의자로 몰아 피해를 입힌 것이 드러난다.
1999년 1월 내가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를 들렀을 때, 나보다 한 발 앞서 그곳을 들렀던 대공요원은 연쇄살인범이 누구인지 알고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대공요원들을 수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긴 수사에 착수한다 하더라도 곧 벽에 부딪히고 말 것이 뻔하다.
대공수사라는 이름아래 직권을 남용하고 있는 대공요원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그들에 대한 법과 제도의 실질적인 통제가 가능해지는 날이 오기를 나는 기다린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나선다면 그런 날이 빨리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