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하나님 차원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치에 도달하지 않으면 동문서답이 될 뿐이다.
2)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비유를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면 알아 들지 못하는 것이다.
3) 안식일의 주인은 ‘그 사람의 그 아들’로 ‘삽빠톤(안식일)’이므로 하나님 자신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은 비사와 비유의 관계로 된 말씀이라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나. 본론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마 12: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마 12:11).”
1) 하나님 차원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치에 도달하지 않으면 동문서답이 될 뿐이다.
위 말씀은 모두 비유(파라볼레)로 되어 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하지 말라는 행위를 제자들이 했다고 예수 그리스도께 항변하고 있다. 안식일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비유(파라볼레)로 되어 있다. 하나님 차원의 진리를 사람의 언어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치에 있지 아니하면 절대 알 수 없는 동문서답이 될 뿐이다.
2)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비유를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면 알아 들지 못하는 것이다.
구약의 안식일에 대한 것들이 나온다. 이것은 신약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관한 사건을 비유하여 그림자로 말씀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많은 일을 하셨다.
3) 안식일의 주인은 ‘그 사람의 그 아들’로 ‘삽빠톤(안식일)’이므로 하나님 자신이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8).”
(호스테 퀴리오스 에스틴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카이 투 삽바투)
바른 번역은 ‘그러므로 이와 같이 그 사람의 그 아들이 그 안식일의 주이다.’
‘안식일에도 주인이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의미는 그런 뜻이 아니다. ‘안식일(삽바투)’이 소유격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도’가 아니다. ‘인자’로 번역된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는 ‘그 사람의 그 아들’이다.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그 사람의 그 아들이 바로 ‘삽빠톤(안식일)’이다. 시간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삽빠톤’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시간 개념으로 삽빠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동문서답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은 비사와 비유의 관계로 된 말씀이라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사에 관심이 없다.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초월하신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무엇으로부터도 항상 평안(삽빠톤)하시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