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랑 천유가 질문하는 편지>
제가 옛날 장사에 있을 때 원오노사의 편지를 받았는데,
스님에 대하여 칭찬하시기를
'늦게 서로 만났으나 얻은 것이 매우 기특하고 훌륭하다.'
고 하셨습니다.
생각하기를 두번 세번 한지가 이제 8년이 되었으나
직접 법문을 듣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오직 간절히 공경하고 우러러 바라볼 뿐입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마음을 내어 선지식을 참례하고 이 일을 물었으나
약관의 나이가 된 뒤에는 곧 혼인하고 벼슬하는 일에 쫒겨
공부를 하는 것이 순일하지 못했습니다.
그럭저럭 노년에 이르렀으되 들은 것이 없어
항상 부끄럽고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뜻을 세우고 원을 세운 것은 실제 얕은 생각에서 한 것이 아닙니다.
깨닫지 못한다면 그만이겠습니다만,
깨닫는다면 모름지기 바로 고인이 친히 깨달은 곳에 이르는 것이
바야흐로 크게 쉬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마음은 비록 한 생각도 물러나지 않았으나
공부가 끝내 순일하지 못함을 자각하니
뜻과 원은 크되 힘이 작다고 하겠습니다.
옛날 원오노사께 매우 간청하였더니
노사께서 법어의 여섯 단을 보이셨습니다.
그 처음은 바로 이 일을 보이시고,
뒤에는 운문, 조주스님의 방하착과 수미산
두 인연을 들어서 둔한 공부를 내리셨습니다.
'항상 스스로 성성하게 화두를 들어라.
오래고 오래면 반드시 들어갈 곳이 있을 것이다.'
하신 스님의 간절한 마음이 이와 같았건마는
둔하고 막힌 것이 지극히 심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지금 다행히 집안의 세속 일을 다 마치고
한가하게 지내며 다른 일이 없으니,
스스로 채찍질 해서 처음 뜻을 실행하고자 합니다.
다만 친히 가르치심을 얻지 못함을 한탄할 뿐입니다.
일생동안 허물을 하나하나 보여드렸으니,
반드시 제 마음을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자세하게 경계하고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평소 마땅히 어떻게 공부해야
다른 길에 빠지지 않고 바로 본지풍광과 서로 계합하겠습니까?
이와같은 말도 허물이 또한 적지 않습니다만
다만 정성을 바칩니다.
스스로 피하기 어려우니 진실로 가련하여 지극히 묻습니다.
<중시랑에게 답함 1 >
편지를 받아보니
어릴 때부터 벼슬하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큰 스승을 찾아뵙다가
중간에 과거와 혼인, 벼슬하는 일 때문에 세속생각과
습관에 빠져서 순수하게 한결같이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을
큰 죄라 하였습니다.
또 무상한 세간이 여러가지 허망한 환상이어서
한가지도 즐길만 한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을 다하여 이 일대사인연을 참구하고자 한다 하시니
제 마음이 매우 흡족합니다.
이미 선비가 되었기 때문에 봉급을 받아 생계를 해결해야 하고
과거와 혼인과 벼슬살이도 세간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대의 잘못이 아닌데, 작은 잘못으로 큰 두려움을 내었습니다.
시작없는 오랜 세월부터 참된 선지식을 섬기고
깊은 반야의 지혜를 익히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겠습니까?
그런데 그대가 말한 큰 죄라는 것은 성현도 또한 면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헛된 환상이며 구경의 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능히 마음을 진리의 문 안으로 돌려
지혜의 물로써 먼지로 오염된 때를 씻어버리고
깨끗하게 스스로 머물러야 합니다.
바로 한 칼로 두 동강을 내고
다시는 상속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드시 앞도 생각하지말고, 뒤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미 헛된 환상이라고 말한다면,
지을 때도 환상이며,
받을 때도 또한 환상이며,
지각할 때도 또한 환상이며,
미혹하여 넘어질 때도 또한 환상이며,
과거 현재 미래도 다 이 환상입니다.
오늘 잘못을 알았다면
환상의 약으로 다시 환상의 병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병이 나아서 약이 필요없게 되면,
그 전과 같이 다만 옛날 사람입니다.
만약 특별히 사람이 있고 별도로 법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삿된 마군인 외도의 견해입니다.
그대는 깊이 생각하여 다만 이와같이 공부해 가되
때때로 고요할 때에 수미산, 방하착의 두 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착실하게 공부를 해 갈지언정
이미 지나간 것은 두려워하지 말고
또한 결코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하고 두려워하면 곧 도에 방해가 될 것입니다.
다만 모든 부처님 앞에 큰 소원을 세우기를
'이 마음이 견고해서 영원히 물러나지 않고,
모든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거하여 선지식을 만나서,
한마디 말 아래 생사를 한 순간에 잊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지혜를 깨달아
부처님의 혜명을 이어서
모든 부처님의 막대한 은혜를 갚게 해주소서' 하십시오.
만약 이와같이 하기를 오래오래 하면
깨닫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보지 않았습니까?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따라서 보리심을 내어
점차 남쪽으로 가서 110개의 성을 지나서 33선지식을 참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미륵보살이 손가락을 퉁기는 사이에
지나온 여러 신지식으로부터 얻은 가르침을
한 순간에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미륵보살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문수보살을 뵙고자 생각했는데
이에 문수보살이 멀리서 손을 펴서 110 유순을 지나서
선재동자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셨습니다.
"착하고 착하다.
만약 믿음이 없었다면, 마음이 용렬하여 근심하고 후회하며,
공덕의 행위를 갖추지 못하고 정진도 하지 않아서,
마음이 한 선근에 집착하며,
적은 공덕에 문득 만족했을 것이다.
옳은 방법으로 실천과 원력을 발하여 일으키지도 못하며,
선지식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고
이와같은 법성과 이취와 법문과 실천과 경계까지도
통달하여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주변지와 종종지와 근원을 다한 것과
통달하여 아는 것과 취입과 해탈과 분별과 증지와
획득도 다 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문수보살이 이와같이 선재동자에게 보였는데
선재동자는 바로 한량없는 법문을 성취해서
한량없이 큰 지혜의 광명을 갖추었습니다.
보현보살의 세계에 들어가 한 생각 가운데서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수 만큼의 모든 선지식을 만나보고
다 친근하며 공경하여 섬기고 그 가르침을 받아 실천하여
불망념지로 장엄한 해탈을 얻었습니다.
보현보살의 털구멍 세계에 들어가서
한 털구멍에 한 걸음을 옮기되
이루 말할 수 없는 미진수 세계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서
보현보살과 같으며 모든 부처님과 같으며
세계도 같으며 행위도 같으며 해탈하여 자재함이 다 같고
둘이 아니며 차별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때가 되어야 비로소 삼독을 돌이켜 삼취정계를 이루며
육식을 돌이켜 육신통을 이루며
번뇌를 돌이켜 보리를 이루며
무명을 돌이켜 큰 지혜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한 꾸러미의 일들은 다만 당사자의
마지막 한 생각 진실한 것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선재동자는 미륵보살이 한번 손가락을 퉁기는 사이에
오히려 선지식으로부터 증득한 삼매도 한순간에 잊어버렸는데
하물며 시작없는 허위와 악업과 습기 이겠습니까?
만약 앞에 지은 바 잘못을 실제로 여긴다면
지금 눈앞의 경계도 다 실제로 여길 것이며
관직과 부귀와 은애도 다 실제로 여기게될 것입니다.
이미 이것들을 실제로 여긴다면
지옥과 천당도 또한 실제이며
번뇌와 무명도 실제이며
업을 짓는 것도 실제이며
과보 받는 것도 또한 실제이며
깨달은 법문도 실제가 될 것입니다.
만약 이같은 견해를 짓는다면 미래를 다하더라도
다시 어떤 사람도 부처님 가르침에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님들의
갖가지 방편이 도리어 망어가 될 것입니다.
받아보니,
그대가 편지를 보낼 때에 모든 성인을 위하여 향을 사르고
멀리 암자쪽으로 예배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대의 정성스런 마음이 지극히 간절합니다.
서로 떨어진 거리가 비록 많이 멀지는 않지만
만나서 말하지 못했으므로
뜻 따라 손 따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지럽게 쓰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비록 번거로우나 또한 성의와 지극한 마음에서 나와서
감히 한마디 말과 한 글자도 서로 속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대를 속인다면 이것은 제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뿐입니다.
또 기억해 보니 선재동자가 적정바라문을 만나고 성어해탈을 얻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보살이 아뇩보리에서
과거에도 이미 물러남이 없었고
현재에도 물러남이 없으며
미래에도 물러나지 않아서
구하는 것을 이루지 않음이 없었던 것은
다 성실함이 지극한 데에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대가 이미 대나무 의자와 포단으로 친구를 삼는다고 하니
선재동자가 최적정바라문을 만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 운문에게 편지를 보낼 때 모든 성인을 대하고
멀리서 예배를 한 뒤에 보낸 것은 다만 저를 믿은 것이니
이것은 정성이 매우 지극한 것입니다.
다만 자세히 들으십시오.
다만 이같이 공부를 해 가면
아뇩보리를 틀림없이 원만히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