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마음(카르디아)으로부터 놓임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의 노예가 되어 방황하게 된다.
2) 하아다마의 마음을 해체하여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면 여자에 대해 음욕을 품게 된다.
3)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의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한 말씀이다.
4) 마가의 다락방에 나타난 사건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내면에 오심이다.
나. 본론
1) 마음(카르디아)으로부터 놓임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마음(카르디아)으로부터 놓임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의 노예가 되어 계속해서 고난의 과정에 머물러 방황하게 된다.
이래서 말씀에서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아다마(천국)로부터 아파르(땅의 티끌, 사람)를 이끌어 내신다. 하아다마를 해체하여 분석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아다마(속사람)로부터 에덴 아다마(겉 사람)가 드러나게 된다. 에덴동산이 열리게 된다. 그 안에 있는 생명나무를 만나게 되지만, 선악지식나무가 맞대면하여 있는 것이다.
아파르는 마음의 깨달음에 들어갔던 경험과 마음의 깨달음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말씀하고 있다. 이래서 이 내용은 대단히 중요하다.
2) 하아다마의 마음을 해체하여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면 여자에 대해 음욕을 품게 된다.
하아다마는 과거의 모든 경험을 저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에레츠(마음)로부터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안개 곧 眼耳鼻舌身意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것을 쉬지 않고 강력하게 빨아들인다(창 2:6).
하아다마의 마음을 해체하여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면 여자에 대해 음욕을 항상 품게 되어 간음하게 되는 것이다.
3)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의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한 말씀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 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납득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31)”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권함을 받다”로 번역한 ‘페이스데손타이’는 직설법, 수동태로 ‘확신이 되다.’ ‘동의하게 되다’의 뜻으로 그 실상을 온전히 알아서 이해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납득이 되다.’ ‘이해가 되다’의 의미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자색 옷을 입은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의 비유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바로 그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그 당시 이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는 제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4) 마가의 다락방에 나타나신 사건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내면에 오심이다.
그 문(양의 우리의 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실 수 있도록 먼저 훈련과 고뇌가 있음을 각 서신 서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동안 마음은 에고(겉 사람)를 견고하게 하는데 길들여 왔다. 부활(깨달음)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마가의 다락방으로 오신 사건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깨달아야 한다.
닫혀 있는 다락방은 각자 내면(내 마음)이다. 훈련된 제자들의 에고(겉 사람)의 벽을 뚫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밖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며,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도 아니다. 내면세계의 구름(믿음의 선진)이며, 내면 하늘에 떠 있는 생명의 별들이다.
이처럼 내면에 있는 양 우리의 문을 통하여 들어오지 않는 자들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로서 이들이 도적이요, 강도며, 양들을 훔치고 늑탈하는 자들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