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는 물레와 방아의 연결이다. 물레는 자력으로 돌고 방아는 타력으로 돈다. 물레는 조절하고 방아는 의존한다. 물레포지션에 서는 것이 다르마라면 방아 포지션에 서는 것이 동기다. 물레는 물에 의해 계속 돌고 있다. 그 에너지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방아는 멈추어 있다. 물레와 연결되려고 한다. 사람들이 강조하는 명성, 성공, 쾌락, 사랑, 행복 따위 동기는 물레를 찾는 방아의 간절한 외침이다. 물레가 갑이고 방아는 을이다. 이미 망해 있다.
힘이 없는 자가 집단에 의지하는게 동기다. 집단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동기는 다르마에 의해 제한된다. 동기는 동물의 영역본능, 세력본능을 인간이 주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호르몬에 의해 흥분한 거다. 다르마는 집단 속에서 주어지므로 개인의 주관이 배제된다. 흥분이 가라앉는다. 병사는 총을 쏴야 한다.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는다. 장총이면 먼거리에서 쏘고 권총이면 근거리에서 쏜다. 쏘느냐 마느냐는 총이 결정하는 것이다.
사형집행인은 죄수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집행 버튼을 누를 뿐이다. 사형수의 운명은 이전에 결정되어 있다. 사형수는 사형수 자신의 행위에 의해 죽는 것이다. 사형수는 사형집행인의 손을 빌려 자기를 살해한 것이다. 의사는 자신의 환자가 살인자가 아닌지 생각할 이유가 없다. 의사는 살인범 체포에 필요하다고 해도 의료상의 비밀을 누설할 수 없다. 영화에서 의사는 경찰이 보도록 환자의 자료를 놔두고 화장실에 다녀온다.
다르마는 의무다. 자신의 의무가 축구 심판인데 동기가 애국이면 자국에 유리하게 판정한다. 헌재 재판관이 보수주의자라면? 의무를 따르는가, 동기를 따르는가? 의무를 따르면 미국 대법관이 교과서에 창조론을 실을 수 없다고 판결하고 동기를 따르면 창조론을 교과서에 싣도록 허용하는 판결을 한다. 미국 대법관은 보수 판사였지만 진보 판결을 했다. 다르마 때문이다. 재판관의 양심을 믿고 사법제도를 만든 애초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의무는 의하여다. 법관이 무언가를 위하여 판결하면 곤란하다. 법률에 의하여 판결할 뿐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판결하면 나라가 망한다. 후건이 전건을 치면 안 된다. 법이 잘못되었으면 국회가 법을 고쳐야지 법관이 판결을 고치면 안 된다. 본에서 잘못된 것을 말에서 바로잡으면 그게 보상판정이고 분식회계다. 얼버무리는 짓이다. 그런 짓을 반복하면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요령 좋은 뒷사람에게 떠넘겨 수습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