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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5 박사무엘 아빠입니다.
지난 2월 13일 2차 교육에 참석했어요.
그때 학부모들이 서로 인사하며, 많은 의견을 나누었어요.
자녀에 대한 많은 고민과 노력을 들으며 무척 공감되는 시간이었네요.
저희 가족도 최근에 아이들 때문에, 여러 고민을 하며 아이들의 꿈을 찾아 여행 중이랍니다.
그 중 하나가 교육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인데, 여기에 한 챕터씩 묶어서 올리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바쁜 일상 중에도 매일 조금씩 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좀 더 아이들을 알아가려고 노력중이거든요. ^^*
또 부모가 먼저 변해야 아이들도 보고 배우니까요.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이 그대로 아이들의 교육으로 연결되니까요.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하브루타로 교육하라
전성수 지음
“우리의 교육은 ‘듣고 외우고 시험 보고 잊어버리고’의 끝없는 반복이다.
자녀의 성공과 가족의 행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길,
그것이 하브루타이다.“
PROLOGUE 무엇이 유대인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이 자신을 질투하는 사울을 피해 숨어 지냈다는 이스라엘의 엔게디 계곡에서 한 유대인 가족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 가족에게서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이들이 엔게디 입구에서 폭포까지 1시간이나 걸리는 그 험한 길을 제 발로 직접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들의 손만 잡아줄 뿐이었다. 게다가 목적지까지 올라가 한참 동안 폭포를 감상한 뒤 산을 내려갈 때도 아이가 스스로 걸어서 내려가게 했다.
이 사소하면서도 인상적인 풍경 속에서 나는 오늘날 유대인 교육의 힘을 보았다. 한국 부모들이라면 어땠을까? 아이의 몸에 행여 생채기라도 날까 노심초사하여 아예 산에 아이를 데려갈 엄두조차 내지 않았거나, 설령 데려가더라도 등에 업거나 안고 올라갔을 것이다. 아이의 기를 살려준다고 식당에서 소란을 피워도, 지하철 의자 위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도 그냥 내버려두는 한국 부모들의 어긋난 애정이 씁쓸하게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아이에 대한 교육열은 어떠한가? 유대인의 교육열이 높다고 하지만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인 우리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한국인의 지능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공부한다. 그런데도 우리보다 IQ가 평균 12점이나 낮은 유대인이 노벨상을 휩쓸고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에 훨씬 많이 입학한다. 이것이 인구 8,000여만 명의 한국인과 1,500여만 명의 유대인을 비교한 결과이다.
한국인은 지능, 공부 시간, 교육열에서 가히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영 신통하지 않다.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서도 왜 우리는 이런 결과밖에 내지 못하는 것일까? 이것이 내가 유대인 교육에 관심을 가진 계기이며, 이후 6년 동안 탐구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2009년, 나는 두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곳곳을 탐방하며 그곳 유대인과 교포, 그리고 랍비를 만나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대인 가정, 학교, 회당을 직접 체험했다. 내가 시종일관 품었던 화두는 ‘무엇이 유대인을 강하게 만들었는가?’였다. 유대인에 관한 책들에는 역사 교육, 고난 교육, 영재 교육, 경제 교육, 탈무드 교육, 베갯머리 교육, 밥상머리 교육, 쩨다카 정신, 티쿤 올람(유대교 신앙의 기본 원리 중 하나로 ‘세계를 고친다’. 즉 ‘신의 창조를 인간이 완전하게 한다’는 뜻의 히브리어), 유머 등 그 이유가 수없이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30여 년 교육학을 전공한 나의 직감으로는 단 하나의 비결만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하브루타’였다. 하브루타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아하, 바로 이거야!”라고 소리쳤다.
간단히 말하면, 하브루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 즉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친구, 동료 등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라면 모두와의 사이에서 하브루타가 이루어진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으면 질문과 대답이 되고 곧 대화로 이어지며 거기서 더 전문화되면 토론과 논쟁이 된다.
단지 짝지어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토론만으로 ‘특별한 유대인’이 만들어질까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바르루타가 어떻게 유대인의 삶과 교육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는지 자세하게 살펴보겠다. 이 책의 내용이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실현될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패러타임을 뿌리째 뒤흔드는 교육혁명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듣는 교육’은 ‘묻는 교육’으로,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은 ‘교사와 학생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교육’으로, ‘하나의 정답’은 ‘여러 가지 해답’으로, ‘성공 지향’은 ‘성공과 행복이 동시 추구’ 등으로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이다.
... 생략
부디 이 책이 오직 좋은 대학과 직장을 목표로 단편적인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 학교와 학원에서 하루 15시간 넘도록 허비하게 만드는 이 땅의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교육혁명의 씨앗이 되길 감히 소망한다.
교육혁명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전성수 쓰다.
목차
프롤로그 - 무엇이 유대인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1. 유대인은 하브루타 교육으로 만들어진다
1) 대화의 기적, 하브루타 교육
① 유대인처럼 아이와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라
② 탈무드의 첫 장고 마지막 장은 왜 비어 있을까?
③ 좋은 질문을 하는 아이가 학급의 리더가 된다
④ 유대인 부모는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⑤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가장 좋은 해답을 구하라
2) 평범한 아이를 세계 최고의 인재로 만드는 유대인 자녀교육
① 세계 0.25퍼센트, 노벨상 30퍼센트
② 유대인들은 머리가 좋다?
③ 두뇌 발달을 위한 최고의 방법, 하브루타
④ 하브루타로 두뇌를 격동시켜라
⑤ 하브루타로 우뇌와 좌뇌를 고르게 발달시켜라
3) 세계의 모든 정상에는 유대인이 있다
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영화계를 주도하라
② 법조계와 언론계를 휩쓰는 논쟁의 달인들
③ 특유의 소통 능력으로 정계와 학계를 장악하라
④ 설득과 관계의 전문가들, 경제계와 금융계를 휩쓸다
4) 가족 하브루타로 부모와 아이 사이 0센티미터
① 유대인 가족 간의 애착은 왜 강할까?
②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③ 아이의 첫 장난감, 저금통
④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씨앗, 쩨다카 정신
5) 생각하는 아이가 모든 것을 가진다
① 지혜를 쌓아 지식을 이용하라
②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자가 생각의 힘을 얻는다
③ 존경하되 비판적으로 질문하라
④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⑤ 창의적인 인성의 출발점
2.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 말하기를 겁내지 않는 아이
1) 하브루타는 책도 살아 움직이게 한다
① 책과 세상을 연결시켜라
② 부모의 질문으로 아이의 호기심을 부추겨 독서력을 키워라
③ 하브루타는 '살아 있는 책 읽기'에서 시작된다
④ 저절로 성장하는 마법의 시간, 베드 타임 스토리
2) 인성 교육은 밥상머리에서 시작된다
① 가족의 행복과 성공을 이끄는 천국의 식탁
② 유대인만의 시크릿, 성공을 대호와 토론의 탁자로 만들어라
3) 공부를 놀이처럼
① 공부와 놀이를 분리하지 마라
② 유대인 부모는 수수께끼와 유머 있는 놀이로 소통한다
③ 끝없는 수다로 스트레스를 없애라
4) 시끄러워야 진짜 공부이다
① 시장통보다 더 시끄러운 유대인 교실
② 반드시 짝을 지어라
③ 1 + 1 = 무한대, 짝을 지으면 공부 효과가 극대화 된다
④ 유대인 학생들에게는 외워야 할 교과서가 없다
⑤ 하브루타로 평생의 친구를 얻어라
5) 하브루타로 다르게, 새롭게 생각하라
① 정답은 없다. 셜록 홈즈처럼 생각하라!
② 탈무드 논쟁은 서로의 사고를 날카롭게 벼린다
③ 자유롭게 대화하되 형식을 갖춰라
④ 사고를 가로막는 정답을 찾지 말고 질문을 던져라
⑤ 당연한 일상에서 질문을 만들어라
3. 아이의 행복한 공부를 꿈꾸는 교육
1) 아이의 성공보다 가족의 행복을 우선하라
① 아빠를 그리워하는 한국 아이들
② 가족의 유대감을 강화하라
③ 하루 10분, 아이에게 집중해서 대화하라
2) '듣는 교육'에서 '묻는 교육'으로
① 질문하는 아이 vs. 듣고 외우는 기계
② 만들어진 우등생
③ '마침표 질문'에서 '물음표 질문'으로
3) 높은 성적보다 탄탄한 실력을 쌓아라
① 성적표를 찢어라
② 아이를 '정답의 노예' 아닌 '해답의 주인'으로 키워라
4) 조기 학습은 엄마의 대리 만족용 욕심
① 우리 아이들은 왜 소아정신과를 찾게 됐을까?
② 무엇을 할까? vs. 무엇을 하지 말까?
③ 아이의 뇌가 원하는 것은?
5)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라
① 부모의 스토커 사랑이 아이를 꼭두각시로 만든다
② 성적은 최상위, 동기는 최하위
③ 칭찬도 독이 될 수 있다
6) 확고한 정체성에서 절대적 자신감이 나온다
① 세계적인 유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정체성 교육
② 부모의 체면과 자랑이 아이를 흔들리게 한다
1. 유대인은 하브루타 교육으로 만들어진다
1) 대화의 기적, 하브루타 교육
① 유대인처럼 아이와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라
유대인에게 하브루타는 마치 공기와도 같아서 평생 일상적으로 실천한다. 하브루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 즉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하브루타의 원래 원어적인 의미는 '친구, 짝, 파트너'를 뜻하며 친구라는 뜻의 '하베르'에서 유래했다. 이것이 '짝과 함께 공부하는 것'으로 확대됐고, 그 공부 방법은 주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하브루타는 토라나 탈무드를 공부할 때 둘씩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답하며 대화, 토론, 논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유대 문화가 하브루타에 기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태교로 엄마 뱃속의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고 말을 건네는 것부터 식탁에서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ㄴ누는 것, 아이가 잠들기 전 베갯머리에서 베드 타임 스토리를 들려주며 대호를 나누는 것,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 혹은 급우들 사이에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것, 예시바에서 우연히 함께 마주 앉은 낯선 사람과 탈무드에 대해 토론하는 것, 회당에서 평생지기와 함께 논쟁을 통해 탈무드를 공부하는 것까지 전부를 일컬어 하브루타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길거리, 식당, 카페 등에서도 이야기를 나눌 상대만 있다면 모두와의 사이에서 하브루타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브루타의 짝은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친구, 동료, 낯선 사람 등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으면 질문과 대답이 되고, 그것은 곧 대화로 이어지며, 나아가 전문성이 더해지면 토론과 논쟁으로 귀결된다.
② 탈무드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은 왜 비어 있을까?
탈무드는 랍비, 현자, 학자들의 논쟁집이다. 현실의 삶 속에서 어떻게 토라를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유대인의 고민은 토라에 대한 해석을 낳았다. 그리고 이런 해석들은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해석들을 편집한 내용이 '미쉬나'이고, 미쉬나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한 내용이 '게마라'이다. 탈무드는 바로 이 두 가지를 모은 것이다. 즉 탈무드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토론과 논쟁을 모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에 지혜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종교, 경제, 의학, 행복, 유머, 평화, 전쟁, 죽음 등 인생에 대한 수많은 대화가 세밀하게 담겨 있다. 삶의 모든 영역에 걸친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기 때문에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평생 연구해야 할 경전처럼 여겨진다. 유대인이 탈무드를 공부할 때 한 번 읽는 데만 7년 반이 걸린다. 한마디로 탈무드는 유대인의 삶 자체이자 대표적인 자녀교육서이다.
탈무드는 이미 완결된 책이 아니라 유구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발전하며 변화하는 책이다. 탈무드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은 공란으로 남아 있다. 탈무드에 1쪽이 없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언제나 삶의 과정을 살아 나가는 도중에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또한 탈무드를 공부하는 데 따로 시작이 없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탈무드를 연구하는 데는 최초가 없다. 누구나 자기 삶이 놓여 있는 현재의 그곳에서 시작하여 탈무드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탈무드의 마지막 쪽도 언제나 비어 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탈무드 연구에 더하여 각자의 인생 경험과 지식을 써 넣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목적에서이다. 아무리 뛰어난 지혜라도 매일 살아가는 삶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탈무드 저자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전수하는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교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류 보편에 다가가길 바랐다. 그들은 자신이 써놓은 교훈을 전문 학자들뿐 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전하고자 했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교육 체제에 따르면 초등학교 중급 학년부터 탈무드 연구를 시작하여 점차 더 깊은 분석 수준을 거쳐 최고 수준의 학문적인 연구 단계로까지 나아간다. 이런 교육 체제의 목표 중 한 가지는 학생의 내면에 탈무드의 맛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탈무드 연구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게 하려는 것이다.
유대인은 날마다 회당에서 탈무드를 공부한다. 유대인 회당에는 기도회를 하는 공간 옆에 탈무드 토론과 논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유대인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두 번 회당에 가서 세 번의 기도회를 갖는다. 아침이나 저녁 기도회가 끝나면 평생지기와 두셋씩 짝지어 탈무드를 공부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이런 공부는 본문을 가지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서 평생 탈무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화된 토론과 논쟁은 유대인의 뇌를, 숫돌에 칼을 갈 듯이 날카롭게 만들어왔다.
유대인은 탈무드의 한두 구절을 가지고도 한참 동안 논쟁을 벌인다. 한 사람이 해석하면 다른 사람이 그 해석에 대해 반박하면서 논쟁이 계속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석하고 질문하는 역을 바꾸어 논쟁을 계속하는, 이른바 하브루타 공부법을 평생 해나간다. 하브루타에서 두 사람은 각자 발췌한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분투하고 보다 큰 이슈와 자기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토론한다.
이처럼 유대인은 일생 동안 방대한 양의 탈무드를 공부한다. 처음에는 부모와 함께 하루 두세 장씩, 그리고 나이가 들면 7년 반마다 한 번씩 일독을 해가면서 평생 공부를 반복한다. 이 과정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질문과 답변을 되풀이함으로써 체계적인 사고력, 논리력, 창의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이다.
무엇인가 배워간다는 것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배움의 여정은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난다. 유대인은 이것을 끝없이 계속한다. 어느 수준에 올랐다고 배움을 멈추거나 연구를 중단하는 일이 없다. 임종이 눈앞에 왔을 때조차도 머릿속 아이디어를 노트에 쓰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의 일화는 그런 유대인의 교육 여정을 잘 설명해 준다.
유대인은 끊임없이 배우기 위해서는 배움을 즐기라고 말한다. 지겨운 일을 오래 할 수 없듯이 배움을 즐기지 않고서는 그것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유대인은 아이가 세 살이 되면 꿀로 히브리어 알파벳을 적어 혀로 핥으며 글자를 깨우치도록 한다. 어릴 때부터 배움은 달콤한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려는 전통이다. 아이에게 공부가 지겨운 것이 아니라 꿀처럼 달고 맛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대학에 가는 것만을 공부의 목표로 삼는 우리와는 달리, 유대인은 어느 정도 어른이 된 후에, 즉 대학 때부터, 아니 더 나이가 들어서부터 참다운 학문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 시절의 지능이나 성적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능이 낮은 어린이, 성격이 원만하지 못한 어린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투자한다. 결코 그 아이들이 포기하거나 좌절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꾸준한 노력을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에게 더 많이 집중하는 게 교육의 본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③ 좋은 질문을 하는 아이가 학급의 리더가 된다
수천 년의 유구한 세월에 걸쳐 축적된 현인들의 대화집인 방대한 분량의 탈무드를 일반 사람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연구가, 마빈 토케이어는 “유대인 학교에서 가장 훌륭한 학생은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입니다.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이 학급의 리더가 되지요”라고 말했다.
유대인 학생들은 항상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탈무드를 펼치고 한 구절씩 읽어가며 토론과 논쟁을 벌인다. ‘탈무드 디베이트’라고도 불리는 이 교육 방식은 특정한 주제나 현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끝없이 의문하여 질문하고, 더 나은 대안과 해결책을 탐색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탈무드식 토론과 논쟁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가정에서부터 부모와 아이 사이에 시작된다. 유대인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토라와 탈무드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통해 가르친다. 집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탈무드를 펼쳐놓은 채 서로 마주 앉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차례대로 본문을 읽고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으면서 그 내용에 대해 토론한다. 질문과 토론 중심의 교육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용수 박사는 이를 ‘탈무드식 논쟁법’이라고 부른다.
‘질문’을 자녀 교육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하는 유대인 부모는 항상 아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부모에게서 질문을 받은 아이는 제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부모의 견해에 대응하기 위해 논리적인 방안을 요모조모 고심하는 과정에서 사고력을 키우고 저절로 지혜가 자란다. 이 토론에서는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다. 맞고 틀리고도 없다. 정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거나 남 앞에서 자기 의견을 잘 말하지 못하는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대인 아이는 그렇지 않다. 어릴 때부터 탈무드 교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모와 대화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고 존중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대인 부모는 절대 아이를 강제로 앉혀 놓고 억지로 공부시키지 않는다.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싶으면 그것에 관한 질문만 던질 뿐, 아이가 직접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아이는 스스로 부모의 질문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발적으로 독서하고, 책을 통해 새로 얻은 생각들을 글로 정리한다. 비단 하나의 주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예술, 학문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주제들이 아이에게 다양한 분야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유대인 부모는 늘 ‘답을 얻기 위해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질문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후 가장 좋은 질문을 골라서 아이에게 던진다. 그런 부모의 노력은 아이에게도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부모 슬하에 자란 아이는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통해 지식을 얻어가는 과정이 재미있기만 하다. 수업을 잘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으면서 토론하는 것이다. 이렇게 질문하는 습관은 평생에 걸쳐 형성되고 반복되기 때문에 다른 민족은 따라올 수 없는 유대인만의 탁월한 뇌가 만들어진다.
유대인은 “100명이 있다면 100개의 대답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유대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들은 모든 주제에 대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다. 예시바의 어느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탈무드는 항상 ‘이럴 수도 있지만 저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질문합니다. 질문을 받은 사람이 스스로 자기 답을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 사람 안에는 진실이 있으며 질문을 통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무엇’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인간’과 어원이 같습니다. 즉 인간은 ‘무엇’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동물입니다. 우리는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하고 아이에게도 질문을 하게끔 가르칩니다.”
마빈 토케이어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아이들이 던지는 모든 질문은 절대 그릇된 것이 없으며 오로지 어른들의 빈약하고 잘못된 답변만이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아이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교사”인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모든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되므로 아이의 교육을 학교나 학원에 떠맡기기 이전에 부모가 먼저 책을 펼치고서 공부하는 배움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④ 유대인 부모는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브루타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난다. 먼저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이 이어야 토론이 되고 논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질문은 그 사람의 수준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잘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질문하기 때문에 질문 내용까지가 그 사람의 수준이다. 또한 질문은 그 질문을 받은 사람이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그 힘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게도 발휘된다. 질문은 생각을 결정하고, 생각은 마음가짐을 결정하며, 마음가짐은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성공과 행복을 모두 거머쥔 사람들은 자기 삶에 대해 사색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사색도 일종의 하브루타이다. 사색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질문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이끌고 창의성을 샘솟게 한다. 아이의 뇌를 깨워서 생각하게 하고 싶은가? 질문하라! 질문하면 뇌가 깨어나고 호기심이 생긴다.
훌륭한 카운슬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귀를 활짝 열어둔 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생각들을 스스로 정리하도록 질문을 던진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깜짝 놀라곤 한다.
이때 우리의 뇌는 긴장하면서 호기심을 갖는다. 그러면 뜻밖의 좋은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좋은 질문이 없으면 좋은 해답도 없다. 또 다른 좋은 질문으로도 이어지지 못한다.
사람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궁금해 죽을 것 같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가득하고 궁금증이 늘어나면 질문은 자연스레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은 곧 학습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다. 태어나서 유아기를 거칠 때까지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으로 무수한 질문을 해대기 시작한다. 이 시가에 아이의 호기심과 자기 동기, 그리고 질문을 제대로 유지해 주기만 해도 우리의 교육은 성공적이다. 아이 스스로 알고 싶어서 계속 질문하고 주도적으로 공부하기만 하면 부모나 교사가 따로 해줄 것이 거의 없지 않은가?
아이의 호기심을 계속 살려서 자기 궁금증을 스스로 탐색하고 생각하고 공부하게 할 수 있느냐는 부모가 그 호기심을 얼마나 잘 받아주고 자극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창 호기심 강한 나이의 아이들은 항상 “뭐야?”, “왜?”, “어떻게?” 같은 단어들을 입에 달고 산다. 이런 질문 공세에 대부분의 부모들이 대답해 주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하지만 그 대답은 대개 아이의 질문에 대해 정답을 알려주는 형태이다. 아이에게 직접 정답을 말하면 아이는 스스로 생각을 하거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게 된다. 즉각적으로 되돌아오는 부모의 모범 답안으로 인해 아이가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는 수고를 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식의 대화는 부모도 곧 한계에 도달해서 지치고, 아이는 아이대로 더 이상 생각할 거리가 없으므로 재미도 없어진다. 물론 아이의 질문 횟수까지 점점 줄어들고, 이때부터 교육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힘들고 재미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유대인의 하브루타는 아이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즉각적으로 정답을 알려주는 것을 금기한다. 대신 아이의 질문에 대해 부모가 다시 반문하여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끌거나, 아이와 함께 책을 찾아보면서 그 질문의 주제와 관련된 대화를 계속 이어간다. 그러기 위해서 유대인 부모는 자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실 아이와 대화하고 토론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교육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공부 내용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유대인 부모들은 대부분 스스로 책을 찾아 읽으며 노력한다. 그들에게 공부는 즐거움이고 평생 하는 것이다. 어려운 수학, 과학, 역사 등을 공부해서 아이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 분야를 공부해서 아이와 토론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은 유대인 교육의 기본이다. 유대인 공동체가 크게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가 바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인 것도 가히 놀랍지는 않다. 스스로 공부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 공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질문은 그 사람의 인생을 이끌고 간다. 질문이 있어야 호기심이 생기고 내적 동기가 일어나며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물리학을 넘어서는 나만의 물리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상대성 이론이 등장했다. 프로이트를 이끈 질문은 ‘무엇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가?’였고, 그 질문이 무의식과 정신분석의 세계로 안내했다. 아이에게 평생 질문을 갖게 한다면 아이는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 일생 동안 열정과 능력을 다해 몰두할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을 이끄는 것도 질문이다. 질문이 생겨야 책을 찾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교사에게 질문하면서 스스로 탐구하게 된다.
대오각성은 대부분 마음을 꿰뚫는 질문에 대한 큰 깨달음을 말하며, 그것은 주로 직접적인 체험에서 나온다. 불분명한 현상이나 의문은 체험을 통해서만 밝힐 수 있다. 결국 체험함으로써 현명한 해답을 구할 수 있다. 고대 랍비들은 너무 깊이 고민만 하는 것은 도리어 행동하는 순간을 지연시킨다고 가르쳤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은 위험하다. 행동해야 할 순간에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적절한 때에 맞추어 대담하게 행동하는 자만이 승리한다. 생각뿐만 아니라 체험과 같은 실제적인 지식도 중요한 것이다.
유대인은 교육이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영적인 일임을 인정해 왔다. 그들의 교육은 근본적으로 생명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는 지식과 생활을 일치시킬 것을 강조하여 인격적으로 변화하도록 요구한다. 그들은 항상 사소한 일상 생활에서 질문을 이끌어낸다. 그런 질문을 통해 대화와 토론을 시작하는데, 토라와 탈무드로 논쟁하더라도 결말에 가서는 이것을 어떻게 나의 현재 삶에 적용할 것인가를 토론한다. 토라와 탈무드의 내용이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실천으로 옮긴다. 그들은 지식이 반드시 지혜와 연결돼야 하고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어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훌륭한 지혜라도 내가 지금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토라와 탈무드가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먼지 쌓이게 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유효한 원동력일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 그때까지 배운 것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힘이 되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뿐이다. 우리가 뭔가를 배우는 이유는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고, 지성과 감성을 연마하여 날카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오랫동안 한 가지에 매진해 온 사람에게는 예리한 안목과 통찰력이 생긴다. 순간의 직감에 따라 내려지는 결단은 그때까지 쌓아올린 지혜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 직감이 바로 통찰력이다. 배운다는 것은 순간적인 통찰력을 얻기 위한 준비 작업인 것이다. 하브루타는 그런 통찰력을 기르는 데 아주 탁월한 방법이다.
⑤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가장 좋은 해답을 구하라
얼핏 보면 하브루타는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통해 인생에 관한 진리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하는 반문법과 무지를 자각함으로써 진리를 파악하게 하는 산파법을 구사했다. 그의 질문법은 질문과 응답의 형식을 통해 개념을 규정해 나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할 때는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 솔직하고 간결하게 대답할 것과 질문 사항에만 대답함으로써 논점을 흐리지 않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철학의 길이란 질문과 대화를 통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음으로써 사람들의 근원적인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질문의 이면에 감춰져 잇는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함이다.
하브루타는 그 효과와 목적 면에서 소크라테스 질문법과 비슷하지만 핵심적인 차이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소크라테스 질문법은 주로 교사와 학생,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루어지지만 하브루타는 기본적으로 학생과 학생 사이에 이루어진다. 둘째, 소크라테스 질문법은 한 학생에게만 집중해서 대화하지만, 하브루타는 모든 학생들이 각자 집중해서 대화한다. 셋째, 소크라테스 질문법은 교사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으며 학생은 교사가 제시하는 정답을 얻도록 유도된다. 교사의 정답을 얻어내는데 학습의 초점을 맞추면 학생은 해답을 알아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어 자신의 사고력과 판단력을 비판적으로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 학생이 독자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교사의 생각을 알아내는 데 의존하기 때문이다.
반면 하브루타는 교사의 정답에 의존하지 않고 교사와 동등하게 진리를 탐구하기 때문에 학생이 토론 과정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브루타는 교사가 최종적으로 정답을 알려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기정사실로 굳어진 정답에 대해서도 또 다른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 하브루타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단 하나의 정답을 도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데 꼭 필요한 비판적인 사고력을 계발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질문은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하브루타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각자 이해하고 있는 내용을 심도 깊게 음미함으로써 텍스트에 대한 공부 차원을 넘어선다. 교사와 학생은 텍스트에 담긴 내용의 의미와 원리, 그리고 미묘한 차이까지 찾아내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 그들은 '학습과 이해‘라는 끝없는 순환과정을 계속한다.
전통적인 토론과 논쟁은 설득과 합의를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두 사람이 옳다고 인정하는 해답이나 결론이 하나로 도출되면 그 과정은 끝나버린다. 자기 생각을 주장하며 다른 사람을 설득함으로써 토론이나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하브루타는 두 사람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과정을 중시하므로 개별적인 해결책이 나오거나 하나의 정답에 도달해도 탐색은 끝나지 않고 학습은 제한 없이 계속된다.
하브루타는 탐색 과정 자체에 몰두시키는 학생 중심 학습법의 독특한 형태이다. 짝을 활용하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학습법인 하브루타는 텍스트를 세밀하게 연구하고, 단 하나의 옳은 정답이 아니라 가장 좋은 해답을 구하기 위해 질문과 대답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토론에 몰두한다. 이것은 대화의 한 형태인 동시에 협동 학습의 한 방법이다. 텍스트의 의미를 찾는 하브루타는 개인 각자의 이해를 추구하고 확장시킨다. 그 과정 자체가 학습의 목적인 것이다.
하브루타 학습을 활용하고 싶다면, 교사의 역할을 정보를 나눠주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의 발견을 촉진하는 사람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부터 이해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답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뿐 만 아니라 더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도 해야 한다. 자신이 왜 그런 답에 도달했는지 증명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되묻는 질문을 준비하는 것은 필수이다. 교사가 미리 마련해 둔 자신의 결론으로 이끌려 한다면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출 것이다. 하브루타는 교사가 학생들에게서 정답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하여 자기만의 사고 방법을 갈고닦는 데 중점을 둔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린 토론’이다.
대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 중심의 교실에서 교사가 하브루타를 시도하면 교사와 한 학생 사이의 소크라테스 질문법과 비슷해진다. 하브루타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의 토론이 아니라 학생들끼리의 토론이 가능해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특정한 본문이나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교사는 단지 조언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부모나 교사가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교육 현장에서 하브루타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보다 넓고 깊은 이해에 도달하며,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서로의 아이디어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법을 터득한다.
--- 이렇게라도 하나씩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 글을 올려봅니다. ^^*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도 함께 참여하는 다빈치 융합 영재아카데미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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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먼저 사무엘아버님이 좋은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하고 다시 한번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 또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보다 아이들이 대화를 통하여 서로 얘기하는 것이 결국 토론이며 질문이되기도 하기때문에 이런 하브루타 교육야말로 구태연한 주입식교육이 아닌 능동적인 교육이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다빈치융합아카데미학생들도 서로 토론하며 질문하는 그런 장이 마련 되기를 희망합니다. 서로 눈치보며 누가하겠지 하지말고 내가 먼저 발표하고자 하는 질문하고자하는 상대방얘기에 경청하는 아이들이 됐으면 합니다.
격려의 댓글 감사합니다~~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더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 드네요
격려 감사합니다. 저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
마음의 경적을 울리는 글 감사드립니다.
마음으로는 와 닿으면서 선뜻 하지 못했던게 제 모습이였는데, 반성 해야겠어요.
더 커다란 세상을 위해서....홧팅 입니다.
쉽지 않네요. 그래도 서점에 가서 책도 찾아보고, 시간 날때마다 책도 읽고, 유튜브를 찾아 강의 등을 들으면서 우리 아이는 어떤 아이인지, 또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지, 아이에 대해 알아 가고 있어요. 하나씩 알아가면서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꼭 제가 꼭 폴리페몸 같거든요. ㅠ.ㅠ 부모의 기대감에 아이들을 맞추어 명령하고, 따라 하도록 수동적인 모습으로 만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능동적인 아이들을 꿈꾸며 키우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하루가 조금씩 달라질 것을 기대하며 말이죠. ^^* 저는 세 아이를 두었는데 하루를 공부하지 말고, 푹 쉬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더니 잘 적응을 못하는 것 같네요.
@초5 박사무엘 학부모 단, TV, 게임 등은 하지 말고... 처음에는 왔다 갔다 하며 레고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다가 또 다시 와서는 "아빠 TV 봐도 되요?" 하고 물어요. 안 된다고 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 보라고 조언을 해주죠. 그렇게 여러 차례를 했더니 그냥 알아서 자기들끼리 노네요~~~~ ^^* 이런 것들을 보며 생각하는 것도 많아지네요... 아이들이 자기주도 학습이 되어야 하는데요.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을 이해하며, 자신의 꿈을 위해 비상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하루동안의 자기 주도학습안의 자유시간 멋지네요.
저도 한번 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