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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1~5 요한의 복음
요17:3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을 너머 4복음서라고 하는데, 요한은 역사적 예수를 너머서, 예수는 누구인가를 7개의 소개와 7개의 표적을 통해서 예수가 누구인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나는 ~ 이다.” 라는 7가지 소개.
1 나는 생명의 떡이니 - 요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라 - 요8:12
3 나는 양의 문이라 - 요10:7
4 나는 선한 목자라 - 요10:11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 요11:25
6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 -요14:6
7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7가지 표적.
1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
2 왕의 신하를 고친 표적
3 베데스다 병자를 고친 표적
4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표적
5 바다 위를 걸어오신 표적
6 소경을 보게 하신 표적
7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7가지 예수님의 소개와 7가지 표적을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는데, SF영화 마술 구전동화 같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이셨는데, 특별히 마지막에는 예수께서 직접 곧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보이셨습니다. 십자가 대속과 부활은 교회의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한 마디로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 전체의 목적이기도 한데,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옛날에 심형래 주연의 우레매를 극장에서 재밌게 본 적이 있는데,
성경은 요한과 야고보를 우레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독수리 복음이라고 합니다. 옛날에 독수리 가족이 하늘을 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처럼 고상하게 나는 새가 없습니다. 아빠 독수리 엄마 독수리가 나는데 하늘에 레일을 깔아놓은 것처럼 미끄러지듯이 나는데, 전혀 미동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식 독수리는 아직 덜 자라서 가끔 날개 짓을 하면서 푸드덕 푸드덕 따라가는데, 그것을 보면서 역시 하늘의 왕자는 독수리구나 감탄을 하였습니다. 아무튼 요한복음을 독수리 복음이라고 하는 이유는 역사를 초월한 영적인 복음서임과 동시에, 우주적이며, 신적인 복음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사랑의 계명, 다른 공관복음보다, 예수께서 새계명을 주신 것을 강조하는데,
요13:3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새언약으로 오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딱 한 가지입니다. 성도끼리 서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모든 사도가 순교하고, 말년의 요한이 부축을 받으면서, 강단에서 설교한 내용은 딱 한 가지였다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그러나 동시에 사랑의 사도라고 일컬음을 받던 요한이 매우 대쪽같이 과단성 있게 심지어 접촉까지도 하지 않았던 것은 이단 사설이었습니다. 요한은 이단에 대해 단호합니다. 바울은 몇 번 훈계하고 멀리하라고 한 반면, 요한은 목욕탕에서까지 함께 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케린투스라는 이단과 에비온이라는 이단이 있었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고, 그냥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거나, 예수는 하나님이 단지 인간의 가면을 입고 왔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그들의 사설에 대하여 예수께서 사람의 탈을 입고 오신 분이 아니라,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선재성을 선포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란 말은, 영원 전, 창세전을 말합니다. 우주가 시작되기도 전입니다. 우주는 밀떡같이 풍선같이 시작되어 지금도 부풀어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전부터 예수께서 계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여기서 예수님을 ‘로고스’로 소개하는 이유는, ‘로고스’는 언어 또는 논리, 또는 헬라적 개념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간 존재를 말하는 관용어였는데, 그러나 요한은 여기서 예수님을 ‘로고스’ 말씀이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참 사람 참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경의 시작과 마침까지 관여한 말씀하여 오신 분입니다.
요8:2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컴퓨터에 명령어를 입력하면, 무엇을 하지 않는가요. 하물며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무엇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모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유한성이 있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영원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릅니다. 또한 메뚜기는 일 년을 모릅니다. 개구리도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지 모릅니다. 소는 역사를 모릅니다. 사람이 역사책을 쓰고 살지만, 영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몇 천 년 역사만 알 뿐, 사람은 죽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 계신 아들로서 계시다가 나타나셔서 아버지를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은 아버지 안에 있던 아들이 나타나서, 아들이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밝혔다는 것입니다.
요14:8~9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계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창세기1장을 보면, 성부 성자 성령께서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창조하셨는데, 사람도,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또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로 올라가면 딱 한 사람이 나오는데, 줄줄이 올라가면 조상이 똑같습니다. 심지어 철수나 영희나 나까무라나 왕서방이나 알간디 모르간디나 데이비드나 효돌스키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흑인이나 조상이 똑같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이 아담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아담을 흙으로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되었습니다. 이 숨이 떠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숨을 불러 모으십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전구입니다.
잠20: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솔로몬은 사람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혼은 땅으로 내려간다고 하였는데, 사람이 아무리 잘나도 사람입니다.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범신론은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고 믿는 것인데,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고 하였으나, 그것은 잘 보면 천사처럼 된다는 것이지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부활논쟁에서 사두개인들이 7형제와 함께 있던 여자는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사람이 부활하면 시집도 장가도 아니가고 하늘의 천사와 같이 된다고 하셨는데, 그러나 천사조차도 가브리엘 천사를 제외하면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됩니까. 내가 만약 하나님이 되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런데 그런 거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살후2: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마귀는 하나님이 만드신 천사장이었는데,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고 하다가 천국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사14:12~15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그런데 이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속여서, 죄를 짓게 하고, 타락하게 만들었는데, 이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왔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첫 사람이 타락함으로, 콩 심은데 콩 나듯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는데 죄와 죽음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람 속에는 하나님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종류별로 창조하셨습니다. 진화론이 아닙니다. 만약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지금도 어느 정글에서 어느 동물원에서 원숭이에서 사람이 되는 진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심지어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골1:15~17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나님은 생명의 빛을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생명은 너무 신기한 것입니다. 풀과 나무 벌레를 보세요. 그런데 사람에게는 숨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다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죄를 지어 이 생명을 꺼뜨렸습니다. 원래는 천년 이상 살 수 있었는데, 아담이 죄를 지어 수명이 단축되었고, 노아 때를 기준으로 120살로 정해졌습니다. 죄와 죽음으로 세상에 어둠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를 지어도 바로 꺼뜨리지 않으시고, 때가 되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참 빛을 비추셨습니다.
요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고후4:6 어두운데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추셨느니라.
지금 전구가 Led로 거의 다 바뀌었는데, 성능이 옛날 전구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전구들에게 죄 사함과 부활생명 곧 새 빛 참 빛을 새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빛을 믿어 생명을 얻어 구원을 받게 함입니다. 할렐루야!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계시록을 보면, 이것이 분명해지는데,
계21:22~23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5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에 빛 그 자체 생명 그 자체입니다. 예수를 믿어 새 삶을 살도록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부활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러나 타락하여 어두어진 영혼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하고 방관하므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역설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요한이 말하는 것의 요점은,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심판주 구원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너무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우리 집에 온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얼마나 두렵고 또 기쁜 일입니까. 하물며,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데 오신 이유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참사랑과 새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빛을 교회를 통해서 비추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빛을 받아서 새생명으로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