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렇게 보낸 여름날’에서 배우는 생명의 가치
제1회 독후감상
민병식
작품의 서두는 여름의 뜨거움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부터 출발한다. 산 밑 높은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작가의 집, 지인 들도, 연탄 배달꾼도 좀처럼 방문하려 하지 않는 후미진 곳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외딴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사랑한다. 오동나무 가지, 풋감, 초가지붕의 박 덩굴,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내려다 보는 시가지 풍경 등 작가를 행복하게 하는 여름의 요소 들에 대해 나열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아주 차분하고 부드럽게 시작하여 서정적 분위기의 글이 내용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게 한다.
물론 하릴없는 여름 나절,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견딜 재간이 없어 물탱크에 담겨있는 물이라도 좀 뿌려야 뜨거움을 견딜 수 있다 싶겠다는 표현은 독자로 하여금 숨이 턱턱 막히고 더워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뜨거움 안에 함께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로 감정의 이입을 불러일으키는 등 음식을 만들 때 손맛이라는 말이 있듯이 원종린 작가의 개성이 녹아든 고유의 붓 맛이 있다.
작가는 우연히 개미를 관찰하게 된다. 미니 용사들의 수송 작전이라고 표현하면서 많은 개미 떼들이 어떻게 모여서 질서 있게 공동생활을 하며 먹이들을 어떻게 저장하고 분해하고 사는지 험준한 벼랑과도 같은 3, 4센티 높이의 턱을 미끄러져 떨어지고 하면서 끌고 올라가는 개미들의 투지를 찬양하고 그들의 토굴에까지 왕파리를 끌고 가는 모습을 마치 자신이 개미라도 된냥 한마음이 되어 응원한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내가 아닌 부모님의 불타는 향학열로 인해 서울로 전학을 가야 했다. 내게는 어떤 사전 고지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하니 가방을 싸라는 아버지의 말씀 한 마디로 그 다음 날 단숨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서울로 상경을 하였다. 서울 청량리 시장에서 포목 시장을 하던 어머니의 친척 집에서 나의 서울 생활은 시작되었는데 서울의 집들은 왜 이렇게 똑같은지 귀가할 때 친척 할아버지의 집을 찾는 것도 매번 헷갈렸고 거리는 온통 시멘트 바닥으로 걷는 것 자체가 적응이 되질 않았을뿐더러 도로에는 왜 그리 차가 많은지 흙바닥과 경운기 소리에 적응이 되었던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특히, 방과 후에 어울릴 친구가 없는 것이 가장 문제였는데, 늘 밤늦게까지 함께하던 친구 들이 보고 싶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장독대 위에 올라가 고향 쪽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6학년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던 여름날, 마당에 앉아 고향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시멘트 마당 구석진 곳에 개미들이 일렬로 행진을 하는 것이 보였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것인지 어디에서 빵 부스러기며 벌레의 사체며 자기보다 몇 배 더 큰 것을 옮겨 자신들의 거처로 옮기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대견스럽기도 하고 신기해서 계속 보고 있다가 과자 한 조각을 개미집 근처에 떨어뜨려 놓았다. 오다가다 커다란 과자를 발견한 개미들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에 과자 주변에 망을 보는 개미의 숫자가 많아지기 시작하고, 일개미들이 새까맣게 몰려나와 과자를 한입씩 뜯어 굴로 돌아간다. 그 일사불란함과 부지런함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후로 개미 들은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의 부하들이 되었고 나는 그들을 먹여 살리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늘 혼자였기에 빵 부스러기나 과자 조각을 개미 굴 근처에 던져주고는 개미를 관찰하는 것이 내 일과였다.
작가가 본 개미와 내가 본 개미는 같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어릴 때 보았던 그 개미들과 똑같은 개미들이 여전히 행진을 하고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목표와 역할에 충실하다. 오고 가는 길에 장애물이 생겨도 먹이가 멀리 있어도 어떻게든 전진한다.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인생사나 개미 들의 세상이나 치열함은 똑같다. 작가는 말한다. 오늘을 사는 나도, 개미들도 무더운 여름, 결실의 가을, 눈 내리는 겨울, 그 속에서 움트는 봄, 여전히 세상을 항해 나아간다. 살아있다고 말이다.
수필 정신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으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 때문에 세상을 영위하고 무엇 때문에 세상이 아름다워지는가를 느끼게 하는 글로 기록하는 것이 수필이며 우리 시대의 수필이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세상에 인간다움(humanism)을 실천하게는 시대의 도구로써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볼 때 원종린 선생님의 이 작품은 한낮의 더위를 생에로의 의지로 치환한 감동적인 수필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