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대전 때 미군 당국이 병사들이 실전에서 제대로 사격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지휘관이 맞은 편 참호에 있는 적군을 향해 조준사격을 명령하자 명령대로 조준하여 쏘는 병사는 20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다수의 병사는 총알을 아껴야 한다는둥 엉뚱한 변명을 하며 사격을 거부하거나 눈을 감고 허공에 쏘아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거 원래 잘 안된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통역병 업햄은 총을 쏘지 못한다. 그 장면에 화를 내는 관객이 많았는데 그게 사실은 고증이 잘된 것이다. 훈련을 잘 하면 총을 쏘는 병사의 비율을 80퍼센트로 높일 수는 있다. 625 때 학도병이 3시간 정도 훈련받고 전선에 투입되어 총을 쏠 수 있었을까? 임진왜란 때 전투경험 없는 조선군이 일본군과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있을까?
프랑스 혁명은 한 마디로 촌놈의 재발견이다. 전쟁은 원래 귀족과 용병이 하는 것이고 농부들은 못한다. 가끔 기적이 일어난다. 잔다르크가 보여줬다. 종교라는 울타리에 가두자 농부도 잘 싸운다. 종교에 가둬 전쟁에 이긴 사람은 무함마드다. 현대전은 참호에 가둔다. 달아날 수 없으므로 총을 쏜다. 사람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으면 행동이 바뀌는 것이 철학이다.
한 번 쏘기 시작하면 꽤 잘 쏜다. 흥분하기 때문이다. 잔다르크는 종교를 이용하여 집단적 열광을 끌어내고 나폴레옹은 혁명의 이념을 이용하여 집단적 열광을 끌어낸다. 그런데 총은 촌놈이 잘 쏜다. 도시놈은 전장을 이탈하여 자기 집으로 가는데 촌놈은 못 가기 때문이다. 봉건시대에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촌놈은 낯선 마을에 가면 맞아죽는다고 생각한다.
적지에서 병사들이 잘 싸우는 이유다. 적지에서는 도망쳐도 고향으로 갈 수 없다. 러시아군이 잘 싸우는 이유는? 유럽까지 와 있는데 도망쳐도 고향 시베리아가 너무 멀어서 못 간다. 러시아군은 부대가 와해되어도 다른 고지에 다시 집결하는 특징이 있다. 일본군은 섬인데 대륙에서 열도까지 헤엄쳐서 가겠나? 일본군이 강조하는 정신력의 비밀이 촌놈정신이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버릴 때 인간은 갑자기 막강해진다. 때로 대중은 막강해진다. 미디어가 대중을 하나로 묶는 끈을 제공한다. 조중동의 가스라이팅이 기술이다. 인간을 격동시켜 남의 동네에 들어온 촌놈 심리를 만들어낸다. 엘리트는 촌놈 특유의 강철대오를 두려워한다. 프랑스 철학은 촌놈혐오, 독일혐오, 대중혐오다. 이들은 사람을 떼어놓으려 한다.
송두율의 내재적 관점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북한 내부적으로 돌아가는 논리가 있고 북한 내부의 논리로 보면 나름 성공한 제도라는 말이다. 어? 말 되네. 북한을 아프리카 부족 취급하고 있다. 그게 구조주의 인류학자들이 전체주의를 반대하는 논리로 만들어낸 논리다. 원시부족들도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전쟁 진다. 전쟁에 지면 프랑스 된다.
구조는 결합과 해체의 양면이 있는데 프랑스 철학은 왜 해체만 강조하는가? 프랑스 철학은 갑자기 강해지는 대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엘리트의 도피심리다. 그 에너지를 자신이 이용할 생각은 못하고 말이다. 왜 민중의 에너지를 긍정하지 않나? 독일 관념론 철학도 잘 들어보면 그게 프랑스 욕이다. 독일철학을 일본 버전으로 비틀어놓으면 무사도다.
인간은 구조에 묶인다. 지정학적 구조와 심리적 구조가 있다. 지정학적 구조는 산맥과 항구와 교통로의 요지를 필요로 하고 심리적 구조는 사회 속에 항구와 산맥과 교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과거에는 종교가 그 일을 했고 지금은 철학이 그 일을 한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으면 인간은 막강해진다.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는 15세 소년병을 잘 묶어서 해먹었다.
철학은 도구를 사용한다. 지정학적 구조가 도구가 되듯이 사회의 구조도 도구가 된다.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디자인하여 민중이 뭉치기와 흩어지기를 자유자재로 할 것인가? 군대는 대대와 중대와 소대가 있어야 하듯이 사회는 평등과 자유의 민주와 경쟁이 있어야 한다. 집단에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