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10대 제자 이야기
1. 지혜제일(智慧第一) 사리불(舍利弗)
사리불은 생김새 또한 단정했을 뿐더러 브라만교의 성전 4베다를 줄줄 외울 정도로 영특했다.
그는 이지적이었으며 인생과 세계에 대한 깊은 사색과 고정 관념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기성의 제도에 도전하는 일종의 반항아적인 청소년이었던 모양이다.
어느날 그는 절친한 친구 목건련과 함께 마가다 국 영축산에서 벌어지는 큰 축전인 산정제(山頂祭)에 참석하게 된다. 아마 그것은 일종의 종교 의례였던 모양인데, 두 소년은 번다하고 괴기스러운 축제 분위기에 환멸을 느낀데다가 그 무의미성에 깊은 허무감에 빠진다. 게다가 제전이 끝나고 난 뒤 사람들의 발자취가 모두 사라지고 찬바람만 스산하게 이는 그 빈 공간에서 느끼는 적막감과 허무감이 조금전까지 떠들석하던 들뜬 분위기와 묘한 대조를 보이면서 무상감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수성이 예민한 이지적인 두 소년은 당시 육사외도(六師外道) 중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산자야(Sanjaya)의 문하로 출가하여 사문(沙門, sramana)의 길을 걷게 된다. 얼마 안 되어 이들은 산자야가 거느리고 있던 250명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섰다.
육사외도란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정도(正道)가 아닌 이단의 가르침에 따르는 여섯의 무리들을 말한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사상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과감한 실험 정신이 펼쳐지던 제자백가의 시대였다. 이들은 형식적이고 제사 만능적인 정통 브라만교(Brahmanism)에 반기를 들고 베다나 우파니샤드의 권위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등 신(神)이나 아트만(Atman)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세도 없고 신도 없으니 마음껏 먹고 즐기자는 유물론적 쾌락주의에서부터 땅 위에 기어다니는 미물조차 밟지 않는다는 불살생(不殺生)의 아힘사(ahimsa)를 철저하게 고수하는 자이나교(Jainism)에 이르기까지 가히 새로운 사상의 모험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두 소년은 라자가하의 명사인 산자야(Sanjaya)의 가르침을 모두 암기하고 이해하며 구분해 설명할 수 있게 되어 "스승께서 알고 있는 가르침은 이것뿐입니까?, 아니면 이것 말고 또 있습니까?"
"이것이 전부다"
귀의할 만한 스승이라 여겨 제자가 됐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참되고 영원한 삶을 찾는 두 젊은이는 좌절을 맛볼 때마다 서로에게 다짐하곤 하였다.
"불사의 길을 발견하면 꼭 서로에게 알려주도록 하자"
"결국 불사의 길을 찾지 못하는 건가..... " 그러던 어느날!
탄식을 흘리며 거리를 바라보던 사리불의 눈길에 걸식하는 한 사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순간, 주변의 산만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시간이 멈추버린 듯하였다. 시선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사문의 얼굴은 편안했다. 그의 표정에서는 두려움과 초조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손에 든 발우를 응시하며 한 발 한 발 옮기는그의 걸음걸이는 너무도 평화롭고 고즈녁했다.
지혜로운 이의 발걸음
. 그는 부처님께 최초로 귀의한 다섯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앗사지(Assaji, 阿說示)였다.
그는 가사를 단정히 차려 입고 발우를 들고 왕사성 거리에서 걸식하고 있었는데, 그 고고하고 위엄 있는 모습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나아가고 물러서고, 앞을 보고 뒤를 보고, 굽히고 펴는 것이 의젓하였고, 눈은 땅을 향하였다."
'아마 이 세상에 참다운 성자가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그런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 사람에게 그 스승이 누구이며 그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리라.'
사리불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자 앗사지는 자신은 석가모니불께 귀의했으며, 출가한 지 얼마되지 않아 스승의 가르침을 깊이 모르나 그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가르침을 게송으로 읊었다.
"모든 법은 원인에 따라 생겨나며, 또한 원인에 따라 사라진다. 이와같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우리 부처님은 설하시었다." (諸法從因生 諸法從因滅 如是滅興生 沙門說如是, <佛本行集經>)
사실 이것은 인연의 도리에 따른 모든 것은 모여서 사라진다는 이치를 설명한 것인데, 이 대목에서 사리불은 그만 화들짝 놀라면서 모여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소멸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유신론적이거나 일원론에 입각하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근거가 없는 허무적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물과 사물 간의 무아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유신론적이거나 일원론에 입각하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근거가 없는 허무적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물과 사물 간의 무아의 이치를 통한 연기의 법칙으로 삶과 세계에 대한 참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드디어 그는 기쁜 마음에 친구인 목건련에게 달려갔다. 멀리서 그가 오는 모습을 보고 목건련은 이렇게 말한다.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매우 청정하며, 피부 빛은 아주 흽니다. 벗이여, 그대는 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것 아닙니까?"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대로 행동하게 되면 그것은 자연스레 행동으로 절도 있게 배어 나오게 마련이다.
사리불이 앗사지를 보고서 '아, 저 사람은 성인임이 틀림없구나'하고 느낀 것이나 목건련이 진리를 깨달은 사리불의 모습을 보고 말한 내용에서 그런 정경이 잘 그려진다.
목건련 역시 사리불이 전하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 진리에 따르고자 굳은 결의를 하고, 다시 의기가 투합한 그들은 산자야를 따르던 무리 250명과 함께 석가모니불께 귀의한다.
이 일로 해서 부처님 교단은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지혜의 일인자가 된 이유
사리불은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아난(阿難) 존자가 교단의 전면에 등장하기 이전에 목건련과 더불어 부처님의 양대 제자로 손꼽힐 정도였으며, 부처님의 여러 제자 중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 제일(智慧第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사리불은 당시의 일반 철학이며 종교에 대해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브라만 승려를 비롯한 외도들과 대론하여 그들을 절복시켜 불교로 귀의시켰다. 부처님의 사촌 데바닷타(Devadatta)가 5백 명의 비구를 이끌고 부처님께 반기를 들었을 때도 목건련과 더불어 그들을 타일러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부처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장본인도 바로 그였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 사리불을 일컬어 "나의 장자(長子)"라 했을 정도다.
뛰어난 지혜의 소유자로서 사리불의 이러한 특징은 대승불교에도 그대로 이어져 그는 대승경전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특히 대승불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야심경'에서는 관자재보살이 설하는 공의 도리를 깨우치는 상대역으로 무대에 나타난다. '유마경'에서는 유마거사가 사리불에게 불가사의한 해탈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충만한 제자였던 것이다.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앞으로 오는 세계에 깨달음을 이루어 그 이름이 화광여래(火光如來)라 불릴 것이며,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게 되리라는 수기를 받기에 이른다.
사리불은 부처님보다 먼저 나라카 마을에서 춘다의 간호 아래 열반에 들었다.
당시 그의 나이 70세였으며 부처님은 80세. 그의 유골이 부처님 곁으로 돌아오자 여러 제자들과 더불어 부처님께서는 애닯아했으며, 수닷타 장자는 탑을 세워 그의 유골을 안치하였다.
그로부터 200년 후 아쇼카 왕은 기원정사에 들러 사리불의 탑에 공양하고 10만금을 희사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