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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숲 제8호 원고
제목; 행복을 만난 하루
아내는 무척 바쁘다. 집안 살림하는 것 말고도 하는 게 많다. 일흔 중턱 나이에 크게 아프지 않게 지내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아내 몸이 불편해 걱정하는 친구를 생각하면 무척 고마운 마음이다.
오늘도 아내는 아침 여덟 시가 되기 전에 현관을 나섰다. 생활이 불편한 어느 안노인을 돕는 도우미를 다닌다. 일주일 중에 노인복지관에 바리스타로 커피 봉사, 대전성모병원에 의료용품 만드는 봉사 외에도 수영장으로 수중 운동을 다닌다. 소형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니며 시간을 관리한다. 가끔 가벼운 접촉사고로 곤경을 치르는 경우도 생기지만 개의치 않고 재미있게 다닌다. 바쁜 일과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는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아내 생활에 비하면 나는 무척 한가한 나날을 지낸다. 한 달에 두 번 요양원에 민요봉사를 다니는 것 외에 특정 지어 놓고 하는 일이 없다. 한다는 게 친구들과 점심 식사 약속하고 소줏잔 기울이는 것뿐이다. 그리고는 울안에서 소일한다. 티비 채널 돌리기, 컴퓨터 유튜브 골라보기, 세탁기 돌리고 건조 시켜 손질하기, 아주 가끔 뭔가 글감이 있을 때 글쓰기, 시 일기 쓰기. 이런 것들이 내 일과 내용이다.
개미 쳇바퀴 돌듯 거실로 내 방으로 베란다로 세면장으로 돌고 돌다 보면 해가 저문다, 날씨가 좋으면 가까이 있는 만인산 산책로를 걷는데 장마가 길어지면서 그것도 중단되었다.
나이를 더해가면서 몸뚱이가 성한 곳이 없다는 느낌이다. 40년 가까이 복용하는 혈압약은 이 세상 끝날까지 먹어야 한다. 고혈압 때문인지 목 부위 경동맥에 혈전도 끼었단다. 두 번의 허리 디스크 수술 후유증 탓에 허리 요통은 개선되질 않는다. 일어설 때마다 느끼는 허리 통증은 삶의 질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게다가 3년 전 가을 자전거사고로 한쪽 무릎인대에 고장이 난 후 보행이 불편하다. 빨리 걷지 못하고 심한 비탈길을 오래 걸을 수 없으니 짜증이 난다. 생활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집에 머무는 날이 많다. 그러려니 얼굴이 펴져 있기보다는 얼음장처럼 굳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상하다. 복권에 당첨된 것도 아니고, 몸뚱이 건강 상태도, 생활 흐름. 어느 것 바뀐 게 없다. 그런데 마음이 가볍다. 하얀 새털구름 같다. 시시때때로 손에 잡히는 집안일을 하며 은근하게 화가 날 때가 많다. 물론 오늘도 그랬다. 그런데 일어난 부화를 바로 지운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스스로에 타이르며 잘 다독여진다. 참으로 신기하다.
하루 지내는 걸 면밀하게 체크한다. 하루 내내 힘들이는 일 없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지낸다. 꼭 무엇을 더 이루겠다는 추구심도 지웠다. 그렇다고 무기력증에 빠진 건 아니다. 큰 걱정거리 없고 장래에 대한 불안도 없다. 몸뚱이가 예전과 같지 않은 건 육신이 낡은 탓이다. 홀로 빈집에 있는 건 자식들이 모두 제 살림 차리고 잘 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이렇게 평화로운 삶은 많지 않을 듯싶다. 즐겨보는 가요무대 진행자 말대로 땀나고 더운 건 여름이기 때문이고 살을 베는 추위는 겨울이기 때문이라 여기면 될 일이다.
젊은 시절 이래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마음속에 있다고 들었다. 봄을 찾으러 온 산과 들을 헤매었으나 찾지 못하고 실망스레 집에 와보니 봄이 뜰앞에 있더라는 이야기도 숱하게 들었다. 지족상락(知足常樂)하라는 경구도 역시 그렇다. 불가에서는 지금에 만족하는 삶이라면 그게 해탈이요 열반이요 극락이라고 가르치지 않던가.
왜 갑자기 오늘 이런 생각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이렇다 할 또렷한 동기는 안 보인다. 또 이런 마음이 얼마나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 이어지면 좋으련만. 다만 그러도록 마음을 다독이며 지내기로 한다. 어렴풋이 보이는 배경은 아마도 5, 6년 꾸준하게 들어온 마음공부 덕분이 아닐까 짐작된다.
더듬거리던 지팡이를 내팽개치고 활짝 웃으며 걷는 하루였다. 아마도 오늘에야 행복이라는 놈의 정체를 만난 듯하니 말이다. (24.7.)
제목; 여름이 떠나갔다
열무김치와 멸치볶음을 냉장고에서 꺼내 식탁에 놓는다. 얼핏 플라스틱병에 담긴 뽀얀 우윳빛 콩국물이 보인다. 오늘 점심에는 좋아하는 콩국수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계란프라이 생각이 난다. 달걀을 깨서 프라이판에 넣고 가스불을 켠다. 밥통에 밥을 푸고 보니 프라이판이 이상하다. 아차 콩기름 넣는 걸 빼 먹었다. 건망증이다. 늦게 넣어 보지만 모양새는 엉망이다. 접시에 대충 추슬러 아침 식사를 한다. 일요일이어서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아내는 성당엘 가고 혼밥이다.
무성한 콩잎이 밭이랑은 물론 밭 경계마저도 지워버렸다. 콩밭 속은 그야말로 찜통 안 이었다. 호밋자루를 쥐고 고랑에 기생하는 잡초를 뽑는다. 콩 사이사이에 자라는 열무는 따로 뽑아 정리한다. 이놈들은 단으로 묶여 내일 아침 시장으로 팔려갈 것이다. 약간의 양은 열무김치가 되어 보리밥과 궁합을 맞춘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갑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닦아내기 바쁘다. 옆 고랑 어머니는 저만큼 앞에 계시다.
보리를 수확한 밭엔 콩이 심어졌다. 가뭄을 이기고 자란 가지에 콩꼬투리가 맺힐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도 8월 초순인 이때쯤 같다. 여름 방학 중 어머니 일손을 돕느라 콩밭 잡초를 뽑으며 땀을 흘렸다. 풀을 뽑는 게 큰 힘이 드는 건 아니었다. 숨을 고르고 땀과 싸우는 게 무척이나 짜증스럽던 일이 새롭게 떠 오른다.
젊은 시절엔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처럼 겁이 없었다. 아니 정신을 반은 잃은 듯 허둥거리며 살아야 했다. 어깨에는 가장이라는 무게. 직장에서 보이지 않는 갈등과 경쟁. 저녁 시간에는 무슨 회식이 그리도 많았던지. 하루 스물네 시간을 쪼개도 부족했다. 게다가 시정(市政)을 견제하는 의회, 시정의 헛점을 헤집으며 특종을 찾아다니는 언론.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의 시민단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내 역량으론 버거운 일이었다. 콩밭 속의 풀매기보다 몇 배 더 땀나는 일이라 해서 넘치지 않는 말일 게다.
외아들 하나 보며 살아오신 노모와 네 명의 자식들, 그리고 집안일을 도맡아 주는 고마운 아내. 뒤늦게 여유를 갖고 그들에게 눈길을 돌려보니 모두 곁을 떠나고 아내만 보인다. 여름 지나 가을도 가고 겨울이 깊어 버렸다. 자식들은 모두 제 살림을 꾸려 살기 바쁘다. 손주들 태어나 자라는 걸 즐기던 어머니께서는 홀연 하늘로 가셨다. 찬바람에 노출된 몸뚱이는 여기저기 돌아가며 귀찮게 한다. 배운 민요 사철가 중 ’월백 설백 천지백 하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하는 대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청운의 꿈을 키우던 봄. 뼛속 땀까지 남김없이 쏟던 여름. 벼슬 오르고 자식들 결혼시키며 세계(世系)를 잇는 가을이 지났다. 하얀 눈발과 벗하는 엄동을 지나고 있다. 지붕 위에 쌓였다가 햇살이 쪼여 오면 고드름이 되고 녹아내리는 일만 남았다. 불가의 윤회설처럼 하늘 구경을 끝내고 빗물 되어 다시 개천에 흐를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멀리 남쪽의 만인산이 보내주는 바람 덕분에 무척 덥지는 않다. 입추가 지나서일까. 이렇게 계절은 정해진 철길을 달리듯 쉼이 없다. 입추가 지났으니 입동이 오고 동지를 지나 입춘이 다시 올 것이다. 어찌 여름 가을 지나고 겨울이 왔다고 푸념할 일인가. 누구도 철길을 맘대로 바꿀 수 없으니 말이다. 비지땀으로 찌들었던 여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짚어 본다.
아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걸 본 어머니는 일꾼을 사 풀 매는 일을 마무리하였다. 김칫국을 마시며 어머니 생각이 새롭다. 돌아보면 아녀자 혼자의 몸으로 자식들 키우고 농사를 짓느라 땀 흘리시던 그때가 어머니의 여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그 진한 땀방울이 자양분이 되어 지금의 내가 있다. 생전에 더 잘 보살펴드리지 못한 게 안타깝기만 하다. 김칫국물을 마시며 애써 어머니 손맛을 찾아보지만 그걸 세상 어디에서 맛볼 수 있겠나. 이렇게 여름이 떠나갔다. (24.8.)
제목; 아버지 사랑합니다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아버지라는 단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다 보니 평생 아버지라는 호칭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중략) 아버지가 기억에 없는 내겐 그마저도 한없이 부럽게 여겨졌다. 그 아버지라는 호칭. 수백 번 소리쳐 불러 보고 싶다.”
내가 쓴 책 『하얀 철부지』 중 문인수 시인의 「쉬」라는 시를 읽고 쓴 <쉬>라는 제목의 글에서 옮겨 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가족력이 있다. 아버지는 유복자 외아들로 태어나셨다. 형제가 없는 홀홀 단신. 할아버지께서 음력 7월에 이십 대 초반 나이로 돌아가시고 그해 음력 12월에 태어나셨다. 서른여섯 해를 살다 젊은 나이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내가 세 살 때다.
유복자였던 아버지에 비해 세 살까지라도 아버지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을 걸 생각하면 그래도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버지 모습은 남겨진 흑백사진 한 장으로만 알아차릴 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어린 아들에게 숨기고 싶은 어머니 마음이었다. 멀리 돈을 벌러 가, 돈을 많이 벌어 돌아오실 거라는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안 후로 아버지라는 호칭을 입에 담지 않았다.
2대에 걸친 구겨진 가족사를 등에 지고 팔십을 바라보고 있다. 짧게 살다 돌아가신 선대의 명을 내게 내려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화려하지 않은 집안 내력이 떠오르는 건 아마도 추석이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인가 보다. 어제는 아내와 나, 막내아들과 대전 근교 장인 장모 산소 벌초를 했다. 다음 일요일에는 시골에 추석맞이 벌초를 하러 가기로 하였다.
마음공부 시간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말을 배웠다. 두 용어의 뜻은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란다. 같은 꽃을 놓고 어떤 이는 무척 아름답다 호들갑을 떨지만, 옆에 한 사람은 시큰둥할 수 있다. 이렇듯 밉다 곱다, 좋다 안 좋다 등등 하는 것이 모두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 일어나는 하나하나에 몰입하게 된다. 즉 마음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손톱 밑에 아주 작은 가시만 박혀도 다른 생각 없이 그걸 빼는데 골몰하지 않던가. 내 나이가 몇인가 하는 것도 평상시엔 잊고 있다가 그걸 마음에 꺼내 들면 자각하는 게 사람들 생각이다. 이렇듯 우리 마음은 시시각각 모든 것 지어내고 없애버린다. 마음공부 시간에 배운 내용을 되짚어 보며, 두 용어의 의미를 다시 새긴다.
불가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한다. 세상 모든 것이 항상 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아 괴로움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이다. 내가 나라고 알고 있는 이 몸뚱이도 어릴 적 그 살, 그 뼈가 아니라는 거다. 오늘 아침이 어제 아침이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산모퉁이 둥근 바위도 어제의 그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이른다. 하지만 사람은 백 년을 살 것 같은 마음으로 행동하며 산다. 그러기에 모든 건 변하고 있다는 현상을 늘 자각할 때 늙고 병들어가는 이치를 수용하며 괴로움을 지우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일체유심조, 제행무상 하는 진리를 새기며 아버지의 짧았던 삶을 애써 위안을 한다. 그리워는 하되 슬퍼하지는 말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 곁에 없는 무엇,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부모님에 대한 그 마음을 어찌 지울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일체유심조라는 가르침을 알아차려 그로 인해 슬퍼하고 우울해 하지 않으며 사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
아버지 죽음은 유복자 아들을 키워온 할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더불어 행복하던 어머니에게 영예롭지 못한 청상과부라는 별칭을 지어 놓았다. 또 내가 아비 없는 자식으로 한쪽 날개를 잃은 비둘기처럼 자라는 환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아버지와 세상 그리고 나와의 인연이 아닐까 여기며 마음을 추스른다. 그리고 그리운 마음을 담아 살며시 속삭여 본다. 아버지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24.8.)
<경 력> 전 의 수
대전광역시 지방공무원 정년퇴직.
「시사문단」 시, 「대전문학」 수필등단.
시집 『홍시 얼굴』, 『오늘』. 수필집 『하얀철부지』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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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의실에서 자기 소개를 가장 많이 했으니 서둘러서 올립니다. 잘못된 부분을 살펴 수정 게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등이시네요. 파일도 함께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툭툭 털어 시원하시겠습니다. 부럽습니다.
금년 강의가 종료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