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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 정맥이란?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산줄기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0대 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분수령들을 기본 정맥으로 삼고 있어 대부분의 그 이름이 강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이 산줄기는 금강의 남서쪽을 지나므로 금남정맥이라 한 것이다. 금강 상류 유역과 만경강 유역을 구분짓는 산줄기로 동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금강 상류를 이루며, 서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만경강을 이루고 일부는 금강 하류로 흘러든다.
연결되는 주요 산은 왕사봉·배티[梨峙]·대둔산·황령(黃嶺)·개태산(開泰山 혹은 天護峰, 360m)·계룡산·널티[板峙]·망월산(望月山)·부소산 등으로 그 길이는 약 118㎞이다.
이 산줄기가 시작된 주화산에서 남쪽으로 연결되는 호남정맥과 함께 전라북도의 동쪽 산간 지방과
서쪽 해안의 호남평야를 경계 짓고 있다.
금남 정맥이란?
백두대간이 지나는 영취산에서 분기하여 서쪽으로 뻗어 내린 금남호남정맥이 조약봉(주화산 565m)으로 이어지다가 이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호남정맥, 북쪽으로 금남정맥이 분기된다. 금남정맥은 북으로 금강과 나란히 치달아 대둔산과 계룡산을 거친 후 서쪽으로 망월산을 지나 부소산 백마강 조룡대에서 끝난다.
금강의 남쪽과 서쪽으로 만항강, 동진강의 분수령이 되어자연히 군산을 중심으로 한 평야지방과 내륙지방을 양분하고 있다. 금남정맥을 이루는 주요산은 조약봉(565m)에서 시작하여연석산(928m), 운장산(1126m), 인대산(666m), 대둔산(878m), 월성봉(650m), 바랑산(555m), 천마산(287m), 계룡산(845m), 부소산(105m) 등이다.
금남정맥은 '정맥의 꽃' 이라고도 불린다. 유명한 산을 많이 지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도로보다는 산 능선을 위주로 산줄기를 밟을 수 있어 정맥꾼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정맥이다. 거리 또한 길지 않아 크게 부담 갖지않고 정맥 종주를 시작할 수 있다. 총 124킬로미터의 금남정맥은 금남호남, 호남, 금남정맥의 분기점인 565봉을시작으로 운장산 서봉, 대둔산, 천호산, 계룡산, 멀티, 망월산에서 부여의 부소산과 조룡대로 달려 끝이 난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금남정맥의 줄기가 금강의 온전한 남쪽 울타리가 아니라는 논란도 있지만 우리 종주대는"산경표"의 큰 틀에 따라 금남정맥에 첫발을 내딛는다.금남정맥은 소위 애매한 지점이라고 불리는 봉우리(565m)에서 출발해 운장산 서봉(1126m), 왕사봉(634m)까지의 주행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후의 산줄기가 논란거리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금남정맥의 줄기는 <산경표>의 뜻을 따른 것으로 대둔산, 천호산, 계룡산,멀티, 망월산에서 부여의 부소산, 조룡대로 달려 끝나는 것이다.
전주의 동쪽 마이산(667m)에서 북으로 치달아 대둔산(878m), 계룡산(828m)을 거친후 서쪽으로 망월산
을 지나 부여 부소산 조룡대에서 끝난다. 금강의 온전한 남쪽 울타리를 이루지 못하는 이 산줄기는 운장
산 지나 왕사봉에서 남당산~까치봉~천호봉~미력산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1. 구간별 거리표
1) 10구간 거리표
01구간: 모래재-주화산-입봉-연석산-서봉-운장산-피암목재 17.5Km
02구간: 피암목재-성봉-기차산-장군봉-금만봉-작은싸리재 13.0Km
03구간: 장등교-성재봉-신선봉-백암산-독수리봉-백령고개 15.6Km
04구간: 백령고개-바람골산-인대산-극기봉-망봉-배티재 17.7Km
05구간: 배티재-칠성봉-대둔산-서각봉-새리봉-월성봉-바랑산-물한이재 14.8Km
06구간: 물한이재-물한산-깃대봉-함박봉-천호산-천호봉-두리봉-천마산-양정고개 20.4Km
07구간: 구럭재-국사봉-계룡산-쌀개봉-관음봉-삼불봉-수정봉-만학골재 17.4Km
08구간: 만학골재-팔재산-널티-범안골-안골산-고분티골 12.2Km
09구간: 고분티골-성황산-망덕봉-기대봉-안경구덩이산-감토봉-원전봉-가자티고개 17.0Km
10구간: 가자티고개-됨봉-청마산-오석산-금성산-부소산-구드래나루터 18.2Km
2) 8구간 거리표
1구간 : 진고개~구드레나루(18km,공주,청양)(소요시간:6시간30분)
2구간 : 널티~진고개(14km,공주)(소요시간:6시간14분)
3구간 : 신원사3거리~널티(11.5km,공주)(소요시간:7시간53분)
4구간 : 덕목재~신원사3거리(20.5km,논산,공주)(소요시간:11시간7분)
5구간 : 배티재~덕목재(15km 금산)(소요시간:11시간45분)
6구간 : 백령고개~배티재(11.5km,금산) (소요시간:7시간48분)
7구간 : 피암목재~백령고개(18.5km 진안,금산)(소요시간:12시간17분)
8구간 : 주화산~피암목재(14km 진안) (소요시간:8시간16분)
3) 8구간 상세 거리표
01구간 : 진고개-(1km)160.5m봉-(2km)265m봉-(2.5km)192.1m봉3거리-(1.5km)205m봉-(0.5km)보각골4거리-(2km)184.9m봉-(2km)154.8m봉-(2.5km)4번국도-(1km)금성산-(1.5km)부여여고-(0.5km)부소산-(1km)구드레나루 : 도상거리:18km
02구간 : 널티-(2km)-상리안부-(1.1km)-안골산-(0.9km)-말미고개-(2km)은골소류지4거리,포장도로-(0.5km)성항산-(0.5km)235.1m봉-(0.5km)183.7m봉-(3km)697지방도-(2.5km)댓골4거리-(2.5km)진고개 : 도상거리:14km
03구간 : 신원사 갈림길,446m봉-(1.5km)천황봉-(0.5km)쌀개봉-(0.5km)관음봉-(1km)자연성릉-(0.5km)삼불봉-(0.5km)금잔디고개-(0.5km)-수정봉-(0.5km)-615m봉-(0.5km)-내원암3거리-(0.5km)-468m봉-(1.2km)-만학골재-(0.5km)-△327m봉-(1km)-×265m-(0.5km)-중장리고개,691지방도-(0.5km)-△364.1m(팔재산)-(1.3km)-널티: 도상거리:11.5km
04구간 : 덕목재-(1km)깃대봉-(2km)함박봉-(0.5km0황령재-(1.5km)-대목재-(2km)-천호봉-(0.5km)-개태사4거리-(0.5km)-304.8m봉-(2km)천마산-(2km)-248.3m봉-(0.5km)-양정고개-(0.5km)-엄사초등학교-(0.5km)-308m봉-(0.5km)330m봉-(2km)-멘재-(2km)513m봉-(1km)-용천령-(1.5km)-신원사4거리 : 도상거리:20.5km
05구간 : 배티재-(2.5km)-대둔산 마천대-(1km)829m봉-(1km)깔딱재-(1.5km)수락재-(1.5km)월성봉-(1.5km)바랑산-(2km)물한이재-(0.5km)363.9m봉-(2km)328m봉 3거리-(1.5km)덕목재 : 도상거리:15km
06구간:백령고개-(3.5km)622.7m봉-(2km)인대산-(2.5km)오항동고개-(2km)592m봉3거리-(1.5km)-배티재
: 도상거리:11.5km
07구간 : 피암목재-(1km)-675.5m봉-(1.5km)성봉-(1.5km)-장군봉-(1km)-724.5m-(2km)싸리재-(0.5km)왕사봉3거리-(0.5km)작은싸리재-(0.5km)-태평봉수대-(1.5km)-786.6m봉-(3km)신선봉-(1km)선야봉3거리-(2km)질재-(0.5km)백암산-(1km)-독수리봉-(1km)백령고개 : 도상거리:18.5km
08구간 : 주화산-(0.5km)-조약치-(1km)-조약골4거리-(0.5km)-입봉-(1km)보룡고개-(1.5km)675.4m봉-(1km)황조치-(1.5km)-상궁항3거리-((1km)-사평리3거리-(2km)연석산-(0.5km)만항치-(1.5km)운장산서봉-(0.5km)활목재-(1.5km)피암목재 : 도상거리:14km
2. 구간별 지명유래
■ 금남 01구간
1. 산행코스:
모래재, 주화산(조약봉 565 1.1km), 조약치(0.4km), 입봉(637 1.7km), 보룡고개(405 1.4km), 황새목재(2.5km), 신궁재(2.8km)작은연소골, 상궁항출발점(0.7km) -- 10.6Km
2. 소개
금남정맥(錦南正脈)은 금강의 남서쪽을 지나므로 금남정맥이라 한 것이다. 전북 무주의 주화산(珠華山 565m)에서 시작하여 왕사봉(王師峰), 배티(梨峙), 대둔산(大屯山), 황령(黃嶺), 개태산(開泰山 혹은 天護峰, 360m), 계룡산, 널티(板峙), 망월산(望月山), 부여의 부소산(扶蘇山), 조룡대(釣龍臺) 까지 이르는 옛 산줄기로 그 길이는 약 118㎞이다.
전북 진안군의 부귀면(富貴面)은 부귀산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진안의 진산(鎭山)이다. 진안지에 가파른 산세에 용이 서린 듯 호랑이가 웅크린 듯한 산세로 대인군자의 상을 닮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래재(사현 沙峴)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와 완주군 소양면 사이의 고개이다. 고개 지명은 이곳에 모래가 많이 난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봉암리,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경계의 주화산(조약봉 565)은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이 분기되는 지점이다.
조약치(鳥躍峙)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사이의 고개이다. 조약재, 족약치(足躍峙) 라고도 하는데 경사가 심하여 새걸음을 걷듯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족약치가 의미에 맞는 지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발음하기가 어려워 후에 조약치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경계의 입봉(笠峰 637)은 산 모양이 삿갓 모양이어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산의 서쪽으로 만경강의 발원지인 밤샘이 있다.
보룡고개(405m)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사이의 고개로 26번도로가 지나간다. 고개 바로 아래 소태정 마을이 있어서 소태정 고개, 소태정재로도 부른다. 풍수적으로 구룡농주(九龍弄珠)에 해당하며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논다는 뜻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93년 도로가 개설되고 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지원하기 위해 4차선으로 개설되었다.
황새목재(황조치 黃鳥峙)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황새목골과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황조리마을 사이의 고개이다. 과거 진안 지역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넘었던 길로 학항치(鶴項峙)라고도 불렸었다. 고개가 황새목처럼 길어서 명명되었다고 전한다. 고개 너머에는 황조 마을이 있으므로, 마을 이름에서 고개 이름이 만들어졌을 수 있다. 반대로 마을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고개 이름에서 마을 이름이 생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신궁재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작은연소골과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삼바골 사이의 고개이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의 상궁항에 위치한 궁항저수지(弓項貯水池)는 농업용수를 원활하게 공급하며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1986년 10월 준공되었다. 흙댐으로 홍수 조절 기능은 갖고 있지 않다.
■ 금남 02구간
1. 산행코스
상궁항출발점(궁항저수지), 신궁재(0.7km), 연석산(925 1.8km), 늦은목재(만항재 0.6km), 서봉(1123 1.7km)
운장산(1126 0.6km Backm 600m), 활목재(1.2km), 피암목재(운장산휴게소, 동상휴게소 1.7km) -- 8.3Km
2. 소개
신궁재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작은연소골과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삼바골 사이의 고개이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의 상궁항에 위치한 궁항저수지(弓項貯水池)는 농업용수를 원활하게 공급하며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1986년 10월 준공되었다. 흙댐으로 홍수 조절 기능은 갖고 있지 않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신월리 경계의 연석산(硯石山 925)은 벼루[硯]를 만드는 돌[石]이 많이 난다고해서 연석산(硯石山) 지명이 유래되었다. 여인이 베를 짜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베틀바위가 있고 시집을 온 각시가 거기서 베를 짜면서 피로와 외로움을 잊기 위하여 폭포 아래에 있는 소(沼)에서 목욕을 하였다는 각시소가 있다.
늦은목재(만항재)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늦은목골과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늦은목 사이의 고개이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정천면 봉학리, 주천면 대불리 경계의 운장산(雲長山, 중봉 中峰 1126)은 동봉(東峰 1133m), 서봉(西峰 1118m)과 함께 세 봉우리로 이우어 져 있다. 북쪽 사면은 금강의 지류인 주자천(朱子川), 남쪽 사면은 금강의 지류인 정자천(程子川)의 유역이 된다. 동상과 대아저수지는 만경강의 상류이므로 운장산은 만경강과 금강의 분수계가 된다. 주줄산, 추줄산, 주이산(朱伊山) 이라고도 하였으며 산이높아 구름이 감돈다고 해서 운장산(雲藏山)이라 하였고 주이천은 주자천(朱子川), 이천(伊川, 즉 정자천)의 발원지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운장산은 오성대에서 은거했던 조선시대 학자 송익필 선생의 자인 운장(雲長)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활목재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운양산골과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사이의 고개이다. 고개의 지형이 활처럼 휘어져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피암목재(운장산휴게소, 동상휴게소)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비안목골과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문박골 사이의 고개로 55번도로가 지나간다. 휴게소에는 주차고간외에 특별한 건물이 없고 산의 이정표에는 동상휴게소로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 금남 03구간
1. 산행코스:
피암목재(운장산휴게소, 동상휴게소 560), 성봉(787 2.6K), 장군봉(기차산 738 1.3K), 장군봉(725 1.3K)
큰싸리재(2.6K), 작은싸리재(1.0K) -- 8.8Km
2. 소개
피암목재(운장산휴게소, 동상휴게소)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비안목골과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문박골 사이의 고개로 55번도로가 지나간다. 휴게소에는 주차고간외에 특별한 건물이 없고 산의 이정표에는 동상휴게소로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경계의 성봉(787)은 비상 헬기장이 위치해 있고 지명의 유래는 찾기 어렵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경계의 장군봉(將軍峰 738)은 인접하여 사자바위 지점의 기차산(742)과 해골바위 지점의 북장군봉(725) 두개의 장군봉(將軍峰)이 위치해 있으며 병풍처럼 펼쳐진 암봉(巖峰)들이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군의 형상을 닮았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사자바위는 하늘을 바라보는 숫사자의 머리모양이다.
큰싸리재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고려장골과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축령골 사이의 고개이다.
작은싸리재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고려장골과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싸리재골 사이의 고개이다. 높고 가파르며, 싸리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봉수대가 산 정상부에 있으며 1595년(선조 28)에 태평산성(太平山城)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용담) 에 유령(杻嶺)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후에 축령(丑嶺)으로 변음된 것은 싸리나무라는 의미의 유(杻)자를 축(丑)으로 잘못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 금남 04구간
1. 산행코스:
작은싸리재, 태평봉수대(성재봉, 봉화재 820 0.8km), 신선봉(790 4.5km), 게목재, 백암산(육백고지 654 4.2km)독수리봉, 금산백령성, 백령고개(작고개 고지전승탑 2.7km) -- 12.2Km
2. 소개
작은싸리재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고려장골과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싸리재골 사이의 고개이다. 높고 가파르며, 싸리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봉수대가 산 정상부에 있으며 1595년(선조 28)에 태평산성(太平山城)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용담) 에 유령(杻嶺)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후에 축령(丑嶺)으로 변음된 것은 싸리나무라는 의미의 유(杻)자를 축(丑)으로 잘못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경계의 태평봉수대(성재봉, 봉화재 820)는 백제 때에 처음 축조되었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1595년(선조 28)에 태평산성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 봉수대는
동남쪽의 장수군 장안산(長安山) 방면에서 승계하여 북서쪽의 완주군 탄현성(炭峴城)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데,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는 이 성재는 삼국시대에 동쪽으로 진안군 용담면 성남리 산성이나 북쪽으로 탄현성(일명 쑥고개)과 연결되어 수도 방어의 요충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경계의 신선봉(790)은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았으며 지명의 유래도 찾기 어렵다.
게목재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와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큰화랑골 사이의 고개로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은 고개이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남이면 건천리 경계의 백암산(육백고지 괯百高地山 654)은 한국전쟁 때 북한군 패잔병과 남로당 병력이 1952년 5월 군/경/민에 의해 소탕될 때까지 저항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 산에는 산 아래부터 위로 올라오며 붓막골, 산막골, 굴골로 불리는 험하고 후미진 곳이 많다.
구적산(九赤山), 구적산(九積山), 구적골 이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역평리 사람들이 산제나 무제를 지내고 개인의 소원을 빌던 구적굴이 있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 남이면 건천리 경계의 독수리봉은 산행지도에만 표시되어 있고 지형도에는 표기되지 않았다. 건천리는 마을을 지나가는 하천에 돌이 많아 물이 돌 속으로 흘러 마치 냇물이 말라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평 마을은 조선시대에말을 먹이던 들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 역평리의 금산백령성(錦山栢嶺城)은 백제시대에 견훤이 남이면 대양리(大陽里)에 경양현을 설치하고 금산의 서남방면을 방어하기 위해 수축한 성으로, 625전쟁 때의 전적지인 백암산(白巖山)의 육백고지 전승탑 뒷산에 있다. 백령성지는 1990년 5월 충남기념물 제8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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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고개(작고개 고지전승탑)는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와 남이면 건천리 사이의 고개로 635번도로가 지나간다.
■ 금남 05구간
1. 산행코스:
백령고개(작고개 고지전승탑 635번국도), 인대산(666 6.0km), 오항재(2.7km), 배티재(17번국도 340 4.5km) -- 13.2Km
2. 소개
백령고개(작고개 고지전승탑)는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와 남이면 건천리 사이의 고개로 635번도로가 지나간다. 건천리는 마을을 지나가는 하천에 돌이 많아 물이 돌 속으로 흘러 마치 냇물이 말라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평 마을은 조선시대에말을 먹이던 들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충남 금산군 진산면 삼가리,진산면 오항리, 진산면 석막리 경계의 인대산(印大山 666)은 조선시대 진산읍치로 이어지는 주맥의 흐름에 속하는 산으로 이 산으로 인하여 큰 인물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인대봉(仁大峰, 印對峰) 으로도 사용되었다.
오항재는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 가마골과 진산면 오항리 뫼골 사이의 고개로 635번도로가 지나간다.
석막(石幕里) 마을은 원래돌이 많아서 돌매기 또는 돌막이라 불리다 후에 돌이 병풍처럼 있다는 뜻에서 석막마을이라 개칭하게 되었다.
배티재(340)는 충남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노른이골과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사이의 고개로 17번도로가 지나간다. 옛날 배가 넘어 다니던 고개라는 전설에 의하여 배티재라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골짜기에 배나무가 많아 이치(梨峙)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거느린 2만병력의 왜군이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뒤 군량미 확보를 위해 호남평야로의 진출을목적으로 이 배티재를 넘으려 하다가 권율(權慄)에게 대패한 지역이다. 고개 바로 아래쪽으로 진산면 묵산리 언덕에 권율장군이치대첩비(權慄奬軍梨峙大捷碑)가 있다.
■ 금남 06구간
1. 산행코스:
배티재(340), 낙조대(809 2.2km), 칠성봉, 대둔산(마천대 879 1.0km), 서각봉(829 1.2km), 깔딱재(1.2km), 새리봉(575 0.6km)수락재(무수재 397 1.4km), 솔로골, 수락리(1.5km) -- 9.1Km
2. 소개
배티재(340)는 충남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노른이골과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사이의 고개로 17번도로가 지나간다. 옛날 배가 넘어 다니던 고개라는 전설에 의하여 배티재라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골짜기에 배나무가 많아 이치(梨峙)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거느린 2만병력의 왜군이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뒤 군량미 확보를 위해 호남평야로의 진출을목적으로 이 배티재를 넘으려 하다가 권율(權慄)에게 대패한 지역이다. 고개 바로 아래쪽으로 진산면 묵산리 언덕에 권율장군이치대첩비(權慄奬軍梨峙大捷碑)가 있다.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경계의 낙조대(809m)는 서해로 넘어가는 해의 일몰이 절경으로 사진 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아침 해돋이 또한 유명하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경계의 칠성봉(七星峯)은 바위 봉우리의 모양이 북두칠성의 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용문골의 용이 돌문을 열고 승천할 때 별 일곱개가 떨어져 바위가되었다고 하여 칠성봉이라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운주면 완창리,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경계의 대둔산(마천대 879)은 인적이 드문 벽산 두메 산골의 험준하고 큰 바위덩이의 산이라는 뜻으로 한듬산이라 불리였고 모습이 계룡산과 비슷하지만 산태극 수태극의 큰 명당 자리를 계룡산에 빼앗겨 한이들었다 하여 한듬산이라 불리었다는 유래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 한자화 하면서 대둔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둔산(마천대 878.9m)은 노령산맥의 일부로 서쪽으로 만경평야를 굽어볼수 있고 최고봉인 마천대를 중심으로 여러 노암과 기암 괴석이 솟아 있다. 전북쪽은 기암절벽, 충남쪽은 숲과 계곡이 아름다워 77년/80년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마천대는 하늘과 맞닿았다는 뜻으로 원효대사가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운주면 완창리 경계의 서각봉(829)은 갈림길에서 10여미터 떨어져 있고 허둥봉 이라고도 불린다.
깔딱재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골과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사이의 고개이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경계의 새리봉(575)은 짜개봉으로 분기되는 다음 지형도에 표시되어 있는 봉우리로 지명의 유래를 찾기 어렵다.
수락재(무수재 舞袖峙 397)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솔로골과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 무수재골 사이의 고개이다.
무수재는 무수골에서 나온 지명인데 무수골은 수락리의 별칭이다. 무수티는 무수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무수재 아래의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오산리(梧山里)는 사방이 높은 산이 둘러있는 가운데낮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오미 또는 오산(鰲山)이라 하였다. 그후 유명한 학자이명봉(李鳴鳳)이 여기에 살면서 자기의 호(號) 오산(梧山)이라 부르게 하였다 한다.
충남 논산시 벌곡면의 수락리(水落里)는 대둔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틈으로 흘러서 떨어질때 진경이라 하여 수락리 또는 무수골이라고도 부른다.
■ 금남 07구간
1. 산행코스:
수락리, 수락재(무수재 1.5km), 월성봉(650 1.7km), 바랑산(555.4 1.7km), 작은물한재(1.4km), 물한이재(1.4km)곰치재(2.8km), 덕목재(68번국도 2.3km) -- 12.8Km
2. 소개
충남 논산시 벌곡면의 수락리(水落里)는 대둔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틈으로 흘러서 떨어질때 진경이라 하여 수락리 또는 무수골이라고도 부른다.
수락재(무수재 舞袖峙 397)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솔로골과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 무수재골 사이의 고개이다. 무수재는 무수골에서 나온 지명인데 무수골은 수락리의 별칭이다. 무수티는 무수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무수재 아래의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경계의 월성봉(月城峰 650)은 월성봉은 월성봉이라는 봉우리 이름보다 월봉성, 다리성 등 성채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고려 때 토적(土賊) 달리(達里)가 이곳에 웅거하며 노략질이 심하여 관군이 포위한 지 한 해가 지나서야 겨우 토벌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토성(土城)에 달이 비치면 그 고요함이야말로 숨을 죽이는 듯했고, 성벽에 비친 달빛의 수려함이 으뜸이라 하여 월성(月城)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 양촌면 채광리, 벌곡면 덕곡리 경계의 바랑산(555.4)은 산의 생김새가 바랑(걸낭)같이 생겼다 하여 바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작은물한재(물한티, 물한재)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염장골과 논산시 양촌면 반암리 작은물안이골 사이의 고개이다. 1914년 이전에 반암리에는 물한리(勿汗里)라는 자연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지명이 유래한다. 정상부 부근에는 물한산(勿汗山)이 있다.
물한이재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중버실마을과 논산시 양촌면 반암리 큰물안이골 사이의 고개이다. 물한산 남쪽에 있는 고개로 이 고개를 넘을 때면 한 겨울에도 땀을 흘려야 하는 험한 고개라 하여 물한(勿汗)이재라는 지명이 유래한다. 일명 물한티라고도 하며, 물한이재 아래에 있는 긴 골짜기를 물한잿골이라 부른다.
곰치재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검천리 재골과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곰티골 사이의 고개이다. 예로부터 벌곡과 양촌 및 연산 지방 사이의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웅치(熊峙), 웅재 라고도 하였다.
덕목재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목리와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사이의 고개로 68번도로와 호남고속지선이 지나간다. 덕목리(德木里)는 마을에 늙은 떡갈나무가 있는데 나라에 변란이라도 있으면 소리를내어 미리 알려주어 이 나무를 덕나무라 부르게 되었는데 마을에 덕나무가 있는마을이라 하여 덕목리라 한다고 한다. 산직리(山直里)는 옛날 마을에 산직(山直, 산지기) 집이 있어서 산직말이라 하였다.
■ 금남 08구간
1. 산행코스:
덕목재, 깃대봉(394 1.4km), 함박봉(404 2.0km), 황령재(0.8km), 대목재(1.4km), 천호산(311 2.0km), 천호봉(304.8 0.7km)개터망골(2.3km), 두리봉(278 0.8km), 천마산(287 0.5km), 양정고개(2.1km) -- 14.1Km
2. 소개
덕목재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목리와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사이의 고개로 68번도로와 호남고속지선이 지나간다. 덕목리(德木里)는 마을에 늙은 떡갈나무가 있는데 나라에 변란이라도 있으면 소리를내어 미리 알려주어 이 나무를 덕나무라 부르게 되었는데 마을에 덕나무가 있는마을이라 하여 덕목리라 한다고 한다. 산직리(山直里)는 옛날 마을에 산직(山直, 산지기) 집이 있어서 산직말이라 하였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연산면 신양리 경계의 깃대봉(394)은 봉화나 봉수와 같이 군사 목적의 통신수단으로 이용되는 곳에 주로 붙여진 이름이다.
충남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 연산면 신양리, 연산면 신암리 경계의 함박봉(咸朴峰 404)은 산의 모양이 함지박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하였다.
황령재(黃嶺)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와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 사이의 고개이다. 백제 때 구축한 함박산성 또는 황령산성이라 불리는 약 300m의 토성이 있다. 백제군의 중요한 산성이었으며, 삼국시대 말기 신라와 백제 간의 전투가 있었던 황산벌이 펼쳐져 있다.
대목재(大木-)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와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사이의 고개이다. 대목령(大木嶺)이라고도 하며 대목 마을은 한삼천리의 서북쪽 산 속에 있는 마을로 옛날부터 큰 나무가 많이 있어서 목재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큰 나무가 많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대목골 또는 대목동이라 불렸다고 한다.
충남 계룡시 두마면 입암리,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경계의 천호산(天護山 311)은 황산(黃山)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의 김유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당나라 소정방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니 백제의 장군 계백이 황산 벌판에서 신라의 군사를 방어할 적에, 3개의 병영을 설치하고 네 번 싸워 모두 이겼으나 끝내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서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황산이라 불렀던 것을 고려 태조가 천호산으로 개칭하였고 한다.
고려 태조가 백제에 승리하고 친히 원문(願文)을 짓고 썼는데 부처님께서 지켜주심에 보답하고 산신령님께서 도와주심을 갚으려고 특별히 담당 관리에 명령하여 불당을 창건하고는, 이에 산의 이름을 천호(天護)라 하고 절의 이름을 개태(開泰)라 한다고 하였다.
개터망골은 충남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와 계룡시 엄사면 광석리 사이의 고개이다. 농소리(農所里)는 누에가 누워 있는 형상이며 농사를 짓기에 알맞은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광석리(光石里)는 마을 한복판에 농번기에 마을사람들이 둘러앉아 점심이나 새참을 먹으며 쉬던 큰 바위가 있어 마을 이름을 너분돌이라 불렀다. 이를 한자로 광석(廣石)이라 표기하다가 광석(光石)으로 고쳐 쓰게 되었으며,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
충남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 계룡시 엄사면 광석리 경계의 두리봉(278)은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은곳으로 산행지도에 두리봉으로 다음지도에는 천마산으로 표시되어 있다.
충남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 계룡시 엄사면 유동리 경계의 천마산(287)은 서남쪽으로는 백제 계백장군의 충혼이 어린 황산벌이 멀리 바라다 보인다. 서편 기슭으로는 고려 왕건이 하늘의 도움으로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고려를 크게 열어 세웠다는 개태사를 내려다 볼수 있으며, 산 정상에는 천마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조망이 좋다.
양정고개(羊丁峙)는 계룡시 금암동과 계룡시 엄사면 엄사리 사이의 고개로 1번도로가 지나간다. 고개에 정씨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정감록의 예언대로 신도안에 정씨가 나타나 세상을 평정한다면 그는 이 고개를 넘어서 갈 것이며 이 고개에서 두 사람의 정씨가 왕 자리를 놓고 최후의 결전을 벌일 것이다 라는 전설이다.
■ 금남 09구간
1. 산행코스:
양정고개(1번국도), 구럭재(2.6km), 멘재(3.3km), 국사봉(0.6km), 큰서문다리재(2.8km), 계룡산(천황봉 846.4 1.8km)쌀개봉(830 0.6km), 쌀개릉, 관음봉(766 1.0km), 은선폭포(1.1km), 동학사(1.7km), 주차장(1.2km) -- 16.7Km
2. 소개
양정고개(羊丁峙)는 계룡시 금암동과 계룡시 엄사면 엄사리 사이의 고개로 1번도로가 지나간다. 고개에 정씨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정감록의 예언대로 신도안에 정씨가 나타나 세상을 평정한다면 그는 이 고개를 넘어서 갈 것이며 이 고개에서 두 사람의 정씨가 왕 자리를 놓고 최후의 결전을 벌일 것이다 라는 전설이다.
구럭재는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정장리와 엄사면 엄사리 사이의 고개이다.
멘재는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멘재골과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사이의 고개이다. 향적산(574m)에 매달린 것 같이 보인다고 하여 맨재 또는 현령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상도리 경계의 국사봉은 지명의 유래를 찾기 어렵다.
큰서문다리재는 충남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귀심골과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수용추골 사이의 고개이다. 용천령(서문다리)은 천황봉에서 용화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하며 용화사 방향의 상도리와 부남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지명에 대한 유래는 찾을 수 없었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신도안면 용동리 경계의 계룡산(천황봉 天凰峰 846.4)은 예전에는 계룡산의 제1봉이라 하여 상제봉(上帝峰)이나 상봉(上峰) 또는 제자봉(帝字峰)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 가장 많은 왜곡의 유형으로 큰 산이나 봉우리 이름에 들어가는 왕(王)을 황(皇)이나 왕(旺)으로 바꾼 경우가 있는데, 황은 일본 천황을 의미하는 것이고, 왕은 일본의 왕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계룡산(천황봉 846.4m)은 차령산맥의 연봉으로서 충남 공주, 논산과 대전 경계에 있고 주봉인 천황봉에서 연천봉(739m), 삼불봉(77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벼슬을 쓴 용의 형상이라하여 붙여졌고(풍수지리상 4대 명산)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천황봉의 일출, 삼불봉의 설화, 연천봉의 낙조, 관음봉의 한운, 동학사 계곡의 숲, 갑사 계곡의 단풍, 은선폭포 운무, 남매탑의 명월을 가리켜 계룡팔경이라 하는데 갑사계곡은 계룡산 국립공원의 7개 계곡중 춘마곡 추갑사(봄에는 마곡계곡, 가을에는 갑사계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풍이 빼어난 곳이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계룡시 신도안면 용동리 경계의 쌀개봉(830)은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V자형 산봉우리가 쌀개봉이며, 형상이 마치 디딜방아의 쌀개와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쌀개란 디딜방아를 양쪽으로 고정시키는 걸개를 말한다. 전설에 쌀개를 닮은 곳에서 쌀이 나왔는데 어느 한 스님이 욕심을 부린 다음부터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경계의 쌀개릉은 쌀개봉과 관음봉 사이의 암릉 능선을 말한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중장리,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경계의 관음봉(766)은 봉우리의 모양이 후덕한 관세음보살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은선폭포는 동학사 계곡의 유일한 폭포로 옛날 신선이 숨어 살던 곳이라하여 은선폭포라 불리운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위치하며 동계사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724년(성덕왕 23)상원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가 절을 창건하여 청량사라 하였고, 920년(태조 3)도선이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이 되었다. 936년신라가 망하자 대승관 유거달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를 지었다. 그리고 사찰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동학사로 바꾸었다.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의 조종인 정몽주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 금남 10구간
1. 산행코스:
갑사, 연천봉(739 2.8km Backm 250m), 관음봉(766 1.2km), 자연성릉, 삼불봉(777 1.7km), 금잔디고개(0.7km)수정봉(662 0.2km), 만학골재(3.1km), 중장리 고개(2.5km) -- 12.2Km
2. 소개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의 갑사(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삼국시대 에 창건된 사찰이며 계룡갑사(鷄龍甲寺), 갑사(岬寺), 갑사사(甲士寺), 계룡사(鷄龍寺)라고도 한다. 백제 구미신왕 원년(420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556년(진흥왕 17)에 혜명(惠明)이 창건하였다는 설, 아도가 창건하고 혜명이 중창했다는 설 등이 있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있는데 봄에는 마곡사가 깊은 계곡과 어우러져 풍광이 수려하고 가을에는 갑사가 아늑하여 좋다는 말이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하대리, 중장리 경계의 연천봉(連天峰739)은 명칭 뜻 그대로 하늘과 이어진 곳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을 세운 이성계(李成桂)가 계룡산 연천봉에 올라 제단을 차려 놓고, 이곳에 왕도(王都)가 서고 모든 일이 잘 되도록 천지신명께 엄숙히 기도를 드린 곳이라고 한다. 꿈에 신선을 만났는데 신선은 한양(漢陽)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명하였다 한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중장리,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경계의 관음봉(766)은 봉우리의 모양이 후덕한 관세음보살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성릉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성곽의 능선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관음봉에서 삼불봉에 이르는 2.1㎞ 구간을 말한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면 중장리 경계의 삼불봉(三佛峰 777)은 동학사나 천황봉에서 올려다보면, 세 개의 봉우리로 된 산의 형상이 마치 세 부처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삼불봉이라 불린다고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설경(雪景)이 아름다워 삼불봉 설화(雪花)라 부르며 계룡팔경(鷄龍八景)의 제2경으로 꼽는다.
금잔디고개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와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사이의 고개이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경계의 수정봉(水晶峰 662)은 전국의 많은 산봉우리에 쓰이는 이름으로 봉우리가 수정처럼 곱다 해서 수정봉이라고 불린다.
만학골재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만학골과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사이의 고개이다.
중장리 고개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상반송마을과 계룡면 중장리 사이의 고개로 691번도로가 지나간다. 구왕 마을은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겼다 해서 구렁말 또는 구룡말이라 불리다 후에 구왕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 금남 11구간
1. 산행코스:
중장리 고개, 팔재산(364 0.6km), 놀티재(참새피장골 1.6km), 중무덤이(1.2km), 상지골(0.8km)
안골산(322 1.3km Backm 300m), 포장도로(4.2km), 성황산(성정산 237 1.0km), 반송고개(1.5km)
구수리고개(복룡고개 3.0km), 망덕봉(210 2.6km), 진고개(2.9km) -- 20.7Km
2. 소개
중장리 고개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상반송마을과 계룡면 중장리 사이의 고개로 691번도로가 지나간다. 구왕 마을은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겼다 해서 구렁말 또는 구룡말이라 불리다 후에 구왕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기산리 경계의 팔재산(八-山 364)은 산봉우리 밑부분의 돌이 여덟 팔자 모양을 띠고 있어 팔재산 또는 팔자산(八字山)이라 한다.
놀티재(참새피장골)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 계룡면 기산리 사이의 고개로 23번도로가 지나는 봉명교차로 지점이다.
중무덤이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 처막골과 계룡면 기산리 사이의 고개이다.
상지골은 충남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와 계룡면 기산리 기산저수지 사이의 고개이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 기산리, 향지리, 이인면 발양리 경계의 안골산(安-山 322)은 안산들과 안산(安山)을 기준으로 안쪽에 있는 산 또는 안쪽에 있는 골짜기의 줄임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향지 마을은 지초가 많이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충남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 혼잡터골과 이인면 발양리 고분티골 사이의 고개는 이름이 지형도에 표시되지 않으며 포장도로가 개통되어 있다. 발양 마을은지형이 바랑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바랑은 중이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를 말한다.
충남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 발양리, 용성리 경계의 성황산(성정산 城頂山 237)은 백제시대의 용산성(龍山城)의 성 터가 남아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성이 있던 산이라 하여 명칭 그대로 성정산이라 불리우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성항산(城項山)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반송고개는 충남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 고시골과 이인면 산의리 사이의 고개이다. 산의리(山儀里)는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다 해서 산의실이라 불리다 후에 산의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구수리고개(복룡고개)는 충남 공주시 이인면 복룡리와 이인면 이인리 사이의 고개로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산세의 형국이 돼지의 구수와 같다 하여 구수티고개라고 한다. 구수는 구유(가축의 먹이를 담는 통)의 방언이다.
충남 공주시 탄천면 광명리, 삼각리, 이인면 달산리 경계의 망덕봉(210)은 지명의 유래를 찾기 어렵다.
진고개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와 탄천면 삼각리 사이의 고개로 645번도로가 지나간다. 대다수의 진고개는 물이 많거나 비가 내리면 땅이 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를 한자로 표현하여 이현(泥峴) 이라고도 하였다.
■ 금남 12구간
1. 산행코스:
진고개, 멍덕재(2.7km), 감토봉(262 0.7km), 가자티고개(2.0km), 됨봉(160 0.5km), 신앙고개(1.6km)
청마산(월명산 233 4.6km), 청마산성, 오석산(166 0.8km), 청마고개(제마소고개 1.5km), 석목고개(2.1km)금성산(121 1.3km), 부여여고(1.7km), 부소산(105 1.9km), 구드래나루터(1.2km) -- 22.7Km
2. 소개
진고개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와 탄천면 삼각리 사이의 고개로 645번도로가 지나간다. 대다수의 진고개는 물이 많거나 비가 내리면 땅이 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를 한자로 표현하여 이현(泥峴) 이라고도 하였다.
멍덕재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속력골과 탄천면 정치리 사이의 고개이다.
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가척리 경계의 감토봉(甘土峰 262)은 봉우리의 모양이 감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가자티고개(가지티고개)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와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 가자퇴골 사이의 고개이다. 가척 마을은 가재가 많은 골짜기에위치한다 해서 가재울 또는 가자울이라 불리다 후에 가척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탄천면 가척리 경계의 됨봉(160)은 성골 마을이 뒤웅박(됨박)처럼 생겼다하여 됨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신앙고개는 충남 부여군 초촌면 세탑리와 탄천면 가척리 사이의 고개이다. 세탑리(細塔里)는 백제시대에는사비군, 신라시대에는 부여군, 고려시대에는 공주군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부여군 초촌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탑동리와 신송리, 세동과 몽도면의 보각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동과 탑동의 이름을 따서 세탑리라 하고 부여군 초촌면에 편입하였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송곡리, 가증리 경계에 청마산(140.8)이 지형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초촌면 신암리 경계의 월명산이 산행 지도상 청마산(월명산 233)으로 표시되어 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의 부여청마산성(扶餘 靑馬山城)은 월명산에 있는 백제 산성으로, 당시 수도였던 사비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둘레 약 5~6㎞의 흙과 돌로 쌓은 산성이다. 골짜기를 성안에 두고 산 능선을 따라 토석혼축의 포곡식 산성이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청마산성과 부여읍 용정리 용정소류지 경계의 오석산(烏石山 166)은 오적산(烏積山), 오산(烏山) 이라고도 부르며 까만 돌이 나오는 산이라 한다. 백제 때부터 삼령산(三靈山)의 하나로 여겨졌는데, 산 부근에서 백제 때의 토기와 불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청마고개(제마소고개)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와 부여읍 용정리 청마로 사이의 고개이다.
석목고개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와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 사이의 고개로 40번도로가 지나간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 부여읍 동남리, 부여읍 쌍북리 경계의 금성산(錦城山 121)은 백제의 삼산 가운데 하나로 일산(日山), 오산(吳山), 부산(浮山)의 산위에 신선이 살았다고 한다. 삼산중 일산은 부여의 동편에 있는데 지금의 금성산으로 추정되며 금성산을 중앙에 놓고 서쪽에 부산, 동쪽에 오산이 일정한 거리로 일직선상에 있다고 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여읍 구교리 경계의 부소산(扶蘇山 105)은 언제부터 부소산으로 불렸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소나무를 뜻하는 풋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부소라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결국 솔뫼가 되는 것이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扶餘邑) 부소산(扶蘇山) 북쪽 백마강변의 고란사(皐蘭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백마강변의 부소산에 있는 낙화암(落花巖)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함락되자 궁녀 3천명이 백마강 바위 위에서 투신하었다 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고 한다.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의 사자루(泗(水+此)樓)는 원래 1824년(순조24)에 세운 임천면(林川面)의 관아 정문이던 것을 1919년 부소산성(扶蘇山城)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송월대(送月臺)에 옮겨짓고 이름을 개산루(皆山樓)에서 사자루로 바꾸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부여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은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였으며,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 수도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구드래나루는 백제 사비성의 관문 역할을 한 곳으로 백제의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구드래는 부소산 서쪽 기슭 백마강변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구드래, 구다라, 굿들개, 구들설 등 여러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3. 등산지도
충남 공주시 탄천면 광명리, 삼각리, 이인면 달산리 경계의 망덕봉(210)은 지명의 유래를 찾기 어렵다.
진고개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와 탄천면 삼각리 사이의 고개로 645번도로가 지나간다. 대다수의 진고개는 물이 많거나 비가 내리면 땅이 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를 한자로 표현하여 이현(泥峴) 이라고도 하였다.
멍덕재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속력골과 탄천면 정치리 사이의 고개이다.
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가척리 경계의 감토봉(甘土峰 262)은 봉우리의 모양이 감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가자티고개(가지티고개)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와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 가자퇴골 사이의 고개이다. 가척 마을은 가재가 많은 골짜기에위치한다 해서 가재울 또는 가자울이라 불리다 후에 가척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탄천면 가척리 경계의 됨봉(160)은 성골 마을이 뒤웅박(됨박)처럼 생겼다하여 됨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신앙고개는 충남 부여군 초촌면 세탑리와 탄천면 가척리 사이의 고개이다. 세탑리(細塔里)는 백제시대에는사비군, 신라시대에는 부여군, 고려시대에는 공주군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부여군 초촌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탑동리와 신송리, 세동과 몽도면의 보각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동과 탑동의 이름을 따서 세탑리라 하고 부여군 초촌면에 편입하였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송곡리, 가증리 경계에 청마산(140.8)이 지형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초촌면 신암리 경계의 월명산이 산행 지도상 청마산(월명산 233)으로 표시되어 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의 부여청마산성(扶餘 靑馬山城)은 월명산에 있는 백제 산성으로, 당시 수도였던 사비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둘레 약 5~6㎞의 흙과 돌로 쌓은 산성이다. 골짜기를 성안에 두고 산 능선을 따라 토석혼축의 포곡식 산성이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청마산성과 부여읍 용정리 용정소류지 경계의 오석산(烏石山 166)은 오적산(烏積山), 오산(烏山) 이라고도 부르며 까만 돌이 나오는 산이라 한다. 백제 때부터 삼령산(三靈山)의 하나로 여겨졌는데, 산 부근에서 백제 때의 토기와 불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청마고개(제마소고개)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와 부여읍 용정리 청마로 사이의 고개이다.
석목고개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와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 사이의 고개로 40번도로가 지나간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 부여읍 동남리, 부여읍 쌍북리 경계의 금성산(錦城山 121)은 백제의 삼산 가운데 하나로 일산(日山), 오산(吳山), 부산(浮山)의 산위에 신선이 살았다고 한다. 삼산중 일산은 부여의 동편에 있는데 지금의 금성산으로 추정되며 금성산을 중앙에 놓고 서쪽에 부산, 동쪽에 오산이 일정한 거리로 일직선상에 있다고 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여읍 구교리 경계의 부소산(扶蘇山 105)은 언제부터 부소산으로 불렸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소나무를 뜻하는 풋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부소라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결국 솔뫼가 되는 것이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扶餘邑) 부소산(扶蘇山) 북쪽 백마강변의 고란사(皐蘭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백마강변의 부소산에 있는 낙화암(落花巖)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함락되자 궁녀 3천명이 백마강 바위 위에서 투신하었다 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고 한다.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의 사자루(泗(水+此)樓)는 원래 1824년(순조24)에 세운 임천면(林川面)의 관아 정문이던 것을 1919년 부소산성(扶蘇山城)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송월대(送月臺)에 옮겨짓고 이름을 개산루(皆山樓)에서 사자루로 바꾸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부여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은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였으며,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 수도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구드래나루는 백제 사비성의 관문 역할을 한 곳으로 백제의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구드래는 부소산 서쪽 기슭 백마강변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구드래, 구다라, 굿들개, 구들설 등 여러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만학골재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만학골과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사이의 고개이다.
중장리 고개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상반송마을과 계룡면 중장리 사이의 고개로 691번도로가 지나간다. 구왕 마을은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겼다 해서 구렁말 또는 구룡말이라 불리다 후에 구왕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중장리 고개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상반송마을과 계룡면 중장리 사이의 고개로 691번도로가 지나간다. 구왕 마을은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겼다 해서 구렁말 또는 구룡말이라 불리다 후에 구왕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기산리 경계의 팔재산(八-山 364)은 산봉우리 밑부분의 돌이 여덟 팔자 모양을 띠고 있어 팔재산 또는 팔자산(八字山)이라 한다.
놀티재(참새피장골)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 계룡면 기산리 사이의 고개로 23번도로가 지나는 봉명교차로 지점이다.
중무덤이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 처막골과 계룡면 기산리 사이의 고개이다.
상지골은 충남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와 계룡면 기산리 기산저수지 사이의 고개이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 기산리, 향지리, 이인면 발양리 경계의 안골산(安-山 322)은 안산들과 안산(安山)을 기준으로 안쪽에 있는 산 또는 안쪽에 있는 골짜기의 줄임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향지 마을은 지초가 많이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충남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 혼잡터골과 이인면 발양리 고분티골 사이의 고개는 이름이 지형도에 표시되지 않으며 포장도로가 개통되어 있다. 발양 마을은지형이 바랑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바랑은 중이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를 말한다.
충남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 발양리, 용성리 경계의 성황산(성정산 城頂山 237)은 백제시대의 용산성(龍山城)의 성 터가 남아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성이 있던 산이라 하여 명칭 그대로 성정산이라 불리우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성항산(城項山)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반송고개는 충남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 고시골과 이인면 산의리 사이의 고개이다. 산의리(山儀里)는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다 해서 산의실이라 불리다 후에 산의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구수리고개(복룡고개)는 충남 공주시 이인면 복룡리와 이인면 이인리 사이의 고개로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산세의 형국이 돼지의 구수와 같다 하여 구수티고개라고 한다. 구수는 구유(가축의 먹이를 담는 통)의 방언이다.
충남 공주시 탄천면 광명리, 삼각리, 이인면 달산리 경계의 망덕봉(210)은 지명의 유래를 찾기 어렵다.
진고개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와 탄천면 삼각리 사이의 고개로 645번도로가 지나간다. 대다수의 진고개는 물이 많거나 비가 내리면 땅이 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를 한자로 표현하여 이현(泥峴) 이라고도 하였다.
충남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 계룡시 엄사면 광석리 경계의 두리봉(278)은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은곳으로 산행지도에 두리봉으로 다음지도에는 천마산으로 표시되어 있다.
충남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 계룡시 엄사면 유동리 경계의 천마산(287)은 서남쪽으로는 백제 계백장군의 충혼이 어린 황산벌이 멀리 바라다 보인다. 서편 기슭으로는 고려 왕건이 하늘의 도움으로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고려를 크게 열어 세웠다는 개태사를 내려다 볼수 있으며, 산 정상에는 천마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조망이 좋다.
양정고개(羊丁峙)는 계룡시 금암동과 계룡시 엄사면 엄사리 사이의 고개로 1번도로가 지나간다. 고개에 정씨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정감록의 예언대로 신도안에 정씨가 나타나 세상을 평정한다면 그는 이 고개를 넘어서 갈 것이며 이 고개에서 두 사람의 정씨가 왕 자리를 놓고 최후의 결전을 벌일 것이다 라는 전설이다.
구럭재는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정장리와 엄사면 엄사리 사이의 고개이다.
멘재는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멘재골과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사이의 고개이다. 향적산(574m)에 매달린 것 같이 보인다고 하여 맨재 또는 현령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상도리 경계의 국사봉은 지명의 유래를 찾기 어렵다.
큰서문다리재는 충남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귀심골과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수용추골 사이의 고개이다. 용천령(서문다리)은 천황봉에서 용화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하며 용화사 방향의 상도리와 부남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지명에 대한 유래는 찾을 수 없었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신도안면 용동리 경계의 계룡산(천황봉 天凰峰 846.4)은 예전에는 계룡산의 제1봉이라 하여 상제봉(上帝峰)이나 상봉(上峰) 또는 제자봉(帝字峰)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 가장 많은 왜곡의 유형으로 큰 산이나 봉우리 이름에 들어가는 왕(王)을 황(皇)이나 왕(旺)으로 바꾼 경우가 있는데, 황은 일본 천황을 의미하는 것이고, 왕은 일본의 왕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계룡산(천황봉 846.4m)은 차령산맥의 연봉으로서 충남 공주, 논산과 대전 경계에 있고 주봉인 천황봉에서 연천봉(739m), 삼불봉(77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벼슬을 쓴 용의 형상이라하여 붙여졌고(풍수지리상 4대 명산)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천황봉의 일출, 삼불봉의 설화, 연천봉의 낙조, 관음봉의 한운, 동학사 계곡의 숲, 갑사 계곡의 단풍, 은선폭포 운무, 남매탑의 명월을 가리켜 계룡팔경이라 하는데 갑사계곡은 계룡산 국립공원의 7개 계곡중 춘마곡 추갑사(봄에는 마곡계곡, 가을에는 갑사계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풍이 빼어난 곳이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계룡시 신도안면 용동리 경계의 쌀개봉(830)은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V자형 산봉우리가 쌀개봉이며, 형상이 마치 디딜방아의 쌀개와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쌀개란 디딜방아를 양쪽으로 고정시키는 걸개를 말한다. 전설에 쌀개를 닮은 곳에서 쌀이 나왔는데 어느 한 스님이 욕심을 부린 다음부터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경계의 쌀개릉은 쌀개봉과 관음봉 사이의 암릉 능선을 말한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중장리,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경계의 관음봉(766)은 봉우리의 모양이 후덕한 관세음보살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은선폭포는 동학사 계곡의 유일한 폭포로 옛날 신선이 숨어 살던 곳이라하여 은선폭포라 불리운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위치하며 동계사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724년(성덕왕 23)상원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가 절을 창건하여 청량사라 하였고, 920년(태조 3)도선이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이 되었다. 936년신라가 망하자 대승관 유거달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를 지었다. 그리고 사찰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동학사로 바꾸었다.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의 조종인 정몽주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의 갑사(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삼국시대 에 창건된 사찰이며 계룡갑사(鷄龍甲寺), 갑사(岬寺), 갑사사(甲士寺), 계룡사(鷄龍寺)라고도 한다. 백제 구미신왕 원년(420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556년(진흥왕 17)에 혜명(惠明)이 창건하였다는 설, 아도가 창건하고 혜명이 중창했다는 설 등이 있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있는데 봄에는 마곡사가 깊은 계곡과 어우러져 풍광이 수려하고 가을에는 갑사가 아늑하여 좋다는 말이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하대리, 중장리 경계의 연천봉(連天峰739)은 명칭 뜻 그대로 하늘과 이어진 곳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을 세운 이성계(李成桂)가 계룡산 연천봉에 올라 제단을 차려 놓고, 이곳에 왕도(王都)가 서고 모든 일이 잘 되도록 천지신명께 엄숙히 기도를 드린 곳이라고 한다. 꿈에 신선을 만났는데 신선은 한양(漢陽)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명하였다 한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중장리,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경계의 관음봉(766)은 봉우리의 모양이 후덕한 관세음보살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성릉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성곽의 능선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관음봉에서 삼불봉에 이르는 2.1㎞ 구간을 말한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면 중장리 경계의 삼불봉(三佛峰 777)은 동학사나 천황봉에서 올려다보면, 세 개의 봉우리로 된 산의 형상이 마치 세 부처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삼불봉이라 불린다고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설경(雪景)이 아름다워 삼불봉 설화(雪花)라 부르며 계룡팔경(鷄龍八景)의 제2경으로 꼽는다.
금잔디고개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와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사이의 고개이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경계의 수정봉(水晶峰 662)은 전국의 많은 산봉우리에 쓰이는 이름으로 봉우리가 수정처럼 곱다 해서 수정봉이라고 불린다.
만학골재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만학골과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사이의 고개이다.
중장리 고개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상반송마을과 계룡면 중장리 사이의 고개로 691번도로가 지나간다. 구왕 마
중장리 고개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상반송마을과 계룡면 중장리 사이의 고개로 691번도로가 지나간다. 구왕 마을은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겼다 해서 구렁말 또는 구룡말이라 불리다 후에 구왕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기산리 경계의 팔재산(八-山 364)은 산봉우리 밑부분의 돌이 여덟 팔자 모양을 띠고 있어 팔재산 또는 팔자산(八字山)이라 한다.
수락재(무수재 舞袖峙 397)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솔로골과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 무수재골 사이의 고개이다. 무수재는 무수골에서 나온 지명인데 무수골은 수락리의 별칭이다. 무수티는 무수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무수재 아래의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경계의 월성봉(月城峰 650)은 월성봉은 월성봉이라는 봉우리 이름보다 월봉성, 다리성 등 성채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고려 때 토적(土賊) 달리(達里)가 이곳에 웅거하며 노략질이 심하여 관군이 포위한 지 한 해가 지나서야 겨우 토벌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토성(土城)에 달이 비치면 그 고요함이야말로 숨을 죽이는 듯했고, 성벽에 비친 달빛의 수려함이 으뜸이라 하여 월성(月城)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 양촌면 채광리, 벌곡면 덕곡리 경계의 바랑산(555.4)은 산의 생김새가 바랑(걸낭)같이 생겼다 하여 바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작은물한재(물한티, 물한재)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염장골과 논산시 양촌면 반암리 작은물안이골 사이의 고개이다. 1914년 이전에 반암리에는 물한리(勿汗里)라는 자연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지명이 유래한다. 정상부 부근에는 물한산(勿汗山)이 있다.
물한이재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중버실마을과 논산시 양촌면 반암리 큰물안이골 사이의 고개이다. 물한산 남쪽에 있는 고개로 이 고개를 넘을 때면 한 겨울에도 땀을 흘려야 하는 험한 고개라 하여 물한(勿汗)이재라는 지명이 유래한다. 일명 물한티라고도 하며, 물한이재 아래에 있는 긴 골짜기를 물한잿골이라 부른다.
곰치재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검천리 재골과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곰티골 사이의 고개이다. 예로부터 벌곡과 양촌 및 연산 지방 사이의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웅치(熊峙), 웅재 라고도 하였다.
덕목재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목리와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사이의 고개로 68번도로와 호남고속지선이 지나간다. 덕목리(德木里)는 마을에 늙은 떡갈나무가 있는데 나라에 변란이라도 있으면 소리를내어 미리 알려주어 이 나무를 덕나무라 부르게 되었는데 마을에 덕나무가 있는마을이라 하여 덕목리라 한다고 한다. 산직리(山直里)는 옛날 마을에 산직(山直, 산지기) 집이 있어서 산직말이라 하였다.
황령재(黃嶺)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와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 사이의 고개이다. 백제 때 구축한 함박산성 또는 황령산성이라 불리는 약 300m의 토성이 있다. 백제군의 중요한 산성이었으며, 삼국시대 말기 신라와 백제 간의 전투가 있었던 황산벌이 펼쳐져 있다.
대목재(大木-)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와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사이의 고개이다. 대목령(大木嶺)이라고도 하며 대목 마을은 한삼천리의 서북쪽 산 속에 있는 마을로 옛날부터 큰 나무가 많이 있어서 목재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큰 나무가 많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대목골 또는 대목동이라 불렸다고 한다.
충남 계룡시 두마면 입암리,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경계의 천호산(天護山 311)은 황산(黃山)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의 김유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당나라 소정방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니 백제의 장군 계백이 황산 벌판에서 신라의 군사를 방어할 적에, 3개의 병영을 설치하고 네 번 싸워 모두 이겼으나 끝내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서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황산이라 불렀던 것을 고려 태조가 천호산으로 개칭하였고 한다.
고려 태조가 백제에 승리하고 친히 원문(願文)을 짓고 썼는데 부처님께서 지켜주심에 보답하고 산신령님께서 도와주심을 갚으려고 특별히 담당 관리에 명령하여 불당을 창건하고는, 이에 산의 이름을 천호(天護)라 하고 절의 이름을 개태(開泰)라 한다고 하였다.
개터망골은 충남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와 계룡시 엄사면 광석리 사이의 고개이다. 농소리(農所里)는 누에가 누워 있는 형상이며 농사를 짓기에 알맞은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광석리(光石里)는 마을 한복판에 농번기에 마을사람들이 둘러앉아 점심이나 새참을 먹으며 쉬던 큰 바위가 있어 마을 이름을 너분돌이라 불렀다. 이를 한자로 광석(廣石)이라 표기하다가 광석(光石)으로 고쳐 쓰게 되었으며,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
충남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 계룡시 엄사면 광석리 경계의 두리봉(278)은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은곳으로 산행지도에 두리봉으로 다음지도에는 천마산으로 표시되어 있다.
충남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 계룡시 엄사면 유동리 경계의 천마산(287)은 서남쪽으로는 백제 계백장군의 충혼이 어린 황산벌이 멀리 바라다 보인다. 서편 기슭으로는 고려 왕건이 하늘의 도움으로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고려를 크게 열어 세웠다는 개태사를 내려다 볼수 있으며, 산 정상에는 천마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조망이 좋다.
양정고개(羊丁峙)는 계룡시 금암동과 계룡시 엄사면 엄사리 사이의 고개로 1번도로가 지나간다. 고개에 정씨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정감록의 예언대로 신도안에 정씨가 나타나 세상을 평정한다면 그는 이 고개를 넘어서 갈 것이며 이 고개에서 두 사람의 정씨가 왕 자리를 놓고 최후의 결전을 벌일 것이다 라는 전설이다.
백령고개(작고개 고지전승탑)는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와 남이면 건천리 사이의 고개로 635번도로가 지나간다. 건천리는 마을을 지나가는 하천에 돌이 많아 물이 돌 속으로 흘러 마치 냇물이 말라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평 마을은 조선시대에말을 먹이던 들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충남 금산군 진산면 삼가리,진산면 오항리, 진산면 석막리 경계의 인대산(印大山 666)은 조선시대 진산읍치로 이어지는 주맥의 흐름에 속하는 산으로 이 산으로 인하여 큰 인물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인대봉(仁大峰, 印對峰) 으로도 사용되었다.
오항재는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 가마골과 진산면 오항리 뫼골 사이의 고개로 635번도로가 지나간다.
석막(石幕里) 마을은 원래돌이 많아서 돌매기 또는 돌막이라 불리다 후에 돌이 병풍처럼 있다는 뜻에서 석막마을이라 개칭하게 되었다.
배티재(340)는 충남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노른이골과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사이의 고개로 17번도로가 지나간다. 옛날 배가 넘어 다니던 고개라는 전설에 의하여 배티재라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골짜기에 배나무가 많아 이치(梨峙)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거느린 2만병력의 왜군이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뒤 군량미 확보를 위해 호남평야로의 진출을목적으로 이 배티재를 넘으려 하다가 권율(權慄)에게 대패한 지역이다. 고개 바로 아래쪽으로 진산면 묵산리 언덕에 권율장군이치대첩비(權慄奬軍梨峙大捷碑)가 있다.
대둔산(마천대 878.9m)은 노령산맥의 일부로 서쪽으로 만경평야를 굽어볼수 있고 최고봉인 마천대를 중심으로 여러 노암과 기암 괴석이 솟아 있다. 전북쪽은 기암절벽, 충남쪽은 숲과 계곡이 아름다워 77년/80년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마천대는 하늘과 맞닿았다는 뜻으로 원효대사가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운주면 완창리 경계의 서각봉(829)은 갈림길에서 10여미터 떨어져 있고 허둥봉 이라고도 불린다.
깔딱재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골과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사이의 고개이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경계의 새리봉(575)은 짜개봉으로 분기되는 다음 지형도에 표시되어 있는 봉우리로 지명의 유래를 찾기 어렵다.
큰싸리재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고려장골과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축령골 사이의 고개이다.
작은싸리재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고려장골과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싸리재골 사이의 고개이다. 높고 가파르며, 싸리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봉수대가 산 정상부에 있으며 1595년(선조 28)에 태평산성(太平山城)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용담) 에 유령(杻嶺)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후에 축령(丑嶺)으로 변음된 것은 싸리나무라는 의미의 유(杻)자를 축(丑)으로 잘못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경계의 태평봉수대(성재봉, 봉화재 820)는 백제 때에 처음 축조되었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1595년(선조 28)에 태평산성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 봉수대는
동남쪽의 장수군 장안산(長安山) 방면에서 승계하여 북서쪽의 완주군 탄현성(炭峴城)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데,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는 이 성재는 삼국시대에 동쪽으로 진안군 용담면 성남리 산성이나 북쪽으로 탄현성(일명 쑥고개)과 연결되어 수도 방어의 요충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경계의 신선봉(790)은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았으며 지명의 유래도 찾기 어렵다.
게목재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와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큰화랑골 사이의 고개로 지형도에 표기되지 않은 고개이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남이면 건천리 경계의 백암산(육백고지 괯百高地山 654)은 한국전쟁 때 북한군 패잔병과 남로당 병력이 1952년 5월 군/경/민에 의해 소탕될 때까지 저항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 산에는 산 아래부터 위로 올라오며 붓막골, 산막골, 굴골로 불리는 험하고 후미진 곳이 많다.
구적산(九赤山), 구적산(九積山), 구적골 이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역평리 사람들이 산제나 무제를 지내고 개인의 소원을 빌던 구적굴이 있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 남이면 건천리 경계의 독수리봉은 산행지도에만 표시되어 있고 지형도에는 표기되지 않았다. 건천리는 마을을 지나가는 하천에 돌이 많아 물이 돌 속으로 흘러 마치 냇물이 말라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평 마을은 조선시대에말을 먹이던 들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 역평리의 금산백령성(錦山栢嶺城)은 백제시대에 견훤이 남이면 대양리(大陽里)에 경양현을 설치하고 금산의 서남방면을 방어하기 위해 수축한 성으로, 625전쟁 때의 전적지인 백암산(白巖山)의 육백고지 전승탑 뒷산에 있다. 백령성지는 1990년 5월 충남기념물 제8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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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고개(작고개 고지전승탑)는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와 남이면 건천리 사이의 고개로 635번도로가 지나간다.
모래재(사현 沙峴)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와 완주군 소양면 사이의 고개이다. 고개 지명은 이곳에 모래가 많이 난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봉암리,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경계의 주화산(조약봉 565)은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이 분기되는 지점이다.
조약치(鳥躍峙)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사이의 고개이다. 조약재, 족약치(足躍峙) 라고도 하는데 경사가 심하여 새걸음을 걷듯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족약치가 의미에 맞는 지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발음하기가 어려워 후에 조약치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경계의 입봉(笠峰 637)은 산 모양이 삿갓 모양이어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산의 서쪽으로 만경강의 발원지인 밤샘이 있다.
보룡고개(405m)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사이의 고개로 26번도로가 지나간다. 고개 바로 아래 소태정 마을이 있어서 소태정 고개, 소태정재로도 부른다. 풍수적으로 구룡농주(九龍弄珠)에 해당하며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논다는 뜻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93년 도로가 개설되고 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지원하기 위해 4차선으로 개설되었다.
황새목재(황조치 黃鳥峙)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황새목골과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황조리마을 사이의 고개이다. 과거 진안 지역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넘었던 길로 학항치(鶴項峙)라고도 불렸었다. 고개가 황새목처럼 길어서 명명되었다고 전한다. 고개 너머에는 황조 마을이 있으므로, 마을 이름에서 고개 이름이 만들어졌을 수 있다. 반대로 마을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고개 이름에서 마을 이름이 생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신궁재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작은연소골과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삼바골 사이의 고개이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의 상궁항에 위치한 궁항저수지(弓項貯水池)는 농업용수를 원활하게 공급하며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1986년 10월 준공되었다. 흙댐으로 홍수 조절 기능은 갖고 있지 않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신월리 경계의 연석산(硯石山 925)은 벼루[硯]를 만드는 돌[石]이 많이 난다고해서 연석산(硯石山) 지명이 유래되었다. 여인이 베를 짜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베틀바위가 있고 시집을 온 각시가 거기서 베를 짜면서 피로와 외로움을 잊기 위하여 폭포 아래에 있는 소(沼)에서 목욕을 하였다는 각시소가 있다.
늦은목재(만항재)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늦은목골과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늦은목 사이의 고개이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정천면 봉학리, 주천면 대불리 경계의 운장산(雲長山, 중봉 中峰 1126)은 동봉(東峰 1133m), 서봉(西峰 1118m)과 함께 세 봉우리로 이우어 져 있다. 북쪽 사면은 금강의 지류인 주자천(朱子川), 남쪽 사면은 금강의 지류인 정자천(程子川)의 유역이 된다. 동상과 대아저수지는 만경강의 상류이므로 운장산은 만경강과 금강의 분수계가 된다. 주줄산, 추줄산, 주이산(朱伊山) 이라고도 하였으며 산이높아 구름이 감돈다고 해서 운장산(雲藏山)이라 하였고 주이천은 주자천(朱子川), 이천(伊川, 즉 정자천)의 발원지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운장산은 오성대에서 은거했던 조선시대 학자 송익필 선생의 자인 운장(雲長)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활목재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운양산골과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사이의 고개이다. 고개의 지형이 활처럼 휘어져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피암목재(운장산휴게소, 동상휴게소)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비안목골과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문박골 사이의 고개로 55번도로가 지나간다. 휴게소에는 주차고간외에 특별한 건물이 없고 산의 이정표에는 동상휴게소로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4. 고도표
6. GPX 트랙 (7구간)
7. 참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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