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의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음은 나만의 일일까? 눈이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첫눈 오는 날이면 더 좋다. 내가 사는 경산 지역은 눈 보기가 쉽지 않다.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광경은 더 어렵다. 그래서 눈이 내리면 옛날의 기억을 새기곤 한다. 작은 눈이라도. 그 추억은 패기의 시절로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물론 한 때의 시기지만. 그 인연을 몇 년간 추억으로 호기스럽게 자랑하곤 했다. 또 십수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머리에서 밀린 일로 치부되어 있다. 쓸쓸함과 외로움의 그림자가 덜렁인다. 과연 언제쯤 눈을 구경할 수 있을까? 시공간 의미의 혼돈. 어제와 내일이 서로 왕래를 하려 한다. 추억의 정과 기다림의 추억으로. 만약 눈이 내린다면! 눈가의 잔 주름 흔들리며 곡차 잔을 찾으려 한다.
대구 파크 호텔 뒤 포장마차라는 카페도 아닌 술집 같은 곳이 있었다. 친구들 몇이 만나곤 하면서 일 잔주 걸치고 혈기의 기분을 발휘하곤 할 때다. 물론 이곳 장소에서만 아니지만. 서로 의기로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다. 이 장소를 추억하게 된 동기가 첫눈이다. 즐거운 일 잔주하면서 도취된 분위기 서로의 감정이 통했으리라. 이날 눈이 내렸다. 불쑥 우리 첫눈 오는 날 여기서 만나자. 언제 어디에 있던 첫눈 오는 날은 이 장소에서 꼭 만나자고 내가 제안했다. 기분이 같이 흥건한 친구들 흔쾌히 약속을 했다. 추가된 일 잔주에 그 순간 이기 투합한 마음은 뒷전이 되었고. 뭉기적 그날의 약속은 순간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무시로 얼굴을 보고하는 수시로 한 순배씩 만남의 날이 더 늘어났으니. 그 약속은 무미건조한 약속이었다. 그 후 한 번씩 만나면 첫눈 오는 날 얘기는 안주거리가 되었다. 우정인지 술꾼인지 그저 좋아 히히덕이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날로 성장 번창이 되었다. 그에 따라 나의 자만이 커지고 있는 시기였다.
첫눈 만남을 실천을 해 보자며 다시 약속을 했다. 근데 시간은 세월로 변했다. 눈 내리는 시간은 하늘만 알고 있었다. 각자의 생활 열중에 시간은 흘러갔다. 우정은 사랑으로 짝사랑으로 변하는 줄은 몰랐다. 누구는 대구 누구는 서울 누구는 먼 곳 출장 중 등등. 전직 이사 등의 이유로 맞남의 조건이 바뀌어 갔다. 그래도 한 번씩은 만나면서 일 잔주는 하곤 했다. 눈이 없어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어느 날 밤 경산에 정말 눈이 내렸다. 서로 조건이 다른 곳에서 눈 보기였다. 일기 예보는 티브이에서 알 수 있으니 이미 첫눈의 조건은 무미했다. 친구가 있는 곳에는 눈 소식이 없으니. 나 혼자라도 가 볼까? 쓸쓸한 비소가 버무려졌다.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퇴근했다. 그 친구들 이제 고인도 있다. 다른 이는 연락처 휴대폰 번호이동으로 단절되어 갔다. 유구 무언의 세월이 되었다.
크레 파스 색연필 몇 개의 색을 보듯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다. 다른 친구들이랑 그 장소에서 만남을 가졌다. 직장 동료이고 여성 친구들도 있었다. 나이 구분없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이다. 이날도 눈은 오지 않았다. 일 잔 전주 후에 흥건한 분위기에서 또 일전의 첫눈 사건을 설명하며 제안했다. 매년 첫눈 오는 날 여기서 일 잔 하자라고. 오래 동안 같이 하는 시간을 갖자고. 다 같이 웃으면서 동참하기로 했다. 여자친구들이 더 좋아했다. 직장의 명성을 업고 정이란 언어를 여기에 담아 보려 했다. 첫 해에 눈이 오긴 왔다. 몇 개의 꽃잎 날리듯. 첫눈이라고 해야 하나 무시해야 하나. 판단이 애매한 눈이다. 내가 본 첫눈은 그런 눈이었다. 그 장소에 가지 않았다. 아무도 연락도 없었다. 그 장소에 간 이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며칠 후 진짜 눈이 왔다. 그 장소에 갔다. 30여 분간 기다리며 나 혼자 일 잔 했다. 어느 날 전화를 받았다. 서울이란다. 첫눈이 온다며. 다음 해 그 만남의 그 장소는 없어졌다. 그 후로 약속이라는 그 단어도 지워져 갔다.
각자 다른 일과 직장 변동이 있었고 나 홀로 직장에 남았다. 한 번씩 전화 통화하면서 첫눈 오는 날 이야기를 하곤 했다. 또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렇게 지나간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한 번도 실행해 보지 못한 허공의 악속. 하지만 그때의 때가 내 생에 가장 활기찬 시기였다. 나름 젊음이 있었고 동무도 있었다. 웃음과 경쟁과 함께 직장이라는 울타리 의미를 챙겼다. 직장 후배들의 입방아로 부러움 받으면서 시절을 갑질했다. 잘 나가던 직장이 망조경매 폐쇄가 일어나고 나도 그 울에서 탈퇴되었다. 가만히 있던 시간이 어찌 이렇게 변동 줄 수 있을까? 한 번씩 하늘 본다지만 헛기침 목마름의 일잔주만 당겨졌다. 그렇게 시간이 주인이 된 세월이 되었다.
이제는 아주 옛날 소설 같은 얘기로 그 친구들 지금 어디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몇년 전까지 가끔 문자 교신은 하곤 했는데. 내 형편 어려움으로 인해 다른 일을 아예 생각지도 못한 시기가 있었다. 몽탕 내려놓았었다. 해가 바뀌면서 첫눈이 오곤 한다. 허당이란 의미의 웃음을 짓는다. 그 친구들 귓전 돌아 돌아 소식을 듣곤 한다. 쉬 다가갈 수가 없다. 각자 삶의 환경이 다르니. 그래도 가장 아픈 일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친구들도 있다는 것이다. 또 유구 무상 접목이 된다. 눈 하얀색 그 속에서 그 순수함을 읽어 본다. 세월에 유수에 사람이 빈배로 물처럼 가는 물건 같아 참 안타깝다. 모든 게 내 탓이 먼저고 내 잘못이 더 크다. 그놈의 끈, 정을 놓지 말아야 했는데...
첫눈 오는 날의 약속처럼 쉬운 약속은 조심해야 할까? 시간을 핑계되며 즉흥적인 술잔 돌리듯 돌린 말 의미 돌아본다. 그래도 그때 만남이 좋은 인연이었음 숨길 수 없다. 그때의 세월 그때의 인연이 눈 오는 날을 기다리며 웃음을 짓곤 한다. 그런 호기철이 다시 올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만나는 이들도 바뀌었다. 첫 눈 오는 날의 약속은 하지 않는다. 삼 세 번이라는 말이 있다. 세 번째는 이루어진다는. 지금 만나는 분들은 다 경산 분들이다. 특히 글그림 공부하는 문우분들이 대부분이다. 첫눈의 추억으로 삶의 추억 짓으로 질적인 젊음 찾기 다시 한번 해 볼까? 어찌 짙은 먹물 같은 농담이 쉽게 나온다. ㅎㅎㅎ 칠순의 이 나이에... 그때 그분들 만나 볼 수 있다면 해 본다. 눈 오는 날 흰머리 카락이 살짝 미워지는 건 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