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실패작들에게
너무 거창한 주제로 글을 쓰게 되어 몹시 민망하다. 내게 있어 문학적 글쓰기란 ‘내가 나에게 다가가는 과정’일 뿐이기에 이 세계를 아울러 정의할 만한 근거와 논거가 아직은 없다. 다만 오랜 세월 문학의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배회하다 보니 수필가로 시인으로 불리고 있어, 이런 배경을 먼저 밝히고 내 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펼쳐 보려고 한다.
수필, 선물 같은 사건
십여 년 전 첫 산문집 『시드니에 바람을 걸다』를 출간했을 때 어떤 이는 시를 써 보라 했고, 어떤 이는 소설을 써 보라고 권유했다. 아마도 은유가 강한 문장이 시적이고, 이야기가 기둥이 되어 펼쳐지는 방식이 소설적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작가의 말에서 구성면에서 단편소설 형식을 많이 취했다고 밝혔다 (그때만 해도 소설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칭찬처럼 해준 권유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텍스트로 만들어 내놓은 결과물이 문학적 완성도에서 뭔가 미진하다는 말로 들려서였다. 내가 학부에서 국문학을 할 때만 해도 수필을 문학의 장르라 여기는 풍토가 아니었기에 수필을 써야겠다고 작정하거나 의미를 가진 적이 없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수필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데는 이민이라는 특정 사건이 있었다. 이민은 나를 모국어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계기이자 도전이 되었다. 영어라는 장벽에 부딪혀 공허함이 커질수록 한글 문자에 집착처럼 몰두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그즈음, 교민지에 나온 수필 한 편을 읽다가 꽉 막혔던 명치가 뚫리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맛보기도 했다. 매주 가슴 설레며 새로운 글을 기다렸다. 그 후, 그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나는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필이 내게 왔다. 내가 수필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수필이 내게 와서 찰싹 붙어 버린 것이다. 나를 다시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했고, 잊고 있던 꿈을 찾아준 선물 같은 사건이었다.
바다의 기척
‘이런 소재가 글이 될 것 같다.’와 ‘이런 소재로 무엇을 쓰고 싶다.’는 문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히 다른 맥락의 말이다. 내 경우 ‘어쩐지 될 것 같은 소재’를 덥석 가져와 의미를 만들어 간 글은 대부분 컴퓨터 ‛미완성 글방’에 방치되었다. 궁여지책으로 발표를 하게 되면 영락없이 후회가 뒤따랐다. 한편, 평소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던 ‘무엇’이 절묘한 소재를 만나 시작한 글은 문장이 문장을 이끌어가는 묘한 희열과 결과가 따라왔다. 비교적 좋은 평을 받은 ‘바다의 기척’이 그랬다.
강화 노루매기(후포)는 아주 어릴 적 내가 글이라는 것을 접하기 이전에 어떠한 감성이 먼저 자리한 곳이다. 바닷가 마을은 희로애락을 구체화 시키는 형상들이었다. 무엇인가를 인지하면서 저절로 들어앉은 사고의 원형이며, 내 의식 저변에 맺혀있는 감정의 실체이기도 했다.
나는 나의 출생지인 이곳을 드나들며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니까 이 어촌 마을은 나의 글이 발아되기 이전에 씨를 품고 있던 문학의 자궁인 셈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묻혀있던 씨앗 하나가 「바다의 기척」으로 태어난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쓸 때 다른 작품에 비해 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오랜 시간 내면에 갇혀있던 간절함을 바깥으로 뽑아 올리는 과정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점에 대해 나윤옥 평론가는 그의 평론집 『작은 눈으로 읽는 서사 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바다의 기척」은 시드니에 살고 있는 현재와 고향 강화도에 얽힌 추억, 그리고 ‘바다’를 보내주던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애달픔을 유려한 문장으로 쓴 수필이다.
(……)
화자의 생리현상과 바다의 조수간만이 닮아있다는 표현과 달거리 때면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짙어지는 것은 어릴 적 살았던 바다가 내 몸안에서 기척을 한 것이라는 표현은 참신하기 이를 데 없다. 수필은 기억을 재생하여 쓰는데, 단순한 재생 그 자체가 아니라는 여세주 교수의 말에 공감한다.
‘수필의 소재가 되는 경험은 과거라는 시간에 정지되고 화석화된 것이 아니다. 과거의 상기는 현재의 감정이나 가치관에 의해 새롭게 지각되므로 현재화된 과거이다. 기억 속에 잠재된 경험을 현재의 시각에서 상기하는 언어 수행이 수필 쓰기인 셈이다.
-여세주, 『수필의 전형과 실험』에서
시가 된 윈더미어호
움직임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 흘러내리는 느낌의 글을 애정한다. 그래서인가 내게 있어 글쓰기란 얼어있던 기억과 감정을 녹이는 과정이며, 녹아서 액체가 된 그것들을 백지 위에 올려놓고 모양을 잡아서 다시 얼리는 작업이다.
「시가 된 윈더미어호」가 그렇다. 이 글도 기억을 녹이면서 시작되었다. 이십 대 초, 푸르디푸른 시절이었다. 어느 날 단양팔경 일부가 물에 잠긴다는 소식을 접했다. 단양의 마지막 가을을 보기 위해 친구와 나는 무작정 그곳을 찾았다. 수몰 직전의 마을을 마주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깊게 뿌리내린 장면이 있었다.
어느 해 가을 호주 내륙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서 고요히 잠겨있던 수몰 댐을 마주했다. 가만히 바라보는데 내 안에 수장되어 있던 단양의 가을 한 장면이 튀어나왔다. 무엇엔가 홀린 듯 글이 굴러갔다. 꼬리를 물고 끌려 나온 문장의 줄기 끝에 모국어를 잃고 있는 내가 있었다. 원고지 20매짜리 수필로 퇴고해서 교민 신문인 《한호일보》에 발표했다.
그런데 막상 지면에서 활자화된 글을 보는데 뭔가가 불편했다. 내가 쓰고자 했던 ‘언어를 잃어버린 이민자’에게 닿기까지 너무 장황하게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그제야 모티브가 되었던 단양 부분이 너무 진하게 드러난 게 눈에 들어왔다. 고민 끝에 그 부분을 ‘수필U시간’ 동인지 『바다 건너 당신』에 실을 때 과감히 잘라냈다. 글의 30퍼센트나 되는 분량이었다. 잘라내고 보니 확연히 달라진 게 보였다. 마력이었다. 글의 모태가 된 소재가 사라지면서 주제가 제대로 살아난 경우였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만 바뀌어 다시 태어난 기억의 소산물이었다. 물 흐르듯 흐르다가 전혀 다른 곳에 다다라 새로운 모양으로 태어나는 창작의 묘미를 맛보게 한 작품이 되었다.
성실한 실패작들
신형철 평론가는 그의 시화집 『인생의 역사』에서 ‘성실한 실패작’이란 말을 쓴다. 매일매일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문학작품을 염두에 두고 한 말 중에 이보다 더 절묘한 표현이 있을까. 요즘 나는 이 말이 너무 와닿아 종종 들먹이곤 한다. 물론 작가는 번역물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내 작품에 적용한다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앞에서 이 지면의 성격상 대놓고 내 작품을 자찬하듯 소개하긴 했지만) 고백하건대 내 글의 대부분이 ‘게으른 실패작’이거나 ‘성실한 실패작들’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의 언저리를 맴돌다 터득한 작은 요령으로 '글이 되겠다 싶은 것'을 엮은 글들이 대부분이란 말이다.
작년부터 한국의 지명도 있는 계간 문예지에 〈디아스포라 에세이〉라는 코너를 맡아 수필을 연재하고 있다. 처음 2년(8회) 연재 청탁을 받았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꼬박꼬박 원고료가 들어오는 재미도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 연재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평소 주로 쓰던 원고지 15매가 아닌 30매짜리 에세이는 성실한 실패작만 더하는 꼴이 되고 있어서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마감에 쫓겨 ‘지면을 메꾸는 글’을 쓰고 있다. 발표할 때마다 불안해지는 지점이다. 더군다나 수필은 한 사람의 삶이 맑게 투영되는 장르이다. 한편의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치열한 나와의 싸움이 동반된다.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디까지 보여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가볍지 않다. 그래서 적당히 가리고 적당히 보여주려 하다 보니 고만고만한 내용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수필가가 쓴 수필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가 없다.’라고 서슴없이 내뱉던 어느 평론가의 말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는 물론 수필에만 국한된 말은 아닐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고만고만한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학작품들의 한계를 꼬집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이 화두에서 늘 자유롭지 못하다. 조금이나마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던 작품으로 「족발 권력」이나 「와인이 되려다 장미가 된」 「블루가 있는 그림 한 점」 등을 꼽고 싶은데, 이 또한 읽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뻔하디뻔한 성실한 실패작들이 더 이상 내 글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장황하게 했다.
화산이 기침하듯 토해내는 글
2021년 동주해외신인상(시산맥)을 받으면서 시인 타이틀을 달았다. 나는 시와 산문을 병행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더 하고 있다. 시는 분명히 수필과는 다른 엄청난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필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시가 산문 같고 산문이 시 같아지는 세상에서 진짜 시인을 골라내려면 그 시인이 쓴 산문을 보라고 했다. 내가 적어도 ‘언어의 전이’와 ‘비문’의 차이를 혼동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써 온 산문 덕이 크다. 나는 산문의 직선적인 성질을 좋아하고 신뢰한다.
그림 전시회나 춤, 음악 등의 공연을 볼 때마다 내 언어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해 가슴을 칠 때가 많다. 한계가 많은 언어를 가지고 나를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것이, 때론 벅차고 힘에 겹다. 이런 맥락에서 글쓰기는 예술 행위 중에 가장 가난한 장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언어가 늘면 늘수록 나를 포장하는 데 능숙해진다는 말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는 화산이 터지는 걸 '산이 기침하는 거'라고 한단다. 생활 언어에 들어있는 은유가 너무 기발해서 듣는 순간 머리가 환해졌었다. 생각해보니 나의 글 쓰는 행위도 화산섬이 기침하는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안에 고여있던 열과 화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기침을 하는 것, 꿈틀대며 끓어오른 희로애락 오욕칠정을 밖으로 토해내는 것.
‘살아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최승자 시인은 그의 시에서 말했다. 나는 이 구절을 빌려와 앞으로 내 글의 방향을 대신 어필하려고 한다.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생의 단면을 찾아내 옮기는 행위, 이것이 앞으로 내가 닿아야 할 나의 문학세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창작은 내가 나를 견디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나를 붙잡고 이끌어 주기를 소망한다. 거대 담론보다는 덜 포장된 글을 쓰고자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시드니 문우들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은 속내가 문학을 놓지 못하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임을 밝힌다.
*유금란
2008년 『조선문학』 수필 등단. 2021년 『시산맥』 시 등단. 산문집 『시드니에 바람을 걸다』. 공저 『바다 건너 당신』. 동주해외신인상, 재외동포문학상 수상, 동서문학상 입상. 현재 『문학과 시드니』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