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화문법의 정의
1. 문화문법의 정의
문화문법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영어로 Culture-Grammar라고도 하고 Ethos-Grammar라고도 한다. 문화를 문법에 적용하는 것, 혹은 관습이나 집단의 기질을 문법에 적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한국의 군사문화를 예로 들 수 있다. 흔히 입대하기 전에 애인을 정리(?)하고 간다. 군 생활에서 ‘고무신 거꾸로 신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여기서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라는 말은 한국에서만 알 수 있는 언어구조다. 외국인 학생들에게 그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100% 잘못된 답을 말한다. 보통은 ‘고무신을 바꿔 신는다’로 해석하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고 하는 학생들도 많다. 이와 같이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외국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의 군사문화와 고무신 세대를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문화와 외국의 문화를 적절히 이해했을 때 훌륭한 번역이 나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문화문법은 중요한 학습법이다.” <최태호(2016), 한국어문화문법>
고무신은 우리 정서상 60년대의 상징이다. ‘잘 살아보세’ 하면서 고무신 신고 나라를 누비며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고무신은 ‘새마을운동’의 표상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에는 북한보다 못 살았다. 지금 북한과의 경제력의 차이를 생각하면 고무신과 새마을운동은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징병제로 인한 군사문화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고 있었다. 맹호부대 장병들이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와서 무용담을 얘기할 때면 군대가 동경이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6·25 전쟁 후 피폐해진 땅덩어리에 산과 들에서 자주 발견되었던 탄피와 구멍 뚫린 철모, 그리고 파병과 교련교육, 입대 등으로 한국인 남성들은 필수코스로 겪어야 했던 일들이다. 이와 같이 문화문법은 문법에 문화를 적용하는 방법이다.
2. 문화문법 연구 사례
2.1 문화문법이론
문화문법은 문법에 문화를 적용하는 방법이다. 각 나라 혹은 각 지역별로 독특한 문화양상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이가 예쁘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만 태국에서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사고가 난다. 모든 영기(靈氣)가 머리에 모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머리를 만지면 안 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왼손은 대변을 보고 난 후 닦는 역할을 한다. 왼손으로 물건을 주면 실례다. 한국인 중 왼손잡이가 종종 실수를 한다. 또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슬람교도가 많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많다. 돼지고기와 쇠고기, 새우를 한 불판에 올려놓고 요리를 하면 그들은 먹지 않는다. 틀림없이 따로 요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먹지 않는다. 부정한 고기를 뒤집은 포크로 쇠고기를 뒤집었기 때문에 쇠고기마저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최태호(2016), 한국어문화문법>
동양사람들은 대개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드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한다. 서양인은 “Good morning!"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침 먹는 것이 중요하고, 서양에서는 좋은 아침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Breakfast도 밤새 굶었다가 그것을 깨는 것이다. 밤샘 금식을 깨는 것이 아침밥이다. 동양인들은 아침이라는 단어 속에 아침밥을 포함시킬 때가 많다. 인도네시아어로 ”Makan Pagi"라고 하면 “아침 먹어라.”라는 마로 우리나라처럼 아침이라는 단어 속에 아침 식사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풍습을 갖고 있는 터키사람들을 본다. 한국인들은 식당에 가면 “이모!” 하고 부른다. 친근감의 표현이다. 터키에서도 식당에 가면 “테이제!” 하고 부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모!” 하고 부르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사람들을 만나면 상당히 동질적인 것을 많이 느낀다. 이들과는 비슷한 어휘도 많다. 예를 들면 우즈베키스탄에서 감옥은 우리의 감옥과 같고, 자갈도 우리의 자갈과 같다고 한다. 터키와는 근 2000여 단어가 비슷하다고 한다. 물을 수라고 하고, 10을 ‘온’이라고 한다. 우리말에서 ‘온’은 100을 가리키고 요즘은 온 세상, 온천지 등과 같이 접두사의 역할을 많이 한다. 어순도 우리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터키인들을 만나면 형제의 나라라고 하면서 상당히 호의적이다. <최태호(2016), 한국어문화문법>
영화 중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작품이 있다. 미국의 한 어머니가 아들 5형제를 두었다. 아들 네 명이 전장에서 사망하였는데, 막내 아이도 최전선에 출전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막내마저 잃을까 두려워 대통령에게 편지를 하였고, 대통령은 그녀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여 라이언 일병을 구해오라는 특명을 내린다. 미군 병사들은 라이언 일병이 있는 최전선으로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고, 최전선에서 독일군과 대치해 있는 라이언을 만나게 된다. 총알이 빗발치듯이 쏟아지고 있는데 대위가 다리 건너편에 있는 라이언 일병을 구해오라고 명령한다. 그때 독일군의 총알이 미군병사의 귓전을 스치며 지나갔다. 이 때 미군 병사가 외쳤다. “Jesus!”라고 밑에 자막에는 “제길헐”이라고 떴다. 그 자막을 번역한 사람은 아마도 여성이거나 군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군에 다녀온 사람이 그 문장을 번역했더라면 “씨팔, 뒈질 뻔했네.”라고 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입대하면 ‘18’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는 것은 한국에서 군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가장 한국적인 군인의 표현인 것이다.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이 입국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도 ‘18’이다. 그들은 그것이 발어사인 줄 알았다고 한다. <최태호(2016), 한국어문화문법>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대한 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실제로 영화를 번역한 작가가 여성 작가였다는 것을 알았다. 최태호가 주장한 대로 한국어 문화문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인은 뜨거운 콩나물국을 먹으면서 “아이고, 시원하다!”라고 한다. 외국인들은 ‘아이고’하는 감탄사도 주로 힘들 때 사용하는 것이고, ‘시원하다’라는 말은 바람이 불어 더위를 식혀줄 때 주로 사용하는 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하니 이해할 수가 없다.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서도 ‘시원하다’라고 하고, 더운 여름날에 산바람이 불어도 ‘시원하다’라고 한다. <최태호(2016), 한국어문화문법>
‘시원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하고자 한다. (1) 덥거나 춥지 아니하고 알맞게 서늘하다. “시원한 바람”, “밥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가 있다. (2) 음식이 차고 산뜻하거나, 뜨거우면서 속을 후련하게 점이 있다. “시원한 김칫국”, “아내는 술 먹은 다음 날에는 시원한 북엇국을 끓여 준다.” (3) 막힌 데가 없이 활짝 트이어 마음이 후련하다. “시원하게 뻗은 고속 도로”, “마당이 시원하게 넓다.” (4) 말이나 행동이 활발하고 서글서글하다. “시원한 말투”, “시원하게 대답하다.” (5) 지저분하던 것이 깨끗하고 말끔하다. “쓰레기장을 시원하게 치워 놓아라.” (6) ((‘시원하지’ 꼴로 ‘않다’, ‘못하다’의 앞에 쓰여)) 기대, 희망 따위에 부합하여 충분히 만족스럽다. “일이 돌아가는 모양이 영 시원치 않다.”, “지난가을 추수가 시원치 않았다.” (7)-1 【…이】 답답한 마음이 풀리어 흐뭇하고 가뿐하다. “일이 시원하게 끝났다.” (7)-2 가렵거나 속이 더부룩하던 것이 말끔히 사라져 기분이 좋다. “언니는 나의 등을 시원하게 긁어 주었다.”, “체했던 속이 시원하게 내려갔다.” 어원 <싀훤다 <석상>←싀훤+- <표준국어대사전>
‘시원하다’라는 말은 한국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나타낸다. 산을 등반하여 정상에 이르러 ‘시원하다’라고 할 때 여러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걸으면서 활동했으니 덥고 땀이 났는데 정상에 올라 바람을 느끼고 시원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시야는 조망이 막히지 않아서 잘 보일 때 시원하게 보인다고 한다. 산을 정복했을 때 흐뭇하고 가뿐하니 시원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뜨거운 물에 담그고 ‘시원하다’라고 하는 의미에는 뜨거운 물에서 경직된 근육이 풀리고 몸의 혈액순환이 잘 되어 개운하고 후련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찜질방에서도 마찬가지다. 찜질방이란 황토, 맥반석 따위를 바른 방에서 높은 온도의 공기로 땀을 내도록 한 곳. 약 40∼80℃의 더운 공기를 유지하며 휴게 시설과 사우나를 갖추고 있으며 찜질방을 정기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인 중에 직장에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찜질방에 다닌다는 사람이 더러 있다. 찜질방에 들어가 뜨거운 온도 속에서 명상하고 땀을 빼고 나면 피로가 풀리고 스트레스도 사라져서 ‘시원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인이 자주 사용하는 문장 중에 “문 닫고 들어와!”가 있다. 한국인들은 누구나 들어와서 문을 닫는다. 이상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문 닫고 어떻게 들어가느냐”고 반문한다.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꼼짝 말고 손들어.”도 같은 경우다. 영어에서는 “Hands up! and don't move.”라고 한다. 손 먼저 들고 움직이지 말라고 해야 문법에 맞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필요한 말을 앞에 넣는 경향이 있어 ‘꼼짝 말고’가 앞에 들어가고 ‘손들어’는 나중에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의사소통법을 문법적으로 이해시키는 것이 어렵다. <최태호(2016), 한국어문화문법>
충청도 사람들은 이 ‘좀’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충청도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착각할 때가 많다. “내일 10시에 만나자.”라고 했을 때 두 가지의 대답이 있다. “알았슈”라고 하는 것과 “그류”라고 하는 것이다. 서울 사람들은 충청도 사람이 “알았슈”라고 하면 다음날 10시에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알았다”는 뜻이지 그 시간에 나간다는 뜻이 아니다. “그류”라고 답을 해야 10시에 나타난다. 지방마다 언어문화의 특징이 있으므로 정확하게 알아야 실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국인들 역시 한국의 문화를 바르게 알아야 하고, 한국어를 외국에 전하는 교육자 또한 한국의 문화와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알아야 한다. <최태호(2016), 한국어문화문법>
전라도 말에 ‘거시기’, ‘거시기하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필자가 직장생활할 때 만났던 전라도 지방 출신 사람이 했던 말이다. 잡지에 실린 탤렌트 임동진 씨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 사람이 거시기에 나오는 거시기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직원이 “그래 맞아. ‘토지’(거시기)에 나오는 ‘이용’(거시기)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KBS에서 대하드라마 <토지>가 방영되고 있을 때였다. 거시기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1) 대명사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라고 나와 있다. “자네도 기억하지? 우리 동창, 거시기 말이야, 키가 제일 크고 늘 웃던 친구.”, “저기 안방에 거시기 좀 있어요?” (2) 감탄사 ‘하려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군소리’ “저, 거시기, 죄송합니다만, 제 부탁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표준국어대사전>
한국의 화장실에 들어가면 다양한 문구가 있다.
남자 화장실에 “한 발짝만 앞으로! 앞으로 바짝 붙어 주세요~ 찔끔찔끔 흘리면 찌릉내 나요-ㅠㅠ. 뭐 다들 자기 총이 장총인 줄 아시는데... 쏠 때는 거의 99.99% 권총으로 쏘거든요. 간혹 비아그라 후유증으로 장총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런 분들은 멀리서 쏘셔도 무방합니다. 너무 가까이서 쏠 경우 손에 파편 묻어요. 이들을 다 읽으셨다면 엄청 쏘셨네요. 엥간이 쏘셔도 될듯해요. 소변기 넘쳐요.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다음에 또 쏘러 오세요-^^*”라는 문구가 있다.
여자 화장실에 있는 문구다. “여자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한 남자직원이 청소합니다. 그 “환상”을 지켜주세요.“
한국의 화장실에 보이는 문구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슬그머니 돌려서 이야기하는 것이 많다. 화장실에서 주의할 부분에 대해 말하고 마무리는 즐거운 하루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분 상하지 않게 한다. 여자 화장실에 있는 문구를 보면 깨끗하게 사용하라고 지적하여 말하는 것보다 돌려서 말하는 배려 속에 더 주의하게 하는 힘이 있다. 고등학교에 있는 화장실에서는 명언과 싯구를 붙여 놓은 것이 있다.
독일의 경우는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직설적이다. 한국 화장실에 있는 문구를 독일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외국인들에게 말해 보면 한참 설명한 후에 웃음이 터진 경우가 많았다. 독일 화장실의 경우를 보면 상당히 직설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자들이여 앉아라, 아무도 안 쫓아온다.’, ‘오줌 튀기지 말고 앉아’, ‘여기 앉지 않으면 칼로 잘라 버린다’. 실제로 독일에서 셋방살이하는 동양인이 서서 소변을 보는 통에 냄새가 나서 못 견디겠다고 집주인이 소송을 걸었다. 아마 독일에서는 남자들도 앉아서 소변을 보는 듯하다. 소송결과는 동양인이 승리였다. 이유는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이 동양인의 문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소송의 결과로 독일에서는 한때 큰 소동이 벌어졌다고도 한다. 중요한 것은 동양의 문화를 인정했다는 사법부의 판결이다. <최태호(2016), 한국어문화문법>
문화는 그만큼 모두에게 중요한 것이다. 서양인이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좋은 것이라면 동양에서는 서서 일을 보는 것이 남자들의 특권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법으로 금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동양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를 공히 알아야 정확한 통역과 번역이 이루어질 수 있다.
【참고문헌】
김인희 박사학위 논문 『박경리 <土地>에 나타난 한국어문화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