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간음은 몸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휘장)으로부터 일어난다.
나. 간음은 항상 과거와 미래로부터 오는 것이다.
다. 아브람이 강도에게 빼앗겼던 근본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 베레쉬트(근본)다.
라. 내면의 일은 비사와 비유로 시제가 없는 말씀으로서 세상(코스모스) 이야기가 아니다.
2. 본론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귀네)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가. 간음은 몸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휘장)으로부터 일어난다.
간음하게 하는 것이 여자(귀네)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 뿌리는 아주 견고하고 깊다.
가난한(푸토코스) 과부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몸에서 느끼고,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알음알이에 대해서 깨달아 파악하고 있었다. 간음이 내면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 것이다. 마음에서 음욕을 품어서 일어나는 것이 간음이다. 마음 안에서 늘 갈애(渴愛)가 일어나는 그 원인을 알아낸 것이다.
마음에서 원하는 소원(음욕)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대부분 사람은 힘들어한다. 항상 귀네(여자)를 보자마자 마음에서 소원(음욕)이 불일 듯 일어나는 것이 간음이다. 마음은 이렇게 길들어져 왔다.
여자(귀네)를 보고 간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 간음을 좋은 것으로 귀중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이것은 간음이 아니라 세상에서 이루어져야 할 꿈 정도로 생각해 왔다. 이 간음의 실체를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 가난한(푸토코스) 과부는 자신 안에서 간음이 일어나는 그 원인을 알게 된 것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몸에서 느끼고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알음알이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 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육경이 육식(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을 만나서 육근(六根) 안으로 들어오는 이 과정에서 이 갈애가 일어나며, 여기서 음욕과 간음이 시작된다. 육경과 육근 사이에 여자(귀네)가 있고, 또 오식(眼,耳,鼻,舌,身,意)과 육식(六識) 육근(六根)에 의하여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에 이른다)의 사이에 이 여자(귀네)와 남자가 하나 되어 있다. 이들은 부부다.
그런데 대부분 기독교인은 내면에 이 여자(귀네)가 어디에 거하는지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 불신, 지옥 여기에 인식이 굳어져 있다. 내 안에 있는 여자(귀네)를 보고 음욕이 일어나면 즉시 육식으로 넘어간다. 오식과 육식은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밀어내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나. 간음은 항상 과거와 미래로부터 오는 것이다.
육식 안에 이미 들어와 있었던 것을 동원하여 육경으로부터 육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순간에 왜곡시켜 버린다. 이것이 간음이다(육경이란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의 여섯 가지 인식 대상을 뜻하는 말이다. 육근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라고 할 때 힘과 능력이 미치는 대상은 바로 이 육경이다) 간음은 항상 과거와 미래로부터 온다.
과부는 자신의 내면을 항상 들여다보았고, 그 해결책을 마음 안에서 찾아다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오식과 육식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면밀하게 보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확실한 해결책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과부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오식과 육식을 완전히 구분하기 때문에 오식과 육식을 왜곡시키지 아니한다. 몸과 마음을 해체하여 들여다보기 때문에 무더기로 보지 않는다.
다. 아브람이 강도에게 빼앗겼던 근본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 베레쉬트(근본)다.
아브람이 강도에게 빼앗겼던 자신의 근본을 쫓아가서 그들을 죽이고 다시 찾아왔던 것처럼 자신의 원래의 실상에 대하여 강도들로부터 왜곡된 것을 다시 회복한 것이다. 자신의 속사람을 이 강도 때(겉 사람)들로부터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느끼기를 반복한다. 그 결과 좋아하는 것들은 받아들이고 싫어하는 것들은 밀어낸다. 깨어 있지 못하면 한순간도 음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내용이 창세기 2장부터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내면의 일을 보고 있다.
여기서 사과라는 것을 알게 되고 색깔이 어떤지, 익었는지, 맛이 있는지, 없는지, 즉석에서 판단하게 된다. 먹게 되면 입안에서 느낌이 와서 맛이 있고 없다는 것을 과거 경험에서 깨닫게 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것, 이 모두는 과거 기억을 가진 여자(이솨)에게서 온 것이며, 이것에 대해 남자(이쉬)와 하나 되었음을 ‘히다’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본질을 벗어난 중요한 내용으로서 간음이다. 예수께서 이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하여 들고 나온 것이다. 여자(귀네)를 보고 음욕을 품고 간음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라. 내면의 일은 비사와 비유로 시제가 없는 말씀으로서 세상(코스모스) 이야기가 아니다.
과부가 소원(음욕)을 가지고 돈을 드린 내용이 아니며, 과부는 간음하는 자가 아닌 간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야기다. 간음하고 있는 그 주체를 알고 있는 자가 과부다. 자신의 실상을 알고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 깨달음을 얻는 내용이다.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비사(파로이미아)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이래서 성경 말씀은 시제가 없으며, 과거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면 곁길로 가게 된다. 성경 전체가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사와 비유로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역사서가 아니다.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면 신화에 불과한 근본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역사적인 그 예수는 깨달았으면 과감히 떠나보내야 한다.
가난했던(푸토코스) 과부는 자신 안에서 간음하게 하는 그 원인을 깨달아 알아보고 그 마음을 해체해서 그 실체를 알았고 그 여자(귀네)가 허상인 것을 안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떨어져서 보고(호라오) 있는 것이다. 마치 근본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고(호라오) 있는 것이다. 여기 가난한(푸드코스) 과부를 등장시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간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과부라는 의미는 현 남편을 잃어버리고 항상 과거와 미래를 향하여 왜곡하고 있는 경우를 뜻한다. 그래서 좋은 것은 취하고, 싫어하는 것은 밀어내는 것이다. 그 과부의 실상을 알고 내 버린 것이다. 항상 현재에 와 있는 신랑을 찾는 일이다. 그가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회복함이다. 비사와 비유에 관한 내용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