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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顏回,魯人,字子淵。少孔子三十歲,年二十九而髮白,三十一,早死。孔子曰自吾有回,門人日益。回以德行著名,孔子稱其仁焉。
顔回는 魯나라 사람이고 字가 子淵이다. 공자보다 30살이 어렸다. 29세에 머리가 세었고 31세에 요절하였다. 공자는 “내가 안회를 얻은 뒤로 門人들이 날로 더욱 모여들었다.”라고 하였다. 안회는 德行으로 이름이 났고, 공자가 그의 仁을 칭찬하였다.
▶顏얼굴 안. 淵못 연. 髮터럭 발. 稱일컬을 칭
▶論語 先進과 雍也에서, 門下의 제자들을 두고 공자가 말하길, 德行 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덕행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다) 라고 하였고, 공자가 안회에 대해서, 其心三月不違仁(그 마음이 석 달 동안이나 仁을 어기지 않았다) 라고 하였다. 雍누그러질 옹. 閔위문할 민. 騫이지러질 건. 冉나아갈 염. 仲버금 중. 違어길 위
2. 閔損,魯人,字子騫。少孔子五十歲,以德行著名,孔子稱其孝焉。
閔損은 노나라 사람이고 자가 子騫이다. 孔子보다 15세 어리다. 덕행으로 이름이 났고, 공자가 그의 孝를 칭찬하였다.
▶損덜 손. 疾병 질. 耕밭갈 경
▶論語 先進에서 공자가 민자건에 대해서, 孝哉閔子騫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효성스럽다 민자건이여! 남들이 그의 부모나 형제가 칭찬하는 말에 트집 잡지 못하는구나) 라고 하였다. 昆맏 곤
3. 冉有(耕),魯人,字伯牛。以德著名,有惡疾。孔子曰 命也夫!斯人也而有斯疾,命也夫!
冉耕(冉有)은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伯牛이다. 덕행으로 이름이 났다. 惡疾(불치병)에 걸리자, 공자가 “운명이구나! 이 사람이 이런 질병이 있다니, 운명이로다!”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에서 염백우가 병에 걸리자, 공자가 문병할 때 남쪽 창문으로부터 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운명인가 보다.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라고 하였다.
4. 冉雍,字仲弓,伯牛之宗族。生於不肖之父,以德行著名。
冉雍은 자가 仲弓이고 伯牛의 宗族이다. 不肖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덕행으로 이름이 났다.
▶중궁의 부친은 출신이 미천하고 행실이 좋지 않았는데, 공자가 중궁을 두고, 論語 雍也에서, 犁牛之子 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잡털이 있는 소의 자식이 붉고 또 뿔이 바르다면, 비록 쓰지 않으려고 해도, 아마도 山川이 버리겠는가?) 라고 하였다. 犁얼룩소 리, 밭을 갈다. 騂붉은 말 성
▶仲弓問政, 孔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在邦無怨, 在家無怨. 孔子以仲弓爲有德行, 曰 雍也可使南面(중궁이 정치를 묻자, 공자가 말하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보는 것처럼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제사를 받드는 것처럼 해라. 나라에 있어도 원망이 없을 것이고, 집 안에 있어도 원망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공자는 중궁이 덕행이 있다고 여겨서, 말하길, "옹은 남면하게 할 만하다."라고 했다) 南面: 임금이 앉던 자리의 方向
5. 宰予,字子我,魯人。有口才 以言語著名。仕齊,為臨蕢大夫,與田常為亂,夷其三族。孔子恥之曰 不在利病,其在宰予
宰予는 자는 子我이고 노나라 사람이다. 말재주가 있었고 언어로 이름이 났다. 제나라에서 벼슬하면서 臨蕢(臨菑)의 大夫가 되어, 田常과 함께 亂을 일으켰으나, (田常 즉 陳恒에게) 滅族의 화를 당하자, 공자께서 이를 부끄러이 여기며 말하길, “(이 일은)利益과 病廢에 있는 게 아니라, 宰予에게 있다!”라고 했다.
▶論語 先進에서 공자가 문하의 제자들을 두고, 言語 宰我 子貢(언어엔 재아와 자공이다) 라고 하였다.
▶田常: 即陈恒,春秋时齐国人。曾事齐简公,后弑简公而立平公(즉 진항을 말하며,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제간공을 섬겼는데, 間公을 시해한 후 平公을 세웠다)
▶蕢흙덩이 괴 / 삼태기 궤. 利病: 利弊,利害
▶臨蕢는 臨菑(臨淄, 齊나라 都城)를 말함. 山东 廣饒 남부에 있던 고대 도시, 지금의 山东 淄博(산뚱 쯔보)임.
6. 端木賜,字子貢,衛人。有口才著名。
端木賜는 자가 子貢이고 衛나라 사람이다. 말재주로 이름이 났다.
▶자공은 말을 잘하여 교묘하게 꾸몄는데 공자가 항상 그의 辯舌을 꾸짖었다. 史記 卷67 仲尼弟子列傳에서, 既受業,問 三年之喪不已久乎? 君子三年不為禮,禮必壞 三年不為樂,樂必崩。舊穀既沒,新穀既升,鉆燧改火,期可已矣。子曰 於汝安乎? 曰 安。 汝安則為之。君子居喪,食旨不甘,聞樂不樂,故弗為也。宰我出,子曰 予之不仁也!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夫三年之喪,天下之通義也(자공이 業(수업, 공부)을 받은 후 묻기를 “(부모의 상에) 3년 喪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군자가 3년 동안 예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을 하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1년이 지나면) 옛 곡식이 이미 없어지고 새 곡식이 익으며 부싯돌을 쳐서 불을 바꿉니다. (부모의 상이) 期年(1년)이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네게는 그게 편안한가?” 하니, 재아가 “편안합니다.” 했다. 공자가 말하길, “네가 편안하면 그렇게 하라. 군자가 상중에 있으면 밥맛이 달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재아가 나가자, 공자가 말하기를 “予(자여, 재아)의 仁하지 않음이여! 자식이 나서 3년이 지나야 부모의 품을 면한다. 저 3년 喪은 천하의 공통된 道理이다.”라고 했다) 壞무너질 괴. 崩무너질 붕. 穀곡식 곡. 沒빠질 몰. 升오를 승. 鉆쪽집게 첩, 보습. 燧부싯돌 수, 봉화. 旨맛 지. 免면할 면. 懷품을 회
7. 冉求,字子有,仲弓之宗族。有才藝,以政事著名。
冉求는 자가 子有이고 중궁의 친족이다. 才藝가 있었고 政事로 이름이 났다.
▶論語 雍也와 先進에서 季康子가 공자에게 염구가 정사에 참여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 묻자, 공자가, 求也藝 於從政乎何有(염구는 재예가 있으니, 정사에 참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고, 공자가, 政事 冉有 季路(정사엔 염유와 계로이다) 라고 하였다.
▶季康子問孔子曰 冉求仁乎? 曰 千室之邑,百乘之家,求也可使治其賦。仁則吾不知也。復問 子路仁乎? 孔子對曰 如求(계강자가 공자에게 물어 말하기를 “염구는 仁합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千室의 읍과 百乘의 家에서 염구를 그 병부를 다스리게 할 만합니다. 仁한 지는 내가 알지 못합니다.” 했다. (계강자가) 다시 묻기를 “자로는 仁 합니까?” 하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염구와 같습니다.” 했다.)
8. 仲由,弁人,字子路,有勇力才藝,以政事著名。
仲由는 弁 사람이고, 자는 子路이다. 勇力과 才藝가 있었고 정사로 이름이 났다.
▶論語 公冶長, 雍也, 先進에서 공자가, 由也果 於從政乎何有(자로는 과감하니 정사에 참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子路에 관해,
1)孔子曰 片言可以折獄者,其由也與! 由也好勇過我,無所取材。 若由也,不得其死然。 衣敝縕袍[四]與衣狐貉者立而不恥者,其由也與! 由也升堂矣,未入於室也(공자가 말하기를 “한마디 말로 옥사를 결단할 수 있는 이는 유(자로)일 것이다!” “유(자로)는 용맹을 좋아함이 나(공자)보다 나으나, 사리를 분별하여 의로움에 알맞게 할 줄 모른다.”“유(자로) 같으면 그 죽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비명에 죽을 것이다)”“해진 솜옷을 입고 여우와 담비 갓 옷을 입은 자와 서서도(마주하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는 유(子路)일 것이다!”“유(자로)는 나의 당에 오를 수 있되, 방에는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했다) 片조각 편. 折꺾을 절. 敝해질 폐. 縕헌솜 온. 袍도포 포. 狐여우 호. 貉담비 락(/학) / 오랑캐 맥
2)初,衛靈公有寵姬曰南子。靈公太子蕢聵得過南子,懼誅出奔。及靈公卒而夫人欲立公子郢。郢不肯,曰亡人太子之子輒在。於是衛立輒為君,是為出公。出公立十二年,其父蕢聵居外,不得入。子路為衛大夫孔悝之邑宰。蕢聵乃與孔悝作亂,謀入孔悝家,遂與其徒襲攻出公。出公奔魯,而蕢聵入立,是為莊公。方孔悝作亂,子路在外,聞之而馳往。遇子羔出衛城門,謂子路曰 出公去矣,而門已閉,子可還矣,毋空受其禍(전에 위나라 영공에게 사랑하는 여자인 南子가 있었다. 영공의 태자 괴외가 南子에게 허물(죄)을 지어서 죽음을 두려워하여 나가 (송나라로) 도망하였다. 위령공이 죽음에 이르자 부인(南子)이 공자 영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영이 거절하면서(즐겨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도망한 사람인 태자의 아들 輒(첩)이 있다.” 했다. 이에 위나라가 첩을 세워 임금으로 삼았으니 이가 출공이다. 출공이 즉위한 지 12년 동안 그 아버지 괴외가 밖에서 살면서 (위나라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자로가 위나라의 대부 공리의 읍재가 되었다. 괴외가 이에 공리와 함께 난을 일으켜 공리의 집에 들어갈 것을 꾀하고는, 마침내 그 무리와 함께 출공을 덮쳐 공격하였다. 출공이 노나라로 도망하자, 괴외가 들어가 즉위하니 이가 장공이 된다. 처음 공리가 난을 일으킬 때, 자로는 밖에 있었는데 (난이 일어났다는 것을) 듣고는 달려가다가, 위나라 성문을 나오는 자고를 만났다. (자고가) 자로에게 말하기를 “출공은 떠났고, 성문은 이미 닫혔으니, 그대가 돌아가면 공연히 그 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했다.) 寵괼 총. 姬성(姓) 희. 蕢흙덩이 괴 / 삼태기 궤. 聵귀머거리 외. 懼두려워할 구. 誅죽일 주. 奔달아날 분. 郢땅이름 영. 輒문득 첩. 悝근심할 리. 馳달릴 치. 羔새끼 양 고. ※蕢聵는 蒯瞆로도 나온다. 蒯황모(黃茅) 괴. 瞶죄다 볼 귀
3)子路曰 食其食者不避其難。子羔卒去。有使者入城,城門開,子路隨而入。造蕢聵,蕢聵與孔悝登臺。子路曰 君焉用孔悝? 請得而殺之。蕢聵弗聽。於是子路欲燔臺,蕢聵懼,乃下石乞、壺黶攻子路,擊斷子路之纓。子路曰 君子死而冠不免。遂結纓而死(자로가 말하기를 “그 밥(祿)을 먹는 자는 그 (주인의) 어려움을 피하지 않는다.” 하니 자고가 마침내 떠났다. 성에 들어가는 使者가 있어 성문이 열리니, 자로가 따라 들어갔다. 괴외에게 나아가니 괴외와 공리가 대에 올라있었다. 자로가 말하기를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공리를 등용합니까? 죽이기를 청합니다.” 했다. 괴외가 듣지 않았다. 이에 자로가 대를 태우고자 하니, 괴외가 두려워하여 석걸과 호염을 내려 보내 자로를 공격하게 하여 치니, 자로의 갓끈이 끊어졌다. 자로가 말하기를, “군자는 죽어도 갓을 벗지 않는다.” 하고는 마침내 갓끈을 매고 죽었다) 隨따를 수. 燔구울 번. 乞빌 걸. 壺병 호, 단지. 黶검정 사마귀 염. 擊칠 격. 纓갓끈 영
4)孔子聞衛亂,曰 嗟乎,由死矣! 已而果死。故孔子曰 自吾得由,惡言不聞於耳。 是時子貢為魯使於齊(공자가 위나라에 난이 있었음을 듣고는 말하기를, “아! 유(자로)는 죽을 것이다!” 하였는데, 그 후에 과연 죽었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유(자로)를 얻음으로부터 나쁜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때 자공이 노나라를 위하여 제나라에 사신 갔다) 王肅曰 子路爲孔子侍衛, 故侮慢之人不敢有惡言, 是以惡言不聞於孔子耳(왕숙이 말하길, 자로가 공자의 시위를 맡고 나서, 거만한 이들이 감히 나쁜 말을 할 수 없어, 이 때문에 나쁜 말이 공자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9. 言偃,魯人,字子游。以文學著名。
言偃은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遊이다. 문학으로 이름이 났다.
▶偃쓰러질 언
▶論語 先進에서 공자가, 文學 子遊 子夏(문학엔 자유와 자하이다) 라고 하였다.
▶子游既已受業,為武城宰。孔子過,聞弦歌之聲。孔子莞爾而笑曰 割雞焉用牛刀? 子游曰 昔者偃聞諸夫子曰,君子學道則愛人,小人學道則易使。 孔子曰 二三子,偃之言是也。前言戲之耳。孔子以為子游習於文學(자유가 이미 학업을 받고 무성의 읍재가 되었다. 공자가 지나다 絃歌(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들었다. 공자가 소리 없이 빙그레 웃고는, 웃으며 말하기를 “닭을 가르는데(잡는데) 어찌 소 칼(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했다. 자유가 말하기를 “옛날에 제(偃)가 선생님께 들으니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도를 배우면 곧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곧 부리기 쉽다.’ 하였습니다.”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얘들아! 偃(자유)의 말이 옳다. 앞에 말한 것은 그것을 희롱하였을 뿐이다.” 하였다. 공자는 자유가 문학을 익혔다고 여겼다) 游놀 유, 헤엄치다. 宰재상 재. 弦시위 현. 莞왕골 완, 웃다. 莞爾: 빙그레 웃는 模樣. 割나눌 할. 雞닭 계, 鷄와 同字. 戲놀 희, 희롱하다. 俗字 戱
10. 卜商,衛人,字子夏。以文學著名。
卜商은 위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夏이다. 문학으로 이름이 났다.
▶子夏問 巧笑倩兮,美目盼兮,素以為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孔子曰 商始可與言詩已矣(자하가 묻기를 “공교로이 웃는 입모습 예쁘고, 아름다운 눈의 눈매가 예쁘구나! 흰 바탕에 채색한다.” 하니 무엇을 말함입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이 희게 된 후에 한다.” 하였다. 자하가 말하기를 “예를 갖춘 뒤에 합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商(자하)이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만하다.” 하였다) 倩笑貌. 盼動目貌. 絢文貌(倩은 웃는 모양이다. 盼은 눈을 움직이는 모양이다. 絢은 문채 있는 모양이다) 倩예쁠 천. 盼눈 예쁠 반, 곁눈질하다. 絢무늬 현. 素흴 소, 본디, 바탕. 繪그림 회. 已이미 이
▶子貢問 師與商孰賢? 子曰 師也過,商也不及。 然則師愈與? 曰 過猶不及(자공이 묻기를 “顓孫師(子張)와 商(子夏)은 누가 어집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師는 지나치고, 商은 미치지 못한다.” 했다. (자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師가 나은 것입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고 했다.)
▶孔子既沒,子夏居西河教授,為魏文侯師。其子死,哭之失明(공자가 죽고 子夏는 서하에 살면서 가르침을 주었는데, 魏나라 文侯의 스승이 되었다. 그 아들이 죽자 곡을 하여 눈(시력)을 잃었다)
▶習於詩,能通其義,以文學著名。為人性不弘,好論精微,時人無以尚之。嘗返衛,見讀史志者云 晉師伐秦,三豕渡河。 子夏曰 非也,己亥耳。 讀史志曰問諸晉史,果曰己亥。於是衛以子夏為聖(시를 익혔기에 뜻을 능히 통달하여 文學으로 이름이 났으며, 성품이 넓지를 못하고 미세한 걸 논하길 좋아했다. 당시 사람들은 정미함을 숭상하지 아니하였다. (子夏가) 위나라로 돌아가면서 역사 기록을 소리 내어 읽는 이를 보았는데, 晉나라 군대가 秦을 칠 때, 돼지 세 마리로 황하를 건넜다. 라고 하였는데, 子夏가 말하길, “틀렸다. (三豕가 아니고) 己亥이다.”라고 했다. 역사의 기록을 읽으며 말하길, “晉나라 역사를 묻자, 과연 己亥라고 말했다.”라고 했다. 이에 위나라에서는 子夏를 聖人이라 했다) ※몸 기(己)자와 석 삼(三)자가 비슷하고, 돼지 시(豕)자와 돼지 해(亥)자도 서로 닮아 잘못 읽기 쉽다. 晉나라 군대가 기해년에 황하를 건넜다는 말이다.
11. 顓孫師,陳人,字子張。為人有容貌資質,寬沖博接 從容自務,居不務立於仁義之行。孔子門人友之而弗敬。
顓孫師는 陳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張이다. 용모와 자질이 뛰어나고 성품이 관대하고 온화하여 교제도 폭이 넓었다. 조용히 자신의 일에 힘썼으나, 평소에 仁義를 실천하는 일에는 힘쓰지 않는다. 공자의 문인들이 그를 친구로 사귀면서도 그러나 공경하지는 않았다.
▶顓전단(專斷)할 전, 제멋대로 하다. 寬너그러울 관. 沖빌 충, 空虛하다. 博넓을 박. 接사귈 접.
▶子張問干祿,孔子曰 多聞闕疑,慎言其餘,則寡尤多見闕殆,慎行其餘,則寡悔。言寡尤,行寡悔,祿在其中矣(자장이 祿을 구하는 것을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많이 듣고 의심나는 것은 빼두고, 그 나머지를 말함에 삼가면 곧 허물이 적어진다. 많이 보고 위태로움을 빼두고 그 나머지를 행함에 삼가면 곧 뉘우침이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녹은 그 안에 있다) 祿녹 록. 闕빠질 궐. 疑의심할 의. 慎삼갈 신. 寡적을 과. 尤더욱 우. 殆위태할 태. 悔뉘우칠 회. 寡尤: 허물이 적다
▶他日從在陳蔡閒 困問行。孔子曰 言忠信,行篤敬,雖蠻貊之國行也 言不忠信,行不篤敬,雖州里行乎哉! 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於衡,夫然後行。子張書諸紳(다른 날에 (공자를)따라서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 있을 때 어려움을 겪고 (자기 생각을) 行함을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말은 정성스럽고 믿음직하게 하고, 행실은 敬을 두터이 하면 비록 蠻貊(오랑캐)의 나라일지라도 행해진다. 말이 정성스럽고 믿음직하지 못하고, 행실이 두터이 공경하지 않으면 비록 州里(마을)인들 행해질 수 있겠는가! 서면 곧 앞에서 가지런함을 보이고, 수레에 있을 때는 가로대에 기댄 것을 보인 후에 행할 수 있다.” 하니 자장이 띠에 적었다) 閒사이 간 / 한가할 한. 篤도타울 독. 蠻오랑캐 만, 남방의 미개 민족. 貊북방 종족 맥. 輿수레 여. 倚기댈 의. 衡저울대 형. 諸모두 제 / 어조사 저. 紳큰 띠 신
▶子張問 士何如斯可謂之達矣? 孔子曰 何哉,爾所謂達者? 子張對曰 在國必聞,在家必聞。 孔子曰 是聞也,非達也。夫達者,質直而好義,察言而觀色,慮以下人,在國及家必達。夫聞也者,色取仁而行違,居之不疑,在國及家必聞(자장이 묻기를 “士(선비)가 어떻게 하여야 통달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네가 말한 통달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였다. 자장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라에 있어서는 반드시 명예가 있고, 집에 있어서도 반드시 명예가 있는 것입니다.”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이는 명예이니 통달하는 것이 아니다. 대저 통달이라 하는 것은 바탕을 곧게 하여 의를 좋아하며 말을 살피고 (상대의) 안색을 살피며, 아래에 있는 사람을 염려하는 것이, 나라와 집에 있을 때 반드시 통달하는 것이다. 대저 명예는 안색(얼굴색)으로는 仁을 취하되 행동은 어기고, 그것에 머무름을 의심하지 않으면 나라와 집에 있어서 반드시 명예가 있다.”라고 했다) 斯이 사. 爾너 이
12. 曾參,南武城人,字子輿。少孔子四十六歲,志存孝道,故孔子因之以作孝經。
曾參은 南武城 사람이고 자는 子輿이다. 뜻이 효도에 있었으므로 공자가 이로 인하여 孝經을 짓게 하였다.
▶孔子以為能通孝道,故授之業。作孝經。死於魯(공자는 효도에 능통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학업을 주었다. 孝經을 짓게 하였다. 노나라에서 죽었다)
▶正義 韓詩外傳云 曾子曰 吾嘗仕為吏,祿不過鍾釜,尚猶欣欣而喜者,非以為多也,樂道養親也。親沒之後,吾嘗南游於越,得尊官,堂高九仞,榱提三尺,轉轂百乘,然猶北向而泣者,非為賤也,悲不見吾親也(正義한시외전에 이르기를, “증자가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벼슬하여 吏가 되어 녹이 鐘釜를 지나지(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흡족하여 기쁜 듯이 한 것은 많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도를 즐기고 어버이를 봉양하였기 때문이다. 어버이가 돌아가신 후, 내가 일찍이 남쪽으로 월나라에서 놀면서, 높은 관직을 얻어 집의 높이가 아홉 길이고, 서까래의 들림이 3자였으며, 굴릴 곡식이 100 수레였으나, 오히려 북쪽을 향하여 눈물을 흘린 것은 천하다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내 어버이를 볼 수 없음을 슬퍼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嘗일찍이 상, 맛보다. 釜가마 부. 欣기쁠 흔. 游놀 유, 헤엄치다. 仞길 인, 재다. 榱서까래 최. 提끌 제, 들어 올리다. 轂바퀴 곡, 수레. 泣울 읍
13. 澹臺滅明,武城人,字子羽。有君子之資,孔子嘗以容貌望其才,其才不充孔子之望然其為人公正無私。以取與去就,以諾爲名,仕魯爲大夫也。
澹臺滅明은 武城 땅 사람이고, 자는 子羽이다. 공자보다 49세가 어리다. 군자다운 자질이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일찍이 용모로 판단하여 그의 재능을 기대하였으나, 그의 재능은 공자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됨이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었다. 재물을 자기가 취하거나 남에게 주거나, 어떤 지위에서 일하거나 떠나거나, 이 모든 일이 자기가 약속한 대로 정확히 실천하여 세인들의 칭찬을 받았다. 그는 노나라에서 벼슬하여 대부가 되었다.
▶澹담박할 담. 望은 期望임. 諾대답할 락, 승낙. 期望(企望):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람
▶史記 仲尼弟子列傳에서, 狀貌甚惡。欲事孔子,孔子以為材薄。既已受業,退而修行,行不由徑,非公事不見卿大夫(모습이 매우 나쁘고(못 생겼다.) 공자를 섬기고자 하였으나, 공자는 재주가 모자란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나 공자의 가르침을 마치고 물러났음에도 수행을 멈추질 않았는데, 길을 갈 때는 지름길을 취하지 않았고, 公的인 일이 아니면 사사로이 경대부를 만나지 않았다). 담대멸명의 얼굴이 매우 추해서 공자에게 처음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공자가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위 내용과 대비가 된다.
▶南游至江, 從弟子三百人, 設取予去就, 名施乎諸侯. 孔子聞之, 曰 吾以言取人, 失之宰予 以貌取人, 失之子羽(그가 남쪽으로 내려가 강수 근처에 살 때는 그를 따르는 제자가 3백 명에 이르렀다. 그는 제자들에게 물건을 주고받는 것과, 벼슬자리에 나아가고 그만두는 것을 의리에 맞게 하라고 가르쳐, 그의 이름은 제후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孔子는 그의 평판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말을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취했다가, 宰予로 인해 실수하였고, 용모로써 사람을 취했다가, 子羽로 인해 실수하였다."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에서, 공자가 자유에게 인물을 얻었느냐고 묻자, 자유가,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於偃之室也(담대멸명이라는 자가 있는데, 길 다닐 적에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일찍이 저의 집에 이른 적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14. 高柴,齊人,高氏之別族,字子羔。少孔子四十歲,長不過六尺,狀貌甚惡,為人篤孝而有法正。少居魯,見知名於孔子之門,仕為武城宰。
高柴는 齊나라 사람이고 고씨의 별족이다. 자는 子羔이다. 공자보다 40살이 어리다. 키는 6자를 채우지 못하였고, 외모가 매우 추하였다. 사람됨이 독실하게 배우고 법도가 있었다. 어려서는 魯나라에 살았으며, 孔子의 門下에서 이름이 난 걸 알 수 있다. 벼슬은 武城의 宰이다.
▶柴섶(땔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 시,시제사(柴祭祀, 섶을 불살라 하늘에 지내는 제사). 羔새끼 양 고. 法正: 礼法规矩(禮法 規則)
▶子羔長不盈五尺,受業孔子,孔子以為愚(자고는 키가 5자를 채우지 못하였는데, 공자에게 학업을 받았으나 공자가 어리석다고 여겼다) 盈찰 영. 愚어리석을 우
▶子路使子羔為費郈宰,孔子曰 賊夫人之子! 子路曰 有民人焉,有社稷焉,何必讀書然後為學! 孔子曰 是故惡夫佞者(자로가 자고로 하여금 비후 땅의 읍재로 삼았다. 공자가 말하기를 “저 다른 사람의 아들을 해치는구나!” 하자 자로가 말하기를, “백성이 여기에 있고, 사직이 여기에 있는데, 어찌 반드시 글을 읽은 후 배움을 삼겠는가!”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이 때문에 저 말 잘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佞아첨(阿諂)할 녕 ※包氏曰, 子羔學未孰習而使為政,所以賊害人(포씨가 말하기를, “자고는 배움을 익숙히 익히지 못하였는데도 政事를 하도록 한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친다.”라고 한 것이다)
15. 宓不齊,魯人,字子賤。少孔子四十歲,仕為單父宰,有才智,仁愛,百姓不忍欺。孔子美之。
宓不齊(복부제)는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賤이다. 공자보다 40살이 어리다. 單父(선보)의 宰가 되어 才智와 仁愛가 있었으므로 백성들이 차마 속이지 못하였다. 孔子가 그를 좋게 여겼다.
▶宓성(姓) 복, 몰래. 單홑 단, 오직 / 고을의 이름 선. 父자(≒甫, 남자에 대한 미칭) 보, 나이 많은 男子에 대한 敬稱. 欺속일 기
▶呂氏春秋 察賢에, 宓子賤治單父 彈鳴琴 身不下堂而單父治(宓子賤이 單父를 다스릴 적에 琴을 타기만 할 뿐 堂에서 내려가지 않았는데도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 라고 하였다.
▶孔子謂 子賤君子哉!魯無君子,斯焉取斯?(공자가 말하기를, “자천은 군자로다! 노나라에는 군자가 없었다면 이에 어디서 이를 취하였겠는가?”라고 했다) 包氏曰 如魯無君子,子賤安得此行而學?(포씨가 말하기를, “만약에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자천이 어찌 이러한 행동을 배울 수 있었겠는가?” 한 것이다)
▶子賤為單父宰,反命於孔子,曰此國有賢不齊者五人,教不齊所以治者。孔子曰 惜哉不齊所治者小,所治者大則庶幾矣(자천이 선보의 읍재가 되었다가 돌아와 공자에게 복명하며 말하기를, “이 나라에 저(不齊)보다 어진 이가 다섯이 있어 저에게 다스리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라고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애석하다! 不齊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적으니, 다스림 받는 자가 크면 곧 道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했다)
16. 樊須,魯人,字子遲。少孔子四十六歲,弱仕於季氏。
樊須는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遲이다. 弱冠의 나이에 季氏에게서 벼슬하였다.
▶樊울 번, 울타리. 須모름지기 수, 수염. 遲더딜지
▶樊遲請學稼,孔子曰 吾不如老農。 請學圃,曰 吾不如老圃。 樊遲出,孔子曰 小人哉樊須也!上好禮,則民莫敢不敬;上好義,則民莫敢不服 上好信,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則四方之民襁負其子而至矣,焉用稼!(번지가 농사짓는 법 배우기를 청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농사짓는 방법을 아는 것이) 늙은 농부보다 못하다.” 하였다. (번지가) 菜田(남새밭) 밭 가꾸는 법을 배울 것을 청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늙은 정원사보다 못하다.”라고 했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가 말하기를 “소인이구나 번지는!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곧 백성들이 감히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곧 백성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며,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곧 백성들이 감히 실정을 쓰지 않음이 없다. 이 같으면 곧 사방의 백성들이 그 자식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이를 것이다. 어찌 농사를 지을 것인가!”라고 했다) 稼심을 가, 農事. 圃밭 포, 들일. 襁포대기 강. 負질 부. 馬融曰 樹五穀曰稼,樹菜蔬曰圃(마융이 말하기를, 오곡을 심는 것을 稼라 하고 채소(菜蔬)를 심는 것을 圃라고 한다. 라고 했다)
17. 有若,魯人,字子有。少孔子三十六歲,為人強識,好古道。
有若은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有이다. 사람됨이 잘 기억하고 옛날의 도를 좋아하였다.
▶強識(彊識, 강지)는 強記와 같은 말로 기억을 잘한다는 말. 強알 식, 知識 / 적을지, 記憶하다, 表示하다, 標識(표지: 표시나 특징으로 다른 것과 구분함)
▶有若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유약이 말하기를, 예절을 운용함에는 조화가 귀중하다. 옛날 선왕들의 도는 조화가 있음으로써 아름다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조화만 가지고는 잘되지 않을 수도 있다. 조화의 귀중함을 알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일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신의는 정의에 가까울 때 그 약속을 이행할 수 있으며, 공손함도 예절에 가까울 때 치욕에서 멀어질 수 있다. 그 친할 만한 사람을 잃지 않아야 또한 존경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恥부끄러워할 치. 辱욕되게 할 욕. 宗마루 종, 일의 根源, 根本, 으뜸, 尊崇(존숭)하는 사람, 높이다
18. 公西赤,魯人,字子華。少孔子四十二歲,束帶立於朝,閑賓主之儀。
公西赤은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華이다. 관대를 두르고 조정에 서서 빈객을 대하는 威儀에 익숙하였다.
▶論語 公冶長에서 孟武伯이 공서적이 仁한 지를 묻자, 공자가 말하길,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관대를 두르고 조정에 서서 빈객과 함께 말하게 할 만하지만, 그가 어진 사람인지 모르겠다) 라고 하였다.
▶子華使於齊, 冉有爲其母請粟. 孔子曰 與之釜. 請益, 曰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孔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君子周急不繼富(자화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冉有(冉求)가 자화의 모친을 위해 먹을 양식을 드리기를 청했다. 孔子가 말하기를, 한 솥(1부 = 6말 4되)을 드려라. 라고 하자, 염유는 더 드리기를 청했다. 孔子가 말하기를, 한 유(1유 = 16말)를 더 드려라. 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冉求는 겉곡식 다섯 병(1병 = 16곡, 1곡 = 10말)을 자화의 어머니에게 더 드렸다. 孔子가 그 일을 듣고 말하기를, 공서적이 제나라에 갈 때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고 갔다. 내가 듣기로는 군자는 절실한 자를 돕지, 부유한 자는 돕지 않는다고 하였다. 라고 하였다)
19. 原憲,宋人,字子思。少孔子三十六歲,清淨守節,貧而樂道。孔子為魯司寇,原憲嘗為孔子宰。孔子卒後,原憲退隱,居于衛。
原憲은 宋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思이다. 성품이 맑고 깨끗하며 절의를 지켰고 가난했지만 도를 즐겼다. 孔子가 노나라 司寇가 일 때, 原憲은 일찍이 孔子의 宰가 되었다. 孔子가 죽자, 原憲은 물러나 衛나라에 머물렀다.
▶史記 卷67 仲尼弟子列傳에서, 孔子卒,原憲遂亡在草澤中。子貢相衛,而結駟連騎,排藜藿入窮閻,過謝原憲。憲攝敝衣冠見子貢。子貢恥之,曰 夫子豈病乎? 原憲曰 吾聞之,無財者謂之貧,學道而不能行者謂之病。若憲,貧也,非病也。子貢慚,不懌而去,終身恥其言之過也(孔子가 세상을 떠난 뒤에 原憲은 풀이 우거진 늪지대에 숨어 살았다. 子貢이 衛의 재상으로 있으면서 사두마차를 타고 기마 호위병과 함께 명아부와 콩잎을 헤치고 빈궁한 집에 들어와 子思에게 들러 인사하였다. 원훤은 해어진 옷과 의관을 단정히 차려입고 자공을 맞이하였다. 子貢이 부끄럽게 여겨 말하였다. “선생은 어찌 병들어 보이십니까?”원훤이 말하였다.“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재물이 없음을 가난이라 말하고 도를 배우고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함을 병이라고 한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가난하지 병든 것은 아닙니다.” 자공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언짢은 표정으로 떠났다. 이후 평생토록 자신의 말이 지나침을 부끄러워하였다) 遂드디어 수, 이르다. 澤못 택. 駟사마(四馬) 사. 騎말 탈 기. 排밀칠 배. 藜명아주 려. 藿공잎 곽. 閻이문(里門) 염. 攝당길 섭, 쥐다. 敝해질 폐. 慚부끄러울 참. 懌기뻐할 역
▶子思問恥. 孔子曰 國有道, 穀. 國無道, 穀, 恥也. 子思曰 克伐怨欲不行焉, 可以為仁乎? 孔子曰 可以為難矣, 仁則吾弗知也(子思가 수치에 대해 물었다. 孔子가 대답하기를,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녹을 먹을 수 있으나, 나라에 도가 없을 때 녹을 먹는다면, 이것이 바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라고 하였다. 子思가 묻기를, 남을 이기려고 하는 것, 스스로 공을 자랑하는 것, 남을 원망하는 것, 탐욕스러운 것 등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를 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라고 하자. 孔子가 말하기를, 그렇게 하기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것만으로 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라고 하였다)
20. 公冶長,魯人,字子長。為人能忍恥
公冶長은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張이다. 사람됨이 수치를 잘 참았다.
▶論語 公冶長에서, 子謂公冶長 可妻也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妻之(孔子가 말하기를, 子長은 사위 삼을 만하다.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의 죄가 아니다. 라고 하고는 자기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라고 하였다) 縲絏之中: 오라에 묶여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處地. 縲絏: 罪人을 묶던 노끈. 縲포승 루. 絏고삐 설
※옛날 獄中에서는 검정색의 포승으로 罪人을 결박하였다. 縲: 검정색의 포승. 絏: 結縛(결박). 縛묶을 박
21. 南宮韜,魯人,字子容。以智自將,世清不廢,世濁不污。孔子以兄子妻之。
南宮韜는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容이다. 지혜로써 자신을 보전하여 세상이 맑으면 버려지지 않고 세상이 흐려도 더럽혀지지 않았으므로, 공자가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韜감출 도. 适빠를 괄. 污더러울 오, 同字 汙, 汚
▶異稱(이칭)으로 南容, 南宮适. 姓은 南宮이고, 이름은 适이다.
▶南宮問孔子曰 羿善射,奡盪舟,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 孔子弗答 容出,孔子曰 君子哉若人!上德哉若人! 國有道,不廢;國無道,免於刑戮。三復 白珪之玷,以其兄之子妻之(자용이 공자에게 물었다.“羿는 활을 잘 쏘았고 奡는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녔지만 모두 제대로 죽지 못하였습니다. 禹임금과 주나라 后稷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를 소유하였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공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子容이 나가자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로구나, 저 사람은! 덕을 숭상하는구나, 저 사람이여! 나라에 道가 있을 때는 버려지지 않을 것이요, 나라에 道가 없을 때는 형벌을 면할 것이다.” 자용은 詩經을 읽다가 白珪之玷에 이르러 3차례나 반복해서 읽자, 공자가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羿사람 이름 예. 奡오만할 오. 盪씻을 탕. 俱함께 구. 稷기장 직. 戮죽일 륙. 珪홀 규. 玷이지러질 점
※詩經 大雅 蕩之什 抑 五章에서, 質爾人民、謹爾侯度、用戒不虞。慎爾出話、敬爾威儀、無不柔嘉。白圭之玷、尚可磨也。斯言之玷、不可為也(그대의 인민을 바탕으로 하고, 그대 제후의 법도를 삼가하며, 지킬 바를 잘하면 우려함이 없다네. 그대 말 내는 데 신중하고, 그대 위엄있는 거동으로 경건하면, 부드럽고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네. 흰 구슬의 흠은 오히려 갈아낼 수 있지만, 말 속의 허물은 어찌 할 수 없다네!) 蕩쓸어버릴 탕, 방탕하다. 什열 사람 십, 詩歌. 抑누를 억. 爾너 이. 謹삼갈 근. 侯과녁 후, 諸侯. 虞헤아릴 우, 근심하다. 慎삼갈 신. 柔부드러울 유. 嘉아름다울 가. 圭홀 규. 尚오히려 상, 높이다. 磨갈 마. 斯이 사
▶論語 公冶長에 공자가 남용을 평하여, 子謂南容 邦有道不廢 邦無道免於刑戮 以其兄之子妻之(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쫓겨나지 않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형벌을 면할 것이다. 라고 하고는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라고 하였다.
22. 公析哀,齊人,字季沉。鄙天下多仕於大夫家者,是故未嘗屈節人臣。孔子特歎貴之。
公析哀는 제나라 사람이고 자는 季沈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대부에게 가서 벼슬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다. 그래서 남의 신하에게 굽히는 일이 없었다. 공자는 이를 특별히 귀하게 여겨 칭찬하였다.
▶析가를 석. 哀슬플 애. 季끔 계. 沉가라앉을 침, 잠기다, 俗字 沈. 鄙다라울 비. 仕벼슬할 사. 屈굽힐 굴. 歎읊을 탄, 한탄하다, 칭찬하다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公析哀는 公晳哀로, 季沉은 季次로 되어 있다. 晳밝을 석. 沉가라앉을 침, 沈의 俗字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孔子曰 天下無行,多為家臣,仕於都 唯季次未嘗仕(공자가 말하길, 천하에 道가 행해지지 않아, 대부분 家臣이 되거나, 도성에서 벼슬하였지만, 季次만은 지조를 지키며 벼슬한 적이 없었다. 라고 하였다)
23. 曾點,曾參父,字子晳。疾時禮教不行,欲修之。孔子善焉,論語所謂浴乎沂,風乎舞雩之下。
曾點은 曾參의 아버지로, 자는 子晳이다. 禮敎가 행해지지 않아 이를 정비하려고 하였으므로, 공자가 훌륭하게 여겼다. 論語 先進에서, 沂水에서 목욕하고 舞雩 아래에서 바람 쐬고 싶다. 라고 한 者이다.
▶曾일찍 증, 거듭하다. 晳밝을 석. 疾병 질, 痛心, 痛恨(통한), 버릇, 빠르다. 浴목욕할 욕. 沂물 이름 기. 舞춤출 무. 雩기우제 우
▶曾点은 曾参의 父亲이다.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曾點이 曾蒧(풀 이름 점, 사람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侍孔子, 孔子曰 言爾志. 蒧曰 春服既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帰. 孔子喟爾歎曰 吾與蒧也!(공자를 모시는 데 공자가, 너의 뜻을 말해보라. 하니, 증점은, 봄옷을 갖추어 입고 관을 쓴 사람 5, 6인, 동자 6, 7인과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에서 바람을 쐬다가 (시, 노래)를 읆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 라고 했다. 공자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탄복하여 말하기를, 나는 증점과 함께 할 것이다! 라고 했다)
24. 顏由,顏回父,字季路。孔子始教學於閭里,而受學,少孔子六歲。
顔由은 顔回의 아버지이며 字는 季路이다. 공자가 처음 閭里에서 가르칠 때 배움을 받았다. 공자보다 6세 적다.
▶閭이문(里門, 동네의 어귀에 세운 문) 려, 마을, 軍陣의 이름. 閭里: 百姓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顏由를 顔無繇로, 字 또한 季路를 路라 되어 있고, 閭里는 闕里로 되어 있다. 闕里는 山東省 曲阜縣에 있는 공자의 출생지로,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繇역사(役事: 토목이나 건축 따위의 공사) 요, 노래, 歌謠 / 말미암을 유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顏回死,顏路貧,請孔子車以葬。孔子曰 材不材,亦各言其子也。鯉也死,有棺而無槨,吾不徒行以為之槨,以吾從大夫之後,不可以徒行(안회가 죽었는데 안로가 가난하여, 공자에게 수레를 팔아 장례를 치를 것을 청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재능이 있든 없든 다 자기 자식들이 아닌가? 鯉(공자의 아들)가 죽었을 때 관으로 널만 쓰고 겉 널은 쓰지 않았다. 나는 겉 널을 쓰지 않았으니, 내가 대부의 말석에 있어, 걸어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鯉잉어 리. 槨덧널 곽. 徒行: 걸어서 감.
※孔安國曰 鯉,孔子子伯魚。孔子時為大夫,言從大夫之後,不可徒行,謙辭也(공안국이 말하기를, 鯉는 공자의 아들 伯魚이다. 공자가 그때 대부가 되었는데 대부의 말석으로 걸어 다닐 수 없었다고 말한 것은 겸손한 말이다.)
25. 商瞿,魯人,字子木。少孔子二十九歲,特好易,孔子傳之,志焉。
商瞿는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木이다. 孔子보다 29세 어리다. 周易을 좋아하였으므로 공자가 그에게 전하여 기록하게 하였다.
▶瞿놀라서 볼 구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孔子傳易於瞿, 瞿傳楚人馯(軒)臂子弘, 弘傳江東人矯子庸疵, 疵傳燕人周子家豎(공자가 상구에게 周易을 전수하였고, 상구는 초나라 사람 馯臂子弘(간비자홍)에게 전수하였다. 간비자홍은 다시 강동의 矯子庸疵(교자용자)에게 전하고, 용자는 연나라 사람 周子家豎(주자가수)에게 전했다. 라고 하였다) 馯성(姓) 간 / 사나운 말 한. 臂팔 비. 弘넓을 홍. 矯바로잡을 교. 庸쓸 용, 功. 疵흠 자, 缺點(결점). 燕제비 연. 豎더벅머리 수, 俗字 竪.
26. 漆雕開,蔡人,字子若。少孔子十一歲,習尚書,不樂仕。孔子曰子之齒可以仕矣。時將過,子若報其書曰吾斯之未能信。孔子悅焉。
漆雕開는 蔡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若이다. 尙書를 잘 알았고, 孔子가 말하길, “그대의 나이라면 가히 벼슬할 만하네, 장차 시간이 지날 걸세.”라고 하자. 子若은 편지를 써서 답하길, “저는 아직 이에 대해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하니, 孔子가 기뻐하였다.
▶漆옻 칠. 雕독수리 조, 새기다. 蔡거북 채. 仕벼슬할 사. 齒이 치, 나이. 斯이 사. 悅기쁠 열
▶論語 公冶長에, 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하라고 권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저는 벼슬하는 것에 대해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하니, 공자가 기뻐하였다) 라고 하였는데, 程子의 注에, 칠조개가 이미 大意를 보았기 때문에 기뻐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27. 公良孺,陳人,字子正。賢而有勇。孔子周行,常以家車五乘從。
公良孺는 陳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正이다. 현명하면서도 용맹하였다. 孔子가 천하를 周遊할 때. 그는 항상 수레 다섯 대를 가지고 孔子를 따랐다.
▶孺젖먹이 유
28. 秦商,魯人,字不慈。少孔子四歲,其父堇父,與孔子父叔梁紇俱以力聞。
秦商은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不慈이다. 孔子보다 4살 어리다. 그의 아버지 堇父(근보)는 孔子의 아버지 叔梁紇(숙량흘)과 함께 力士라는 所聞을 들었다.
▶秦벼 이름 진, 나라이름. 堇오랑캐꽃 근. 父자(≒甫, 남자에 대한 미칭) 보, 나이 많은 男子에 대한 敬稱. 叔아재비 숙. 梁들보 량, 다리, 교각. 紇질 낮은 명주실 흘. 俱함께 구, 갖추다
29. 顏刻,魯人,字子驕。少孔子五十歲,孔子適衛,子驕為僕。衛靈公與夫人南子同車出,而令宦者雍渠參乘,使孔子為次乘,遊過市,孔子恥之。顏刻曰夫子何恥之 孔子曰詩云 覯爾新婚,以慰我心。 乃歎曰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顔刻은 노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驕이다. 孔子보다 50살 어리다. 孔子가 위나라에 갔을 때, 자교가 모셨다. 위령공이 부인 南子와 함께 수레를 타고 나가면서, 환관인 雍渠(雍梁)와 셋이 타서 陪行하도록 하고, 孔子에게는 수레를 뒤따르게 하였는데, 거리에 나서자, 孔子가 이를 부끄럽게 여기니, 이에 顔刻이 말하길, “선생께서는 무얼 부끄러워하십니까?”라고 하니, 孔子가 말하길, “詩經에 이르길, 너의 新婚을 보고, 이로써 내 마음을 慰勞한다고 하였는데!”라고 탄식하며, 말하길, “德을 좋아하기를 女色보다 더 좋아하는 이를 나는 아직 보지 못하였구나!”라고 하였다.
▶顏얼굴 안. 刻새길 각. 驕교만할 교. 適갈 적, 만나다, 당연하다. 僕종 복. 宦벼슬 환, 관리. 雍누구러질 옹. 渠도랑 거. 參간여(干與)할 참. 覯만날 구, 우연히 만나다. 爾너 이. 慰위로할 위. 歎탄할 탄. 参乘(骖乘, 참승): 陪乘((윗사람을 모시고) 함께 수레를 타다). 次乘: 后面的车(뒤를 따라가는 수레)
▶詩經 小雅 桑扈之什 車舝 第五章에, 高山仰止、景行行止。四牡騑騑、六轡如琴。覯爾新昏、以慰我心(높은 산을 우러러 보며 큰길을 따라 걷고 걷는데, 네 필 말이 끄는 수레, 여섯 줄 고비가 거문고 같네! 그대를 만나 새로 결혼하니, 내 마음 즐겁기만 하네!) 雅맑을 아, 바르다. 桑뽕나무 상. 扈뒤따를 호. 什열 사람 십, 詩歌. 舝비녀장(수레의 굴레 머리에서 내리질러 바퀴가 벗겨져 나가지 않게 하는 쇠) 할, 同字 轄,𩎲. 仰우러를 앙. 景볕 경, 밝다. 牡수컷 모. 騑곁마 비. 轡고삐 비. 琴거문고 금
▶史記 仲尼弟子列傳에서는, 顏刻을 顏高라고, 또 產이라 했다. 孔子在衛,南子招夫子為次過市,時產為御也(공자가 위나라에 있을 때 남자가 선생을 불러서 가면서 시장을 지날 때 자산이 마부가 되었다. 공자가 위나라에 있을 때 남자가 선생을 불러 말을 타고 가면서 시장을 지날 때 產(안고)는 마부가 되었다.) 招부를 초. 御어거(馭車: 말을 몰다)할 어. 馭말 부릴 어
▶南子, 衛靈公之夫人, 有淫行. 孔子至衛, 南子請見, 孔子辭謝, 不得已而見之. 蓋古者仕於其國, 有見其小君之禮. 而子路以夫子見此淫亂之人爲辱, 故不悅(남자는 위령공의 부인으로 음행이 있는데, 공자께서 衛나라에 계실 때 남자가 뵙기를 청하여, 공자는 사절하였으나, 부득이하게 뵙게 되었다. 옛사람들은 그 나라에 벼슬하면, 小君(제후의 아내)를 만나도록 하는 예의가 있었다. 子路가 선생께서 이런 음탕한 이를 만나는 것은 욕되다고 하여 불쾌하게 여겼다.)
30. 司馬耕,宋人,字子牛。牛為性躁,好言語,見兄桓魋行惡,牛常憂之。
司馬黎耕은 송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牛이다. 성격이 조급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형인 桓魋(환퇴)가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자우가 늘 근심하였다.
▶耕밭갈 경. 黎검을 려. ※史記 仲尼列傳에서는 司馬耕을 司馬黎耕이라 했다. 躁성급할 조. 桓푯말 환. 魋북상투(아무렇게나 막 끌어 올려 짠 상투) 추, 몽치(짤막하고 단단한 몽둥이) 머리 추 / 곰 퇴
▶論語 顔淵에, 사마우가 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仁者 其言也訒(어진 사람은 말을 신중하게 한다) 라고 하였는데, 朱熹(朱子)의 注에, 공자가 사마우가 말이 많고 성격이 조급하기에 이렇게 말하여 말을 삼가게 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訒말 참을 인
▶桓魋: 송나라의 군정을 주관하는 司馬의 관직에 있던 向魋(상퇴, 향퇴). 그는 송나라 桓公의 후예였기 때문에 환퇴라고 불렀다. 그는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송나라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禮를 연습하고 있을 때 그 나무를 뽑아 공자를 죽이려고 했다. 빨리 피하기를 권하는 제자들의 말에 공자가, 子曰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나에게 덕을 부여하셨는데, 환퇴가 나를 어쩌겠는가?")라고 대답했다(論語 述而篇, 史記·孔子世家). 공자가 송나라에 있을 때 사마 환퇴가 석곽을 만드는데 3년이 지나도록 완성되지 않는 것을 보고 낭비가 심하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禮記·檀弓上).
▶論語 顔淵에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가 君子不憂不懼(군자는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는데, 주희의 주에, 형인 司馬向魋, 즉 桓魋가 난리를 일으켜서 그가 늘 근심하고 두려워하였으므로 이렇게 일러준 것이라고 하였다. 懼두려워할 구
31. 巫馬施,陳人,字子期。少孔子三十歲
巫馬期는 陳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期이다.
▶巫무당 무. 施베풀 시
▶孔子將近行,命從者皆持蓋。已而果雨,巫馬期問曰 旦無雲,既日出,而夫子命持雨具。敢問何以知之 孔子曰昨暮月宿于畢。詩不云乎 月離於畢,俾滂沱矣。 以此知之(孔子가 가까운 들로 놀이를 나설 때, 수행하는 제자들에게 모두 우산을 가지고 가도록 명했다. 그날 과연 비가 내리자, 무마기가 묻기를, “아침에는 구름도 없었고, 나설 때는 해가 났었는데, 선생께서 우산을 챙기라고 하셨는데, 감히 여쭙습니다만, 어찌 비가 올 줄 아셨습니까?” 孔子가 답하길, “어젯밤 달이 畢星(필성)에 걸린 것을 보았다. 詩經에도 이르지 않았던가? 달이 필성에 걸리면 큰비가 내린다. 라고 했다. 이로써 비가 올 줄 안 것이다.”라고 했다.) 蓋덮을 개. 已이미 이. 旦아침 단. 既이미 기. 昨어제 작. 暮저물 모. 宿잠잘 숙 / 별자리 수. 畢마칠 필, 달의 이름. 離떠날 리, 흩어지다 / 붙을 려. 俾더할 비. 滂비 퍼부을 방. 沱물갈래 타
▶史記 仲尼弟子列傳에서, 陳司敗問孔子曰 魯昭公知禮乎? 孔子曰 知禮 退而揖巫馬旗曰 吾聞君子不黨,君子亦黨乎? 魯君娶吳女為夫人,命之為孟子。孟子姓姬,諱稱同姓,故謂之孟子。魯君而知禮,孰不知禮! 施以告孔子,孔子曰 丘也幸,苟有過,人必知之。臣不可言君親之惡,為諱者,禮也(진나라 사패가 공자에게 묻기를 “노나라 소공은 예를 압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예를 안다.” 하였다. (사패가) 물러나 무마기에게 읍하고 말하기를 “내가 군자는 편당하지(무리 짓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군자가 또한 무리 짓습니까? 노나라 임금이 오나라의 여자에게 장가들어 부인을 삼고, 명하여 孟子라 하였습니다. 맹자는 성이 姬(희)인데 같은 성을 말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孟子라고 말한 것입니다. 노나라 임금이 禮를 안다고 한다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한다고 할 것인가!” 하였다. (무마시가) 공자에게 말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丘(나는)는 요행이다. 만약 허물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그것을 아는구나. 신하는 임금의 惡을 말할 수 없기에 꺼림을 삼는 것이 예이다.” 했다.)
32. 梁鱣,齊人,字叔魚。少孔子三十九歲,年三十,未有子,欲出其妻。商瞿謂曰子未也。昔吾年三十八無子,吾母為吾更取室。夫子使吾之齊,母欲請留吾。夫子曰 無憂也。瞿過四十,當有五丈夫。 今果然。吾恐子自晚生耳,未必妻之過。從之,二年而有子。
梁鱣(양전)은 齊나라 사람이고 자는 叔魚이다. 孔子보다 39세 어리다. 나이 서른이 되어도 자식이 없자, 아내를 내쫓으려 하니, 商瞿가 일러 말하길, “자네(子)는 그러지 말게나! 옛날 내가 서른 여덟이 되도록 아들이 없어, 어머니께서 나를 위해 새장가를 들도록 하셨으나, 선생께서 나를 齊나라에 보내셨지. 모친께서 나를 남아 있도록 청하였으나,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걱정하지 마라! 瞿過는 마흔에 마땅히 다섯 장부를 낳게 되리라.!’지금 과연 그대로 되었다네! 나는 자네(子)가 (아들을) 늦게 낳을 것을, 걱정할 뿐이지, 그대의 아내 잘못은 아니라네!” 양전이 이 말을 쫓았더니, 2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鱣잉어 전, 철갑상어 전. 瞿놀라서 볼 구. 留머무를 류. 丈夫: 男孩(남해, 남자아이)를 가리킴. 晚늦을 만
33. 琴牢,衛人,字子開,一字張。與宗魯友,聞宗魯死,欲往弔焉。孔子弗許,曰非義也。
琴牢는 衛나라 사람이다. 字는 子開, 혹은 張이라고도 한다. 宗魯와 친한 사이였는데, 宗魯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弔問을 가려 하자, 孔子가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길, “그것은 義에 맞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牢우리 뢰
▶琴牢는 論語에 한 번 출현하고,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나오지 않는다.
▶宗鲁: 春秋时卫国人。为卫灵公兄卫公孟的参乘。公孟为人不善,但对宗鲁很亲近。宗鲁为保护公孟而死(춘추시대 위나라 사람. 위나라 영공의 형인 위공맹과 함께 수레에 배승하였다. 공맹의 사람됨이 선량하지 아니하지만, 그는 宗鲁에게는 매우 친하게 대했는데, 종로는 공맹을 보호하려다 죽었다.)
34. 冉孺,魯人,字子魚。少孔子五十歲。
冉孺는 魯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魚이다. 공자보다 50세가 적었다.
▶冉孺의 字가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子魯라고 되어 있다.
35. 顏幸,魯人,字子柳。少孔子四十六歲。
顔辛은 魯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柳이다. 공자보다 46세가 적었다.
36. 伯虔,字揩。少孔子五十歲。
伯虔은 字는 揩이다. 공자보다 50세가 적었다.
▶虔정성 건. 揩문지를 개
37. 公孫龍,衛人,字子石。少孔子五十三歲。
公孫龍은 衛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石이다. 공자보다 53세가 적었다.
38. 曹䘏,少孔子五十歲。
曹䘏(조휼)은 공자보다 50세가 적었다.
▶䘏진휼((賑恤)할 휼, 救濟하다, 돌보다, 卹의 訛字(와자: 잘못 쓰이고 있는 글자). 訛그릇될 와
▶曹䘏의 字가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子循이라고 되어 있다.
39. 陳亢,陳人,字子元,一字子禽。少孔子四十歲。
陳亢(진항)은 陳나라 사람이다. 자는 子亢이고 다른 자는 子禽이다.
▶陳늘어놓을 진. 亢목 항, 오르다. 禽새 금, 날짐승
40. 叔仲會,魯人,字子期。少孔子五十歲,與孔璇年相比,每孺子之。執筆記事於夫子,二人迭侍左右。孟武伯見孔子而問曰此二孺子之幼也於學,豈能識於壯哉 孔子曰然。少成則若性也,習慣若自然也。
叔仲會는 魯나라 사람이고 자는 子期이다. 공자보다 50세가 적었다. 그는 孔琁과 나이가 서로 비슷하였다. 어릴 때부터 붓을 잡고 공자의 일을 기록하였으며, 공선과 함께 번갈아 가며 공자를 좌우에서 모셨다. 孟武伯이 공자를 만나 뵙고 이렇게 물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어린 나이인데, 학문에 있어서 어찌 장성한 사람보다도 이렇게 아는 것이 많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그렇소! 조금만 더 성취하면 그 성품과도 같게 될 것이며, 더욱 습관이 된다면 자연과 같아질 것입니다.”
▶仲버금 중. 璇옥 선, 구슬. 孺子: 나이 어린 男子. 迭갈마들 질. 侍모실 시
41. 秦祖,字子南。
秦祖는 자가 子南이다.
▶秦벼이름 진
42. 奚蒧(箴),字子楷。
奚蒧(箴)(해점, 해잠)은 자가 子偕(楷)이다.
▶奚어찌 해. 蒧풀이름 점. 偕함께 해. 楷해나무 해
▶이름과 字가 달리 쓰인 곳이 많음.
43. 公祖玆,字子之。
公祖玆는 자가 子之이다.
▶玆이 자
44. 廉潔,字子曹。
廉潔은 자가 子曹이다.
▶潔깨끗할 결. 曹마을 조, 官衙(관아)
45. 公西與,字子上。
公西與는 자가 子上이다.
46. 宰父黑,字子索。
宰父黑(재보흑)은 자가 子索이다.
▶索찾을 색 / 동아줄 삭
▶史記 仲尼弟子列傳에서에는 宰가 罕(그물 한)로 되어 있다. 다른 자료에는 子索이란 字가 子黑으로 되어 있다.
47. 公西減,字子尚。
公西減은 자가 子尙이다.
▶減줄 감
48. 穰駟赤,字子從。
穰駟赤은 자가 子從이다.
▶穰볏짚 양. 駟사마(四馬) 사
49. 冉季,字子產。
冉季는 자가 子産이다.
▶冉나아갈 염. 季끝 계
50. 薛邦,字子從。
薛邦는 자가 子從이다.
▶薛맑은대쑥 설. 邦나라 방
51. 石處,字子里
石處는 字가 子里이다.
52. 懸亶,字子象。
懸亶(현단)은 자가 子象이다.
▶懸매달 현. 亶믿음 단
53. 左郢,字子行。
左郢(좌영)은 자가 子行이다.
▶郢땅 이름 영
54. 狄黑,字哲之。
狄黑은 자가 哲之이다.
▶狄북방 오랑캐 적
55. 商澤,字子秀。
商澤은 자가 子秀이다.
56. 任不齊,字子選。
任不齊는 자가 子選이다.
57. 榮祈,字子祺。
榮祈는 자가 子祺이다.
▶祈빌 기. 祺복(福) 기
58. 顏噲,字子聲。
顔噲(안쾌)는 자가 子聲이다.
▶噲(목구멍 쾌)
59. 原抗,字子藉。
原抗은 자가 子藉이다.
▶抗막을 항. 桃복숭아나무 도. 藉깔개 자. 籍서적 적, 문서, 장부
▶다른 자료에는 原抗이 原桃로, 子藉은 子籍로 되어 있다.
60. 公賓,字子仲。
公賓은 자가 子仲이다.
61. 秦非,字子之。
秦非는 자가 子之이다.
62. 漆雕從,字子文。
漆雕從은 자가 子文이다.
63. 燕伋,字子思。
燕級은 자가 子思이다.
▶燕제비 연. 伋속일 급, 人名. 級등급 급
▶다른 자료에는 燕伋이 燕級으로 되어 있다.
64. 公夏守,字子乘。
公夏守는 자가 子乘이다.
65. 勾井疆, 字子疆.
勾井疆의 字는 子疆이다.
▶勾굽을 구, 갈고리. 疆지경 강, 밭두둑
66. 步叔乘,字子車。右作蜀,字子明。
步叔乘은 자가 子車이다. 蜀이라고도 하며, 자를 子明이라고도 한다.
▶蜀나라 이름 촉.
▶어떤 자료에는 右作蜀을 石作蜀으로 여겨, 두 사람으로 하였다. 참조: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사이트
67. 邽巽,字子歛(飮)。
邽選은 자가 子歛(子飮)이다.
▶邽고을 이름 규. 巽손괘(巽卦) 손, 공손하다. 歛줄 감(함) / 거둘 렴, 염(殮)하다.
▶다른 자료에는 子歛이 子飮으로 되어 있다.
68. 施之常,字子恒。
施之常은 자가 子恒이다.
▶다른 자료에는 子恒이 子常으로 되어 있다.
69. 申繢,字子周。
申績은 자가 子周이다.
▶繢수놓을 궤
70. 樂欬,字子聲。
樂欣은 자가 子聲이다.
▶欬기침 해. 欣기쁠 흔
▶다른 자료에는 樂欬가 樂欣으로 되어 있다.
71. 顏之僕,字子叔。
顔之僕은 자가 子叔이다.
72. 孔忠,字子蔑。
孔忠은 자가 子蔑이다.
▶蔑업신여길 멸
▶다른 자료에는 孔忠이 孔弗로 되어 있다. 子蔑은 孔子의 兄의 아들이다(孔子兄弟).
73. 漆雕哆,字子歛。
漆雕哆(侈)는 자가 子歛이다.
▶哆입 딱 벌릴 치 / 입술 처질 차. 侈사치할 치
▶다른 자료에는 漆雕哆가 漆雕侈로 되어 있다.
74. 懸成,字子橫。
懸成은 자가 子橫이다.
75. 顏相,字子襄。
顔相은 자가 子襄이다.
▶施之常: 시지상의 자는 四部叢刊本에는 子常으로,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子恒으로 되어 있다.
※72 제자가 75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조: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사이트 https://ctext.org/kongzi-jiayu/qi-shi-er-di-zi-jie/z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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