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궁
서 정 인
■ 줄거리
네거리에서 한 여인이 승용차에서 내려 걷다가 차에 치여 죽는다. 그 승용차를 운전하던 부장 검사는 그 여인의 남편인 안면도 근방의 횟집 주인 백씨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러 간다. 백씨는 부장 검사에게 아내가 부부 싸움을 하고 가출했다고 말한다. 그 때 두 아가씨가 횟집을 찾아와 한 여자를 찾는다. 그 중 한 아가씨가 돌아가 어머니에게 죽은 여자가 자신이 찾는 이모인 듯 하다고 한다. 그 이모는 한국 전쟁 때 길에서 어머니와 헤어졌다고 한다. 백씨가 부장 검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자기는 그 여인의 네 번째 남편이고 그녀의 이름은 인실이라는 것이다. 인실은 전쟁 중에 가족과 헤어져 양부모 밑에서 자라다가 삼촌의 아이를 배고 양부모의 아들과 결혼한다. 그러나 그 둘의 결혼을 반대한 양부모와 남편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남편은 정신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인실은 기도원에서 생활하며 생활비를 버는데 어느 날 남편이 병원에서 퇴원하여 입대한 사실을 알게 된다.
<본문 제시 부분>
한편, 네거리에 낯선 남자 둘이 나타나 김 사장 집을 찾는다. 김 사장은 자신을 찾아온 사촌 형에게 몹시 어려웠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고, 사촌 형은 아우(김 사장)에게 딱한 처지를 이야기한다. 그러자 아우는 아내가 지금 사기죄로 교도소에 미결수로 들어가 있는 처지라고 말한다. 사촌 형은 이제 자식들 세상이 온 것이 아니냐고 한다.
* 제목으로 알기 :
‘달궁’은 지리산 속 동네의 지명이다. 그 곳은 이야기의 핵심 인물인 인실이라는 여자
가 살던 곳으로, 그 곳을 떠나 세상에 나아간 인실이 겪는 일들을 서술하고 있는 것
이 바로 이 소설이다. 인실은 교육이나 제도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은 여인이다. 그녀
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에 의문을 품을 만큼 순수함을 간직
한 인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달궁은 인실이라는 주인공의 속성을 말한다
* 등장인물 :
<달궁>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다. 비록 인실이라는 여인의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그녀가 주인공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약 3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모두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여러 인물들의 삶이 독립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30여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이 각각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독자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익명성이 강한, 우리 시대의 평범한 장삼이사일 뿐이다.
아우 - 이 글의 화자. 중년 이상의 나이인 듯하다. 어린 시절에는 집안이 몹시 가난
하여 큰아버지 집에 온 가족이 얹혀살았으나, 15살에 집을 나와 자수성가하
였다.
사촌 형 - 이 글의 청자. 이 글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우와는 반대로 어린 시절에
는 부유하게 살았기 때문에, 아우가 집안의 궂은일을 할 때에 학교를 다녔
다. 그러나 지금은 아우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는 딱한 처지가 된 인물이다.
큰아버지 - 아우의 큰아버지이자 사촌 형의 아버지. 부유하여 아우가 어린 시절에
아우의 가족을 거두어 주기도 하였으나, 매우 인색하여 아우의 도움을 냉정
하게 거절한다.
■ 이해와 감상
◈ 서정인의 <달궁>은 1985년 9월「한국문학」에 그 첫 번째 묶음이 발표된 이후「세계의 문학」,「문학사상」,「소설문학」등 여러 문예지와 종합지를 통해 1989년 12월까지 발표되었으며, 그 첫 권 <달궁>이 1987년에, <달궁 둘>이 1987년에「민음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된 연작소설이다. 어찌 보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연작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형식이 특이하다. 이 작품은 소제목이 붙은 수많은 부분들의 집합인데, 각 부분은 200자 원고지 10매에서 15매 정도이다. 처음 간행된 단행본 <달궁>의 경우 86개의 에피소드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달궁>은 선적이고 인과적인 줄거리가 없다. 여러 개의 독자적인 줄거리를 조각내고, 또 몇 겹으로 겹쳐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줄거리 자체를 약화시킨다. 즉, 그 역할을 최소화하여 독자들이 겨우 윤곽만 감지하도록 한다. 1980년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독특한 형식미를 지닌 소설로서, 86개에 이르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각각 소제목이 붙은 에피소드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가를 살피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 ‘달궁’은 지리산 속의 지명이다. 소설 <달궁>은 그 달궁에서의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인실이란 여자가 세상으로 내려와 헤매는 이야기가 많은 삽화들과 뒤얽혀 있다. 그 무식한 중년 여자의 삶은 쫓겨난 자의 삶이지만, 세상의 부조리, 우스꽝스러움, 뒤틀림과 맞서 있는 힘센 모습이다. 교육이나 제도에 의해서 훼손되지 않은 그 무식한 여자의 ‘싱싱한’ 시각을 통해서 당연한 것으로 행세하는 많은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 이 소설의 공식적인 주인공은 인실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인공의 역할을 하지 않고 다만 소설의 중심이 되어 줄 뿐이다. 주인공을 ‘주제를 반영하는 인물’이라 정의한다면, <달궁>의 주인공은 등장인물 모두이다. 그들 대부분이 익명적 성격을 띠며, 게다가 인실의 삶과 필연적 상관성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삶이 인실의 삶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독립적으로 그려진다. 이와 관련해서 돋보이는 것이 시점의 자유로운 변화와 요설적인 문체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소설이 매우 자유롭게 ‘열린 형식’임을 실감케 한다.
◈ 작품마다 객관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달궁>이라는 전체적 서사 구조 속에는 우리 사회의 변화의 추이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삶 의식이 용해되어 있다. 사건들이 하나의 서술 고리에 의해 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은 독립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피카레스크식 구성). 이런 점에서 이 <달궁>은 60~70년대의 리얼리즘 문학과는 다른 독특한 형식으로, 현실을 투시하여 이를 노출시키는 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한 성과로 지적될 수 있다.
◈ <달궁>은 전 25편의 연작 소설(連作小說)이다.
이 작품은 연작 소설의 양식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 속에서 주인공이 겪게 되는 삶의 사실적 풍경을 담고 있다. 각 작품마다 객관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달궁’이라는 전체적 서사 구조의 틀 속에서 우리 사회의 변화의 추이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삶의 의식이 용해되어 나타난다. 즉, 사건들이 하나의 서술 고리에 의해 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은 독립성을 지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달궁>은 60·70년대의 리얼리즘 문학과는 다른 독특한 형식을 띠고서 현실을 투시하여 이를 노출시키는 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한 성과로 지적될 수 있다. 또한, <달궁>은 그의 대표작인 <강(江)>에서 보여준 절제된 문장, 단일한 인상과 효과, 통일된 구성, 인생의 한 단면을 통찰하는 작가 의식 등의 소설적 성과를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다. 즉, 판소리계 소설 수법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나 배경을 희미하게 깔고서 작중 인물들의 대화를 전면(前面)에 부각시키는 수법을 확립했다.
따라서, 서정인의 <달궁>은 전통적 소설이 지니는 서사적 형태를 탈피하여 시점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서 80년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려낸 80년대 리얼리즘 소설의 새로운 세계를 추구했다는 의의를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부조리한 현실과 중층적 구조
이러한 복합적인 형식은, 삶의 잠재적 가능성의 혼돈으로 나타나는 수많은 우발적이고 미필연적인 사건들이 중층적으로 뒤엉켜 있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의도를 진니다. 합리적인 세계는 짜임새 있는 구조로 형상화할 수 있지만, 부조리한 현실은 전통적인 구조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구조의 틀에 얽매여 있는 한, 주인공과 직접적인 인과성이 없는 삶의 부분들은 생략되게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소설은 선적이고 인과적인 구성을 거부하고 여러 개의 독자적인 줄거리를 조각내고 또 몇 겹으로 겹쳐서 보여 주는 것이다.
(인실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그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며, 각 인물들은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서서히 밝혀진다. 이러한 중층적인 구조는 부조리한 현실을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새로운 형식이다.)
[출처] 달궁 <서정인> (권진희 국어학원) |작성자 권쌤
1936년 전남 순천 출생
• 1962년 서울대 영문과 졸업ㆍ단편소설 ‘후송’이 ‘사상계’ 신인상에 당선
• 1968~2002년 2월 전북대 영문과 교수
• 단편집 ‘강’ ‘가위’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 ‘철쭉제’ ‘붕어’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 장편 ‘달궁’ ‘달궁 둘’ ‘달궁 셋’ ‘봄꽃 가을열매’ 연작소설 ‘용병대장’ 산문집 ‘지리산 옆에서 살기’ 등
•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한국문학작가상(1976) 월탄문학상(1983) 한국일보문학상(1986) 동서문학상(1995) 김동리문학상(1998) 대산문학상(1999) 이산문학상(2002)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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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미소설을 가르치셨던 서정택(본명) 교수님 문득 생각 났습니다. 서정인 소설가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