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宋襄之仁(송양지인)
宋 나라 송
襄 도울 양
之 조사 지
仁 어질 인
쓸데없는 인정을 베풀거나 불필요한 동정이나 배려를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이르는 말
宋襄之仁(송양지인)은 “송나라 양공의 어짊”이라는 뜻으로 남송 말에서 원나라 초에 걸쳐 활약한 증선지가 편찬한 《십팔사략》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송나라 군사가 강을 두고 초나라 군사와 마주했다. 송나라 양공(宋襄)이 강 한쪽에 먼저 진을 쳤다. 막강한 초나라 군대는 송나라 진을 부수고자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송의 군대가 턱없이 약하다고 판단한 장군 목이가 양공에게 간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양공은 듣지 않았다.
“그건 의로운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참된 패자가 될 수 있다.”
어느 새 초나라 군사는 강을 건너와 진용을 가다듬고 있었다.
목이가 다시 한번 간절히 진언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용을 미처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양공은 재차 무시했다.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싸움의 결과는 이미 짐작했을 거다. 원래 열세였던 송나라 군사는 참패하고, 양공 자신도 허벅지에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이듬해 죽고 말았다.
즉 성인들이 인정 또는 배려하는 것이 성공의 가장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미덕이다. 즉 대의명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실질적인 이익이나 결과가 발생되어야 성공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즉 불필요한 대의명분보다는 실질적인 혜택이 되는 바른 생각과 행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송양지인의 반대 개념
핵심: '어리석은 명분' 대신 '실리'를 택하는 것.
구체적인 표현:
현실주의(Realism): 명분보다 현실적 이익을 중시하는 정치적 태도.
실용주의(Pragmatism): 결과와 실용성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태도.
권모술수(權謀術數):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대처하여 이익을 꾀하는 책략.
적의 약점을 이용하는 전략: 상대방이 정비되기 전에 공격하는 등, 군자의 도리보다는 승리를 위한 실질적 방법을 쓰는 것.
■ 알묘조장(揠苗助長)
揠 - 뽑다 알
苗 - 싹 묘
助 - 돕다 조
長 - 자라다 장
춘추전국시대 송(宋: ?~BC 286년)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한 농부가 봄에 볍씨를 뿌려 놓고, 그 싹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였다. 하루는 자기의 벼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하여 논에 가보았다. 그가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의 논에 있는 벼가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덜 자란 것처럼 보였다.
마음이 초조해진 농부는 어떻게 해서든 곡식의 싹을 빨리 자라게 해서 수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볏모는 눈에 띄지 않게 자라고 있었으나 농부는 그러한 사실을 몰라 다급했던 것이다.
농부가 벼의 순을 당겨보니 벼가 약간 더 자란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논에 있는 나머지 싹도 모두 뽑아 올렸다. 하루 종일 벼의 순을 빼느라 힘이 빠진 그는 비실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오늘은 매우 피곤하다. 나는 곡식의 싹을 도와서 자라게 하였다.[今日病矣, 予助苗長矣]”
이 말을 듣고 가족들은 몹시 궁금해 했다. 다음날 그의 아들이 논에 가서 보니 곡식의 싹은 모두 말라 죽어 있었다.
알묘조장(苗助長)은 『맹자(孟子)』의 「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上)」에 나오는 이야기로 맹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데 있어 급하게 서두르거나 억지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비유한 내용이다.
오늘날에는 줄여서 ‘조장(助長)’이라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 욕속부달(欲速不達)
欲 하고자 할 욕
速 빠를 속
不 아닐 부
達 이를 달
일을 빨리 하려고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함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에 나오는 이 말은 빨리 하고자 하면 도달(到達)하지 못한다. 어떤 일을 급(急)하게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무욕속 무견소리, 욕속즉부달, 견소리즉 대사불성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 大事不成
“속히 하려고 하지 말고 조그만 이익을 찾지 말아야 한다. 속히 하려고 하면 도달하지 못하고 조그만 이익을 보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
공자는 왜 자하에게 속히 하지 말라, 서둘지 말라고 말했을까요?
송나라 정이(程頤)는 자하(子夏)가 작고 가까운 것에 마음을 너무 쓰는 버릇이 있었으므로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주석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자하의 이러한 단점을 잘 알았기에 크고 멀리 보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혹시 우리가 자하처럼 너무 작은 것에 매달려 살고 있지는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