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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우리 길에 비취는 빛
서 론
엘렌 지. 화잇 여사가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자신의 사업과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당신의 섭리를 나타내신 경로들에 관하여 기록한 말씀들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큰 도움을 주며 흥미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의 말씀들이 가려뽑은 기별 제 1 권에 수록되었다.
70년 간의 봉사의 생애를 통하여 화잇 여사는 영감(靈感)에 대하여 간헐적(間歇的)으로 여러 번에 걸쳐 문제를 다룬 적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1888년 5월에 쓴 대쟁투의 서론에 기록한 것이다. 물론 이 책에는 그 내용을 취급하지는 않았으며 대쟁투의 서론보다 더 일찍이 기록된 1886의 성경에 대한 반대 이론들은 이 책에 실었고 1888년의 가을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감을 제 1장에서 다루었다. 영감설에 관하여 네번째로 중대한 기록을 남긴 것은 1889년에 출판된 성경의 신비성 자체가 영감을 받은 증거임이었는데 그 내용은 교회증언 5권 698-711에 실려 있다.
1913년에 재판으로 나온 소책자 교회증언의 기록과 보급(普及) 가운데 화잇 여사 자신의 사업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명이 있는데 일찍이 기록된 증언의 말씀들에 대한 질문들과 비난에 대하여 화잇 여사가 답변한 것들을 우리 길에 비취는 빛의 줄거리로 삼아 제 1장을 꾸몄다. ― 편집자 주
1
예언서 저자들의 영감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성
지금 이 때야말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물어보아야 할 가장 적절한 때이다.
영적 흑암이 이 세상을 덮었으며 짙은 어두움이 백성을 가리웠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회의주의와 불신 사상을 나타내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성경의 참된 사실과 진리를 의심하는 자들이 너무나 지나치게 많다. 인간의 추론과 인간의 추측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성을 약화시키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 신비주의의 구름에 둘려 가리워지고 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암초에 걸린 배처럼 아무것도 뚜렷하고 분명하게 구분되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날의 두드러진 징조들 중의 하나이다.
이 거룩한 책은 거룩한 특성에 속한 모든 것들을 어두운 구름과 짙은 흑암으로 덮어 씌우려고 악인들과 연합한 사단의 습격을 이겨내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이 거룩한 책을 오늘날의 형태로 보존하셨는 바, 이 책은 인간 가족들에게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을 보여 주기 위하여 주신 하나의 도표이며 안내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소홀한 취급을 받아 왔으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성경에 대한 거룩한 지식을 갖고 있는 자가 너무나 적으며 성경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에도 이 거룩한 지식을 가진 자들이 많지 않다. 대학 교육을 받은 학식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러한 목자들은 하나님의 양 떼들에게 꼴을 먹이지 않고 있다. 저들은 성경의 탁월한 진리들이 마치 땅을 파서 발견하는 귀중한 보석들처럼 숨은 보화들을 계속적으로 밝혀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발한 자가 되려 하고 기록된 말씀보다 더 지혜로운 척하는 자들이 있는데 저들의 지혜야말로 어리석은 것이다. 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미리 앞서서 놀라운 것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와 목적을 이해함에 있어서 저들 자신이 얼마나 뒤져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상들을 발견한다. 여러 세대를 통해서 인간에게 가리워진 신비들을 해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깊은 진흙 구덩이에 빠져서 발버둥치는 것과 같으며 자기 자신을 구해 낼 수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저들이 빠진 진흙 수렁에서 기어 나오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성경의 모순들을 저들 스스로 시정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 말이다. 주님께서 이런 뜻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혹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는 등의 제의로써 성경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중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성경을 베끼는 자나 번역한 사람들이 어떤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들이 있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러한 일이 있음직하고 편협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가능성이나 우연의 일치에 대하여 주저하게 되고 걸려 넘어지게 되는데 이런 자들은 저들의 미약한 정신력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통찰할 수 없으므로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의 신비들을 쉽사리 곡해하게 된다. 사실상 저들은 단순한 정신의 소유자이면 신성(神性)에 속한 것을 받아들이고 식별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단순한 사실들에 대하여 너무나 쉽사리 곡해한다. 따라서 저들은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자양분과 기름끼로 가득찬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성경을 베끼거나 번역하는 일에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런 모든 실수들이 영혼을 위태롭게 하거나 어떤 자의 발이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실수들로 말미암아 가장 밝히 드러난 진리가 난해(難解)한 것이 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하신 말씀을 준비하는 일을 유한한 인간에게 위탁하셨다. 신구약 성경으로 꾸며진 이 말씀은 타락한 세계의 거민들에게 주신 안내서이며 후세에 남기도록 주신 것이며 지시하신 말씀들을 연구하고 순종할 때에 단 한 영혼도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영감으로 기록된 부분과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인간의 한정된 표준으로 측정하므로 명백한 성경의 말씀을 가상적(假想的)인 난해 거리로 만들려고 생각하는 자들은 마치 엘리야가 세미한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의 목전에서 얼굴을 가리워야 할 것이다(왕상 19:12). 각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은 인간에게 빛과 지식을 전해 주어 저들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일러주며 저들에게 흥미 진진한 장면들을 전개시켜 주고 상징, 징조 및 예화로써 곳곳에 이정표를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집중하고 있는 위기들을 증거하셨으나 어떤 유한한 인간을 지정하여 숨은 신비들을 해명 시키거나 한 사람 혹은 어떤 분야의 사람들에게 영감으로 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최종적으로 판단할 자격을 아무에게도 주시지 않으셨다. 인간이 저들의 한정된 판단력으로 영감으로 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려내기 위하여 성경을 시험해 보는 단계에 이를 필요가 있다면 저들은 이미 예수님보다 앞장 서서 과거에 예수께서 우리들을 인도하신 것보다 더 훌륭한 길을 예수님께 보여 주는 격이 되는 것이다.
나는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서 그대로 받아들인다. 또한 나는 성경 전체가 영감으로 된 말씀임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비판할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일어날 것이다. 저들은 마치 우월한 지혜를 가진 증거로서 비판할 재료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폭로한다. 이러한 사람들 중의 대부분이 머리가 우수한 자들이며 학식이 있고 웅변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저들의 필생의 과업은 성경의 영감설에 관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데 있다. 저들은 다른 사람들도 저들과 같은 견해를 갖도록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단이 본래 계획했던 것처럼 이런 일들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달되어 마침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형제들이여 우리들의 정신과 손이 성경을 비판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라. 이 일은 바로 그대들이 하기를 사단이 바라는 것이며 주님께서 수행하라고 지적하신 사업이 아니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살아 있는 말씀 곧 거룩한 성경을 과거에 각 시대를 통해서 하신 것처럼 당신의 책을 친히 돌보시게 해야 한다. 사람들은 계시로 기록된 어떤 부분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며 이 성경절, 저 성경절의 뚜렷하게 일치되지 않는 듯한 내용에서 약점들을 찾아낸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저들은 의심스럽다고 생각되는 점들을 포기하고 사단이 인도하는 대로 성서를 비판하는 일에 즐겨 따름으로 마침내 저들은 성경 전체를 의심할 만한 어떤 단서를 찾게 된다. 저들의 비판적인 기능은 활용하므로 예리하여지고 저들은 결국에 아무것도 확실히 믿는 것이 없게 된다. 그대들이 이러한 사람들과 이치를 따지려고 노력할지라도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저들은 조롱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성경까지도 웃음거리로 삼을 것이다. 따라서 저들은 기롱하는 자들이 되고 그대들이 저들의 잘못을 지적해 줄 때에 저들은 의외라는 듯이 깜짝 놀랄 것이다.
형제들이여, 말씀을 읽는 대로 그대들의 성경에 애착을 가지라. 그리고 성경 그 자체의 정당성 여부에 관한 그대들의 비판을 중단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에 단 한 사람도 잃어버린 바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연구력은 저들의 유한한 정신과 제한된 이해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려보려고 각 시대를 통하여 노력해왔다. 살아 계신 말씀의 근본이 되시는 주님께서 휘장을 제치시고 저들 앞에 당신의 지혜와 영광을 밝히 나타내 보이신다면 저들은 무가치한 존재로 움츠러들 것이며 마치 이사야처럼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사 6:5)고 있다고 외칠 것이다.
성경의 단순성과 명백한 표현은 비단 완전히 성숙한 사람이나, 지적으로 비범한 사람뿐만 아니라 무학자, 농사꾼, 어린아이까지라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정신력에 따르는 큰 재능을 소유하였다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진리의 보화들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진리의 보화들을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 사람은 또한 깨닫기 힘든 것들, 비밀에 속한 것들, 일생 동안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함으로 가장 고상한 만족을 누리게 될 기이한 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인데 아직도 이런 영원히 미치지 못할 무한한 연구 분야가 펼쳐져 있다.
학식이 없고 능력과 기회의 제약을 받아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살아 계신 말씀 가운데서 마치 햇살처럼 분명하게 위안과 지도와 권고와 구속의 경륜을 찾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이 고의적으로 배우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아무도 지식의 결핍 때문에 구원을 상실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학식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가련한 사람을 위해서도 성경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긴다. 성경은 모든 시대와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 원고 16, (1888년 가을 미네소타 주 미네아폴리스에서 기록함).
성경에 대한 반대 이론들
인간의 정신은 다양하다. 교육과 사상의 배경이 서로 다른 정신은 같은 글에서도 서로 다른 감명을 받게 되며 한 사람이 기질과 교육과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에게 언어를 통해서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꼭같은 생각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전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마음이 정직하고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모든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서 자기의 뜻을 전달할 때에 단순하고 명백하게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교통하려는 상대자가 정직하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는 모든 면에 자기 말을 자신의 목적에 적합하도록 왜곡되게 사용할 것이다. 그는 자기 말의 뜻을 잘못 해석할 것이며 자신의 상상력을 악용하고 말의 참 뜻을 왜곡하며 불신의 정신으로 자신을 단단히 감싸고 말의 취지가 전부 틀렸다고 주장할 것이다.
나의 증언들을 오해하고 악용하려는 자들에 의해서 나의 증언들은 이렇게 취급을 받아 왔다. 저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만들어 버린다. 저들이 출판된 글과 책들 가운데 있는 나의 증언들을 취급하는 꼭같은 방법으로 회의주의자들과 불신자들은 성경을 그렇게 취급한다. 저들은 악용하기 위한 저희 욕망을 따라서 성경을 읽으며 말씀의 참 뜻을 오용하고 고의적으로 왜곡한다. 저들은 성경이 모든 것을 증거할 수 있고, 모든 종파들이 각자 자기네 교리가 바르다고 주장하며 아주 상이한 교리들을 성경으로 증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의 저자들은 저희 사상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성경은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언어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이 불완전하고 인간의 정신이 타락하였으며 진리를 교묘하게 기피하므로써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경을 읽고 또한 이해하게 되었다. 성경 가운데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대립적인 정치가들은 율법책 가운데 있는 율법의 요점을 가지고 논쟁하며 율법을 적용하는 문제나 율법 내용 자체에 있어서 서로 대립적인 견해들을 취한다.
성경은 단절되지 않은 계속적인 말씀의 고리를 잇는 형식으로 인간에게 주신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계승되는 세대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경우와 다른 장소에 따라 인간에게 감동을 줄 적절한 기회를 발견하실 때마다 부분적으로 주신것이다.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을 입었을 때 말씀을 기록하였다. 처음에는 싹이 트며 다음에는 꽃이 피고 그 다음에는 열매를 맺는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막 4:28)는 말씀이 있다.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성경 가운데서 항상 완전한 질서나 뚜렷한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적들이 어떤 정밀한 차례를 따라 행하여진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신령한 계시가 요구되는 환경과 처지를 따라서 이적들을 행하신 것이었다. 성경의 진리들은 감추인 보석과 같은 것이다. 진리는 샅샅이 살펴보아야 하며 참담한 노력으로 캐내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 대하여 피상적인 견해만을 가진 자들은 저희 생각에는 깊은 지식을 가진 듯하나 실제로는 얕은 지식을 가진 자들로서 성경에 반대되는 점들을 말하며 성경의 권위를 무시한다. 그러나 진리와 의무에 일치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거룩한 감명을 받을 수 있는 마음 준비를 갖추고 성경을 연구할 것이다. 빛을 받은 영혼은 영적 통일성을 발견할 것이며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굵은 황금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배로운 황금실을 찾아 나가는 데는 인내와 사색과 기도가 요구된다. 성경에 관한 날카로운 논쟁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탐구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진리의 귀중한 보석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으며 많은 성도들의 기도가 상달되므로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 것이었다.
성경은 어떤 장엄한 초인간적인 언어로 꾸며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처하여 있는 그 위치에 이르시기 위하여 인성을 쓰셨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어야만 하였다. 인간에게 속한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같은 말로써 뜻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표현을 할수 있다. 각기 뚜렷한 사상을 표현함에 있어서 한마디 말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특징이 다른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사상의 표현들과 문장의 내용을 똑같이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이 저들 자신의 특수한 정신과 경우에 적합하게 이해한다. 선입 관념, 편견 및 감정 등은 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에 이해력을 어둡게 하고 정신을 혼란케 하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엠마오로 여행하던 제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저들에게 혼란된 정신을 풀어 줄 필요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변장하신 모습으로 저들과 동행하셨으며 인간의 위치에서 저들과 이야기하셨다. 모세를 비롯하여 모든 선지자들에 이르기까지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에 관한 모든 사실들을 저들에게 가르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한 그대로 당신의 생애, 사명, 고통 및 죽으심이 성취된 것을 말해 주었다. 주님께서는 저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저들의 이해력을 열어 주셨다. 주님께서는 얼마나 신속히 얽히고 설킨 끄트머리들을 풀어주어 성경의 통일성과 거룩한 사실들을 나타내 보여 주셨는가! 오늘날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저들의 이해력이 깨우침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얼마나 큰가!
성경은 감동을 입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며 성경 자체가 하나님 자신의 사고 방식이나 표현 양식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사상과 표현에 있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자로서 대표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어떤 표현은 하나님답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논리와 수사(修辭) 가운데 당신 자신을 두어 성경상 시련의 대상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필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의 필촉이 아니었다. 여러 다른 저자들을 관찰해 보라.
성경의 말씀 자체가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감동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었다. 영감은 인간의 언어나 표현 방법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 자신에게 작용하는 것이며 그는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아 그의 사상이 그 감화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개인적인 정신의 감명을 받게 된다. 거룩한 정신으로 물들여진다. 거룩한 정신과 의지가 인간의 정신과 의지에 혼합하게 되어 인간의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 ― 원고24, 1886년(1886년 유럽에서 기록함).
다양성 가운데 나타난 통일성
한 나무에 여러 가지 모양이 있어 꼭 같은 모양의 두 잎사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 다양성 자체가 나무의 전체적인 완성의 미를 장식해 준다.
우리들은, 성경 가운데 마태, 마가, 누가 및 요한이 복음서를 왜 다같이 기록할 필요가 있었을까, 왜 사도행전이 필요하며, 여러 종류의 편지서들이 왜 동일한 문제들을 다룰 필요가 있었을까 라고 질문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바라신 꼭 그 방식대로 말씀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여러 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주셨으며 비록 동일한 역사를 다루었으나 각자의 개성을 따라 기록하게 하셨다. 저들의 증언들은 다 함께 한 책에 엮어졌으며 그것은 마치 사교 집회에서 갖는 간증과 같은 것이다. 저들은 동일한 문장의 형식을 따라 사물들을 증거하지 않았다. 각자가 자기 자신의 독특한 체험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이 지식을 광범위하게 하고 심화시킴으로써 여러 종류의 정신들, 곧 각계 각층 사람들의 필요성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성경 가운데 표현된 사상들은 마치 쇳물을 녹여 주물에 붓는 것처럼 어떤 틀에 박힌 일률성으로 표현하여 단조롭게 들리도록 하지 않으셨다. 만약 틀에 박힌 일률성으로 성경이 꾸며졌다면 은혜와 특수한 아름다움이 상실되었을 것이다.
모든 사상들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사상을 가지고 여러 다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시되 각자는 그 받은 바 감명을 서로 상반되는 모순이 없이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당혹케 하거나 혼란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상 두 사람이 진리에 대한 견해를 꼭 같이 생각하며 꼭 같은 방법으로 진리를 표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각자는 자기의 소질과 교육의 배경을 따라 깨닫기 편한 특수한 문제들을 생각하게 된다. 태양 광선은 여러 다른 사물들을 비추고 있으나 그 빛을 받는 사물들은 각기 다른 색깔들을 나타낸다.
주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당신의 사도들에게 진리를 주셨으며 성령께서 저희 정신을 계발시키는 분량에 따라 진리를 표현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 인간의 정신이 억지로 어떤 틀에 끼이도록 바짝 죄어진 것이 아니다(서신 53, 1900년).
주님께서는 불완전한 언어로 말씀하심
주님께서는 퇴폐한 감각과 둔하고 세속적인 식별력을 가진 인간들로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완전한 언어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겸비하심이 나타난 것이다. 주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들이 현재 처하여 있는 위치에서 만나셨다. 성경은 말씀의 단순성에 나타난 완전성을 갖추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위대한 사상에 대하여 답변할 수 없는데 그 까닭은 무한대에 속하는 사상이 유한한 인간의 사상 전달의 수단으로 완전하게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성경의 표현들이 과장되기는커녕 오히려 장엄한 사상 앞에 인간의 강한 표현들이 압도당하였으며 필자들이 하는 진리를 전달한다 할지라도 도저히 인간의 표현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죄인들은 다만 하늘 영광의 광채의 그늘만을 간신히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성경에 대하여 판단할 수 없음
[배틀크릭] 장막교회와 대학에서 동일하게 영감에 대한 문제를 가르쳤으며, 유한한 인간들이 스스로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영감으로 기록되고 또 다른 부분들은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등의 위험한 입장을 취하였다. 나는 리뷰지*에 실린 영감에 대한 기사가 주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 아닌 것과 대학에 있는 우리 청년들에게 저들이 가르친 것을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비판하게 될 때에 저들은 신령하고 거룩한 영역을 과감하게 밟는 격이 되는데 오히려 저들은 두려워하고 떨며 저희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하고 스스로 감추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영감적인 것으로 선택하고 또 다른 부분은 영감되지 않은 것처럼 불신하는 태도로서 성경에 대한 판단을 내리도록 어떤 인간도 세우지 않으셨다. 증언들에 대하여도 같은 방법으로 취급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함께 하지 않으신다(서신 22, 1889년).
2
엘렌 지. 화잇과 그의 저서들
폴슨 의사에게 보낸 편지
캘리포니아주 쎄인트 헬레나
1906년 6월 14일
사랑하는 형제에게:
제가 남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에 형제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수 주일 동안 그 곳에 있는 우리 요양원 사업의 발전에 관하여 생각하는 일과 지진과 그 교훈에 관하여 제가 받은 계시들을 기록하는 일 때문에 시간과 힘을 바쳤습니다.
지금 저는 형제와 또 다른 이들에게서 받은 편지들에 대하여 답장을 쓰기로 했습니다. 형제의 편지 사연 가운데 어려서 받은 교육 배경의 감화로 증언들에 대한 전적인 신앙을 갖고 있음을 말하였으며 또 형제는 언급하기를 저는 화잇 여사께서 공중 앞에서나 개인적으로 하신 모든 말씀과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 쓰셨든지 여사께서 쓰신 모든 서신은 마치 십계명처럼 영감으로 기록된 것임을 확실히 믿게 되었으며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라고 쓰신 것을 읽었습니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제가 쓴 글들을 열심히 연구하였으므로 제 글 가운데서 저 자신이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을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며 또한 과거에 우리 사업을 이끌어 나가신 선구자들도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대쟁투 의 서문에 제가 기록한 것을 읽어보셨으리라고 믿습니다만 십계명과 성경에 관한 저의 기록이 영감에 관한 문제를 올바로 이해함에 있어 그대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었어야만 할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저자로 가리키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 기록되었다. 성경의 여러 책들이 각기 종류가 다른 문체로 기록되었으며 여러 저자들의 특성들을 나타내고 있다. 계시된 진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말로 표현되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종들의 정신과 심령에 빛을 비추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꿈과 이상과 상징과 표상들을 주셨으며 진리가 계시된 사람들이 인간의 언어로 그 사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고 당신의 손으로 친히 쓰셨다. 십계명은 근본적으로 신령한 것이며 인간의 작문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들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성경은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연합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사람의 아들이기도 하셨던 그리스도의 본성 가운데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요 1:14)셨다는 말씀은 그리스도께 뿐 아니라 성경에도 적용된다.
각기 다른 시대에 계급과 직업이 현격하게 다르고 정신적 능력과 영적 재능이 엄청나게 차이가 있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록되었으며 성경의 모든 책들은 문체에 있어서나 표현된 문제의 특성 가운데 나타난 다양성에 있어서 폭 넓은 대조를 나타내고 있다. 여러 저자들이 서로 다른 표현 방법들을 사용하였으며 같은 진리이면서도 종종 어떤 저자는 다른 저자들에 비하여 매우 인상적으로 표현하였다. 여러 저자들이 다양한 면과 관련성을 가지고 문제를 다루었을 때 신중하고 경건한 학생은 그 가운데서 밝은 통찰력으로 근본적인 조화를 식별할 수 있으나 피상적이며 부주의하고 편견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불일치한 모순이나 반대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여러 사람들이 각기 표현한 만큼 진리도 그 다양한 면들을 나타내고 있다. 어떤 저자는 문제의 한가지 면에 대하여 더욱 식별력과 감상력에 잘 조화되는 점들을 포착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은 또 하나의 다른 국면을 포착하고 각자가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자기 정신에 가장 강력하게 인상받은 것을 증거한다. 각자가 받은 진리 가운데는 서로 다른 면이 있으나 모든 진리를 통해서 완전한 조화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계시된 진리들은 전체적인 완전성을 이루기 위하여 연합하며 생애의 모든 환경과 경험 가운데서 인간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적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진리를 이 세상에 전달하는 것을 기뻐하셨으며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당신께서 친히 인간에게 자격을 주어 당신의 사업을 저들로 수행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말할 것과 기록할 것을 가려내는 일에 인간의 정신을 지도하셨다. 비록 질그릇들에게 보화가 위탁되기는 하였으나 오히려 그 보화는 어디까지나 천국에서 온 것이다. 증언이 비록 인간 언어의 불완전한 표현을 통해서 전달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그 증언은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증언이며, 하나님을 믿는 순종하는 자녀는 그 증언 가운데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거룩한 능력의 영광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증언의 성실성
이 문제와 완전한 조화를 나타내는 또 다른 나의 기록들은 1882년 6월 20일에 기록된 멸시를 받은 증언들이라는 기사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내용은 또다시 교회증언 5권 제31호 62-84페이지에 수록되었습니다. 저는 형제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여기에 몇 단락을 인용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아 만족에 빠진 태도로 저들이 진리를 옹호하여 온 장기간의 세월을 바라보고 있다. 저들은 현재 지난날에 받은 시련들과 저희 자신이 보인 순종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에 하나님께 속한 사물들에 있어서의 이러한 순수한 체험은 저들이 성실성을 보존하지 못하고 완전에 이르기 위하여 전진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그들을 하나님 앞에 더욱 큰 죄인으로 만든다. 어제 인정받은 인간의 진실성이 그가 오늘 저지른 거짓된 행실을 속죄해 주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화잇 자매는 그의 남편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가 말하는 증언들은 남편의 정신과 판단에 의해서 꾸며지고 있다고 말을 하며 증언들을 무시하게 된 변명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저희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거나 저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무엇을 나에게서 얻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때 이후로부터 나는 하나님의 회개케 하시는 능력이 교회 안에 보일 때까지 이 이상 아무것도 쓰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영혼에 무거운 짐을 지워 주셨다.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열심으로 수고하였다. 이 일로 인해서 나의 남편과 나 자신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루었는지는 오직 영원한 저 세상에서만 알게 될 것이다. 여러 해 동안 거듭거듭 주님께서 교회의 문제들을 보여 주셨는데 내가 왜 교회의 형편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겠는가? 여러 번 반복된 경고들을 주셨으나 아직도 결정적인 변화가 나타나 보이지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경고와 견책에 대한 증언을 그대들에게 보낼 때에 그대들 중 다수가 그 증언은 단순히 화잇 자매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대들은 하나님의 영을 모욕하였다. 그대들은 주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예언의 신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는지 알고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나에게 계시로 보여졌다. 나는 과거에 전혀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을 보았으며 여러 해가 지난 후에 그 얼굴들을 보았을 때 나는 저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단잠에서 일깨워져서 과거에 나에게 전개되었던 문제들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가지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한 밤중에 편지들을 썼는데, 그 편지들은 위기 직전에 하나님의 사업이 큰 재난을 면하도록 대륙을 횡단하여 제 때에 도착하였다. 이러한 성질의 일들이 여러 해 동안에 걸친 나의 사업이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과오들을 견책하고 책망하도록 한 능력이 나를 강권하였다. 지난 36년 간의 이러한 사업이 위에서 온 것일까 아니면 밑에서 솟아난 것일까? …
내가 콜로라도 주에 갔을 때 나는 그대들로 말미암아 정신적 부담이 너무 컸으며 허약한 몸을 간신히 이끌고 그대들의 장막 집회에서 읽어야 할 여러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써야만 하였다. 나의 몸은 매우 허약하였고 떨렸으나 새벽 3시에 일어나 그대들에게 글을 써야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셨다. 그대들은 혹시 이러한 교통이 한갖 서신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말할는지 모른다. 서신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나 나에게 보여진 것들을 그대들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께서 일러주어 기록한 것이다. 내가 쓰는 편지들과 내가 증거하는 증언들을 통해서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것을 그대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면에 단 한가지의 기사도 단순히 내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표현하기 위하여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쓴 서신과 증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 나에게 보여주신 것으로서 이 계시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고귀한 광선이다. …
그대들은 어떤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인정하겠는가? 그대들의 과오를 시정하고 그대들 자신의 행위를 진상 그대로 보여 주기 위하여 주님께서 어떤 능력을 예비로 남겨 두셨는가? 교회에 어떤 능력이 작용하고 있는가? 만약 그대들이 모든 불확실한 그늘과 모든 의혹의 가능성들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믿기를 거부한다면 그대들은 앞으로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지식을 강요하는 의혹은 결코 믿음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믿음은 증거 위에 세워진 것이며 어떤 실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들려 오는 다른 모든 음성들이 반대 방향을 따르도록 우리들을 강권할 때에 의무를 다하라는 소리에 순종하도록 주님께서는 요구하신다. 어떤 음성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인지 구분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인간적인 성향을 거부해야 하고 정복해야 하며 협상이나 타협이 없이 양심의 소리를 순종해야만 하며 이렇게 하지 않을 때에 양심의 호소는 그치게 되고 의지와 충동만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호소를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기로 작정함으로 성령을 저항하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말씀이 이르러 온다. 이 음성은 때로는 경고로서, 때로는 권고로서 또 어떤 때는 견책의 말씀 가운데서 들린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백성에게 보내시는 주님의 빛의 기별이다. 만약 우리가 보다 더 큰 호소를 기다리며 더욱 좋은 기회만을 노린다면 빛이 거두어질 것이며 우리들은 흑암속에 남게 될 것이다. …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빛 가운데서 행하기를 게을리 하므로 악을 행하여 흑암이 그대들을 덮어 씌웠다는 말을 해야만 하는 나의 심정이 괴롭다. 그대들은 지금 빛을 인정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시인해야 한다. 그대들이 재미를 붙이던 의혹들과 하나님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태만이 드디어 그대들의 식별력을 무디게 하였으므로 현재에 이르러 그대들에게는 흑암이 빛으로 변하였으며 오히려 빛이 흑암으로 변해버렸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에게 완전에 이르도록 전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스도교는 전진하는 종교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은 온전하고 충분하여서 우리들이 그 빛을 요구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주님께서 주시는 어떤 축복이든지 그 무한한 공급은 끝이 없으며 우리가 아무리 많이 가져 가도 바닥이 나지 않을 만큼 무진장 저장되어 있다. 회의주의 사상은 복음의 신성한 주장들을 농담과 조롱과 거부하는 태도로 취급한다. 세속적인 정신이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소수의 사람들을 지배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은 오직 대단한 노력과 계속적인 희생을 통해서만 그 기반을 고수하게 될 것이나 결과적으로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은 전진하라 그대들의 개인적인 의무들을 수행하라. 그리고 모든 결과들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예수께서 길을 인도하시는 대로 전진한다면 우리들은 주님의 승리를 보게 될 것이며 주님의 기쁨을 같이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승리의 면류관을 쓰려면 투쟁을 분담해야만 한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고난을 통해서 완전함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애가 안락한 것이었다면 우리들은 쉽사리 태만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가 지속적인 극기와 고난과 자기 희생으로 일관하신 두드러진 특징을 지녔으므로 우리들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될 때 우리들은 아무런 불평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안내자로 모신다면 가장 어두운 길에서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
지난번 주님께서 그대들의 상태를 나에게 보여 주셨을 때 그대들에게 주신 빛에 대하여 그대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주님의 진노가 그대들을 향하여 불타고 있으므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대들에게 명백하게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러한 말씀들을 나에게 해 주셨다. 그대들의 사업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하신 교사의 말씀을 불순종하였으므로 그대들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 길이 저희 눈에 바르게 보이므로 오류들이 시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간에 내가 그대들에게 줄 견책과 경고를 저들에게 전해 주라. …
이런 인용문들과 아울러서 교회증언 5권, 654-691페이지에 있는 증언들의 본질과 감화력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다시 연구해 보라.
그대가 인용한 증언 제31호[교회증언 5권 67] 의 내용은 정확한 것입니다. 내가 쓰는 편지들과 증언들 가운데 주님께서 나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것을 그대들에게 증거하고 있다. 나는 지면에 단 한가지의 기사도 단순히 내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표현하기 위하여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쓴 서신과 증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시를 통해 보여주신 것으로 이 계시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고귀한 광선이다. 우리 잡지들이나 제가 쓴 많은 책들 가운데 있는 모든 기사들에 관하여 이것은 진실된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계명의 교훈 가운데 있는 말씀에 일치하여 지시를 받았습니다. 또한 저는 그리스도의 교훈 가운데서 말씀을 가려내는 일에 지시를 받았습니다. 내가 쓴 글 가운데서 취한 입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일치하지 않습니까?
기만적인 주장에 따르는 위험
그대가 물어온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하여 저는 가부간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뜻이 잘못 해석될 수 있는 말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이미 지시를 받아 왔거니와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기별들에 관하여 기만적인 주장들을 들으므로 때때로 저희 영혼들이 위험에 쌓이게 될 자들이 당할 위험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기록한 글에 관하여 많은 곡해들과 변전(變轉)과 거짓된 추리들을 통해서 저들은 저희 자신의 개인적인 불신을 변명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의심, 회의주의 및 거짓된 추리의 안개 속을 걷고 있는 저의 형제들에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형제들 중에 저들의 영적 시야를 어둡게 하고 있는 구름들을 몰아낸다면 권고의 기별로써 축복을 받게 될 것이며 사실들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밝히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저들과 교통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신비주의를 제거하실 때에 저에게 주신 기별 가운데서 과거에 저들이 경험한 것과 같은 완전한 위로와 믿음과 소망을 꼭같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는 분명하게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사단의 기만에서 인류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치신 주님께서는 졸고 계시지 않으시며 부단히 감시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양들이 낯선 자의 양들이 아니므로 그의 음성을 따르지 않고 돌아설 때 저들은 즐겨 따랐던 한 음성을 듣고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귀중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시기심이 많은 바리새인들은 만약 저들이 정당하게 받아들이기만 하였더라면 저들의 영적 이해력에 크게 도움이 되었을 그리스도의 행동과 말씀을 그릇되게 해석하였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사모하는 대신에 저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불경스럽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1)고 주님을 비난하였습니다. 한마디의 답변으로 저들의 악독을 그 즉시로 깨우치실 수 있는 복되신 우리 구세주께 인사의 말을 건네는 대신에 저들은 제자들에게 말을 걸었으며 마치 악의 누룩처럼 저들이 크게 해칠 수 있는 점을 택하여 비난의 재료를 삼았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못한 사람이었다면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마음을 든든히 붙잡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신뢰하였으므로 악한 비난자들의 교묘한 모욕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책망을 퍼붓기 위하여 이 악한 비난자들은 거듭거듭 그리스도에게 가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율법에 합당치 못한 일을 행하니이까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우리 주님을 범죄한 자로 판단하였을 때 저들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에 불신의 씨앗을 심기 위하여 주님께 말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저들은 의심과 분열을 일으키려고 활동하였습니다. 작은 무리들의 마음 가운데 의심을 품게 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시도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하고 은혜스리운 사업을 저지시킬 만한 어떤 것을 제자들이 바라보게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질의 작용이 오늘날의 참된 신자들에게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마음을 읽으시며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당신을 믿는 제자들에 관하여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과 사상의 목적들을 식별하십니다. 남의 허물을 찾는 자들에 관한 저희 생각을 답변하여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2)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례하고 오만한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애를 견책하는 일에 재빠르면서도 저들 나름의 경건성과 신성성을 주장하는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서신 206, 1906년).
주님의 사자*
나는 어젯밤 계시 가운데서 나 자신이 우리 신자들이 모인 회중 앞에 서서 현대 진리와 현대 의무에 관하여 결정적인 증언을 하고 있었다. 말이 끝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몰려와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저들은 이 문제, 저 문제, 또는 다른 문제들에 대하여 많은 설명들을 요구하였으며 그 때에 나는 제발 한 번에 한 분씩 질문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저를 혼란케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때에 나는 저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호소하였다. 여러 해 동안 그대들은 주님께서 나에게 해야 할 사업을 주셨다는 많은 증거들을 보았다. 이러한 증거들은 과거에 있어서나 현재에 있어서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 그대들은 이러한 모든 증거들을 인간의 불신에서 오는 어떤 제의 때문에 케케묵은 것으로 여기고 문질러 없애 버릴 것인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현재 당황하고 유혹을 받는 많은 자들이 과거에 풍부한 증거들을 가졌던 자들이며 진리를 생각하고 기도하며 이해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가졌던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저들은 마지막 날의 미혹에서 저희를 건져내시기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경고를 거절하도록 저들에게 영향을 주는 궤변의 본질을 식별하지 못한다.
또 어떤 자들은 내가 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시험에 빠졌으며 저들은 어째서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주님의 사자라는 지시를 받은 것 외에 어떤 주장도 내세운 일이 없으며 나는 젊었을 때에 당신의 사자가 되어 당신의 말씀을 받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분명하고 결정적인 기별을 전하도록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청년 시절에 당신은 선지자입니까?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지 않았다. 나는 주님의 사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선지자라고 부른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나는 이 칭호에 대하여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다. 나의 구세주께서는 나에게 당신의 사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지시하여 말씀하시기를 너의 사업은 나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 이상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며 나는 젊은 너를 구별하여 실수하는 형제들에게 기별을 전하고 불신자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며 바르지 못한 행동들에 대하여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펜과 음성으로 견책하도록 하였다.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권고하라. 내가 나의 말을 너에게 밝혀 줄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 이상한 말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단순성에서 오는 참된 웅변으로 펜과 음성을 통하여 내가 주는 기별을 학교에서 전혀 배우지 못한 자를 비롯하여 모든 자들에게 전할 것이다. 나의 영과 나의 능력이 너와 같이 할 것이다.
나의 방패가 너를 보호할 것이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는 자는 네가 아니다. 경고와 견책의 기별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진리에서 이탈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줄 빛을 발하라. 말세를 위한 기별들은 책에 기록되어야 할 것이며 한때 빛 가운데서 기쁨을 누렸던 자로서 악의 유혹적인 감화에 이끌려 시험에 빠진 자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이 기별은 불후의 것으로 남게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왜 나는 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이러하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칭 선지자라고 담대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들은 주님의 사업에 수치 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며 나의 사업은 선지자 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 이상의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처음으로 나에게 맡겨졌을 때 나는 이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워달라고 주님께 간청하였다. 사업의 범위가 너무 거창하고 광범위하며 너무 깊으므로 내가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수행하도록 맡겨진 사업을 성취할 수 있게 하셨다.
여러 특징을 가진 사업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나를 사용하실 여러 가지 방법들을 나에게 분명히 보여 주셨다. 계시들을 나에게 보여주셨으며 만약 네가 이 기별들을 성실하게 전달하고 끝까지 참고 견딘다면 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이며 생명강의 물을 마시게 될 것이라는 허락의 말씀을 해 주셨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건강 개혁에 관한 큰 빛을 주셨다. 나의 남편이 하는 사업에 관련하여 나는 의료 선교인이 되어야만 하였다. 또한 나는 병자들을 내 집안으로 이끌어들여 저들을 간호함으로 교회를 위하여 모본이 되어야 하였다. 나는 이 일을 수행하였으며 여인들과 어린이들에게 활발한 치료 봉사를 하였다. 나는 주님의 임명하신 사자로서 그리스도인 절제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말하여만 하였다. 나는 이 사업에 충성된 마음으로 종사하였으며 많은 회중들 앞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참된 의미에 입각한 절제 문제를 말하였다.
나는 언제나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진리를 실천할 필요성에 대하여 권고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진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성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성화란 주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모든 능력들을 배양하고 훈련하는 것을 뜻한다.
나는 억울한 대우를 받는 자들에 대하여 등한히 하거나 묵과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다. 나는 특히 행정적인 권한을 가진 자들이 복음 교역자들에게 독단적이며 횡포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하여 항의하라는 책임을 맡았다. 아무리 그 의무가 비위에 거슬릴지라도 나는 압제자를 견책하여야만 하였고 공의를 호소해야만 하였다. 나는 모든 우리 기관에서 공의와 정당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증거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자들이 연로한 목사들을 돌보지 않는 것을 발견할 때에 저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를 가진 자들에게 그 문제를 제시해야만 하였다. 저희 사업을 성실히 이행한 목사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며 저들이 건강을 잃고 병약하게 되었을 때에 돌보지 않아서는 안 된다. 우리 합회들은 사업을 위하여 무거운 짐진 자들의 필요를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된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된 때는 그가 주님께 봉사하는 사업에 평생을 바친 후 노령에 이른 때였다. 그 외로운 섬에 있을 때에 그가 평생 동안에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횟수에 달하는 하늘과의 교통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결혼한 이후에 부모가 없는 자녀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여야만 한다는 지시를 받았으며 한동안 몇 아이들을 내 자신이 맡아서 길렀으며 그 다음에는 그 아이들을 돌볼 가정들을 찾아 주었다. 이처럼 나는 다른 신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모본을 보여 주어야 하였다.
종종 여행을 떠나는 일이 있었으며 글 쓰는 일도 많았으나 세 살로부터 다섯 살에 달하는 아이들을 맡아 길렀으며 저들을 교육하였고 저들이 책임 있는 지위에 오를 인물이 되도록 훈련하였다. 때때로 나는 열 살에서 열 여섯 살에 이르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저들의 어머니처럼 돌보아 주었으며 저들에게 봉사 사업을 위한 훈련을 시켰다. 우리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이러한 사업을 하는 것을 저들의 책임으로 느끼도록 이 문제를 우리 신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나의 의무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내가 호주에 있는 동안에도 이와 같은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온갖 유혹에 노출되어 저들의 영혼을 잃어버릴 위험에 있는 고아들을 나의 가정으로 이끌어 들였다.
호주에 있을 때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인 의료 선교사들로서 활동하였다. 때때로 나는 쿠란봉에 있는 나의 가정을 병자들과 고통 당하는 자들을 위한 수용소로 만들었다. 배틀크릭 위생 병원에서 훈련을 받은 나의 비서는 언제나 내 옆에서 선교 간호사의 봉사를 하였다. 아무도 그의 봉사를 비난하는 자가 없었으며 우리들이 병자들과 고통 당하는 자들에게 보여 준 관심으로 말미암아 주민들의 신뢰심을 얻게 되었다. 얼마 후에 쿠란봉에 건강 요양소를 설립하게 되었으며 그 때로부터 우리들은 짐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뽐내는 주장들을 해서는 안됨
여선지자라는 주장이야말로 내가 결코 해본 적이 없는 주장이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그 칭호로 나를 부를지라도 나는 저들과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사업이 너무나 많은 분야에 관여된 것이므로 사자(Messenger)라는 명칭 외에 다른 것을 사용할 수 없으며 사자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보내시는 기별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주님께서 명하시는 어떤 일이든지 맡아 수행하는 자이다.
지난번 내가 배틀크릭에 갔을 때에 나는 많은 회중들 앞에서 여선지자라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였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두 번이나 거론하면서 나는 여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을 매번 분명하게 하였다. 비록 이 말 이외에 다른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 모든 형제들이 이해해 주기 바라는 것은 내 말의 요지가 오직 내자신이 선지자 혹은 여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형제들이 화잇 여사가 여러 해 전에 위생 병원의 숲속과 배틀크릭 교회 및 배틀크릭 근교에서 열린 장막 집회에서 말한 것과 똑같은 주장을 아직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궁금해 한다는 사정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이 오늘날 전하고 있는 기별이 지난 60년의 공중 봉사 기간 동안에 전한 기별과 동일하다는 것을 저들에게 보장해 주었다. 그 여성(엘렌 G. 화잇)은 어린 소녀 시절에 맡은 사업을 아직도 주님을 위해서 동일한 봉사를 하고 있다. 그 여성은 동일한 교사에게서 교훈들을 받는다. 그 여성에게 주신 지시는 내가 너에게 보여 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 사람들이 받아서 읽을 수 있도록 내가 너에게 준 기별들을 기록하라는 말씀이었다. 바로 이것이 그 여성이 수행하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나는 많은 책들을 저술하였으며 그 책들은 널리 읽혀졌다. 내 자신의 힘으로는 이 책들 가운데 진리를 증거할 수 없었으나 주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나에게 도움을 주셨다. 지난 60년 동안에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교훈들을 내포한 이 서적들은 하늘에서 온 빛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철저한 조사에 따르는 시험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78세의 나이에도 아직 힘써 일하고 있다. 우리들은 모두 주님의 섭리 가운데서 살고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을 결코 떠나시거나 저버리시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주님을 신뢰한다. 나는 내 자신을 주님의 보호에 맡겨 버렸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 1906년 7월 26일 리뷰 앤드 혜랄드.
선지자의 영역을 능가한 사업
설교 도중에 나는 여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놀랐으며, 이 문제에 관하여 하도 여러 말들을 하므로 나는 설명하기로 결심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여선지자라고 불렀으나 나는 결코 그러한 칭호를 취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가리키는 칭호를 선정하는 것을 나의 임무로 여기지 않았다. 우리 시대에 자칭 선지자라고 담대하게 주장하는 자들은 종종 그리스도의 사업에 수치거리가 된다.
나의 사업은 이 명칭이 의미하는 것보다 더욱 광범위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기별을 전하시기 위하여 임무를 맡긴 사자로 여기고 있다(서신 55, 1905년).
나는 선지자의 특징에 관하여 가설적(假說的) 이론들을 늘어놓는 자들이나 선지자의 가상적인 사업에 관련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자들 때문에 나의 사업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지시를 지금 받았다. 나의 임무는 선지자의 사업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선다. 나의 임무는 불신의 씨앗을 뿌려 온 자들의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더 큰 것을 내포하고 있다. ― 서신 244, 1906년(배틀크릭 교회의 장로들에게 보낸 것).
빛을 받아 나누어줌
내가 계시를 받을 때와 받고 나서의 나의 상태에 관하여 시시로 질문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주님께서 계시를 주실 필요가 있을 때마다, 나 자신이 예수님과 천사들이 있는 곳에 이끌려 가게 되며 세속적인 사물에 대하여는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나는 천사가 나에게 가리켜 주는 것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한다. 때때로 이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들에 대하여 나의 주의가 이끌릴 때도 있다.
때때로 나는 먼 장래로 이끌려가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광경을 바라볼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과거에 보여졌던 것처럼 또다시 보게 된다. 계시를 받고 난 후에 나는 내가 본 모든 것들을 즉시로 기억하지 못하며 내가 글을 쓸 때까지는 제시된 문제가 머리에 밝히 떠오르지 않는다. 글을 쓰려고 할 때에 계시에서 보여진 것과 같은 광경이 내 앞에 떠오르게 되고 나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때때로 내가 계시에서 본 것들이 계시를 받고 난 후에 내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며 나는 그 계시가 적용되는 한 무리 앞에 서게 되는 순간에 계시에서 본 것들이 머리에 확실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나는 계시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계시에 대하여 말할 때나 글을 쓸 때에도 전적으로 주의 영을 의지하게 된다. 주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나로 계시에 대하여 말하고 글을 쓰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계시의 내용을 보여 주시지 않는 한 나에게 보여진 것들을 기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Spiritual Gift 2권, 292, 293, 1860년).
내가 계시를 받으면서, 내가 본 것들을 기록할 때에 주님의 영을 전적으로 의존하기는 하나, 내가 본 광경들을 묘사할 때에 사용하는 언어들은 내 자신의 것이며 천사가 직접 나에게 말한 것만은 언제나 인용문의 표시로 따옴표를 한다(리뷰 앤드 헤랄드, 1867년 10월 8일).
화잇 자매가 마치 이러한 문제들을 말할 권위를 가지고 있기나 한 듯이 그처럼 결정적으로 말하는 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잘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있다. 내가 그처럼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맹렬한 폭풍 속에서 검은 구름을 뚫고 번개가 번쩍이는 것처럼 혼란에 빠진 나의 정신에 그러한 사실들이 번뜩 머리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떤 광경들은 여러 해 전에 나에게 보여진 것이므로 기억에 남지 않은 때도 있으나 교훈을 주실 필요가 있을 때이면 때때로 내가 사람들 앞에 서 있을 때에라도 마치 번개의 섬광처럼 예리하고 선명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특수한 교훈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 때마다 나는 내 머리에 번뜩이는 사실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은 내가 새로운 계시를 받아서가 아니요 과거 몇 해 전에 나에게 보여진 사실들이 내 머리에 강렬하게 회상되기 때문이다(The Writing and Sending Out of the Testimonies to the Church, 24).
무오설(無誤設)을 주장한 적이 없음
배워야 할 교훈들이 많은 반면에 배워서는 안 될 것들도 너무나 많이 있다. 오직 하나님과 하늘에 속한 것만이 오류가 없다. 본래 가진 견해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또한 견해를 바꿀 기회조차 절대로 갖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침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완강한 고집으로 우리들 자신의 사상과 견해만을 주장하는 한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기도하신 연합의 정신을 가질 수 없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2년 7월 26일).
무오설에 관하여 나는 결코 그것을 주장한 일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만 절대로 오류가 없으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시고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약 1:17)다. ― (서신 10, 1895년).
신성에 속한 것과 일반적인 요소
캘리포니아 위생병원
1909년 3월 5일
나는 남 캘리포니아에서 다년간 교역자였던 A형제로 말미암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이상한 말들을 하였으며 나의 증언 가운데 일치하지 않는 모순이 있다고 하여 증언 전체를 부인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지적하는 모순이란 내가 한 말 가운데 파라다이스 밸리 위생 병원의 병실 숫자가 틀렸다는 것이다. A형제가 남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형제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병원에는 병실이 38개밖에 없는데 내가 40병실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A형제는 이 점을 들면서 증언들에 대한 자신의 신뢰심을 전적으로 상실했다고 그 이유를 나에게 말해 주고 있다. …
파라다이스 밸리 위생 병원의 병실 수에 관하여 소식을 전한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인간적인 의견으로 말한 것뿐이었다. 과거에 우리 위생 병원들의 병실의 정확한 숫자를 계시로써 보여 주신적이 결코 없었으며 그런 일들에 대하여 내가 지식을 얻게 된 것은 그것들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말할 때에 내가 한 말 가운데 그러한 지식을 주님께서 주신 계시로서 알게 되었다든가 계시로 받은 것이라고 믿을 만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
성령께서 주님의 사업에 관련된 기관들에 대하여 혹은 인간의 심령과 정신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관하여 어떤 사실들을 나타내 보이실 때, 또는 과거에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 이러한 사실들을 증거하셨을 때 주신 기별은 그 빛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빛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신령한 것과 일반적인 것을 혼동한다는 것은 커다란 실수이다. 이러한 경향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은 영혼들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원수가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영혼에게 당신을 섬길 수 있는 능력들을 주셨으나 사단은 영혼들을 끊임없이 유혹하므로 이 봉사 사업을 어렵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사단은 영적 식별력을 어둡게 하여 사람들이 일반적인 것과 거룩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나는 평생을 통하여 주님께 봉사한 경험으로 이 차이점을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
나에게 기별을 주셨는데, 너는 일찍이 유한한 인간에게 맡겨진 일이 없었던 가장 고상한 사업을 위하여 네 자신을 헌신하라. 나는 너에게 고상한 포부와 능력과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한 참된 사명을 줄 것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애와 죽으심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사신 바 되었으니 너는 네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화된 그대의 자녀의 마음과 봉사를 요구하신다는 기별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나 자신, 내 전체를 바쳤으며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순종하였고 그 때 이후로 나의 펜과 회중들 앞에서 말로 기별을 전하는 일에 내 평생을 바쳤다. 그러한 때마다 나의 말과 행동을 지배하는 이는 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일에 대하여 말을 해야만 할 때가 있으며 일반적인 생각들이 차지하거나 일반적인 편지를 써야 할 때도 있으며 교역자들 간에 서로 주고받은 소식들을 옮길 때도 있다. 그러한 말들과 소식들은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영감을 따라 받은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신앙적인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질문들을 받고 이러한 질문들을 답변해야만 할 때가 있다. 또한 우리들은 가옥과 토지들, 물건 매매, 우리 기관들의 위치 및 그러한 위치에 따르는 유리한 조건들과 불리한 조건들에 관하여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어떤 때 나는 여러 가지 이상한 문제들에 관하여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받게 되며 내가 받은 빛에 따라서 저들에게 조언의 편지를 쓴다. 사람들은 빛을 받기를 원치 않으므로 내가 지시 받은 권고를 저들에게 줄 때에 거듭거듭 반대하였으며 그러한 경험을 겪을 때마다 나는 가장 열렬한 심령으로 주님을 찾게 되었다(원고 107, 19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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