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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가 2살 이전을 기억한다고 대답했지만, 대부분은 허구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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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는 사람이 만 2세 이전의 일을 직접 기억할 수 없다고 본다. 십중팔구는 진짜 기억이 아니라 사진, 가족의 이야기,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거짓 기억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뇌의 미발달 :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해마와 전전두엽이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아기 기억상실 : 보통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이른 기억은 만 3세~3.5세 이후의 일이다. 가짜 기억이 생기는 이유는 사진과 이야기 : 어른들이 들려준 이야기나 어릴적 사진을 보고 뇌가 스스로 장면을 만들어낸다. 착각 : 나중에 겪은 일을 아주 어릴 때의 일로 잘못 생각하기도 한다. [AI 응답]
유아기 기억상실에 대해서는 잘못된 정보가 검색되고 있다. 3살 이전을 기억하는 사람은 0에 가깝고, 그나마 단편적인 기억이며, 자서전적인 기억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엥? 그럼 난 뭐야? 아예 기억을 못한다고 단정하면 잘못이다. 과거에 썼던 글이 검색되지 않으므로 오류를 바로잡아줄겸 기록용으로 정리해 둔다.
한살 이전의 기억은 사진을 봤거나, 어른들이 해준 말이거나, 동생에 대한 기억이 섞인 것이라고 한다. 그런 말은 단편적인 기억에 해당된다. 나는 사건을 기억한다. 레딧을 보면 얼굴을 기억하거나 색깔을 기억한다고 하는데 내 기억은 스토리다. 안면인식 장애 때문인지 얼굴 모습은 기억나지 않고 동네 풍경은 기억한다.
머리 속에 지도가 펼쳐지면 산과, 들과, 마을과, 도랑과, 하천과, 언덕과, 다리와 이웃마을까지 전체적으로 기억한다. 어찌 그 모습을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만 네살 때 경주로 이사를 왔으므로 만 36개월 이전의 기억이 확실하다. 나이가 들어서 잊어먹을 때가 되었으므로 기억나는대로 정리를 업데이트 해 두어야겠다.
단편적인 기억도 있다. 딸랑이를 흔들고, 엄마 등에 업히고, 곤지곤지, 도리도리, 잼잼 놀이를 하던 기억들이다. 곤지곤지 하며 오른손 검지로 왼손 손바닥을 찌르다가 귀! 하고 귀를 잡는다. 곤지곤지 코!, 곤지곤지 입!, 곤지곤지 눈으로 바꿔가며 놀이를 반복한다. 대개 인상적인 사건이다. 즐겁거나 창피한 일을 기억한다.
겨울에 큰형이 이불 속에서 왼쪽 무릎을 수직으로 세우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정강이에 올리면 이불로 산이 만들어진다. 이불 산을 기어오르는 놀이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발가벗고 있어서 이불의 촉감이 좋았다. 이불 위를 기어오르다가 미끄러지고 또 기어오르고를 반복하며 온몸으로 그 촉감을 즐긴다. 무수히 반복된다.
기억에 대한 기억 곧 메타기억이다. 어제도 이 놀이를 했고, 오늘도 했는데, 잊어먹지 말고 내일도 해야지 하는 흥분된 느낌을 기억한다. 이불의 촉감은 나만 느낀 것이다. 누가 내게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도 없고 해줄 이유도 없다. 사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앨범 이전에는 사진에 찍혀본 일이 없다.
가장 재미있었던 놀이는 한쪽 벽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가 형이 ‘요이 땅!’ 하고 신호를 주면 빠르게 기어서 맞은편 벽을 터치하는 놀이다. 아직 일어서지 못했으므로 한 살 이전의 기억이 맞다. 이 놀이도 무수히 반복되었다. ‘우리 동렬이 잘한다.’ 하고 칭찬을 받았다. 좀 크면 마당을 기어가서 대문을 터치하려고 했었다.
어느 순간 마당에서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참 그때 마당을 기어가기로 했지. 옛 기억이 떠올랐지만 억지로 길 수도 없고 어쩌지? 그런 고민을 한 기억이 있다. 마당에서 닭똥 따위를 주워먹다가 혼난 기억은 누구나 있지 않겠는가? 에비다! 뱉어라! 하고 등을 찰싹 때린다. 젖을 뗄 무렵 12개월 전후로 기억이 많다.
젖니가 자라서 나도 모르게 엄마 가슴을 깨물었다. ‘너는 저번에도 깨물어서 그러지 마라고 했고, 어제도 깨물어서 혼이 났는데, 이번에 또 그러니? 여기에 피가 나려고 하는게 안 보여?’ 하고 크게 꾸짖어서 상처받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루는 젖을 떼려고 가슴에 식초를 발랐다.
밥을 먹던 때였으므로 식초를 맛있게 빨아먹었다. 다음 날은 고추장을 발랐는데 역시 맛있게 먹었다. 이번에는 색이 검게 변한 김치 이파리 여러 개를 가슴에 붙였는데 충격을 받아서 이후 어머니 가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때 깜짝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대개 이런 식이다. 뭔가 꾸지람을 들으면 상처를 입어 잊지 못한다.
돌잡이 상을 받았을 때인데 ‘이걸 잡아라, 저걸 잡아라.’고 다들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당황했다. 10환짜리 동전을 잡았는데 미역국에 빠뜨리고 말았다. 뭔가 잘못을 저질렀는가 싶어 악을 쓰며 크게 울었다. 강요당하는 상황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집에서 나와 첫 번째 모퉁이까지 대문에서 20미터쯤 걸어갔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집이 보이지 않는다. 집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뒤돌아보고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외사촌 형이 지나가다 보고 ‘너 왜 여기까지 나왔니?’ 하고 집으로 데려갔는데 다음날은 더 멀리까지 진출했다. 모퉁이까지 가보기로 마음먹고 긴장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겨울이었고 논에는 벼가 자라지 않았다.
생후 1년 8개월 쯤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논으로 변해버렸지만 다섯가구 정도가 일렬로 있었고 집앞으로 작은 개울이 흘렀다. 집에서 두집 건너 세번째 집이 이모네였는데 한집 두집 하고 세면서 갔다. 집앞 개울은 물이 가슴까지 오는 큰 개울이었는데 나중에 가보니 물이 겨우 발목을 적실 정도의 작은 도랑이 되어 있었다.
개울을 건너는 작은 다리에 흙이 덮여 있었고 비오는 날 삼형제가 진흙으로 구슬을 만들어 햇볕에 말렸다. 유리구슬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집 뒤로 1미터쯤 되는 둔덕이 있고 뽕나무 십여그루가 자랐다. 둔덕 밑으로 배수로가 있어서 비가 온 날 형과 세수를 했다. 매일 거기서 세수하려고 했는데 비가 오지 않아 말라버렸다.
가족들은 밥을 먹는데 나만 젖을 먹으니 식사시간은 외톨이가 된다. 심통이 나서 밥상 위로 기어오르려고 애를 썼는데 어른들이 손으로 밀어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아버지의 목덜미로 기어올랐다. 벽과 아버지나 형의 등 사이의 좁은 틈새가 타고 넘기 좋은 목표가 되었다. 틈새만 눈에 보이면 신나서 비집고 들어갔다.
검색해도 안 나오지만 장롱을 사투리로 ‘개’라고 했다. 어릴 때는 잘 울었는데 형은 등 뒤로 한 손을 감추고 ‘개’를 긁으면서 ‘범 온다.’ 하고 위협하면 울음을 그친다. 나중에는 동생이 울때마다 내가 이 수법을 써먹었다. 개를 긁는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위협적이었다. 만 네살 때 경주로 이사를 왔으므로 그 이전의 기억이다.
하루는 이웃집 할머니가 놀러왔는데 내가 옹알이를 했다. 외할머니가 ‘우리 동렬이 '사실' 잘한다.’고 칭찬하자 이웃집 할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쓸데없이 주목을 끈 것이다. 이후 옹알이를 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방문을 열고 마당을 확인하며 밤 사이에 있을 것이 제 자리에 있는지 확인한 건데 ‘사실’이라고 명명되자 당황했다.
사람은 목적이 있는 행동을 해야하는데 목적이 없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들켜서 창피하게 생각한 것이다. 한살 짜리도 알 것은 다 안다. 잘 하는 것도 칭찬하면 안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기저귀를 갈때마다 곤란해졌다. 노란 고무줄을 탁 튀길 때의 따끔하고 불쾌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기저귀를 갈아채우는 동안 꼼짝 못하고 붙잡혀 있는게 고통이다. 엉덩이가 뚫린 빨간 내복바지를 입는데 옷을 입을때마다 엉덩이 구멍으로 다리를 잘못 끼운다고 꾸지람을 들어 신경이 곤두섰다. 지금도 그렇지만 모든 동작에 서툴러서 핀잔을 자주 들었다. 이런 기억은 단편적인 기억이 아니라 반복의 기억인게 중요하다.
옷을 입을때마다 어제도 입었고, 그제도 입었는데, 또 입네 하고 지난번 기억을 떠올린다. 나일론 옷은 질겨서 머리를 끼우려면 용을 써야 한다. 정전기가 올라 따끔거린다. 기억이 연결되어 퇴적되어 있다. 매번 이전 기억을 호출하니 기억의 기억이다. 방에서 마당으로 내려오기는 대단한 모험이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등을 돌리고 엉덩이를 마당쪽으로 해서 내려가면 문지방을 손으로 잡고 매달릴 수 있어서 안전하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낸 것이 대견했다. 어찌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등을 돌리면 내러설 댓돌이 보이지 않으므로 착지할 곳을 미리 충분히 봐서 안심한 다음에 내려가야 한다. 댓돌로 내려서면 고무신 왼쪽 오른쪽을 가린다.
잘못 신어서 한소리 들은 일이 몇 번 있어서 신중하게 판단했다. 익숙해져서 왼발 오른발을 잘 가릴 수 있게 되었어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는 형들을 따라 3백미터쯤 떨어져 있는 작은 하천에 멱감으러 갔다. 형들이 어디를 가든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동생을 돌보는 것이 형들의 일이므로 나를 떼놓고 갈 수는 없었다.
50센티 정도 밖에 안되는 얕은 수심이었을텐데 물로 들어서자 공포를 느꼈다. 형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물로 들어갔는데 형의 목을 졸라서 ‘동열아 목 잡지 마라. 놔라.’ 하고 형이 여러 번 외쳤다. 이번에는 형의 귀를 잡았다. 귀만 잡으면 자세가 안정되지 않아 불안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때 나는 왜 물을 무서워했을까?
물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게 된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근육이 굳어서 숨을 쉬지 못하므로 고통이 전달되어 공포를 느끼게 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이다. 엄마한테 이르지 않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지만 엄마를 보자마자 뛰어가서 ‘엄마 엄마! 우리 멱감으러 안갔데이.’ 하고 실토하고 말았다. 형은 매를 맞았다.
네살 무렵 나를 떼놓고 외사촌 형을 포함해 형들 셋이서 낚시바늘 사러 간다고 5리가 떨어져 있다는 의곡리로 다리를 건너서 가버렸는데 나는 악을 쓰고 울면서 다리 앞까지 쫓아갔다. 내가 쫒아가지 못하게 뛰어간 것이다. 결국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형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무도 없는 신작로에 버려져서 혼자 울고 있었다.
어부바 하고 엄마 등에 업힐 때는 포대기를 매고 얇은 천을 덮었는데 햇볕이 내부로 비쳐서 안락한 느낌이 든다. 한 두 번 업히는게 아니므로 장면이 무수히 겹쳐져 있다. 이전의 기억이 호출된 것이다. 업힐때마다 기분좋았다. 어떻게 잘 업힐까를 궁리했다. 이런 식의 주변과 연결된 전반적인 기억의 덩어리는 왜곡될 수 없다.
네살 때 경주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오자마자 같은 동네에서 또 이사가기를 세 번을 더해서 1년 사이에 네 번이나 이사를 가게 된다. 몇 개월마다 옮겨다녔기 때문에 이삿짐을 옮길때마다 동그란 밥상을 들고 가는 것은 내 담당이었다. 다음번 이사 때도 내 담당인 밥상을 잘 챙겨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더는 이사가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경주로 오는데 동방이라는 곳을 지나왔는데 낯선 곳을 처음 가므로 경유지를 잊으면 안돼 하고 동방을 꼭 기억했다. 나중 지도를 찾아봤지만 동방은 불국사 방면에 있고 우리집 방향에 없었다. 산내면에 동방주유소가 있었지만 관련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 말로는 차를 타자마자 잠들었다고 하는데 이상하다.
처음 타 본 버스 안의 인상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네살 아래의 동생(3년 9개월 째)이 태어났는데 엄마 배가 산만큼 불러서 걱정을 했다. 겨울이었는데 나는 방에서 쫓겨나 혼자 마당에 있었다. 외할머니가 세수대야에 더운 물을 받아서 방으로 들어갔고 조금 있다가 아버지가 낫을 갈아서 방으로 들어갔다. 낫을 봤기 때문에 겁을 먹었다.
대문에 새끼줄로 만든 금줄이 걸렸다. 잊을 수 없는 일이다. 60년대만 해도 어머니, 아버지는 짚신을 신고 다녔다. 짚신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70년대부터 고무신으로 바뀌었다. 왜 기억이 사라지는가? 아기 때의 기억은 입양을 방해할 수 있다. 원시사회에서 엄마가 버린 아기를 이모가 키우는 일은 흔하다. 진화의 전략이다.
소뇌가 성장하면서 해마에 저장된 기억을 지운다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왜 기억하는가? 소뇌가 성장을 덜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유아기 기억 상실은 아기의 입양을 돕는 장치로 봐야 한다. 아기가 친모를 찾아가면 곤란하다. 유당불내증과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유당불내증이 없으면 아버지와 아기가 엄마젖을 놓고 경쟁상태가 되므로 좋지 않다. 유당불내증이 있는게 낫지만 사람이 엄마젖이 아니라 소젖을 먹을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유당불내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치가 있지만 헐겁게 작동하는 것이다. 유아기 기억상실과 관련하여 잘못된 몇 가지 사실을 바로잡자.
1. 머리 속의 지도를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기억한다.
2. 칭찬을 들었거나 꾸지람을 들었을 때 흥분한 사실을 기억한다.
3. 어떤 일이 반복될 때 이렇게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을 기억한다.
4. 같은 일이 반복될 때 이전에 기억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5. 아기도 알 것은 다 안다.
아기 때도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모두 모아놓았다. 처음 숨바꼭질 놀이를 할 때 신체의 드러난 일부만 보고 가려진 전체를 파악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엉덩이만 보고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아기들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추론의 맹점이 있다. 멱감으로 안갔다고 했는데 어떻게 간걸 알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