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봄철
시흥시 관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관무정 소속 20여명의 궁사들이
죽율동에 새로 활터를 마련하였다.
주로 죽율동에 거주하는 사원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1990년 9월 20일 대한궁도협회에 정식으로 정을 등록하면서 시화정이라 이름하였고,
초대사두에 홍건표씨, 부사두에 김진한씨를 선임하였다.
이때 창립멤버가 홍건표씨(1,2,6,7대사두)를 비롯 함용(당시 경기도대표선수),
김진택(3대사두), 안승범(4대사두), 안경호(5대사두), 김진한(9대사두), 박화일씨 등이었다.
넓은 부지와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활터의 특성 상
민간 자생 사정이 그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자주 시청의 단속 대상이 되었다.
수차례 활터를 이동해가며 활을 내다가
수자원 공사에서 시화지구를 개발할 때 활터가 수자원공사에 수용되면서
시화정 사원들은 시흥시에 활터 건립을 부단히 요청하였다.
홍건표, 김진한, 김진택씨 같은 분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드디어 1999년 정왕동에 옥구공원이 조성될 때 궁도장 부지가 마련됐다.
시화정 사람들의 염원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가 활터 부지를 조성하였고
시흥시는 4억5천만원을 들여 현대식 활터를 건립하였다.(2001.10.26일 준공)
시흥정의 부지는 11,400㎡(3,448평)이고, 4개의 과녁이 있다.
시흥정은 전국 규모의 대회를 열 수 있는 활터이다.
2004년 제1회 시흥시장기 전국남녀궁도대회를 시작으로
2018년 까지 총 11회의 시흥시장기 전국 남녀 궁도대회를 치렀다.
2017년에는 1억 3천만원의 예산으로 사대 처마, 사대, 정 내부 바닥, 창호 교체 공사 및
정 주변 아스팔트 포장공사를 했고,
2018년에도 1억 5천만원의 예산으로 토성 보수 및 과녁 교체공사, 조명공사, 내부 전기공사
현관출입문 이중문 공사, 보도블럭공사, 조경공사, 내부 냉난방 시설 개선 사업을 하였다.
2019년에는 1억원의 예산으로 정내부 주방, 정간 인테리어, 창문썬팅, 궁방 보수, 기와보수,
창호 교체, 연전길 메타쉐쿼이어 식재, 토성 조경공사 등을 실시할 예정에 있다.
2019년 현재 약 70여 명의 궁사가 있으며 18명의 유단자를 보유하고 있다.
시흥정은 처음 토박이들이 모여 시작하였으나 시화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기업체 직원 및 신도시 아파트 주민이 시흥정에 가입함에 따라
궁사들의 출신지와 연령대도 다양해졌다.
2019년 5월 현재 최연장자로는 83세의 천인계 고문, 최연소자로는 14세의 윤찬영군이 있다.
2017년 제63회 백제문화제 기념 제5회 공주시장기 전국남녀궁도대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하였고,
같은 해 제22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생활체육전국궁도대회 노년부에서 시흥정 소속 장대영 고문이
개인전 1위를 차지하는 등 우수한 기록을 내는 궁사들을 배출하고 있다.
※시흥정 창립기념일 : 9월 20일
시흥정은 시화정을 모태로 하여 설립되었기 때문에
시화정이 대한궁도협회에 정식으로 정 등록한 날을 창립기념일로 삼고 있다.
[시흥정 부지]
전체 면적(건물,녹지,토성 뒷편 밭,주차장 포함) : 90m*240m=21,600m2(6,534평)
순수 궁도장 면적(토성,건물,건물뒷편 조경면적,궁도장 좌우 조경면적 포함,궁도장 울타리 내부)
: {47m*74m=3,478m2(1,052평)} + {62m*135m=8,370m2(2,532평)}=11,848m2(3,584평)
주차장 면적 : 16m*108m=1,728m2(523평)
잔디밭 면적(좌우연전길 내부~모래방지턱) : 45m*125m=5,625m2(1,701평)
모래밭 면적 : 30m*26m=780m2(235평)
토성면적(모래밭 포함) : 45m*45m=2,025m2(613평) *모래밭 제외 토성면적:378평
[시흥정 부지 개요]
궁도장 관할 전체 면적 : 6,534평
궁도장 울타리 내부 면적 : 3,584평
주차장 면적 : 523평
잔디밭 면적 : 1,700평
모래밭 면적 : 235평
토성 면적 : 378평
관무정(觀武亭)
시흥시 관내 활터의 이름은 대부분 지역의 명칭을 따 사정(射亭) 이름을 지었는데 관무정은 예외다.
관무정은 경기권에서 수원의 연무정 다음으로 오래된 활터로 알려져 있다.
수원 연무정은 화성 축성 이후 1796년 축조되어 정조대왕이 수차 유엽전으로 어사 하시던 기록이 남아있는
유서깊은 곳이며 무과의 예시장으로 223년간 활쏘기의 맥을 이어온 곳이다.
그러나 자료가 비교적 잘 보관되어 있는 연무정에 비해 관무정의 경우 거의 구전으로 내려 올 뿐
관무정의 역사를 증명할 만한 문헌 자료가 없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략 200년의 역사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구전 자료>
1.
2019년 현재 집궁 49년을 맞은 관무정의 최재갑(71) 고문이 들은 얘기 몇가지는
1) 연무정으로 가던 노인 한 분이 관무정을 지나면서 말하기를 "무과에 급제하려면 연무정과 관무정을
통해야 한다"
즉, 두 정에서 습사를 해야 무과 급제에 유리하다는 말이 전해온다는 것이다.
2) 또 궁사들 사이에서는 "작은 집(관무정) 거쳐 큰 집(연무정) 간다"는 얘기도 오갔다고 들었다고 한다.
2.
몇년전 작고하신 전재도씨는 한기홍 전 사두가 관무정의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사원들은 1대 사두인 박묵산씨가 작명했다고 했으며
또 다른 이는 관무정의 이름은 그 훨씬 전 부터 불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3.
지금은 작고하신 황현정의 한충수 고문은 관무정이 무과시험을 볼 때 예비심사를 하던 곳이라
무인, 무술을 의미하는 '武'자가 쓰였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충수 고문의 부친 한용석씨도 관무정의 사두를 지냈다.
4.
최재갑 고문의 말에 따르면,
시흥군 시절엔 시흥 곳곳의 무사들은 물론 수원과 반월 등 각지에서 관무정으로 활을 쏘러 왔다고 한다.
시흥의 경우 관무정에서 연마를 한 많은 무사들이 그후 각자 자기 동네에 정을 만들면서 현재와 같이
많은 정이 생겨났다고 한다.
대한궁도협회가 설립된 후 소래정이 관내 사정 중에 가장 먼저 등록을 했지만 실제 역사는 관무정이
가장 오래 되었으며 군자정과 장곡정, 시화정 등이 모두 이곳에서 태동했다고 하였다.
<기록에 나타나는 관무정>
1.
대한궁도협회가 '74년도 등록 사정 현황 통보(74년 5월 20일 현재)' 라는 제목으로
부산궁도협회에 보낸 제103호 공문에는
시흥 관무정, 시흥 운학정, 시흥 소래정 이 등장 한다.
관무정과 소래정이 1974년 이전에 대한궁도협회에 가입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
수원시궁도협회 소속 연무정에서 발행한 '연무정기'(2003년)에는
경기남부 10개정 대회는 연무정이 주관하여 1981년 3월에 개최된 3개정(연무정, 반월정, 관무정)
친선궁도대회가 그 시초가 되었다.
- 연무정기 179쪽 -
사두 취임식을 겸해 열리기 시작했던 경기남부 10개정 대회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지만
관무정은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관무정의 변천>
최재갑 고문의 말에 의하면
아주 유년 시절 부친과 동네 어른들은 통심산, 일명 쪽박산 중턱에서 수수 울타리를 쳐 놓고 활을 쐈다고 한다.
산 모양이 쪽박처럼 생겨서 쪽박산이다.
그러나 개발이 진행되면서 남의 집 마당으로 활터를 옮겼는데,
그때 스물두 살 나이에 처음으로 활을 잡았다.
사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정을 지었다.
고인이 된 윤점흥씨가 안성을 스무 번이나 다니며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그 자리에 정을 지었다.
현재 관무정에 윤점흥씨 공적비가 서 있다.
그 다음 또 옮겨간 자리가 월곶동 8-9번지다.
그러다 또 현재 고속도로가 나 있는 자리로 옮겼다.
윤점흥씨가 자기네 밭을 사용하도록 해 준 것이다.
곡식 심어야 할 밭에 과녁 세우고 활을 쏜 것이다.
윤점흥씨 댁은 3대가 활을 쏘고 있다.
아들 윤장렬씨, 손자 윤태준씨가 여전히 활을 쏜다.
현재의 관무정 자리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있던 곳이 성담의 유수지 땅이었는데
염전지대라 평평해서 참 좋았는데 골프장 허가가 난 뒤 잔디를 심어야 한다며 성담에서 나가라고 해
지금 이곳으로 옮겨 왔다.
현재 관무정의 사원들은 대부분 월곶1통~4통 까지의 토박이들이다.
35,6명의 사원들 중 여무사가 네다섯 명이고, 사원들 대부분이 50~60대이다.
<관무정의 위기>
1990년대 중반 관무정에 사원이라고는 두 사람 뿐이었다.
결국 휴정하고 말았다.
이 무렵 죽율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죽율동에 활터를 마련하고
시화정이라는 이름으로 활을 내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윤장렬, 최재갑 고문이 선후배를 설득한 결과
월곶동에 사는 청장년 35명이 의기투합 다시금 정을 재건하였다.
관무정의 14,15대 사두를 지낸 고 윤용배씨(관무정 윤기억 사원 부친)는
지난 2008년 집궁회갑연을 하고 경기도 궁도협회로 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집궁 60년은 전국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일이다.
<또 다른 위기, 관무정!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수도권 도시 중 시흥시에는 활터가 꽤 많은 편인데,
소래정과 시흥정을 제외하면 민간 자생 사정으로 시설이나 규모가 열악한 데다
민원 등의 문제가 빈발해 정 통합 문제가 줄곧 대두되어 오다가
2018년 시흥시청 정문앞쪽 산 골짜기에 활터를 새로 짓고 몇개 정을 통합하기로 하여
2019년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중으로 하반기 8월에는 신설된 정에서
시흥시장기 전국대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있다.
처음 통합에 동참했던 정은 연성정,황현정,관무정 3개정이었다가
현재는 물왕정 까지 4개정으로 정 이름은 '중앙정'으로 내정되었다고 한다.
4개정이 모두 자정의 이름을 포기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중 시흥시 활터의 모태일 뿐 아니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관무정의 이름이 완전히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뜻 있는 사람들에 의해 "관무정" 그 이름이 다시 부활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2014.8월 시흥시장배 전국대회 축하 비행
2015.09.21(월) 아침에 이준숙 여무사님 촬영
2015첫눈
15.11.26(목).오형렬님 촬영
<대로변에서 바라 본 시흥정 모습>
첫댓글 멋져요
시흥정이 참 아름답네요
이유봉4단:관무정사범
출근할때 매일 보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보니 반갑네여~~